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헤어짐

Author
kgmcc
Date
2023-08-20 01:12
Views
128
본문 : 창세기 31장 51-55절

날짜 : 2023년 8월 20일

 

<창세기 31장 51-55절>

51.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2019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 지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이후에 급속하게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번지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소위 코비드 19 팬데믹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망자가 생기게 되자 세계 각나라에서 사람이 생존해나가는데 꼭 필요한 생필 품목을 생산해내는 공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교와 직장 그리고 사업체를 폐쇄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서비스업종이나 자영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입이 끊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각나라들마다 많은 돈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금리도 제로에 가까울만큼 낮추어서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시중에 돈이 많아지게 되었고 그만큼 돈가치는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물가가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하게 되자 미국 중앙 은행이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그와 동시에 시중에 풀린 돈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정책을 계속해나가고 있는데 이렇게 되자 여러나라 기업과 은행들이 부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여기 저기레서 경기가 침체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물가는 올라가고 경기는 침체되어지다가 보니까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더 메말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일에도 서로 대립을 하고 갈등하면서 다투는 모습들을 주변에서 자주 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이 삭막해지고 메말라 갈수록 우리 믿는 성도들은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20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살았던 야곱과 외삼촌 라반이 마침내 화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했고 그후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야곱은 두 아내와 많은 자녀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외삼촌 라반이 양떼들의 털을 깎기 위해서 멀리 나가 있는 동안에 야곱은 가족과 가축들과 함께 몰래 도망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중에 라헬은 아버지 라반의 집에 들어가서 드라빔을 훔쳐서 떠납니다. 그로부터 사흘후에 라반은 야곱이 도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그리고 드라빔까지 가지고 도망간 것을 알고는 분노를 하며 야곱의 뒤를 추격합니다. 그리고 추격한지 일주일 만에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붙잡게 됩니다. 야곱을 만나자 마자 라반은 드라빔부터 찾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드라빔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드라빔이 무엇이길래 라헬은 드라빔을 훔쳐서 가져갔던 것입니까? 그리고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서까지 내놓지 않고 끝까지 숨겼습니까? 또한 이 드라빔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라반은 일주일 동안이나 추격을 해서 만나자 마자 드라빔을 내놓아라 말했습니까? 그리고 내놓지 않자 샅샅이 찾았던 것입니까? 이 드라빔은 그당시 가정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 이었습니다. 은이나 나무로 사람의 형태를 만들어놓은 이 드라빔이 가정의 형통과 축복을 가져다 준다고 라반이나 라헬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드라빔은 일종의 재산 권리 증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빔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그 가정의 재산의 상속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드라빔은 가정의 수호신인 동시에 그 가정의 재산 상속자인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아마 라반은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자기 재산의 상속자로 지명한 아들에게 드라빔을 줄려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드라빔을 라반은 찾지 못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라반은 그냥 돌아가지 않고 야곱과 화친 언약을 맺고 난후에 돌아갑니다. 본문 앞에 있는 44절입니다. 44.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이 언약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 52절입니다. 52.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난후에 “이 돌기둥과 이 돌무더기를 경계로 해서 서로 넘어오지도 말고 넘어가지도 말자” 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는 이 돌기둥과 돌무더기를 넘어가지 않을테니까 너도 이 이상을 넘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라반이 이런 언약을 맺을려고 했습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재산 상속권의 문제입니다. 지금 라반은 드라빔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먼훗날에 라반 자신이 죽고 난후에 야곱이 드라빔을 가지고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빔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집안의 상속자이다. 그러니까 라반이 남겨놓은 재산은 나의 것이다“. 이렇게 주장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재산 상속권의 문제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 돌무더기를 쌓고 언약을 맺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야곱이 먼훗날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자기에게 복수를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라반은 20년동안 야곱을 엄청나게 괴롭히고 힘들게 했습니다. 열 번이나 거짓말을 해서 야곱이 받아야 할 품삯을 깎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야곱이 어느정도 힘을 가지게 되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자기에게 보복을 할수도 있다고 라반은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은 이렇게 서로 넘어오지 않기로 화친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세계 각나라가 국경선을 만들어놓고 서로 침범하지 않기로 하는 조약을 맺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경선을 침범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각 나라 마다 세워진 국경선을 침범하는 가장 큰 이유를 살펴보면 침범한 그 땅이 예전에는 자기나라 소유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나라보다 국력이 강하게 되면 그 땅은 예전에 자기의 소유이었다고 주장하면서 침범하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와 중국과 일본과 사이에도 이와 마찬가지 일이 생길수 있습니다. 지금 만주는 예전에 우리나라 고구려 땅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냥 있지만 나중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국력이 세어지고 그와 동시에 중국이 여러민족으로 갈라지고 약해지게 되면 우리나라는 그 땅을 되찾을려고 할것입니다. 