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기다림의 미학

Author
kgmcc
Date
2023-11-12 04:05
Views
53
본문 : 예레미야 애가 3장 24-26절

날짜 : 2023년 11월 12일

 

<예레미야 애가 3장 24-26절>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가졌던 인생의 꿈이 이제는 끝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리고 마지못해 살아가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그럴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앞에 나오는 18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탄식을 합니다. “18.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내 소망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다음 19절을 보시면 예레미야가 또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19.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쑥과 담즙은 쓰디쓴 맛을 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쓰리고 아팠으면 쑥과 담즙이란 단어를 사용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살던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그당시에 북쪽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도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예레미야는 남유다의 마지막 5대의 왕을 거치면서 선지자로 사역을 했습니다. 요시아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여호와하스, 여호야 김, 여호야 긴, 그리고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이렇게 5대에 걸쳐서 40년동안 선지자로 활동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시기에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큰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속에서도 예레미야는 고통을 묵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면서 그 순간을 이겨나갑니다. 22절입니다. ”22.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은 고통스러웠지만 예레미야는 고통의 상황보다는 하나님이 지니신 성품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묵상하면서 그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님의 성품인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대해 묵상하였습니다. 23절입니다. ‘23.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다른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일관성이라 할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일관성있게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 힘든 순간을 이겨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 약속을 따라 우리를 대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행동에 따라 우리를 대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누구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믿는 성도인 우리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묵상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 그리고 하나님이 성실하심을 묵상할 때 고통중에서도 소망을 가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고통과 고난이 없이 평탄한 길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소망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시면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4.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내가 그를 바라리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기업이 무엇입니까? 그당시에 기업은 부모로부터 상속받는 토지나 재산을 의미했습니다. 지금은 먹고 살아갈수 있는 직업이 많이 있지만 그당시는 할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토지나 재산을 상속 받지 못하면 평생을 남의 밑에서 일을 하거나 종살이를 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치루고 난 다음에 한일은 땅을 제비뽑아 분배를 한 것입니다. 땅을 기업으로 나누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갔는데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기업이라고 하는 것은 생명과도 같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땅이 내기업”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물질이 내기업 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내생명을 살리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빌어먹게 하지 않으시고 자유자로 살아가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고백이 바로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 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고백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할수 있는 자만이 할수 있습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죄의 모양은 참으로 여러 가지입니다. 도적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고 시기 질투하고 이렇게 죄의 모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의 본질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 없이도 살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사탄이 어떻게 유혹했습니까?‘ “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하나님없이도 네가 네 인생을 멋지게 살아갈수 있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 없이 자기 인생을 살아갈려고 먹지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 먹었던 것입니다. 그이후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에게는 이런 죄성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심령속에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하나님없이 살아갈려고하는 영적인 교만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가 일주일에 3일동안은 손녀를 봅니다. 이제 9개월이 되었는데 어제는 제 아내가 손녀 이름을 부르면서 이리로 오라고 하면 오히려 도망을 갈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라가면 좋아하면서 계속 기어서 더 도망을 갑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오라고 하면 반대로 행동을 하면서 좋아하는 심성은 우리 모두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떠나 내자신이 내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심령안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이 죄성을 뽑아내시기 위해서 종종 우리 인생을 연단하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연단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십니다“ 라고 하는 이 고백을 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함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물질이 내인생의 기업이 아닙니다. 어떠한 사람도 내인생의 기업이 아닙니다,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학문도 내 인생의 기업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내 인생의 기업이십니다. 주님만이 내인생을 책임져주시고 내 인생을 살리시는 기업이십니다” 이런 고백을 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연단하시고 힘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생이 힘들고 고달플 때 이렇게 고백을 하며 살아가십시다.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이 되십니다’

