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Author
kgmcc
Date
2023-12-10 02:27
Views
60
본문 : 열왕기하 6장 9-12절

날짜 : 2023년 12월 10일

<열왕기하 6장 9-12절>

9.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10.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12.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성경에는 참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 숫자는 약 1900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호칭이 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와 사무엘 그리고 엘리야 와 엘리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기록된 구절의 숫자는 성경 66권 중에서 72 구절입니다. 그리고 이 72 구절 가운데 엘리야에게 8번 사용되었고 엘리사에게는 28번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가장 많이 사용된 사람은 바로 엘리사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시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단어가 2번이나 나옵니다. 본문 9절 전반부를 보시면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그리고 10절 전반부를 보시면 ‘10.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이렇게 엘리사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를 살펴보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호칭이 어떤 경우에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남은 생애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첫째로 자기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자를 의미합니다. 특별히 구약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게 되면 좀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께 속하여 살아가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딤전 6장 11절, 12절입니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디모데 전서에 기록된 말씀이니까 사도바울은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야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피하라” 라고 말합니다.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본문 앞에 언급되었던 것인데 이단을 피하고 투기를 하고 분쟁하는 것을 피하고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것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왜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영생을 취하라’ 라고 하는 의미는 영생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영생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더군다나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습니까? 담대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쉽게 넘어집니까? 그것은 단 한가지 이유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 입니다.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존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크게 나누면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과 세상에 속한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 무엇보다도 우선 나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지지 못하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분명히 하지 못하면 세상이 주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낼수가 없습니다. 건강하든지 질병에 걸렸든지 부자로 살든지 가난하게 살든지, 많이 배웠든지 아니면 배우지 못했든지 잘되든지 못되든지 간에 하나님의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라고 하는 그 귀한 가치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100불짜리 지폐는 빳빳한 새 돈이든지 아니면 구겨진 헌 돈이든지 상관없이 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100불짜리가 진흙탕에 묻혀있어도 사람들은 버리지 않고 아주 귀하게 여깁니다. 왜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땅을 살아가면서 사탄의 공격과 유혹으로 인해 넘어지고 쓰러지기도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존재는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내가 영접했을 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가치가 있는 존재로 인정해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8 절입니다.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나는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나는 낙심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나는 망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왜요?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나는 질그릇처럼 잘 깨어지고 아무런 볼품이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내가 비록 질그릇같이 잘 깨어지고 볼품이 없지만 이 내안에 보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질그릇이지만 보배를 담았기 때문에 이 질그릇은 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과는 상관이 없이 지금 나의 이 모습과는 상관이 없이 나는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그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 실패의 삶과 가난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 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지니고 이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지니고 남은 생애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두 번째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어 지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을 보게 되면 엘리사가 한 과부가 동네에서 얻어온 빈그릇에 기름을 가득 채우는 기적을 행하고 난 뒤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워집니다. 하루는 선지 생도의 미망인이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남편이 신학생이었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학교 학생이었던 자기 남편이 빛만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자기 두아들을 종으로 삼기 위해 데려갈려고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이 젊은 과부에게 말을 합니다. “집 밖에 나가서 동네사람들에게 빈 그릇들을 얻어 와라“ 그래서 이 미망인이 이웃 동네사람들에게 가서 빈 그릇을 많이 빌려 왔습니다. 그러자 이 엘리사가 두 아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이 과부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기름 한 그릇인 이 빈 그릇들에 부어라 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래서 이 과부가 기름을 부으니까 기름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와서 그 많은 빈병이 가득 채워졌던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난 후에 성경은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왕하 4장 7절입니다.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이때부터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붙어지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야 선지자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호칭이 불리어 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린 기적이 일어난 후부터입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입니다.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자기 아들이 살아난 것을 보고 난후에 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있었던 것을 알수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스승이었던 엘리야 보다도 더많은 기적을 행하였던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하였고 과부가 가져온 빈 그릇들을 모두 기름으로 채웠습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려주었고 그리고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낫게 하였습니다. 능력의 선지자라고 불리는 엘리야 보다도 더 많은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이 어떻게 엘리사의 삶 가운데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엘리사가 특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엘리야나 엘리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입니다. ”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여기서 성정은 원어로 보면 ‘호모이오파데스’ 인데 같은 성질을 가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NIV영어 성경을 보시면 “Elijah was a man just like us"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 뿐만 아니라 그 제자인 엘리사도 당연히 우리와 마찬가지의 사람인 것이죠. 그런데 엘리사에게 이런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것은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이 엘리사에게도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2장을 보시게 되면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엘리사는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길갈이라는 지역에 있을 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엘리사야, 너는 여기에 머물고 있으라“ 그런데도 엘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그래서 길갈에서 베델에 이르게 되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다시 말합니다. ”엘리사야 너는 여기 머물고 있으라“ 하지만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베델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까지 따라갑니다. 그때마다 엘리야는 여기 머물고 있으라 라고 말을 했지만 엘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따라갑니다. 요단을 건너고 난후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열왕기하 2장 9절 전반부입니다. ‘9.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내가 하나님에게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그때 엘리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합니다, 왕하 2장 9절 후반부입니다. 9.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엘리사가 원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지혜입니까? 건강입니까 물질입니까? 나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지만 엘리사는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평생에 그렇게 위대한 사역을 해나갔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엘리사가 위대한 사역을 행할수 있었던 것은 엘리야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역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스승인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그 성령의 역사가 자신에게도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여기서 갑절이라는 의미는 자기의 스승 엘리야 보다 두배의 능력을 받고 싶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당시 맏아들은 집안의 두 배의 분깃을 받고 가문을 계승해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스승 엘리야가 죽기 전에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했다는 것은 내가 당신보다 더 능력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선지자 생도들 중의 장자로서 당신의 선지자직을 계승할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당시 엘리야 에게는 많은 선지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순간에도 선지 생도 50명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요단 건너편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럼으로 엘리사는 선지 생도들의 장자로서의 직분을 받아 엘리야의 사역을 자신이 이어가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성령의 역사를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너는 여기서 머물러 있으라” 라고 수차례 말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길갈에서 베델로 베델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그리고 요단 건너편 까지 따라갔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포기하지 않고 엘리야가 승천하는 그 순간까지 그를 따르며 성령의 역사를 받기를 사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성령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말이 무슨 뜻인가하면 보혜사 성령이 이땅에 오셔서 예수를 믿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성전삼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거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 때는 이러한 성령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어떤 하나님의 일도 감당할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령의 역사를 갈망했고 갑절의 성령의 능력을 구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이 맡기신 거룩한 사역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절대로 이루어질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어떠한 열매도 맺을수가 없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입니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역사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능력을 받을수가 있습니까?