그리고 일본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일본이 우리나라 독도를 자기나라 땅이라고 시시탐탐 노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우리나라가 약해지고 일본이 훨씬더 강하게 되면 일본이 어느날 갑자기 독도를 차지해버릴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강해지고 일본이 약해지게 되면 옛날에 우리나라 영토이었던 대마도섬을 우리땅 이다라고 주장하며 지금 그 쓰시마 섬을 차지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인접한 중국과 일본과 갈등을 지니고 있으면서 국경선을 유지하고 있듯이 이러한 현상은 세계 각나라마다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들 나라가 주변에 인접한 상대국가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 때 그 땅을 차지할려고 여기 저기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라반은 야곱이 자기보다 더 강해지게 될 때를 대비해서 서로 넘어오지 않기로 미리 화친조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과 야곱이 맺은 이 화친 조약에는 보다 깊은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라반과 야곱이 그리고 라반과 두딸들이 서로 원수된 관계로 헤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로 서로 화평한 가운데 헤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라반과 야곱사이에 직접 개입을 하십니다. 야곱을 붙잡기 하루전에 하나님은 라반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앞에 나오는 29절입니다. 29.너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선과 악을 따지면 라반도 할말이 많고 야곱도 할말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이 서로 잘잘못을 따지면 다툼과 싸움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라반과 야곱은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서로 속이고 속임을 당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헤어지는 마당에 그렇게 원수로 헤어지기를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화친언약을 맺습니다. 본문 54절입니다. 54.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이 제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라반과 화친언약을 맺고 난 다음에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왜요? 이 화친언약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야곱 자신은 라반 몰래 도망을 갔지만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셨던 것에 대해 감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형제들을 불러 같이 떡을 먹었습니다.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여기 나오는 형제들은 라반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이 잘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모함했던 사람들입니다. 창세기 31장 1절입니다. 1.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들이 어떤 말을 하고 다녔습니까? ’야곱이 우리 아버지를 속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재물을 모았다“ 라고 시기 모함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흥분한 아버지 라반을 뒤따라 야곱을 추격했던 사람들입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야곱이 이렇게 흥분하게 된 것은 사실 그 아들들이 충동질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본문에 나오는 형제들은 말이 형제들이지 야곱을 해칠려고 했던 원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를 시기하고 미워하고 모함했던 그런 사람들을 불러다가 같이 떡을 먹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다음날 아침에 헤어지는 라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본문 55절입니다. 55.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밤새도록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라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자기가 떠나기 전에 자기의 손자들과 두딸에게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그들을 축복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자기 자신과 물질밖에 모르고 살았던 라반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춘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을 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후로는 다시 볼수는 없게 될 것 이라고 하는 생각에 라반의 눈에 눈물이 고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라반의 두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을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들을 함부로 대하고 박대했던 아버지의 행동으로 인해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눈 녹듯이 녹아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아름답게 헤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이 원수를 맺고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어떤 손해를 보고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화평하면서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이 라반과 야곱이 화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왜 화평하며 사야 하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화평하며 살아가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첫째는 화평케 하는 자가 하늘의 복을 받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입니다. 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은 시냇물이나 강물과 같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시냇물과 강물의 특징은 언제나 흘러간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흘러가지 않고 고여 있으면 시냇물이나 강물이 아니라 저수지물이요 연못 물 입니다. 오래전에 제가 알고 지내는 어느 한 목사님이 자기 집밖에 쌓인 눈을 치우시다가 가슴에 통증이 와서 괴로워하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래서 엠블런스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심장에서 나오는 관상 동맥 90퍼센트가 막히는 바람에 하트 어텍이 온것입니다. 병원에서 급히 수술을 하고 관상 동맥을 뚫어 피가 통하게 해서 겨우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심장마비가 왜 오는 것입니까? 심장에서 나오는 피가 동맥을 통해 나가야 하는데 이 동맥이 막혀있기 때문에 심장마비가 오는 것입니다. 피가 흐르지 않게 되면서 심장에 무리가 오고 통증이 오면서 하트 어텍이 와서 사람이 사망하게 됩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동맥처럼 열려져 있어야지 막아버리고 묶어버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땅에 살면서 매어버리면 하늘에서도 매어버리고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너무나 많은 경우에 매임과 묶임을 당하고 살아갑니다. 가족에게 매임을 당하고 이웃사람들에게 매임을 당하고 직장과 사업터에서 매임을 당하며 살아갑니다. 건강에 매임을 당하고 물질에도 묶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의 뜻은 매고 묶는 것이 아니라 풀고 화목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풀어야 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풀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 자신이 먼저 풀어버리고 살아야만 하늘의 축복이 나로부터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자가 하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화평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왜 화평함이 중요합니까?

