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오래한 성도님들에게 성경에서 사랑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이렇게 쉽게 대답을 할것입니다.
“ 사랑장은 고린도 전서 13장입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렇게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에 대해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전서 13장에 나오는 내용 그 자체만 보면 사랑이 주제입니다마는 고린도전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4장 하고 같이 전체를 보게되면 사랑이 주제가 아닌 것을 알수가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과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은사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은사들을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라는 의미에서 이 사랑장이 12장과 14장 사이에 끼워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이 주제라기 보다는 은사를 올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기록되어졌다 할수 있습니다. 참아라, 온유해라, 시기 하지 말아라, 자랑하지 말아라, 교만하지 말아라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한다 라는 뜻에서 고린도 전서 13장이 사용되어진 것입니다. “너희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고치는 은사가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기록된 성경은 이 고린도 전서 13장보다는 오늘 본문이 나오는 요한 일서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이것이 요한 일서의 주제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외로울때 이 요한 일서를 읽어보시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를 받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요한 일서는 다섯 장밖에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한번에 읽어보실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격려가 필요하다고 느끼실때는 이 요한 일서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위로와 격려를 얻을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라고 하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되면 나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에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말로서만 “하나님 사랑해요“ 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면 나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가 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남은 평생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첫째로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본문 1절입니다.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그에게서 난 자를(믿는 성도를 의미, 즉 형제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내가 알게 되면서부터 나도 역시 점점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 너희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가 있겠느냐. 나는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자, 요한일서 4장 20절입니다. 20.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그러니까 우리가 나와 같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니? 나는 못 믿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실 때 사랑할만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나를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을 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나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을 볼때 내가 어떻게 저런 사람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냥 사랑을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랑을 하는 것이 먼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싸우고 갈라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다투고 싸우지 않고 하나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으면 오히려 신기할 마음이 생기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거나 그 이유를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잘못에 대해 분노하고 지적을 해야 할 이유는 다 있을 것입니다. 잘못하고 있는 그 사람과 같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자기가 잘못을 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보면서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사람 때문에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신 하나님 때문에 그사람을 사랑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신앙생활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할지라도 그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을 하면서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볼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안에 가득채워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 때문에 같이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형제 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먼저 사랑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은
둘째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2절과 3절입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그사람에 대해 욕을 하고 비판을 해도 나는 그사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쪽 어깨에 바느질 한 고양이를 메고 다니면서 특이하게 예술가 행동을 했던 낸시랭이 있었습니다. 이 낸시랭이 몇 년전에 결혼을 하겠다면서 한 남자와 같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은 사기와 강도와 성폭행의 경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 그사람과 결혼해서는 안된다고 극구 말렸지만 결혼을 했다가 얼마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이혼을 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랑을 하게 되면 주변사람들이 아무리 그사람은 아니라고 말려도 자신은 그 사람이 하는 말만을 듣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도 바쁜데 하나님의 일까지 해야 하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라 사실은 무거운 일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이런 교회처럼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가볍고 신이 나는 일이 아니라 무겁고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일이 무거운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마치 저와 여러분이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매일 먹이고 입히는 일을 하지만 그일을 힘들지 않게 해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하는 일을 일년 열두달 365일 계속 해나가는 일은 우리에게 아주 힘들고 무거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부모님들에게는 힘들고 무거운 일이 아니라 쉬운 일입니다. 그 일이 힘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구제와 전도를 하는 일은 쉬울수도 있고 아니면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일은 무겁고 힘든 일은 아닌 것입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할 일이라면 억지로 하지말고 가볍고 기쁜 마음으로 해나가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억지로 하나님의 일을 내가 해나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차라리 그만두라 라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해도 힘들지 않고 기쁘고 즐겁게 느껴질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날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때 나타나게 되는 현상은
마지막 세 번째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본문 4절 5절입니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무릇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하나님께로서 난자는 누구입니까? 5절에 나오죠.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자‘ 가 바로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바로 세상을 이깁니다. 왜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까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더 힘이 있고 돈과 능력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돈과 능력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세상 사람들을 이길 방법은 믿음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자연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세상에 존재했던 인간들중에 가장 믿음이 많으신 분이 누구입니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육신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이세상에 존재했던 인간들 중에서 가장 믿음이 크고 강하신 분이 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왜 이세상에 오셨습니까? 이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을 하면 그만큼 큰 믿음이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의 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동전의 앞과 뒷면처럼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링컨 대통령 다음으로 루즈 벨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루즈벨트 대통령이 나이 39세가 되었을때 소아마비 증세가 나타나서 걸어다니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이 루즈벨트의 부인인 엘레나 여사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남편 루즈벨트가 두다리로 걷지 못하게 되어서 마음고생이 심하시겠습니다“ 그러자 이 엘레나 여사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두다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루즈 벨트는 자기가 이렇게 불구자가 되어도 자기 부인 엘레나가 변함이 없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 라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정치인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미국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사랑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내가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그리고 내가 어떤 실수나 잘못이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이러한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 문제를 이겨낼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19절입니다. 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였다’ 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사탄과 이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침범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주변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눈에는 도무지 평안이나 감사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는 성도인 우리는 이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편견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두려움과 염려도 우리의 마음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주전에 잠시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이탈리아 태생의 여자로서 한국남자와 결혼을 해서 시어머니과 함께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크리스티나를 아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이 여인이 자기 집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브라와 팬티만 있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닌다고 방송에서 말했습니다. 자기 시어머니가 보아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작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도 편하게 벗고 다니세요. 괜찮아요“ 그런데 한번도 자기 시어머니가 집안에서 벗고 다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방송에서 말했습니다. ”내 집에서 만큼은 내가 편하게 살아야지요” 라고 크리스티나는 말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편견과 판단에서 자유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에게 속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세상 사람들의 판단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그것이 우리를 좌지우지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세상에 속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모두 이세상에서 태어났고 지금까지 이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존재들입니다.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갈때 계속해 지니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리고 나의 부족함이나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축복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