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것이 은혜
<창세기 8장 6-12절>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 6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6절입니다.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40일을 지나서” 잘 아시겠지만 성경에서 이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자면 준비의 시간, 혹은 고통과 방황을 하는 시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을 했던 시간이 40년이었죠. 그리고 로뎀나무에서 휴식을 가졌던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밤낮으로 40일 길을 걸어서 마침내 호렙산에 도착했습니다. 모세도 40일 동안 시내산에 있으면서 율법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명의 정탐꾼들도 40일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40일동안 유대 광야에서 금식하신후에 마귀와 영적인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 시대에는 40일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려서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40일은 하나님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준비의 시간 혹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그 고통과 어려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 노아 홍수때 그당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 날이 언제입니까? 성경은 2월 17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7장 11절과 12절입니다. “11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땅에 쏟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로 인해서 물이 계속해서 불어나다가 마침내 물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150일째 되는 날부터입니다. 150일이라면 5개월이 되죠. 창 8장 3절입니다. “3.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물이 계속해서 자꾸 줄어들게 되자 떠다니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의 산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10월 1일 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창 8장 5절입니다.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열째 달 초하룻날에’ 이니까 10월 1일이죠.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그리고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10월 1일에서 40일이 지난 후이니까 언제 입니까? 계산이 잘 안되십니까?. 11월 11일입니다. 자 그러니까 노아가 방주의 창문을 닫은 후 비가 쏟아진 날이 2월 17일이고 마침내 방주의 창문을 열게 된 날이 11월 11일 입니다. 그러니까 총 223일 동안 즉, 비가 쏟아진지 약 7개월 보름 만에 닫혔던 방주의 창문이 열려지게 된 것입니다. 수학 시간은 아니지만 다시한번 전체적인 날짜를 계산해보십시다. 사실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언제 계산을 해보겠습니까? 직장이나 가게에서 일하시면서 계산을 하겠습니까? 그로서리 가게에서 샤핑을 하면서 계산하겠습니까? 그때는 내가 산 물건이 얼마나 되나 계산을 해야지요. 저도 설교를 위해 계산을 했지 보통때는 이런 날짜 계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2월 17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40일동안 밤낮 없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그러다가 150일 후, 즉 5개월 후인 7월 17일부터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약 2개월 반이 지난 10월 1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주변의 산 봉우리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또 사십일을 지나서 방주의 창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40일이 지나서는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게 되었고 주변 산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지 40일이 지나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금전에 40일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본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40 이라는 숫자는 준비의 시간, 혹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당시 노아는 방주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입니다. 방주안에 있는 가축들을 먹여야 하고 그리고 가축들이 내놓은 배설물로 인해 방주 안에는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둠침침한 가운데 가축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들로 인해 방주안의 생활이 편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에 저와 아내가 거봉 포도를 따러 포도밭에 갔습니다. 그 포도밭에는 저희들이 좋아하는 한국에서 나는 포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는 포도밭 제일 끝 경계선에 딱 한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 포도밭에서 가장 거리가 멀리 있지 저희들은 그 한국 포도를 따기 위해서 그 곳까지 갑니다. 그런데 올해는 그 포도밭 경계선 옆에 있는 집에서 염소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없었는데 올해부터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염소가 우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저희들 대강 포도를 따고 다른 자리로 옮겨서 포도를 따야 했습니다. 저희들은 그래도 다른 자리로 옮길수가 있었지만 노아와 그 가족들은 그 방주안이 시끄럽고 냄새가 나도 참아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장소가 방주이니까 그 방주안이 어둡고 냄새가 나고 시끄러워 힘이 들고 불편해도 견디어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으로 이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쉬운일은 아닙니다.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참으면서 살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성질내고 싶은 것도 성경 말씀 때문에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분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축복을 해주며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는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때가 올때까지는 인내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40일을 지나서’ 이 40일은 물이 많이 빠지고 줄어들었기 때문에 떠다니던 방주가 아라랏 산에 걸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보내게 된 시간입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배가 물위를 떠 다닐때보다는 움직이지 않게 된 이 사십일 동안에 훨씬 더 인내가 더 필요했을 것입니다. 배가 떠 다니고 있으면 물이 있으니까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하니까 조바심은 덜나게 됩니다. 