화평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입니다. 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이것이 없이는(화평과 거룩)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누구도 화평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화평을 이루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절 24절입니다.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이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예배 이전에 화목이 먼저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화목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요?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을 보면 서로 둘로 갈라져서 같은 교회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게 될때가 있습니다. 서로 자기들이 옳다고 세상 법정에 송사를 해놓고는 그 판결이 나올때까지 같은 교회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면서 열심히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겠습니까?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예물을 드리라“ 라는 말씀을 보면 저는 생각이 나는 집사님이 계십니다. 그 집사님은 제가 이교회에 오기 전에 사역을 했던 교회에 출석하시던 분이신데 매주일 성실하게 출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이 하루는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그 집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습니다. ’집사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그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사실은 어제 제아내와 같이 주일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 차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부부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만 화가 나서 교회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시면서 그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 예수님께서도 예물을 드리려다가 사람들과 원망을 주고 받은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그냥두고 그사람에게 가서 먼저 화목하고나서 예배를 드리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서로 원수 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봤자 하나님이 받아주실 것 같지 않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해는 됩니다만 그래도 예배를 드리면서 서로 화목하도록 하셔야지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화목하지 못하면 집에 가서 화목하기는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부부싸움이 일어나도 믿음으로 끝까지 교회에 오시면 어느 한순간에 화목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화목하지 못하면 예배를 드리지도 말아라 가 아니라 화목한 마음으로 에배를 드려야 한다” 는 의미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화목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오기 전에 사람들 사이에 묶여있는 것이 있다면 다 풀어버려야 합니다.

2013년 9월22일 파키스탄의 어느 한 교회에서 주일예배후 친교를 하는 중에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마당 한가운데서 ‘알라는 위대하다’라는 외침과 함께 두개의 폭탄이 터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2000년도까지 그 교회에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었던 정마태 선교사님이 폭탄 테러 사건이 발생한지 4일후에 파키스탄에 가서 테러 관련 피해자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리고 40일만에 이 정마태 선교사님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보고를 했습니다. 자기가 40일동안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제일 놀랐던 것은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 테러범을 용서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만났던 피해자 가족 중 93퍼센트가 당연히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용서를 가르치셨고 본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심판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자기들은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마태 선교사는 죄인과 원수를 사랑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실제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오히려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그지역에 사는 주님들 대부분이 무슬림인데 평상시에 교인들이 그들과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에 사고가 났을 때 그들이 먼저 사건 현장을 찾아와서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격려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리스도인들은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화목할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화목하게 하면서 살아가게 할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입니다. 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그래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결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저사람을 속이고 이득을 취할수 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깨끗하고 성결함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화평하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서로 이간질시키고 편 가르고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가 아니라 땅에서부터 온 세상적인 지혜입니다. 니편 내편으로 갈라놓고 다투다시피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그 아무도 주를 만날 수는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라반에게 야곱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잘했다 라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선악간에 잘못을 따지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눈으로 볼 때 서로 잘잘못을 따져서 내가 잘했다고 목소리 높일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살아가다가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선악간에 잘못을 따지는 것보다는 화평을 이루는 일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악간에 따지는 일은 훗날에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화평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한자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성도인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믿음으로 우리는 의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의로우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수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성이 있고 우리안에는 여전히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라고 하는 그 한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라고 여기십니다. 여기서 의롭다 라고 여기시는 의미는 우리가 단 한번도 죄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으로 우리를 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앞에 의로운 자로 살아가게 해주십니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이 어렵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왜 쉬운 일입니까? 내가 해야할 일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놓으신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양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다 이루어놓으신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화평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면서 땅에서 매여지고 묶여질 때 그것을 풀면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땅에서 매면 하나님도 매시고 내가 땅에서 풀면 하나님도 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환경이나 사람들이 나를 매고 나를 묶는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풀어버리면서 살아가십시다. 화평을 이루면서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이 땅에서는 물론 하늘에서도 풀어지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이땅에서 흘러나올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