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2)

Author
kgmcc
Date
2020-04-04 14:07
Views
88
본문 : 딤후 1장 7절

날짜 : 2020년 4월 5일

 

<딤후 17>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지난주에 우리는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 첫째로, 두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두려움을 품으면 그것이 현실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두려움은 백해무익하기 때문에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되면 자신감이 상실되어지고 건강이 해치게 되어져서 영적인 전쟁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칠때가 있습니다.

이번에 전세계에 발병하고 있는 우한 코로나 사태를 보는 사람들마다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벌써 이곳 미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32만명이 넘었습니다. 뉴욕에선 하루에 만명이상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맥클렌버그 카운티에서도 하루에 50-60명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기 카운티에서만 해도 하루 건너 총 확진자수가 400명, 500명 그리고 600명... 이렇게 확진자 숫자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요즘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여기 미국은 병에 걸린사람이외엔 마스크를 좀처럼 하지 않는 문화를 가졌는데 이젠 자신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하고 다닙니다. 이런 모습은 그동안 몸에 체득해온 문화 환경을 무시할만큼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때마다 이런 저런 두려움의 종류를 만나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건강에 대한 두려움, 이별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런 저런 두려움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속에서 살아가기를 싫어하지만 현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 힘과 내 결단만으로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황청심환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는 두려움이 해소될지는 모르겠지만 본질적으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두려움은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와는 상관이 없이 죄의 결과로 두려움이 왔기 때문에 두려움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려움이 생길 때 우리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 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두려운 마음이 생길 때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며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1.하나님의 능력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두려움을 이겨낼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우리 안에 두려움을 이겨낼수 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오직 능력과 ...” ‘오직 능력과...’

첫째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원어로 '디나미스‘ 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이 ’디마니스‘ 라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가 여러군데 나옵니다. 로마서 1장 16절입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 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9장 23절을 보시면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믿는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여기서는 '믿음의 능력' 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시면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여기서는 '성령의 능력' 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능력은 개개인의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믿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 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 믿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어떤 능력입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이고 죽음에서 살리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풍랑을 잠잠케 하는 능력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능력은 언제나 초자연적인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성경이 말씀하는 능력에 대해서 이런 정의를 내린적이 있습니다. ‘능력이란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면서 힘든 가운데서도 모든 의무를 여전히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본다면 일단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암이 걸렸나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가요? 그것도 사실이고 현실입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다고 해서 암에 걸린 것을 부정하거나 사업이 부도난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암에 안 걸렸어! 나는 부도가 안났어! 이렇게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뛰어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을 면제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길힘을 주심으로 고난에서 승리하게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모든 것을 할수 있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능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죠. 그앞의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러니까 내가 비천하면 비천한대로 풍부하면 풍부한대로 배가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배가 부르면 배가 부른대로 어떤 상황에 처해져도 하나님이 주신 능력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갈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초자연적인 능력만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은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갑자기 부자가 되고 이런 것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굴속에 들어가 죽을 운명에 처했지만 그 사자굴속에서도 건짐을 받았습니다. 다니엘 세친구들을 보세요. 그들이 풀무불에 던짐을 당했지만 그 뜨거운 풀무불속에서도 생명의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사도 행전 12장을 보시게 되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탈출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칼로 목베임을 당해 죽게 하셨습니다. 아니 똑같은 제자인데 한사람은 칼로 목베임을 당하게 하시고 또 한사람은 천사를 통해서 감옥에서 탈출하게 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에는 차이가 있는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으로 밖에 볼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베드로는 아직 할 일이 있고 야고보는 이땅에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시기에 영광스러운 순교로 이땅에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적으로 베드로가 감옥에서 나와 죽음에서 생명을 건지게 된 것만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생각 합니다. 아닙니다. 야고보가 타협을 했다면 목베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만 순교도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야고보는 당당하게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씀 전후에 반드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두려워 하지말라 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에 두려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가 나의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어주기 때문에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임마누엘 능력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함께 하겠다는 말씀을 동시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이삭에게도 야곱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셨습니다. 요한 복음 16장 32절입니다.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때는 잡히시기 직전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혼자 내버려두고 다 도망을 갔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혼자 남아 있을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 그 기적을 보고 따랐던 많은 사람들이 다 떠나버릴때가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그럴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여러분 나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혼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그 현장에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한시간 앞의 일도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나와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는 그 주님의 능력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승리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두려움에서 극복할수 있게 하십니다.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방법은

2.하나님의 사랑

7절 후반부를 다시 보시면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 사랑과...‘ '사랑과...'