그런데 배가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쯤 나갈수 있을까 라고 하는 마음에 기다리는 중에 조바심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고 인내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언제까지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시간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십일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허용하신 인내의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아처럼 우리의 인생에도 40일이 지나고 난후 하나님께서 계획하심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노아가 겪었던 이 사십일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 40일을 지나서‘ 라고 하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어떠한 고통도 끝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40일을 지나서” ‘지나서’ 라는 이 단어가 주는 정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지나갔다는 것’ 입니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40일동안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시작과 끝이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허무한 종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완성의 날입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통과 어려움을 만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은 고통과 시련을 견디는 일에 좀더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는 끝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완성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다. 노아의 시대때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노아와 그가족들의 모습을... 그당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 홍수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낮없이 계속되는 장마이었고 홍수 이었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육신이 죽을때까지입니다. 그리고 이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살아있기 때문에 고통이 계속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고통이 끝날 날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들에겐 하나님이 허락하신 날 동안에만 어려움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날이 얼마동안 입니까? 40일 동안입니다. 그리고 이 40일은 하나님이 허용하신 상징적인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40일이 4개월이 될 수가 있습니다. 40개월이 될수도 있고 4년 10년이 될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끝이 있음을 우리 믿는 성도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40일은 지나가게 되어있습니다.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기억하시기 때문이입니다. 창세기 8장 1절입니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하나님이...’ 그다음 중간에 나오는 서술어를 다빼고 동사는 무엇입니까? ‘기억하사’입니다. ‘하나님이...기억하사’ 그래서 영어 성경을 보시면 ‘God remembered' 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 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노아와 방주안에 있는 그 모든 짐승과 가축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에게는 치매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당연히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요. 우리가 고통과 인내의 한 밤중을 지날 때 내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지금 내 고통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가 있습니다. 그래요. 맞습니다. 그 누구도 내 인생의 자리를 대신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 줄 사람도 사실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억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시기에 내가 겪고 있는 이 고통과 고난은 끝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견딜수 있습니다. 조금 더 기다릴수가 있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도 그랬습니다. 본문 10절 입니다. “10.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또 칠일을 기다려‘ 12절 말씀입니다. “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으매...” ’또 칠일을 기다려‘ 그래요.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안에서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방주안에서 그들이 할수 있는 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노아가 했던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을때 할수 있는 일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릴바에는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겠습니까? 찬양하고 기도하면 시간이 더 잘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고 내마음도 훨씬 더 기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이런 저런 문제로 인해서 고통과 어려움중에 있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찬양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어려움중에서도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중에서도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하면서 고통과 어려움을 견디어 낼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아픔과 이 고통을 허용하신 하나님께서는 기억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기에 지금 이 고통의 밤과 이 어두운 밤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사십일이 지나서’ 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둘째로 고통의 밤이 지나면 축복의 새 날이 준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노아가 까마귀와 비둘기를 날려보냈는데 비둘기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7일 후에 비둘기를 다시 방주 밖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땅의 물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식물들이 활동을 제대로 시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아직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 밖으로 나가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할 만큼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7일을 더 기다려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그 비둘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2.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방주밖으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않는 비둘기처럼 노아와 가족들도 이제 세상에서 활동을 할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서 나올 것을 말씀하십니다. 15절과 16절입니다.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방주에서 나오고’ 방주에서 나오라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어서 축복을 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매’ 그리고 창세기 9장 1절입니다. “1.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노아와 그 가족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가 온후에 맑은 날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길고 힘든 홍수와 같은 역경의 시절이 지나가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축복의 날을 준비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처한 가정과 직장과 사업이 힘들고 어려움 중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은 새로운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종종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는 인생을 위하여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여주십니다. 