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믿음이 증명된 순간

Author
kgmcc
Date
2023-10-14 23:43
Views
51
본문 : 히브리서 11장 21절

날짜 : 2023년 10월 15일

 

<히브리서 11장 21절>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지난 몇 주에 걸쳐서 창세기 31장과 32장을 중심으로 야곱의 인생에 생겨난 일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에 나오는 야곱이 가진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믿음과 관련해서 이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종류를 나누어 본다면 크게 네가지로 분류해 볼수 있습니다. 첫 번째 종류는 믿음이 없이 살다가 마지막까지 믿음이 없이 죽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세상사람, 혹은 불신자들이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 종류는 믿음이 없이 살다가 죽기 얼마전에 예수님을 믿고 죽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대표적인 사람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우편의 강도라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평생동안 마음껏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믿고 죽었으니 참 복도 많다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많이 후회하면서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세상에 살았을 때 내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주님과 가까이 지내며 영원히 살아갈수가 있었을텐데 라는 후회스런 마음을 가지고 영원을 살아간다고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종류는 믿음이 있는 척 하면서 살아가다가 결국은 믿음이 없이 죽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바쳤는데 하나님 앞에 가니까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을 인정받아야 구원을 받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니까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믿음으로 살다가 마지막 까지 믿음으로 죽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죠. 그런데 여기에도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볼수가 있습니다. 한 종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변하지 않고 시종일관 진실되게 살아가다가 죽음을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종류는 믿음이 있긴 하지만 꾸준하지 못하고 기복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처럼 살아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살기도 하다가 그래도 죽을 때는 믿음을 가지고 죽는 부류입니다.

야곱은 바로 제일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을 정말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야곱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신실한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야곱처럼 시종일관 똑같은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시종일관 똑같은 믿음으로 살아가진 못한다 할지라도 인생의 마지막은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갈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지금까지 이세상을 지내온 시간보다 이제 앞으로 남아있는 시간이 더 적은 성도님들께서는 이 야곱과 같은 축복을 누릴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을 살펴보면서 죽음을 앞둔 야곱이 가진 믿음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1.믿음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

오늘의 본문 21절 전반부입니다. “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때에...” 야곱은 죽을때에... 야곱이 죽을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야곱은 믿음으로 행동하였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죽을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죽을때가 되면 증명이 되어집니다. 믿음의 완성은 죽음에 있습니다. 그이전에는 나 자신도 잘 모를수 있습니다. 평상시에 믿음의 생활을 잘해온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죽을때가 될 때 믿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내가 가진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처럼 믿음은 죽을 때 자연적으로 증명이 되어집니다. 왜냐하면 믿음이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을 개판으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믿음으로 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즘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했던 사건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약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를 만나게 되자 해외에 있던 이스라엘 출신의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자원해서 이스라엘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서 싸우게 되면 죽을수도 있는데 왜 이러한 일을 하는 것입니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내 나라가 없다면 나도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만날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 정말 나라를 생각하는 것인가 말로만 사랑하는 것인가를 확인할수 있습니다. 레오날드 다빈치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잘 보낸 하루가 편안한 저녁의 잠자리를 가져다주듯, 잘 보낸 일생만이 편안한 죽음을 선물한다” 그래요. 믿음으로 죽기 위해서는 일생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죽을때는 자연히 믿음으로 죽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평상시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성경에 나오는 다니엘이나 사무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신실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인간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 이 야곱의 모습에서 더 많은 위로와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야곱에 대해서 제가 몇 주간 동안 설교를 하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야곱은 일관성이 있는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젊었을때 야곱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차의 축복을 대신해서 받고 난후에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기꾼이 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하는 것과 같은 행동처럼 보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를 한 야곱은 20년 동안에 두 아내와 많은 자녀와 가축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형 에서를 만나기 전날밤에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는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 얍복강 나루터의 사건이 야곱의 인생 터닝 포인터가 되었고 그이후로부터 야곱은 점점 믿음이 성숙해지는 인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황혼시기에 정말 아름답고 성숙한 야곱의 모습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야곱이 애굽의 총리가 된 아들 요셉을 만나기 위해 온 식구들과 함께 애굽에 갔을 때 애굽의 바로왕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바로왕을 만날 때 야곱이 가장 먼저 한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왕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47장 7절입니다. 7.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이렇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야곱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신분이 높던지 신분이 낮던지 상관없이 먼저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침에는 비가 올 수가 있고, 점심때에는 천둥이 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고통이 올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기 전에 성도의 날은 맑게 개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비가오고 천둥이 치고 강한 바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내 인생의 마지막에는 맑고 고요한 날이 되어질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처한 환경이 힘들고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때 그 마지막 그순간 만큼은 평안하고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의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서 평상시에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이런 저런 산을 넘어야 하고 넓은 강을 건너야 할 될 때가 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일로 인해 육신은 더욱 건강하게 될것입니다. 영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장애물로 인하여 우리의 믿음은 더욱 성장해지고 굳세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산과 강을 만나는 일을 허용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다. 장애물은 우리를 성장시켜주고 굳세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용해놓으신 선물 인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마지막 날에 더 많은 보상과 더많은 칭찬을 준비해놓으시고 지금 현재 나에게 높은 산과 넓은 강을 허용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2.믿음은 주님의 뜻을 이루는

