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요한복음 17장 1-8절>
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직전에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마지막 기도 중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기 자신이 원해서 이세상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세상에 오신 것 입니다. 요한복음 8장 42절 후반부입니다. 42.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까? 오늘 본문 2절입니다.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기 위함에 있습니다. 본문 2절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시면 우리는 구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이 선택하신 구원의 대상과 구원의 내용 그리고 구원의 주체를 알수 있습니다.
자. 첫째로 구원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2절 전반부를 다시 보시면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그러니까 그냥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이 바로 구원의 대상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9절 후반부를 보시면 좀더 명백하게 이사실을 알수가 있습니다. 9절 후반부입니다. 9.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믿음의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지금도 중보기도를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나의 이 구원의 시작은 우리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부터 구원을 받게 되었다라고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시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신 것에서부터 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절입니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이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아들에게 주신 사람인 것을 알수가 있습니까? ”다 내게로 올 것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저런 방법을 사용하셔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그래서 이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간다면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구원의 때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은 어느 누구는 구원을 받았고 누구는 구원받지 못했다 라고 하는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 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고 더 선한행위를 했기 때문에 구원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아서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으십니까?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로 구원의 내용입니다.
2절 전반부를 다시보시겠습니다. ‘2.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구원의 내용은 바로 영생입니다. 지금 배가 고픈 사람에게 있어서 구원은 바로 먹는 음식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병이 있는 환자에게 있어서 구원은 바로 병이 낫는 것입니다. 빚쟁이에게 있어서의 구원은 빚을 탕감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와 허물로 인해 영이 죽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구원은 바로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이세상에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바로 영생을 얻게 하게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영생은 무엇입니까?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가는 것입니까?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은 헬라어로 ‘조엔 아이오이온‘ 이라고 합니다. 조엔과 아이오이온 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그리고 조엔 이라는 단어는 ’활력이 있는 삶’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오이온‘ 이라는 단어는 영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생이라는 말속에는 생명이 영원히 지속이 된다고 하는 시간적인 개념과 활력이 있는 삶이라고 하는 질적인 개념이 같이 포함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영생을 시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를 할때가 많습니다. 영원히 죽지않고 산다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이렇게만 이해를 하면 주님이 주신 영생의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나머지 절반은 질적인 개념입니다. 활력이 있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우리가 활력이 있는 삶을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속에 살아갈 때 우리는 가장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해나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이 바로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생은 죽어서 저 천국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람은 이땅에서도 날마다 영생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돈이 없고 내게 건강의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사람들과 갈등속에 있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때문에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영생을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은 지금 내가 어떠한 환경속에 있든지 간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활기찬 삶을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이땅에서도 영생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다시보시면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을 보시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았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도 굴복시킬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 이십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이 예수님만이 이세상에서 우리인간들에게 영생을 주실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 되십니다. 요한일서 5장 11-12절입니다.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생명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이 아닙니까? 그럼으로 내 심령속에 예수님이 있으면 생명이 있고 내 심령속에 예수님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생명은 물론 영생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영생은 막연한 개념이 아닙니다. 영생의 개념은 소유적인 개념입니다. 내게 있느냐 아니면 내게 없느냐 라고 하는 개념입니다. 그럼으로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내게 영생이 있다 없다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왜요? 소유적인 개념이니까요. 예를 들어서 지금 내 주머니에 20불짜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수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른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알게 되어있습니다. 왜요? 영생은 있다, 없다 라고 하는 소유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이 너무 겸손해서 인지 잘모르겠지만 “당신이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수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답을 확실히 하지 못하는 것 을 종종보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죽어봐야 알죠”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있다면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기 때문에 나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사람은 내가 아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영생을 얻을수 있습니까? 본문 3절입니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영생을 얻을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헬라어로는 기노스코 인데 이말은 지식이나 이론적으로가 아닌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3절 헬라 원문을 보시면 기노스코의 현재 진행형인 기노스코신 이라는 단어로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한번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계를 해서 체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춘 남녀가 결혼하기 전에 이리 저리 재어보고 나서 어느정도 알았다 싶으면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진작 알게 되는 것은 결혼을 하고 난 이후입니다. 