창세기 9장 16절입니다.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무지개는 하늘 위에서 보면 완전한 둥근 원(circle)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땅에서 보면 반원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과 인간이 반반씩 나누어 낀 사랑의 반지이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허용하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계시기에 내 이고통 내 이 어려움은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약속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무지개는 바로 십자가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인생이 힘들고 어려움에 처할때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를 바라보며 새로운 축복을 소망하면서 이겨낼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자 이 사십일을 지나서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셋째로 예배를 드림으로서 축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축복은 믿는 성도들에게 언제나 준비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이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한일이 무엇입니까? 창세기 8장 20절입니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그렇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결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라 할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는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창 13장 4절입니다.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애굽 바로왕에게 온갖 수치를 당하고 쫓겨난 후에 베델로 돌아왔을 때 생긴 일 입니다. 아브라함은 베델로 돌아와서 옛날처럼 다시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 얼마전까지만해도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자기아내를 누이라 속이면서 그렇게 치사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사실을 알게된 바로왕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치를 당하고 쫓겨나게 되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브람이 다시 예배드리는 생활을 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지는 과정에서도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13장 8-9입니다. 잘아시는 내용이죠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조카 롯이 보고 선택한 땅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 13장 10절후반부입니다. “10.…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보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이 멸망시킬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땅이 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자들이 살고 있는 땅은 멸망 받을 땅인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눈에 보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배드리며 살아가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볼품이 없는 땅에 살면서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다. 창세기 13장 18절입니다.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준비해놓으시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정결한 예물과 함께 예배드리며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최근에 몇 년동안 농사가 잘 안 되는 것에 대해 불평을 했습니다. 이 농부는 자기가 마음대로 날씨를 조절할 수가 있게 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수확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농부가 하는 말을 듣고 지금부터 1년 동안 네가 원하는대로 날씨를 조절할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농부는 농사를 짓다가 햇빛이 필요할때가 되면 “하나님, 햇빛을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니까 기도한대로 해가 내리 쬐었습니다. 그리고 비가 필요할 때가 되자 “하나님, 이제는 비를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자 비가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농부가 기도하는대로 햇빛이 나기도 하고 비가 내리기도 했습니다. 농부의 바램대로 벼도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흘러 추수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논에서 벼를 짤랐는데 그 곡식이 겉으로 보기에는 크고 멀쩡한데 벼 속에 알맹이가 없고 빈 쭉정이 뿐이었던 겁니다. 당황하고 실망을 하고 있는 농부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원하는대로 날씨를 조절해주었는데, 벼가 왜 이렇게 되었는줄 너는 아니?” 그러자 농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게서 농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바람을 원하지 않았다. 뿌리가 튼튼해지고 줄기에 저항력이 생기기 위해서는 바람이 필요한데 너는 그런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사나운 날씨가 뿌리와 줄기를 튼튼하게 해 주어서 결국에 열매를 맺게 해준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가 소원하는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인생이 잘 될 것 같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중에 있다 할지라도 이 일로 인하여 내 인생에 크고 놀라운 결실을 맺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신실한 예배 생활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자, 이제 정리합니다. 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문은 입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출구가 되기도 합니다. 인생의 고통과 어둠이 시작하는 입구가 되기도 하지만 고통과 어둠이 나가는 출구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교회의 문에 들어올때는 이 문이 고통과 아픔의 입구가 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시간 우리가 정결한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이 교회의 문을 나가게 되면 축복의 날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정결한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고통과 어둠의 40일은 지나게 될것입니다.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무지개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축복의 새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축복의 문을 열고 이제는 희망과 기쁨의 길로 바뀐 그 축복의 길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이 고통과 어려움의 40일 중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이 정결한 제물이 되어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인생을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노아와 그 가족이 누렸던 그러한 새로운 축복의 날을 누리면서 살아갈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