예레미야는 고통중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심으로 소망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통가운데서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잠잠히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26절입니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실 구원의 은총을 바라보면서 잠잠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잠히 기다리라는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내가 비록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어서 고통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불평하거나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는 의미입니다. 사실 우리가 너무 힘든 고통 가운데 있다가 보면 내 자신도 모르게 원망과 불평이 나올때가 있습니다.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저사람은 하는일마다 잘되는데 왜 나는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이 시기 질투심도 생길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악의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 말씀합니다. 시편 37편 7절입니다. “7.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사람앞에 가 아닙니다 여호와 앞입니다. 여호와앞이니까 사람이 있던 없던 잠잠히 참고 기다리며 살아라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잠잠히 기다리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왜 내게 왜 우리 자식에게, 왜 우리 가정에 이런일이 생겨야 합니까? 불평하고 원망할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화를 내거나 반대로 낙심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방법으로 해결할려고 몸부림 치고 일을 처리해 나가기도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많이 타고 있는 버스 안에서 차가 막 요동치고 흔들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잡이를 꽉 붙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지 않고 옆에 있는 사람을 잡으면 어떻게 됩니까? 같이 왔다 갔다 하다가 다같이 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붙잡거나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잠잠히 참고 기다릴수가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유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이제 이 지구촌은 강자와 약자 대신에 빠른자와 느린자로 구분될 것이다. 그리고 빠른자는 승리할 것이고 느린자는 패배할 것이다’ 오늘날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맞는말인 것 같습니다. 빠른자가 더 많이 성공하고 빠른자가 더 많이 출세를 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빠른 제품이 더 잘팔리는 것을 봅니다. 냉장고도 더빠르게 냉동시키는 제품이 더 잘팔리고 프린터도 더 빠르게 프린터 되어 나오는 제품이 더 비싸고 더 좋은 것입니다. 차도 흔들림이 없이 더 빨리 달릴수 있는 것이 더 비싸고 또 인스턴트 음식도 좀 더 빨리 요리되어지는 것이 잘 팔립니다. 요즘에는 쳇 GPT 가 나와서 내가 어떤 종류의 소설이나 에세이 그리고 음악을 원한다는 문장만 넣어주면 단 1, 2분안에 수십편을 완성시켜주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흐름이 진행되어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빠른 것이 좋은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잠잠히 기다려야 할때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기다림은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기다려야 할 것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성숙은 기다림을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아기도 어머니 뱃속에서 열달을 기다려야 정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지 7개월 8개월만에 태어나면 팔불출이나 미성숙 아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에서 살아간다고 할수 있습니다. 주부는 직장에 출근한 남편을 기다립니다. 출근한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 주부가 있다면 그것은 이상한 주부입니다. 군복무를 하는 군인들은 제대하게 될 날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학생들은 방학을 기다리고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은 결혼식 날짜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철들기를 기다리고 오늘날 진실되게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기다리지 못해서 실패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의 일생을 보면 블레셋과 가장 많이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당시에 전쟁을 치루게 되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날도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 당시 제사장인 사무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병력은 3천명이었는데 블레셋 사람들은 해변가의 모래와 같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운 마음에서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하나둘씩 도망을 갑니다. 그것을 본 사울왕이 조급한 마음에 제사장만이 드릴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직접 한 것입니다. 그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사울왕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왕은 기다림에 실패를 했기에 망하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반면에 기다림에 성공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다윗이죠. 시편 40편 1절과 2절입니다. ‘1.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기다리고 기다렸다는 표현은 참으로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는 의미입니다. 한 두번 기다린 것이 아니고 일 이년을 기다린 것이 아니고 정말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려 왔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렇게 내가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나를 어떻게 했다고요? 나를 기가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셨다는 것입니다. 기가막힌 웅덩이와 수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바로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헤어나올수 없는 문제덩어리 속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문제의 환경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더 나아가서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다윗은 기다리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반면에 사울왕은 기다림에 실패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보게 되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기다림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그시대에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많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잘 기다렸던 사람이 그시대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면서 홍수가 내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왔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외로운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눈물과 상처와 모함의 세월을 13년동안 지나면서 기다렸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이름이 변하고 성품이 변하기까지는 2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다윗은 오랜 세월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왕이되었지만 실제적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는 7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사야 30장 18절입니다.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여러분 우리만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기다리십니다. 왜 하나님이 기다리십니까? 기다림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은혜를 베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잠잠히 기다리는 것은 그냥 마냥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까?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첫째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며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26절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26.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현실은 예루살렘의 궁전과 성전이 무너지고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젊고 유능한 유다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긍휼하심과 그 성실하심이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포로의 신분에서 자유의 몸이 되게 구원하실 것이다. 그래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무너진 성벽을 쌓고 다시 온전한 예배를 드릴수있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그날을 바라보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냥 막연히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인자와 긍휼하심과 성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구원해주신다. 그리고 나를 회복하게 하시고 자유롭게 해주신다. 이러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고통과 힘든 가운데서 있을때는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시면서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내 남편과 내 자녀를 어떻게 구원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의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까? 이렇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바라면서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그러니까 바라는 것이 그 무엇이 있어야 실상이 있어야 믿음도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없다면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동안 어떤일을 만나게 되더라도 궁극적으로 나의 마지막날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기에 우리의 인생은 소망이 있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바라면서 기다리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잠잠히 기다린다는 것은 기도하면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25절입니다, 25.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여기서 ‘구하다’ 라는 단어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이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선하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때에 그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에스겔서 36장 36절에서 37절입니다. ‘36.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37.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무엇을 이루겠다는 의미입니까?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다 백성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그 약속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재건하게 될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게 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7절 보시면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한 것을 내가 이루겠다 하지만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일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회복이고 구원이입니다. 하지만 그 회복과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셨을지라도 내가 기도를 하지 않으면 그 약속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약속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시기 때문에 나와 교제를 하면서 일을 이루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도의 응답은 모두가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럼으로 고통중에 있을지라도 잠잠히 기다리십시다. 구원을 바라며 기다리십시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기다리십시다. 그러면 선하신 하나님께서 그 어느날 우리의 인생에 가장 귀하고 선한 것으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아름답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만날때마다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하게 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고 기도하시면서 잠잠히 기다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