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마가복음 10장 35-45절>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가 믿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바로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라는 책 내용에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모든 일은 십자가 위에 있다. 매일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생명과 평화를 얻을 수단이 없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입니다.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가(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렇게 십자가는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있기에 우리의 죄용서함이 있고 그리고 구원과 부활이 있는 것이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역설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설이란 단어를 영어로는 패러독스라고 말합니다. 이 단어는 헬라어인 ‘파라독소스 (paradoxos)’ 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의미는 “사람들의 의견이나 기대에 어긋난다.” 또는 “기이하고 놀랍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생각을 해보면 “사람들의 상식이나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더욱 기이하고 놀랍다” 라는 뜻이 됩니다.
성경에서 십자가는 죄인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 죽으신 것입니다. 역설적인 내용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죽음의 길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활을 통해 영생의 길로 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역설적인 내용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에 하신 말씀을 보면 역설적인 방법을 많이 사용하시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대조가 되는 두가지 내용을 얘기해서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6절입니다. “16.이와같이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나중된 자는 먼저되고 먼저된 자는 나중된다’ 이렇게 대조되는 단어를 사용해서 진리를 깨닫게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순서나 직분에 관계없이 착하고 충성되게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과 상급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역설인 방법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본문 43절과 44절입니다. 43.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렇게 서로 대조가 되는 내용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십니다. 그러니까 최고로 높아질려면 먼저 최고로 낮아져야 하고 섬김을 받을려면 먼저 섬겨야 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역설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믿고 구원받는 십자가 사건 자체가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세상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세상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 입니다. 하지만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능력이 됩니다. 오늘 본문 앞에는 부자청년의 사건이 나옵니다. 이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 청년은 자신이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기 위해 어릴때부터 십계명을 지키고 선한일과 구제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따르라‘. 그러자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우리는 이 부자 청년이 돈을 사랑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말을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부자 청년처럼 우리도 돈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시는 것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 하지만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 참 솔직하고 맞는 말이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도 이 부자 청년은 어릴때부터 십계명을 지켜왔고 그리고 가난한 자를 돕고 구제를 하면서 선하고 신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아마도 이 부자 청년이 바친 헌금액수는 열두명의 제자들이 드린 헌금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큰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헌금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청년을 향하여 ”그는 돈을 사랑하였기에 구원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자격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사실 이 부자 청년은 우리보다 못한 신앙생활을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입니다. 27.예수께서 그들을(제자들)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사건을 통해 사람으로선 도저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얻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일이 바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바로 십자가 사건 인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그일을 믿으면 우리는 선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 준비해놓으신 상급과 보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0절입니다.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무엇을 얻는다는 것입니까? 맨앞을 보시면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입니다.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 앉는 것이니까 여기서 그들은 최고의 상급과 보상을 누리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그들처럼 우리들도 이런 영광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귀한 상급과 보상을 누릴수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어떻게 우리도 그들이 얻게 되는 영광을 얻을수 있습니까?
첫째는 세속적인 욕망을 포기해야 합니다
본문 35절을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요청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두 제자의 요청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36절입니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두명의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37절입니다.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주의 영광 중에서 한사람은 주의 우편에 또 다른 한 사람은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 고 요청을 합니다. ‘주의 영광’ ‘주의 우편’ 그리고 ‘주의 좌편’ 이렇게 신앙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요청하고 있는 이 두제자는 지금 세속적인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훗날에 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게 되시면 그때 우리 두 사람중에 한사람은 주님의 우편에, 또 한 사람은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쉽게 말하면 임금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되는 우의정과 좌의정의 자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머지 다른 제자들이 듣고 분노를 합니다. 41절입니다.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제자들이 왜 화를 낸 것입니까? 세상적으로 귀하고 높은 자리를 야고보와 요한 두 사람이 차지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20장에도 나오는데 마태복음을 보시면 두 제자가 직접 예수님에게 와서 말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요청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 21절입니다.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자기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언제나 어디서나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중에서 어느 내용이 맞는 것입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말했습니까? 아니면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려와서 말했습니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이 기록된 시기를 살펴보면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고 마태복음은 나중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기록된 것은 먼저 기록된 것을 참고로 해서 그 자료를 보충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가 이 장면을 기록하면서 어머니를 강조한 것은 아마도 이런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라고 신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이런 세속적인 요청을 한 배경 속에는 어머니가 그 자녀에게 끼친 영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이날 직접 나서지는 않아서도 평상시에 자기 두 아들을 예수님의 양쪽 자리에 앉히기 위해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살아가는가? 아니면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부모의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동기가 부자가 되고 출세하게 해준다는 사실 때문이라면 우리는 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해나간다 할수 있습니다. 사실 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신앙생활을 하는 대신에 내가 이루고자 하는 그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를 찾아가 열심히 배우면 됩니다. 그러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욕망을 어느정도 이룰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욕망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찾고 간구하는 것은 성경적인 메세지가 아닙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일을 내가 믿는것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믿을때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고 하는 이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이 구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 구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충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세상적인 성공을 위해서, 내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길을 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떻게 우리도 그들이 얻게 되는 영광을 얻을수 있습니까?
