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창대하다 의 의미

Author
kgmcc
Date
2023-11-25 23:01
Views
68
본문 : 창세기 45장 7, 8절

날짜 : 2023년 11월 26일

<창세기 45장 7,8절>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믿는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보면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 가장 많이 적혀있는 말씀중의 하나는 바로 욥기 8장 7절에 있는 내용이라 할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아마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이 말씀은 모두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가게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교회도 창대해지는 복을 받기를 소망하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창대해지는 복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창대해지는 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 이라 할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창대하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에 있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후에 제일 먼저 주신 복이 창 1장 28절에 나옵니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러한 복을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창 12장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복을 약속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2절입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자 여기서 우리는 “창대해지는 복”을 생각할때 돈을 많이 벌고 좋은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명예와 권력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는 창대함은 많이 모으고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창대함의 의미입니다. 창세기 11장을 보시면 타락한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는 모습이 나오는데 바벨탑을 쌓는 이유가 4절에 나옵니다. 창 11장 4절입니다. “4.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우리 이름을 내고’ 크게 되고 높아 질려고 하는 이유는 우리 이름을 내는것에 있습니다. 그당시 바벨탑을 쌓았던 이유처럼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모으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창대해질려고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서 더 많이 모으고 나를 위해서 더 높이 쌓아두고, 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은 성경적인 축복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후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모든 땅과 모든 생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세상과 모든 생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고 살아가야 한다 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라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면서 살아가라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서 창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마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은 말 그대로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창대함의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시면 루디아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아디라 출신인 루디아는 객지인 빌립보 도시에 와서 억척같이 일을 해서 돈을 모았습니다. 두아디라는 지금 터어키 나라에 속해있고 빌립보는 지금 그리스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루디아는 멀리 이국나라인 빌립보 지역에 까지 와서 옷감 장사를 하며 열심히 살았던 것입니다. 그결과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하루는 강가에 갔다가 거기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전해 듣고는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바울 일행을 자기집으로 데려와 자기와 온가족이 모두 침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난후 루디아가 바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행 16장 15절입니다. 15.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루디아는 예수님을 믿게 된 그날부터 세상적인 의미에서 창대함의 삶의 의미를 넘어 성경적인 의미를 가진 창대함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이 빌립보 도시에 있을 동안에 이 루디아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루디아 여인이 자기 집을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제공함으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이후로도 루디아는 전도 여행을 하고 있는 바울 일행을 계속해서 후원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빌립보서 4장 15절입니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내 일에(복음 전파)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그리고 그다음 16절입니다.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두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이렇게 루디아 여인은 자주색 옷감장사를 하면서 모았던 돈으로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고 있음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창대함의 의미입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도 성경적인 창대함의 삶을 살았습니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부터는 성경적인 창대함의 삶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120명의 믿는 성도들이 모여 기도할수 있도록 자기집 다락방을 내놓았을 때 오순절날 성령의 강림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오순절날 성령의 강림이후로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렇게 마가 어머니 마리아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창대함의 의미입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더 부자가 되었고 더 잘살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창대함의 의미가 아닙니다. 나의 물질과 나의 재능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이 말씀하는 창대함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요? 이 복은 우리가 이세상을 마치고 난 이후에도 주님이 기억하시고 보상해주시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창대함의 복이 되는 것 입니다. 우리가 누리게 될 복이 이세상에서 끝나는 차원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창대함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면은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곡식을 구하기 위해 가나안땅에서 애굽으로 온 형들에게 말한 내용입니다. 요셉은 세상의 가장 낮은 바닥의 자리에 떨어져서 세상의 가장 높은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가장 미약한 자리에까지 내려갔지만 그 누구보다도 창대하게 되는 복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다 창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인 우리에게 이러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창대함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통해 순수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창대하게 하는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하는 심령에게 조건이 없는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리고 간절히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 응답을 해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이러한 차원의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대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복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주시기 위해, 우리들을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그 연단은 바로 고난을 통한 연단입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고난으로 인해 요셉이 어떻게 창대함의 복을 누릴수 있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남은 생애동안 창대함의 복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떻게 요셉이 창대함의 복을 누릴수 있게 되었습니까?

