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상황을 만날때
<욥 1장 20-22절>
20.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7절 후반부입니다. ‘7.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감사를 넘치게 할수 있습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이 넘치는 감사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감사는 상황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느낌의 문제도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감사 할수도 있고 감사 할수 없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했다 할지라도 내가 믿음에 굳게 서있지 못하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지금 내 믿음이 흔들리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에 대하여 의심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홍해를 건널 때 그들이 얼마나 감사를 했습니까? 그리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올 때 그들은 놀라워하면서 진심으로 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환경이 점점 열악하여지니까 그들은 원망과 불평의 말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상황 속에서는 누구나 감사를 할 수가 있지만 좋지 않은 환경속에서도 감사할수 있는 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믿음에 굳게 선 사람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에베소서 5장 20절입니다. 20.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는 모든 일을 의미합니다. 모든일에,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바울은 감사를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갈때도 감사를 했고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하게 될 때도 감사를 했습니다. 왜요? 믿음에 굳게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감사할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시면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열명중 한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19절입니다.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중풍병자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었기에 감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감사는 믿음이 있어야 나오는 것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럼으로 내 믿음이 어느정도의 믿음인가를 알려면 인생의 풍랑과 고난앞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내 믿음의 깊이를 알수 있습니다. 고난중에서라도 감사할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 믿음이 굳게 서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장로님이나 목회자가 감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굳게 서있는 사람이 감사를 잘할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좋은 사람이 성경을 더 많이 알고 있는 확률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잘알고 있다고 해서 감사를 잘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감사를 잘하는 사람은 믿음이 많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때 그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누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수준 높은 성가대의 찬양이 아닙니다. 뜨겁게 기도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우리 인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 이시간 저와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 가운데 있고 슬픔과 아픔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감사할수가 있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최악의 상황을 만나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그 믿음의 사람들은 감사를 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자굴속에 던짐을 당해야 되는 그런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하박국 선지자는 정말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감사를 했습니다. 하박국 3장 17절 18절입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선지자가 사역하던 시기는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하여 남 유다가 망해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주변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제 곧 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를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욥도 이 하박국 선지자 못지않은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욥이 누구입니까? 욥 1장 1절입니다. ‘1.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가 바로 욥이었습니다. 그리고 욥은 부자이었습니다. 1장 3절입니다. ‘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짐승이 모두 몇 마리입니까? 칠천 마리, 삼천마리 이것만해도 일만 마리입니다. 그러니까 일만마리가 훨씬 넘는 짐승을 거느리고 있었고 종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욥은 많은 가축과 많은 종을 거느린 굉장한 부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일곱 명과 딸 세명 모두 합하여 열명의 자녀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욥은 이 열명의 자녀들 모두를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녀로 키웠습니다. 이렇게 욥은 부자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욥 1장 8절입니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세상에 없느니라’. 욥과 같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욥에게 하루는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그것도 한 두가지 불행이 아니라 4가지의 불행이 한꺼번에 닥쳐왔습니다.
첫 번째 불행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과 종들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욥 1장 14,15절입니다. ‘14.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스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칼로 욥의 종들을 죽이고 소와 나귀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절입니다. 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스바 사람이 공격 했던것과 비슷한 시간에 또다른 장소에서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칠천 마리의 욥의 양과 종들을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한사람이 와서 욥에게 보고를 합니다. 17절입니다. 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갑자기 갈대아 사람들이 나타나서 낙타 삼천마리를 빼앗고 종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욥은 모든 재산과 종들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불행은 자녀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18절 19절입니다. ’18.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맏아들의 집에서 욥의 열명의 자녀들이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태풍이 불어와서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모두가 죽었습니다. 재산을 모두 잃어버린것도 충격인데 한명의 자녀도 아닌 열명의 자녀 모두가 다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불행도 이런 불행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불행으로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 피부병이 생겼습니다. 욥기 2장 7절과 8절입니다. ’7.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다 무너지고 다 잃어버렸다 할지라도 몸이라도 건강하면 그래도 힘을 내어 다시한번 새롭게 시작해볼수도 있겠는데 이번엔 온몸에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몸이 가려운지 질그릇 조각으로 자기 몸을 박박 긁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은 또 있습니다.
네 번째 불행은 아내가 밤낮으로 자기를 저주합니다. 2장 9절입니다. 9.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남편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아내는 옆에서 위로하고 격려를 해야 하는데 반대로 욥을 향해서 저주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욥의 아내가 그렇게 믿음이 좋은 아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욥에게 닥친 고난을 생각해보면 고난이라는 것은 쓰나미처럼 한꺼번에 몰려올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사탄이 주는 시험과 유혹은 주로 한꺼번에 밀려옵니다. 왜냐하면 한꺼번에 밀려와야 믿는 성도들이 절망하고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네가지 불행중에 한가지만 만나도 감당을 잘 못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자기 자식이 교통사고로 죽임을 당했는데 그이후로부터 믿음의 생활을 하지 않은 분이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사업이 망했는데 같이 동업을 했던 사람을 미워하며 살인을 하는 경우도 뉴스를 통해 종종 보게 됩니다. 또 어떤분은 반대로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조용히 연탄불을 피워놓고 세상을 떠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것은 모두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최악을 선택하지 않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라고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욥이 한 행동속에는 감사의 마음이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욥이 드린 감사가 담겨있는 구체적인 행동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인생의 최악의 상태를 만난 욥이 드린 감사의 내용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다 할지라도 욥처럼 감사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욥은 첫째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감사를 한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은 자기에게 이렇게 큰 불행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한일은 예배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이 예배하기전에 먼저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당시 사람들은 슬픔과 불행을 당했을 때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자기 자신이 큰 슬픔 속에 있다는 것을 표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슬픈일을 당할 때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믿음이 약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도 나사렛이 죽었을 때 우시기도 하셨습니다. 슬픈 일이 생기면 울어야 합니다. 큰소리로 울고 통곡을 해도 됩니다. 그런데 욥은 슬퍼하고 통곡을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크게 슬퍼하고 난 이후에 땅에 엎드려 예배를 했던 것입니다. 슬퍼했지만 슬픔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욥이 달랐던 점입니다. 예배라는 원래의 의미는 엎드려 경배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배의 시작은 엎드림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지만 실상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보좌앞에 엎드려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어려움과 불행을 만나게 될 때 슬퍼할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슬픔과 눈물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엎드려 예배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슬픔과 고통이 다가오면 그럴수록 더욱 더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욥이 보인 감사의 모습입니다,
둘째로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찬양을 했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21.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그래요 우리가 이세상에 태어났을 때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왔습니다. 빈손이었습니다. 이세상에 나오실 때 옷을 입고 오신분이 계십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세상을 떠날때도 빈손입니다. 욥은 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이 가졌던 것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주신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니까 욥은 자기 자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그 많은 물질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이 수고와 노력은 했지만 하나님이 주셨기에 그 많은 물질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자식도 마찬가지로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욥은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신 결정을 언제나 받아들이고 그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에서 드린 욥의 감사라 할수 있습니다.