두번째로 섬겨야 합니다
본문 42절입니다.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집권자들’ 과 ‘그 고관들’은 세상에서 지도자적인 신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진 리더십의 특성은 바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도자들은 이렇게 남을 주관하고 권세를 가지고 명령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적인 지도자들의 리더십 방법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이 가지는 리더십은 이러한 세상적인 리더십과는 달라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3, 44절입니다.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크고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섬기고 종이 되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종처럼 철저하게 섬기며 살아가야 크고 으뜸이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나에게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할 마음의 자세가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예: 슈퍼바이저 직함)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너희들이 나를 따를려고 한다면 섬기며 살아야지 자기 만족과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따르는 것은 참다운 제자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섬기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서로 섬기면서 살아가는 길인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도 그들이 얻게 되는 영광을 얻을수 있습니까?
세 번째로 고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37절 다시 봅니다. 37.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38절입니다. 3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자들이 주님의 오른편, 주님의 왼편 자리를 차지하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과 좌편에 매달린 두 강도 대신에 자기들이 매달리게 해달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뜻으로 이 두제자들이 요청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38.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느냐‘ 예수님이 마셔야 할 잔은 무엇입니까? 고난의 잔. 십자가 죽음의 잔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대답합니다. 39절 전반부입니다. 39.그들이 말하되 할수 있나이다. 이 제자들의 대답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39절 후반부입니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세)례를 받으려니와 예수님은 미리 예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 언젠가는 너희들도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게될 것이다“. 이 말씀속에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제자들도 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일 입니다. 섬겨야 하는 일은 우리의 수고와 우리의 땀을 요청합니다. 섬겨야 하는 일은 우리의 물질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옷에 흙이 묻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남을 섬길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섬겨야 하는 일은 고난과 고통을 요청합니다. 섬기는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이런 저런 모양의 고통과 고난을 만나게 된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으려니와‘ .
그러나 고난만 당하고 끝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니지요. 고난 후에 얻을 영광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40절입니다.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너희들이 최선을 다해 섬겼다면, 그리고 고난까지 받았다면 그일을 기억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에 맞는 상급과 그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라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요. 신앙의 선배들이 고난중에서도 인내할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는 주님께서 준비해놓으신 그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 성경 말씀을 가장 좋아하셨던 목사님중의 한분이 주기철 목사님이십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 생활을 할 때 하나님 한 분외에 우상에게는 절을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일본의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오랜 감옥생활을 하시다가 마침내 순교를 하시게 된 목사님이십니다. 이 주기철 목사님이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 당하기 직전에 감옥에서 한번 풀려나게 돕니다.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받았으니까 이제는 변화가 생기겠지 라고 일본 경찰이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그 주일날 주기철 목사님은 ‘다섯가지 종류의 기도’ 라는 설교 제목으로 설교를 하십니다. 그 내용을 요약해보면 첫째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게 하옵소서‘입니다. 그리고 두번 째 기도 제목은 ‘장기간의 고난을 견디게 하옵소서‘ 입니다. 세번째는 ’나이가 많으신 나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자와 교회 성도들을 주님이 돌보아 주시옵소서‘. 그리고 네 번째 기도 제목은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옵소서‘. 마지막 다섯번 째는 ’내 영혼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이렇게 다섯 종류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고백하신후에 주기철 목사님은 일본 경찰 손에 붙잡혀서 감옥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마지막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기철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되면 야 정말 대단히 믿음이 크신 분이시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 주광조 장로님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아버지는 평상시에 그렇게 당당하고 담대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렇게 강한 분도 아니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 아버지는 마음이 약하셨고, 겁이 많으신 분이었고, 그리고 정이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저희 아버님은 그 길을 갈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주님이 도와주심으로 말미암아 담대하게 마지막 그길을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때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만나게 되는 고통과 고난이 너무나 힘들고 무거워서 내힘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갈수 없게 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도와주시면 그 길을 갈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가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속적인 영광을 구했던 야고보와 요한이 갔던 그 마지막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 제자인 야고보는 열 두 제자 가운데서 가장 먼저 순교자가 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명의 제자, 요한은 12명의 제자 가운데서 제일 오래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제자 중 한명은 제일 먼저 죽었고 다른 한명은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얼마나 빨리 죽었느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그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신 상급과 보상을 우리가 받을수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요. 열두 제자들 중에 가장 먼저 죽었던 야고보도 가장 오래 살았던 요한도 모두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이 두사람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좌, 우편에 앉았는지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제자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과 보상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낮아질 때 주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생활을 기본적인 것입니다. 교회이외에서도 직장에서와 가정에서 그리고 삶의 터전에서 그 어디서나 섬기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예수님처럼 우리도 겸손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높여주시는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