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브니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Author
kgmcc
Date
2023-09-09 23:22
Views
204
본문 : 창세기 32장 21-31절

날짜 : 2023년 9월 10일

 

<창세기  32장 21-31절>

21.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오늘 본문이 기록된 창세기 32장은 야곱이 2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자신을 일주일동안이나 추격해온 외삼촌 라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군대를 만났습니다. 외삼촌 라반과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야곱은 이제 마지막으로 형 에서를 만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형에서를 만나기 직전에 일어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간이 관심을 가지는 내용과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내용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 인간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공입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우리는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인간이 성공하는 것 보다는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장하고 성숙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베푸어 주시는 축복을 제대로 누리고 살아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성공은 했지만 그 성공 때문에 가정이 무너지고 건강이 무너지고 마음까지도 메마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성장과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그 인생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성공하기 전에 먼저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 인생에 이해할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허용하시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연단을 받게 하여 결국에는 성장과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 후반부입니다. 11. ...연단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누가요? 연단을 받은 자들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속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은 신앙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의로움과 평강의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부분을 보시면 야곱은 이제 성숙한 인생이 되었을 때 누리는 축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문 30절과 31절 전반부입니다.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가 브니엘을 지날때에 해가 돋았고’ 여기에서 ‘브니엘‘ 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에서 진정한 축복은 ‘브니엘’ 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부터 야곱 인생에 밝은 빛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길을 얻게 되었고 그래서 진정한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성장하여 마침내 성숙한 인생이 되었을 때 누리게 된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야곱이 브니엘의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들도 야곱처럼 성숙한 인생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베푸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릴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브니엘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외로움을 사용하십니다.

본문 22절에서 24절 전반부까지 보시겠습니다.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아들과 그리고 모든 소유물을 건너가게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그리고 야곱 자신이 그동안 그렇게 고생하면서 모았던 재물들을 모두 다 떠나 보내고 밤에 혼자 외로이 얍복강 나루터에 남았습니다. 이때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야 이렇게 인생이 허무하고 공허한 것이구나, “결국에는 이렇게 나혼자 남겨지게 되는 것이 바로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에 백내장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른 아침에 제 아내와 둘째 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수술 수속을 마친후에 제 아내는 환자 대기실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둘째딸과 함께 수술 대기실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간호원이 저에 관한 기록을 다시한번 확인한 후에 제눈에 마취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류의 안약을 넣고 그리고 제 마음을 느긋하게 하는 주사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그때는 제 딸도 환자 대기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나혼자 남아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의사 앞에서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오른쪽 눈의 깊은 부분을 모두 드러 내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야복강 나루터에 남은 야곱을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주일에 제가 설교할 내용이 바로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혼자 외롭게 남아 있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가 깨닫게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때 야곱이 가장 정직한 모습을 가지게 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인간은요 내가 사람들속에 있을때에는 정직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면 그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서 내가 행동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나자신이 정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이 보는 시선 때문에 가면을 쓰고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내가 믿는 성도로서 경건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데 경건의 능력이 내게 없습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이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경건하다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직분이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혼자 외로이 남아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외로움 속에서 정직하게 나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외롭게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두실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인생에서 주변사람들의 칭찬과 박수소리가 떠나가게 하십니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 집착해왔고 붙잡아왔던 것들을 떠나가게 하십니다. 친구도 떠나고 심지어는 부모와 자녀마저도 떠나게 하십니다. 내 수중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거두어 버리실때가 있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이러한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을 얍복강 나루터에 서게 하신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그시간은 너무 외롭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이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참모습을 내가 발견하게 하시고 그래서 나를 성장시키시고 성숙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신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럼으로 외롭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내자신이 하나님앞에 정직한 모습으로 설수가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진정한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얍복강 나루터를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홀로 외로움을 느끼게 하십니다.

 