여기서 말씀하는 사랑은 혈육과 이성간의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두려움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던 것이입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발가벗김을 당하고 수치심을 당하고 욕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왜요?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8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사랑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임하면 두려움이 창밖으로 내어쫓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과 두려움은 함께 공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가 없는 것처럼 사랑과 두려움은 함께 공존 할수 없는 것입니다. 빛이 임하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가운데 임하면 두려움이 떠나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에서 온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오는 두려움은 따지고 보면 사랑의 결핍에서 온 것입니다.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내안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감옥도 죽음도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내 버리시기 보다는 자신의 아들을 내 버리시는 선택을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다 이해할수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일을 해서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 다만 사랑하니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사람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다시 일어설수가 있습니다.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타협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넉넉히 승리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성경은 로마서 5장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었을때에 주님은 성령을 우리 심령에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을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 충만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미워하는 것은 사실 성령충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세상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확진자가 되어간다는 소식을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참담한 현실속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왜 전염성이 아주 강한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 세상에 퍼지도록 허용하시는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현실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을 절제할수 있습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부어진 것을 경험하십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나오는 성령충만으로 주변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이런 저런 두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방법은

3.절제하는 마음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 절제하는 마음이니'

'절제하는 마음' 를 영어성경에서 보니까 self-discipline(자기 수양, 자기 훈련)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절제하는 마음' 은 자기 통제, 자기 절제의 의미가 있는 셀프 컨트롤로 볼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3절을 보시면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에서 절제하는 마음이란 정신이 온전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행동하는 지혜로운 마음의 상태가 바로 절제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무엇보다도 자제력을 잃게 되고 절제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6,7년이 지난 일입니다만 제가 신호등에서 서있는데 뒤에 차가 그냥 와서 제 차를 받아 버린적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세게 받았는지 제 차뒤의 범퍼가 다나가고 제 차는 앞으로 5미터 정도 밀려 나갔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내려서 뒤차에 가보니 한 삼십대 초반정도 되신 여자분이신데 너무 당황해서 나오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괜찮느냐고 물으니까 괜찮다고 해요. 안괜찮아 보이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때 마침 제게 셀폰이 없어서 혹시 셀폰이 있느냐 하니까 있다고 해요. 그러면 911번호를 눌러 경찰이 와서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까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을 너무 떨어서 911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전화를 걸어 건네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실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은 잠언 4장 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 이 바로 절제된 마음입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게 되면 사람들은 갈팡지팡 하게 되고 마음을 지킬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말씀이 내심령에 거하게 되면 자신도 놀랄만큼 차분해지고 절제하는 행동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라고 생각하면서 차분하게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타이타닉 의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 영화에서 가장 기억이 나는 장면이 무엇입니까? 여자주인공이 배 갑판 위에서서 이렇게 두팔을 벌리는 장면이 가장 기억이 나십니까? 그런데 사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영화 마지막에 배가 침몰할때에 일어납니다. 그때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막 고함을 치면서 정신없이 이리뛰고 저리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연주하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악기를 놓지 않고 연주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드신 노부부가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껴안고 죽음을 기다리는 장면, 그 상황속에서도 틀린 시간을 맞추고 있는 신사의 모습, 두 아이를 잠재우는 엄마 이런 모습들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타이탄 영화 마지막장면에 나오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은 항해를 하다가 침몰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때 이 연주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늙은 노부부처럼 틀린 시간을 맞추는 신사처럼 아이를 잠재우는 어머니처럼 평상시와 같이 절제된 마음으로 행동을 할수가 있다면 그날은 오히려 주님을 만나게 되는 복된날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힘들고 두려운 환경들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수 없이 부닺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우한 코로나에 걸리는 숫자가 미국에서만 하루에 만명이상씩 증가하는 이런 두려운 현실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환경속에서라도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그리고 이로 인한내속에 형성되는 절제된 마음만이 내 인생의 배가 침몰하는 현실속에서라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낼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환경이 좋고 편안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내게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여기서 형성되는 내마음의 절제가 없다면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살아가게 될것입니다. 유명한 배우들이나 돈 많은 재벌들이 종종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세가지 선물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절제된 마음을 사모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