주일설교

달려야 할 길

Author
kgmcc
Date
2023-05-28 03:32
Views
138
본문 : 빌립보서 3장 12-17절

날짜 : 2023년 5월 28일

<빌립보서 3장 12~14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인생은 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길에서 우리가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는 것 처럼 우리 인생도 걸을때가 있고 달릴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생이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달리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나는 달려 가노라" 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본문 12절 후반부입니다. "12.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그리고 본문 14절 후반부입니다 "14.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부터 끊임없이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여기 스크린에 나오는 것처럼 사도바울은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그순간에 자기 자신은 지금까지 달리는 인생을 살아왔다고 고백을 합니다. 딤후 4장 7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렇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난 이후부터 계속 달려왔고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도 달려갈 길이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사도바울이 한 믿음의 고백을 보면서 저는 제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에 대하여 참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나는 과연 지금까지 얼마나 달려왔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니 나는 그동안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걷다가 쉬다가 그리고 드러눕기도 하는 신앙의 길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참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는 날 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며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왜 우리가 달리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왜 우리가 달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1. 구원을 이루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 전반부입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이 한 이 고백의 의미를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만 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확신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를 세웠고 또 그런 가운데 많은 기적과 영적인 체험을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삼층천 까지, 다시말해 천국에 까지 다녀오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확신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완성은 바로 부활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완전한 연합을 이룰때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 그때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저스티피케이션), 성화(센티피케이션) 그리고 영화(글로리피케이션)이라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신분임을 인정받게 되었는데 이것을 칭의 저스티피케이션이고 로 입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로서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점점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심령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을 성화 즉 센티피케이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화로운 몸을 가지고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영화 즉 글로리피케이션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내가 구원을 받았고 또 구원의 확신도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완전한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다 라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구원을 받았고 구원을 확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역시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입니다. “12.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우리 믿는 성도들도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온전하게 닮아가기 위해서,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달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1. 가야할 목적지가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천국의 특성은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우리 뒤에 있다면 우리는 옛날 그때의 일을 자꾸 되돌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천국은 내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든 나쁘든 우리는 이제 지나간 일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인 영적인 가나안 땅은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서는 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치 자전거를 타고 있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자전거가 멈추게 되겠죠. 그리고 달리던 자전거가 멈추게 되면 자전거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앞으로 갈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우리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합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서 가는 그 방향이 제일 중요합니다. 무조건 달려가는 것 보다는 천국에 가는 길로 그리고 생명의 길로 가는 그 방향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방향에 대해서는 백번 강조를 해도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방향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속도에 대해선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천국을 항하여 가야 한다고 하는 방향이 분명히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내가 그 방향대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죠. 그리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믿음의 생활을 오래한 성도님일수록 방향보다는 속도가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속도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섬김과 봉사를 해왔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지막날이 가까워 질수록 우리는 더욱 힘을 내어야 합니다. 3천미터 만미터 그리고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를 달리는 육상선수들을 보십시오. 골인 지점이 가까워 질수록 그들은 더욱 힘을 내어 달리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역전승을 거두는 선수들을 우리는 동영상을 통해서 쉽게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지막 날이 가까워 질수록 더욱 힘을 내야 달리도록 하십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것은 분영하게 유익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우리는 자유함과 기쁨을 가지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구원의 확신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도중에 멈추어 선 성도님들도 우리는 내 주변에서 쉽게 볼수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는데 뭐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만하며 됐다” 라고 만족을 하며 더 이상 속도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선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속도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서 있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입니다.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넘어질까 조심하라’ 어떻게 할 때 넘어집니까?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할 때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Standing firm' 굳건하게 서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움직일 필요도 없고 달릴 필요는 더욱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전거를 탄 사람과도 같습니다. 속도를 내지 않고 멈추어 서게 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자전거를 타고 앞에 있는 목적지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세의 인생을 살펴보면 각각 40년씩 세 단계로 구분되어집니다. 첫 번째 40년은 공주의 양자가 된 신분으로 바로 궁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말과 하는 일이 능통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행 7:22). 그리고 두 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장인인 이드로의 집에서 보낸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모세는 철저하게 광야의 사람으로 성장하면서 출애굽 역사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의 자질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지막 40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입구에 까지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모세가 도망쳐온 미디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화려하고 멋지던 그 궁전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하고 살아갔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마도 지루하고 따분한 현실을 살아가면서 우울증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마지만 40년 광야 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냈던 미디안에서의 생활을 잊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모세는 2백만명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수많은 가축들을 돌보는 지도자가 아니라 단지 몇 마리를 양들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일들은 잘했던 못했던 좋았던 불행했던 이 모든 일 들은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는 우리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평균 수명이 높아져서 은퇴의 나이나 시기가 조정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은퇴시기를 제도적으로 고치는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고 여러 가지를 함께 고려하면서 점차로 조정해야 할 장기적으로 세워야 할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앙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앙 안에서의 성장은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계속해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나이가 젊든 나이가 많든 상관이 없이 앞에 있는 목적지를 향하여 남은 생애동안 달려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왜 우리가 달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1. 상급을 위해서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도행전 9장을 보시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십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예수님께서 바울 이전의 사울을 부르십니까? 주님의 부르심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자의 길을 가게 함에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명과 사명으로 구분을 해서 부릅니다. 여기서 소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보내심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부르시고 또 주님이 바울을 보내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그리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가정이나 직장으로 그리고 사업터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명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명에는 기본적 사명이 있고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사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와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달란트를 주셔서 내가 이런일을 감당하며 세상을 살아가게 된 것이 기본적인 사명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자에게는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또 하나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전반부입니다.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이 사명이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있습니다. 이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 뒤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기본적인 사명 이외에도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달란트를 가졌든지 복음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때는 상급을 준비해놓으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4절 전반부에 ’푯대를 향하여‘ 라는 말씀이 나오고 마지막을 보시면 ’달려가노라‘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두 말씀을 연결하면 ’푯대를 향하여 (맨 마지막으로 가서) 달려가노라‘ 가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푯대는 곧 부름의 상 즉 상급으로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표대를 향하여 즉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다시말해서 상급을 위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사람들은 상급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를 사랑하사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토록 함께 있는 것이 가장 귀한 상급이고 축복이지 더 이상 무엇을 바라며 신앙생활을 하는가? 라는 말을 합니다. 만일 상급을 바라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댓가를 바라고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과 다른바가 없지 않느냐 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의 상급은 일한대로 주시는 보상과 같은 성격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에서 주어지는 축복을 의미한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일반 성도들뿐만 아니라 신학자들중에서도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믿는 성도인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귀한 축복이고 가장 귀한 상급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없이 아름답고 화려한 면류관을 가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없이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큰 영광인 동시에 더 큰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기에 그곳이 천국이지 아무리 금은 보화가 있다 할지라도 그곳에 주님이 없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우리 자신 보다 훨씬 더 우리를 잘아십니다. 우리 인간을 상급을 위해 더 열심히 뛰고 달려가는 존재로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성도들에게 상급에 대하여 수많은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상급” 이 두 가지 개념으로 언급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분으로서 받게 되는 유업의 상(the reward of heritance)입니다. 골로새서 3장 24절입니다. 24.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여기서 기업의 상은 영어 단어로 보면 The reward of heritance입니다. 그러니까 자녀가 된 신분이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보상의 상(the rewards of compensation)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8절 후반부입니다. 8. ...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26절입니다.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는( 모세가 이렇게 살아온 것을 의미)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구절 하나만 더 보시겠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12절입니다. 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대로 갚아주리라’