1.시련을 통한 순수한 믿음으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17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으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복 형들이 자기를 종으로 팔아버린 사건 이후로 요셉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버지와 자기 친동생 베냐민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른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가 고생 고생 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서럽고 힘들었겠습니까? 하지만 요셉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의문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살아계십니까? 하나님 살아계신다면 왜 내가 이런 어려움과 고통속에 빠져 살아가야 합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분이십니까? 아버지 야곱이 나를 즐겁게 해줄려고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까?‘ 이렇게 요셉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가 하는 의심이 순간순간 일어날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그순간이 요셉을 가장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어려움이 생기고 고난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하여 둘 중에 하나를 선택 하게 됩니다. 하나는 내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사람은 예배의 자리를 떠납니다. 기도의 자리를 떠닙니다. 생각해보세요.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나 고난 하나를 해결하실 수 없는 무능력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고난을 통과할때 그 반대의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 내가 비록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내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신다. 그분은 지금도 나를 보시고 계시고, 지금도 그분의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이런 결론을 내린 사람은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해나갑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절히 사모함이 없이 예배를 드리고, 간절함이 없이 기도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믿음이 없다면 시간과 물질을 드리면서 이렇게 교회에 나와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겠습니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기도를 하겠습니까? 문제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하고 순수한 믿음이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믿음,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고난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온전한 믿음으로 단련시킵니다.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순수한 믿음으로 만듭니다. 성경은 이것을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 이라고 말씀합니다. 개역성경보다는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의미가 더 확실해서 현대인의 성경으로 봉독합니다. 벧전 1장 7절입니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금보다 더 귀하여‘ 무엇이 금 보다 더 귀합니까? 앞에 나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확실한 믿음입니다. 이 성경 내용을 개역성경 보다는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내용을 이해하기가 더 쉽습니다. “7.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벧전1:7 현대인의성경) 그러니까 ’믿음의 확실함’ 은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 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한 믿음이 됩니까? ‘시련을 겪고 난후’ 에 순수한 믿음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련을 겪어야만 순수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요?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 대충 적당히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안믿든지 결사적으로 믿든지 둘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세상도 좋고 예수님도 좋습니다.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품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더 이상 그런 신앙으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아니라 순수한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 그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마찬가지 이었습니다. 요셉이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요셉에게는 그 하나님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왜요? 아버지 야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이 있었고,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보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의 품 안에 있으면 요셉은 세상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요셉도 분명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보다 아버지 야곱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종이 된 순간부터 더 이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는 그 고난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더 이상 요셉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요셉을 위로해 주고, 요셉을 지켜주고, 요셉의 필요를 채워주고, 요셉을 책임져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은 바로 이 고난을 통해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순수한 믿음,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극심한 고난을 주시면서까지 요셉을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단련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나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축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 더 뜨겁게 주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론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 중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과한 사람이 가지는 사랑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미얀마 사람들이 예배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국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교회를 빌려서 미얀마 사람들이 주일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미얀마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찬양을 하는데 2시간을 서서 뜨겁게 찬양을 한다는 것입니다. 2년전인 2021년도에 미얀마에 군사 군데타가 일어나 군사 독재자 정권이 세워지고 난 이후부터는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 교회라기 보다는 차라리 미얀마 교회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려움과 시련을 통해 순수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경적인 창대함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내가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분은 오직 주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요셉이 창대함의 복을 누릴수 있게 되었습니까?

2.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으로

아시다시피 요셉은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인해 감옥에 갇혀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형과 보디발 아내의 악한 행동들을 막으실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요셉은 그런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이 고난을 피하게 해서 온순하게 자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만나 그 고난을 이겨냄으로서 결국에는 요셉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나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을 하나님의 뜻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게 함으로서 결국에는 요셉의 형과 보디발의 아내가 행했던 그 악을 선으로 바꾸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창세기 40장을 보시면 요셉이 감옥에 들어온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고 난후에 그사람에게 이런 부탁을 합니다. 창 40장 14절입니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창40:14) 이 당시 요셉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이었습니다. 그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나간후에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한말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후로도 2년동안을 더 감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시간이 날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고난이 언제 끝납니까? 하나님 제가 언제 이 감옥에서 나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제가 고향에 돌아가 아버지와 동생을 한번 보고 죽는 것이 제 평생 소원입니다. 하나님 이 간절한 제 소원 들어주십시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요셉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계획은 계속적으로 감옥생활을 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배고픔과 목마름의 고통을 아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고난을 경험하게 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그리고 가뭄으로 인하여 가나안땅에 살고 있던 형들이 곡식을 사기 위해 애굽에 와서 총리가 된 요셉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때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7절 내용입니다.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왜 요셉이 형들보다 더 먼저 애굽으로 가야 했습니까?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아버지와 형제들의 생명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먼저 애굽으로 보내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 계획의 극히 일부분입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획하셨던 일부분만 보게 됩니다. 요셉은 자기가 감옥에 있었을때는 감옥에서 나가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난후 곡식을 사러온 자기 형들을 보았을 때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은 자기 가족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서 자기를 애굽에 먼저 보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단지 야곱의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굽에서 야곱의 자손이 큰 민족으로 번성하고 창대하게 하는 것에 있었던 것입니다. 400년이 지난 뒤에 남자 장정만 60만명이 되는 큰 민족을 이루고 애굽에서 나올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땅에 들어가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갈 것을 계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이심을 믿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창대함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두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어려운 시련을 통해서 얻게 되는 순수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두 번째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훨씬 더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자, 요셉에게 이런 고난이 없었다면 요셉이 이러한 창대함을 누릴수가 있었을까요? 요셉이 계속해서 야곱 밑에서 편안하게 살았다면 요셉은 성경적인 창대함의 복을 누릴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창대함은 하나님이 기억하신바 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도 지속되어지는 참된 복인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어서 앞으로 경제가 어려워지게 되고 물가는 올라가면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돈이 있으면 살고 돈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돈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살고 하나님이 나를 떠나시면 죽는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하는 고백입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은 감옥에 있던 죄수를 한 순간에 애굽의 총리로 세우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애굽의 종이었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순간에 자유자로 만드실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내가 믿고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지금 내 형편 내 상황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내가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것을 계획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어려움과 어떠한 고통속에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이기고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에 창대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어려움과 고난중에서라도 나를 창대하게 하실려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속에 있음을 믿고 이겨낼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