21절 중반부까지 보시겠습니다.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한 것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축복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야곱이 그냥 축복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축복기도 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기도를 할 때 그옛날 자기 아버지 이삭이 자신을 축복했던 그 순간이 기억났을 것입니다. 아버지 이삭은 장남 에서를 축복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동생 야곱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야곱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물론 처음에는 속아서 야곱에게 축복을 했지만 나중에는 그일이 하나님의 뜻인줄 이삭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가기 전에 이삭은 야곱을 불러 진심으로 축복해줍니다. 창세기 28장 4절입니다.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렇게 아버지 이삭이 믿음을 가지고 축복한 기도를 받았던 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도 자기가 죽기전에 아버지 이삭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축복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알수 있나요? 오늘 본문은 ’믿음으로...‘ 축복기도를 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야곱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축복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법이나 도덕적인 관점보다도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장면은 창세기 48장에 나옵니다. 야곱이 병이 들어서 죽을때가 되자 요셉이 두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에게 옵니다. 므낫세는 요셉의 장남이고, 에브라임은 차남입니다. 이때 요셉은 자기의 아버지 야곱의 오른쪽에 장자인 므낫세를, 그리고 왼쪽에 차남인 에브라임을 앉게 합니다. 장자의 축복은 오른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양팔을 십자가로 어긋나게 해서 축복을 할려고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행동을 본 요셉이 깜짝 놀라서 야곱에게 말합니다. “아버지 오른 쪽이 장자 므낫세이고 왼쪽이 차남 에브라임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오른 손을 장남인 므낫세 머리에 얹으시고 축복해주십시요” 요셉이 하는 말을 들은 야곱이 이렇게 말을 하죠. 창세기 48장 19절입니다. 19.그의 아버지가(야곱)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실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자손을 축복한 것입니다. 웬만하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소원을 들어 줄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야곱에게는 무엇보다도 더 귀한 일이었습니다. 내게 원함이 있어도 하나님의 뜻이 다른쪽에 있다면 내 뜻을 버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인 것을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배울수 있습니다. 야곱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완전한 인격의 소유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이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세상의 전통과 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죽음을 앞둔 야곱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3.믿음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본문 21절입니다.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오늘 본문은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을 보여 줍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힘이 없었지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창세기 47장 30절 31절을 보면 야곱은 자신을 애굽땅이 아니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잠들고 계신 가나안땅에 묻히게 해달라고 요셉에게 유언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 요셉이 그렇게 되도록 하겠다고 맹세를 하자 이 야곱은 이제 지팡이를 의지하며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죽음입니까? 저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마지막 순간을 저에게도 허락해주시기를 위해 종종 기도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를 드린 야곱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평상시에 많은 약점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평생을 통해 소홀히 여기지 않은 것이 있었다면 예배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분을 신뢰하고 존경을 한다면 그분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존경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공경을 한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존경한다고 말을 하지만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정말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믿음은 예배로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예배로 믿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살아가는 동안 예배를 드렸고, 죽어가면서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단순하게 대답하면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우해드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것으로도 예배만큼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는 것은 없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예배는 벧엘의 들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야곱이 외삼촌이 있는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밤에 들에서 잠을 잘 때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 라고 하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튿날 잠이 깬 야곱은 그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곳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 이후로 야곱은 숱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계산을 하면서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만큼은 소중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야곱은 자신을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면서 인생을 마칩니다.