이렇게 하나님이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상은 두가지 성격으로 나뉘어지는데 사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을 받게 되는 그 이유나 그 출처는 사람에 따라 다른것임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제가 설명을 했던 자녀가 된 신분으로 받는 상급은 “믿음” 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구원과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언급이 된 보상의 상은 믿음의 행위로 받게 되는 상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급의 개념은 성경에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가진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럼으로 우리가 가진 하나님은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상 징조들을 보면 마지막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육상 선수들을 보면 골인 지점이 가까워 질수록 마지막 젖먹은 힘까지 내어서 달려가는 것을 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올수록 믿음을 가지고 충성을 다해 열심히 섬기고 봉사를 해나가십시다. “이만하면 됐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싶어하는 성도님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성도님들에게 이러한 생각이 더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인 저도 이러한 마음이 들때가 있는데 일반 성도님들이야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의 것들이 너무나 많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마치 에덴동산의 선악과처럼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보니까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보이는 것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마침내 실족하여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이 40대가 넘어가고 50대 60대가 되어도 체력관리를 하지않고 온몸의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밥먹는 근육과 말하는 근육만이 발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주님앞에 서게 되는 그날까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계속적으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 믿음은 달려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달려가되 주님앞에 서는 그날까지 끝까지 달려가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악을 알게하는 한 그루의 나무만을 제외한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이 주신 이 풍성함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오직 하나님이 금하게 하신 한그루의 나무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넘어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우리앞에 한 문제만을 보게 만듭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어려운 상황만을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온갖 상상력을 집어넣어 별별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풍성함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 사라진 것만을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고 계속 갈등이 생기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에게 사용했던 사탄의 전략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인생은 길이야 천천히 걸어도 괜찮은 거야. 그러니까 천천히 걷고 쉬기도 하면서 인생의 풍경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야지“ 그렇습니다. 인생은 길입니다. 천천히 걷고 쉬어 갈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의 풍경을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상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풍성함을 우리는 마음껏 누리면서 달려가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최종 목적지는 이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상급은 믿음으로만 얻게 되는 구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로 얻게 되는 영광스럽고 찬란한 상급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처럼 바울처럼 주님 앞에 설때까지 달려가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