처녀 총각때 몰랐던 것을 결혼하고 난 신혼시기 때부터 알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신혼 시기때 몰랐던 것을 아이를 하나 둘씩 낳으면서 알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저절로 알게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알아가기 위해서는 서로 서로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부부가 살을 맞대고 살아가도 내가 상대방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도 실제 상대방이 가진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관심이 없는 결혼 생활은 기쁨과 행복한 동거가 아니라 외로움과 고통스런 동거가 될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10년 20년 30년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예수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가도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단 먼저 관심을 가져야 알아갈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조금전에 살펴본 것처럼 청춘남녀가 결혼을 했지만 그이후로 관심을 가지고 알아갈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할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알아갈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에게 별관심이 없다면 기쁨과 행복한 동거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과 괴로움의 동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타락한 죄성이 있기 때문에 그사람을 내가 알면 알수록 혐오스럽고 낙심이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입니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사랑과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평안을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예수님에게 날마다 관심을 가지시면서 알아가는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자, 시간이 흘러갔지만 이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세상에는 두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둘째는 세상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1.예수님이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심을 믿는 자입니다.본문 5절입니다. ‘5.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자 예수님은 언제부터 계신 분이십니까?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이 세상 시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온갖 영광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유대나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심으로서 그분의 삶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부터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온갖 영광을 누리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사람들은 12월 25일을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사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계신분이십니다. 이렇게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까?
2.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입니다.본문 8절 전반부입니다. 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으로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도 안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하며 기쁨으로 결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씀을 듣고 오히려 화를 내면서 마음이 더 강퍅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믿고는 싶은데 도대체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을려고 하는데도 안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려고 성경을 읽어도 보았지만 그럴수록 말씀이 더 안믿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쩌면 그것이 정상일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하면 안 믿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믿어지는 우리가 사실은 비정상인 것이죠. 성령이 우리 마음을 열어주셔야 예수님을 믿게 되어집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입니다. 14.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주께서(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렇게 믿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적중의 기적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의 목적은 오직 단한가지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맹인이 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도 예수님을 믿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 기적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병고침을 받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가지게 됨으로 영원한 것이 됩니다. 기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적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누리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기적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귀한 기적은 예수님을 믿는 기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적중의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성경의 말씀이 성령님의 감동감화로 기록되어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믿습니다. 왜요? 성경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까?
3.예수님의 성육신을 믿는 사람입니다.8절후반부입니다. ‘8.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나왔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Incarnation 이라 합니다. ‘안에‘라는 in 과 육체라는 Car 와 그리고 태어나는 것 ’Natus' 라는 세가지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태초에 말씀이셨던 성자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성육신,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말씀으로 되돌아가셔서 말씀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창세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광스러운 광채 속에 거하셨던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신비중의 신비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시대때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영은 선한 것이고 육신은 더러운데 영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이 더러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실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논리를 내세우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 교회때부터 있어왔던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입니다. 이런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나 성자로서 존경을 하지만 예수님의 성육신은 믿지않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신학을 공부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목회자와 신학교 교수들 중에서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안믿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다는 성육신을 믿을수 있겠습니까?
신학교를 나오고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믿어지고 성육신이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주님이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해 배워서 알고 있는 목사와 신학교수라 할지라도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2천년전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왜 그분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땅에 오셨습니까?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오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을 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본문 4절입니다. ‘4.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가 하라고 하신일을 함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이 땅을 살아가는 목적도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일은 우리가 일하는 영역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날마다 하는 일이 다를수가 있습니다. 날마다 하는 일은 각각 다를수 있어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일을 내가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고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된다면 이보다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내주변의 사람들도 내가 믿는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됨으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