누가복음 11장 13절입니다. 13.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받기를 사모하고 간구하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시면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대신에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 후반부입니다. 11.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신다” 는 말씀 대신에 “좋은 것을 주신다” 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은 건강이나 돈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승이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 믿는 성도들인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는 열심을 내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구하는 일에는 그렇게 열심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2024년 새해부터는 성령충만함을 받으며 살아가게 해달라고 지금부터 기도하고 간구를 하십시다. 지금 우리는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보다도 훨씬 더 악하고 패역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때만 해도 동네에서 총각 처녀가 만나 이야기만 해도 서로 눈이 맞았다고 마을 사람드이 수군수군 대었습니다. 그래서 헛 소문이라도 날까봐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살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큰소리 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큰소리를 치고 비꼬고 조롱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가 나도 먼저 멱살을 잡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을 보면 불과 20년전이었다면 감옥에 들어갈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나 의인처럼 행동하면서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가운데서 내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엄청난 악성댓글에 시달려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시대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비정상인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을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미워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 우리도 엘리사가 구하고 간구했던 것처럼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성령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내년 새해부터는 엘리사가 받았던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세 번째로 영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도 영력이 있는 사람입니다만 이시간에는 조금 구체적으로 구별해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육신의 능력으로 사물을 잘보는 사람을 우리는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능력으로 내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영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때 영력이 있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영력이 대단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들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는 그당시 적국인 아람나라가 세웠던 모든 작전 계획을 볼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은밀한 곳에서 작전을 세운다 할지라도 엘리사는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나라의 모든 작전계획을 알아내어 왕에게 알려주고 그일에 대비할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 곳으로 나오나이다 하는지라’ 그리고 10절을 보게 되면 이런 일이 한두번 있었던 것이 아닌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후반부입니다. 10.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한 두번이 아닌지라” 본문 마지막인 12절을 보게 되면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하는 말까지도 다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 후반부입니다. 12.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이정도가 되면 아람 나라의 왕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시력보다도 영력이 훨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내 앞에서 내 눈에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력이 좋은 사람들은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그 현상의 배후를 볼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풍랑을 만났습니다. 시력이 좋은 사람들은 풍랑의 규모를 봅니다. 그런데 영력이 있는 사람들은 풍랑을 허용하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주님을 보는 것입니다. 인생의 밤을 지날 때 시력만 좋은 사람들은 캄캄한 인생의 밤에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두려워하지만 영력이 좋은 사람들은 그 인생의 밤을 허용하신 주님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과 인생의 풍랑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음성을 보고 들을수 있는 사람은 영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거친 풍랑속에서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수 있는 사람은 영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고 그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시력보다는 영력을 가지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여러분 이제 다가오는 새해부터는 엘리사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사모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비록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남은 평생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