욥기 35장 10절입니다. 10.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하며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고 말하는 자가 없구나 “밤에 노래를 주시는 자가 어디 계시냐” 여러분 이세상에 낮과 밤이 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낮과 밤이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인생의 밤중에도 노래를 하는 사람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밤중에도 노래를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생의 밤중에도 노래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빌립보의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자신들의 발은 착고에 채워져 있었고 깊은 한밤중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깊은 밤중에도 그들에게 마음의 평강을 주시고 노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욥도 인생의 밤중이었지만 하나님을 찬양 하며 감사를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어두운 밤을 주셨지만 그 밤중에 노래도 주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밤도 그리고 노래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찬양하며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드린 욥의 감사의 내용은
세 번째로 자기 입술로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22.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 모든 일에’ 이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욥이 당한 모든 고난을 의미합니다. 모든 재산을 잃고 모든 자녀를 잃어버리고 뿐만아니라 피부병이 생기고 아내는 날마다 자기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 모든 고난을 만났을 때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 불평하는 경우기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면서 자기에게 저주를 퍼부어도 욥은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아내를 나무랍니다. 욥기 2장 10절입니다.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아내는 욥을 흔들었지만 욥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불평하고 원망할수 있는 상황에 있었지만 욥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나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먼저 우리가 저지르기 쉬운 죄가 무엇인가 하면 입술로 원망하는 죄입니다. 부모님을 원망하고 남편이나 아내를 원망하고 시대를 원망하고 건강을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하고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의 심성에는 따지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섭섭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조급하게 먼저 따집니다. 하지만 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내가 이해되지 않았을 뿐이지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슬픔과 불행속에 있지만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분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욥이 보여준 감사입니다. 욥이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은 욥의 인생에 크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욥이 최악의 상황에서 감사를 했을 때 욥이 받은 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욥은 하나님을 눈으로 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욥기 42장 5절입니다. ‘5.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전에는 귀로만 듣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축복은 저와 여러분이 이세상을 떠날 때 누리게 될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런 축복을 욥은 살아생전 누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욥이 받는 복은 두 번째로 이전에 가진 소유 보다 갑절의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욥기 42장 10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욥이 잃어버린 이전의 소유물을 갑절이나 돌려주신 것입니다. 축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로 욥의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저주했던 그 아내와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욥이 또다른 아내를 맞이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욥 42장 13절입니다. 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여기에서 욥이 다른 아내를 맞이해서 열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이전의 아내와 관계를 회복하면서 새롭게 자녀를 누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물질의 축복은 갑절의 축복을 주셨지만 자식과 아내에 대해서는 갑절의 축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나 자식은 물질의 축복과는 달리 관계성의 회복과 신뢰의 깊이에 따른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관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의 축복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더욱 성숙하고 친밀한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욥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를 할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입술로 원망 불평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감사를 드림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최악의 상황에서 감사를 드림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사울왕에게 쫓기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를 드림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최악의 상황을 만났을때에도 감사를 드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가운데 가장 크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래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시각장애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에비 로빈슨]이라는 트럭 운전기사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에비 로빈슨은 교통사고로 인해 시신경을 다쳐 시각 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직업이 트럭 운전사인데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직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었던 이 에비 로빈슨은 갑자기 많아진 자기 시간을 하나님과 가까이 할수 있는 선한 기회로 삼았습니다, 시간이 날때마다 자기 집 잔디밭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당시 눈은 보이지 않고 직장은 잃어버리고 아내와의 관계도 예전같이 않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비 로빈슨은 하나님과 가까이 할수 있음에 대해 감사를 했습니다. 숨을 쉬고 있음에 감사를 하고 귀로 듣고 말을 할수 있음에 대해 감사를 했습니다. 발로 걸을수 있고 손으로 만질수 있음에 대해 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끊어졌던 시신경이 연결이 되고 회복되면서 물체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3개월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더 지나자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예전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비 로빈슨은 최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볼때마다 이렇게 권면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먼저 감사기도를 하십시오. 감사할수 있는 것에 대해 먼저 감사를 하십시요.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위대한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을 쉽게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도 잠이 깨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식욕이 떨어지고 억지로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일종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최악의 상황은 감사를 드릴수 있는 기회라고 믿으십시다. 감사는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바꿀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좋은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굳게 섰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최악의 상황을 만나게 된다할지라도 믿음에 굳게서서 감사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욥처럼 그리고 요셉과 다윗과 같은 은혜를 누리며 남은 생애를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