브니엘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본문 24절입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왔는데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호세아서 12장 3절 후반부와 4절 전반부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3.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 성경은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었는데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 어떤 사람과 밤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나중에 하는 말이 26절에 나옵니다. “26. ..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이렇게 간청하는 것을 보면 야곱은 자기가 밤새도록 씨름을 했던 상대방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아니면 축복을 할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28절을 보시면 이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줍니다’. 28절입니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야곱이라 부를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지역의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부릅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와 ’’하나님의 얼굴‘ 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만 보아도 우리는 야곱과 씨름을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뭐 사실 하나님이시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이든지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도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냐 하나님이냐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씨름을 걸어왔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누가 씨름을 걸어왔습니까?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찾아오심을 알수 있습니다. 20년전 야곱이 도망가다가 베델 들판에서 돌을 베게 삼고 있을때에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실때도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오늘 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내고 외로이 남아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찾아오시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조용히 살아갈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에 쓰러져 있을때에도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사랑에 목이 마른 사마리아 우물가 여인에게도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어두운 감밤에 갇혀 있을 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이 외롭고 고독할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외롭고 그래서 힘들어 할때 하나님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찾아와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믿음의 생활을 할가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와 세상의 종교가 다른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이 신을 찾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이 나의 죄와 허물에 대한 죄값을 갚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이 외로이 혼자 남아서 그동안 얼굴에 쓰고 있었던 인생의 가면을 벗어버렸을 때 하나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씨름을 걸어오십니다. 여기서 씨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좀 전에 잠시 살펴보았지만 다시한번 호세아 12장 3절 4절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4.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울며 간구했다는 것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울며 간구했다“ 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야곱의 기도가 그날밤에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그날밤의 기도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기도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내고 난후이니까 더 이상 누구 눈치를 볼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정말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왔을때는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곳에서 결사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에 한번씩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할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기도원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80년대 초에만 해도 예배당이 아닌 개인이 기도하는 기도처는 산속에 동굴처럼 파놓고 그안을 그냥 시멘트로 발라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멘트 벽에는 빨간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져 있었습니다. 낮에는 그래도 괜찮은데 밤중에 거기에 들어가 기도를 하면 편하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나타날까봐 겁이나서라도 결사적인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 이었습니다. 아마 야곱도 그날 밤에 마찬가지로 결사적인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 이젠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형 에서가 지금 나를 죽일려고 오고 있습니다. 이제 곧 날이 밝아지면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이제 곧 죽습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저는 이 야곱이 이렇게 결사적으로 직선적이고 원색적인 기도를 했다고 믿습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기도는 아닙니다. 포식스라는 신학자가 쓴 ’기도의 핵심’을 내용을 보면 이렇게 기도의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기도를 친한 친구끼리 나누는 다정한 대화만으로만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기도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기도는 치열한 영적인 전투이다”기도는 치열한 영적인 전투이다’. 지금 얍복강 나루터에 있는 야곱이 하고 있는 이 기도는 단순한 대화가 아닙니다. 전투요 싸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씨름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씨름이라는 경기는 무승부가 없습니다. 야구나 축구에는 무승부가 있지만 씨름에는 무승부가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지는 경기입니다. 그럼으로 대충할 수가 없습니다. 전력투구를 다해야 하는 경기가 바로 씨름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친구와 대화를 하듯이 조용하게 할때도 있지만 때로는 결사적인 마음을 가지고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막다른 골목은 없다. 단지 기도의 자리만 있을 뿐이다." 그래요. 야곱에게 있어서 막다른 골목은 얍복강 나루터가 아니라 결사적인 기도의 자리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찾아오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곁에 모든 것이 다 떠나버리고 그래서 외로움에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시는 축복의 길이 될수 있다는 성숙한 성도가 지닌 믿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브니엘의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

마지막 세 번째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하듯이 열심히 기도하는 과정에서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습니다. 25절입니다.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때에 어긋 났더라’ 옛날 개역성경에서는 '환도 뼈'라고 기록되어 있고,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는 '엉덩이 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뼈는 상체와 하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뼈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 뼈를 쳐서 다치게 했던 것입니다. 31절 후반부입니다. 31.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절었더라’ 야곱은 이 사건이후로부터 절뚝거리는 인생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날밤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아니라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신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야곱은 자신의 허벅지 관절이 온전했을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붙잡을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서 건강한 몸을 가지고 마음껏 일을 해 나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이 자기 생각처럼 안될때는 건강한 두 다리를 사용하여 도망을 가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의지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질수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야곱이 일사 각오의 마음으로 전심을 다해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허벅지 관절부근에서 ‘뻑‘ 하는 소리가 나더니만 관절이 어긋나서 전혀 힘을 쓸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옴짝 달삭도 할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순간 야곱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야 이젠 나는 내힘으로 일어설수도 없는 병신이 되는 구나. 내인생은 여기서 다 끝났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잔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굉장히 단순해진 것입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성도님들은 야곱이 가진 이때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을 것입니다. 내일 모레이면 한국을 떠나게 되는데 다가오는 이번 주말에 날씨가 좋다는 일기예보 소식을 들게 되어도 아무 감정이 없는 것입니다. 백화점에서 이번 주말에 대 바겐세일을 한다는 광고를 들어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요? 한국에서의 삶은 이제다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에 날씨가 좋든 백화점에서 대 바겐세일을 하던 내일 모레면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틀후에 비행기를 타면 나는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자기 허벅지 관절에서 뻑 하는 소리가 나면서 꼼짝 달삭도 할수 없게 되었을때 야곱은 “야 이젠 다 끝났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이신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야곱은 이제부터는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시면 이때 야곱이 지닌 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26절입니다.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며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겠다고 하는 야곱의 결심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그동안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기를 치고 거짓말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왔습니다. 한번 목표를 정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얍복강 나루터에서 한번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고 난후에 달라진 것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주님이 나를 붙잡아 주셔야만 제가 일어날수가 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지팡이가 되시고 나의 능력이 되십니다”. 이렇게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게 된 것은 야곱에게 있어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야곱과 같은 얍복강 나루터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얍복강 나루터의 야곱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얍복강 나루터에 외로이 홀로 서게 하십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울며 부르짖으며 하나님에게 기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와 여러분이 가장 의지해왔고 의지해왔던 허벅지 관절이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아갈수가 없어요” 라고 고백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백은 성장하고 성숙한 성도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누릴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허벅지 관절이 무너지기 전에 미리 “하나님. 하나님 없이는 저는 살수 없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남보다도 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도, 그리고 남보다도 더 배우지 못했어도 “하나님 저는 하나님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갈수 있다면 그사람은 진정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야곱이 하나님앞에 항복했을때 하나님께서는 져주십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이길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없이는 살아갈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그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져주십니다. 그사람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이후에 야곱은 바꾸어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처럼 언제나 이기는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29절 후반부입니다. “29.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리가 있습니다. 아무장소에서나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인생의 얍복강 나루터입니다. 내인생의 가면을 다 벗어버리고 외롭게 하나님앞에 서있는 그 자리입니다. 내인생에서 가장 의지하던 허벅지 관절이 무너진 그 자리입니다. 그래서 주님없이는 내가 살아갈수 없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그 자리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축복해주십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문 31절입니다.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야곱의 인생에 밝은 빛은 브니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기쁨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형에서를 만나러 가게 됩니다. 형이 어떻게 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얍복강 나루터를 만나게 될 때 내자신에게 솔직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는 진정한 축복을 누릴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