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그 옛날 야곱이 형에서를 피해 도망 칠 때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4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후 20년이 지나 많은 것을 가진 부자가 되어 고향인 가나안땅으로 되돌아올 때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32장 10절 후반부입니다. 10.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떼나 이루었나이다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있던 야곱을 들어 크게 사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바로의 궁전에서 도망을 해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부르십니다. 출애굽기 4장 2절입니다. 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그당시에 모세에게 있었던 것은 지팡이 뿐이었습니다. 나이가 80이 되었지만 자기에게는 권력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고 재물도 없었습니다. 양떼를 치고 있었지만 그 양떼조차 자기 양떼가 아니었고 장인 어른의 소유이었습니다. 자기의 것이라 할수 있는 것은 양떼들을 돌보고 지키는데 필요한 마른 막대기인 지팡이 뿐이었습니다. 광야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지팡이 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세의 지팡이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리 보잘것없고 말라 비틀어진 막대기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평상시에 모세가 가지고 있었던 그 지팡이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라고 질문을 하셨을 때 그당시 모세에게 지팡이가 아니라 물맷돌이 있었다면 모세는 “네 물맷돌입니다.” 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모세야 지금 너의 손에 있는 물맷돌이 하나님의 물맷돌이 되리라”.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지금 내손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모세의 지팡이처럼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들어 사용하시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도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한 어린아이의 점심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남자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게 하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평상시에 먹는 점심이었습니다. 바비큐나 스시와 같은 특별한 음식을 가지고 주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 가지고 있던 어린아이의 점심이 하나님의 점심이 된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자기가 양떼를 지키고 돌볼 때 늘 가지고 있던 그 물맷돌로 골리앗을 상대했습니다. 다윗의 물맷돌이 하나님의 물맷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없는 것, 전혀 새로운 것을 통해서 이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셔서 큰 역사를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지금 내게 무엇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모세의 지팡이나 다윗의 물맷돌이나 어린아이 한끼 식사처럼 볼품이 없고 흔한 것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님의 물맷돌 그리고 하나님의 음식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능력과 나의 신분이 다른 사람들보다 모자라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을 사용하시고 특별한 은사를 가진 사람을 사용하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오히려 그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보다는 약한사람 미련한 사람을 사용하셔서 강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을 꺽으시고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셨구나 라는 사실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손에 있는 것으로 기적과 이적을 행하시길 원하십니다. 야곱은 이러한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 마지막에 지팡이 머리에 자신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나라 성경은 경배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은 ‘Worship'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예배하면서 인생 마지막을 맞이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젊었을 때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저 멀리 외삼촌 집에서 객지생활을 해왔던 야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으로 인해 이제 열 두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 그리고 수많은 가축들을 거느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믿음으로 알았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이 모든 것들이 축복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은 지금 자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야곱은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지막도 이 야곱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인생이 될 수가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습니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께 예배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많은 것을 가졌고 그당시 최 강대국가인 애굽 총리의 아버지의 신분이었지만 지팡이만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마지막 인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야곱처럼 살아있는 동안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 이세상 떠나는 그날에도 평상시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면서 내 주변에 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주님의 품으로 가는 축복을 누릴수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