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네 행복을 위하여

Author
kgmcc
Date
2023-12-16 23:02
Views
53
본문 : 신명기 10장 13-15절

날짜 : 2023년 12월 17일

<신명기 10장 13-15절>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14.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이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돈을 모으기도 하고 여행도 하고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유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 텔레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선은 행복이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삶의 이유와 목적은 바로 행복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하는 파랑새를 잡을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몸부림을 치고 노력을 한만큼 행복해졌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라가 훨씬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국내 총생산량(GDP)은 세계 제 13위에 해당되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IT 산업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이렇게 경제적으로는 막강한 대한민국이 되었지만 그 행복지수는 거의 밑바닥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서 요즘에 젊은 사람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또 결혼을 한 젊은 부부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갑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행복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아지게 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결과 지금 우리는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이 가졌고 좋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옛날에 왕들도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옛날에 왕들이 지금 우리들처럼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고 동영상을 볼수 있었겠습니까? 옛날에 왕들이 겨울에 딸기나 수박을 먹고 히터를 켜고 따스한 온기속에서 잠을 자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고 시원하게 지낼수 있었겠습니까?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거나 드라마를 볼수 있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옛날보다 더 많은 소유와 더 좋은 환경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작년 6월 5일 중앙일보에서 읽었던 칼럼 내용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2011년도 국민소득이 2천 달라도 되지 못하는 부탄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97퍼센트가 “나는 행복하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그후 8년 이 지난 2019년도 조사에서는 세계 95위로 하락하면서 그 행복지수가 낮아졌다. 사회학자들이 그 이유를 살펴보니 부탄에 인터넷과 SNS 등이 발달하면서 국민들 대다수가 다른 나라보다 자기 나라가 빈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행복지수가 급격하게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이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이 누리고 있는가 의 문제라기 보다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에 얼마나 만족하느냐에 따라 행복의 지수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또 행복은 지식과 정보의 넉넉함에도 있지 않습니다. 부자중의 부자라고 할수 있는 재벌 백명 과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할수 있는 박사의 학위를 가진 백명의 사람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에 87퍼센트가 “아니요 나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돈이 많은 재벌이 행복하지 못하고 많이 배운 지식인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누가 행복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행복의 조건을 그 반대적인 관점에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행복이란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에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으로 소크라테스 제자이기도 한 플라톤입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행복은 부족함에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다섯가지의 부족함으로 설명합니다. 1.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나는 정도 2.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약간 부족한 외모 3. 자기 자신이 인정하는 것 보다 절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4.남과 겨루었을 때 한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했을 때 듣는 사람의 절반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언변의 능력.

자 여기 5가지 행복의 조건들 중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족함입니다. 이렇게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으로 부족함을 내세웠습니다. 약간 부족함이 있어야 인생의 행복함을 제대로 느낄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질때가 있어야 이겼을 때 행복을 느낄수 있고, 배고픈 경험이 있어야 밥을 먹을 때 행복을 느낄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지요.

지난주 주보에도 실렸지만 제가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기독교 사이트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 라는 글제목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날아오르는 연줄을 끊으면 연은 더 높이 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연은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철조망을 없애면 가축들이 더 자유롭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관심을 없애면 다툼이 없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툼이 없으니 남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섭을 없애면 편하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외로움이 뒤쫓아 왔습니다.

바라는 게 없으면 자족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삶에 활력을 주는 열정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행을 없애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 사실은 내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부족함이 있어야 만족함을 느낄수 있고 부족함이 있어야 행복함을 느낄수 있다는 논리가 맞는 주장인 듯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부족함이 행복의 조건이 될수는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는 죄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죄성을 가진 인간이 내게 부족함이 있다라고 느끼는데 그속에서 만족하며 살아갈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부족함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수 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논리는 절반만 맞는 논리입니다.

또 하나 행복에 대한 착각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좋거나 나쁜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다 라는 논리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환경이나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잔에 행복을 찾기도 하고 저녁에 잠 들기전 와인 한잔에 행복을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한순간의 행복은 될수가 있어도 영원한 행복은 될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이 얼마나 잘 변합니까? 그러니까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한 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래전에 행복전도사로 유명했던 최윤희씨가 자살을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사람이 초지일관 주장했던 메세지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말하며 행복을 전파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심각한 질병이 찾아오자 그 고통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 분이 살아생전에 일어난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늘 환한 웃음을 띠고 있는 이 행복전도사에게 어느 한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최윤희 선생님, 당신은 하루 24시간 행복하십니까?” 그러자 이 최윤희씨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미친 사람인줄 아세요?” 사실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할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그반대로 마음먹기에 따라 불행 해질수도 있다는 주장도 성립이 됩니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한 소설 책에서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부유하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수 억 개의 정자 중에 선택되어 세상에 태어난 축복에 감사하며 늘 행복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6·25 전쟁을 거치면서 그녀는 부모와 재산을 모두 잃고 하루아침에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고아로 전락해 버렸다. 그 후부터 그녀는 ‘수억 개 정자 중 선택된 불행’을 한탄하며 일생을 살아갔다.-

그래요.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과 불행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밭에 행복과 불행의 씨앗이 같이 뿌려져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행복은 한순간의 행복일수는 있지만 영원한 행복이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한 좋은 환경이나 소유의 넉넉함도 진정한 행복의 조건이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 인간의 부족함도 행복의 기준은 될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불행한자로 이땅을 살아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행복한 존재로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본문 13절 전반부입니다. 13.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 행복을 위하여’ 여기서 ‘네 행복’은 누구의 행복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을 위하여” 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시켜보면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구원받은 성도인 저와 여러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오늘날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행하신 일이 있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다가오는 새해부터 남은 생애동안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낼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일은 무엇입니까?


  1. 우리를 선택하심.

본문 15절입니다. 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너희를 만민중에서 택하셨음이’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셨습니까? 그 앞을 보시면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적용시켜보면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 믿는 성도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이 훨씬 더 많이 계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기준과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기준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잘나가고 출세하는 것도 아니고 인기와 명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구원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원이 행복의 조건이 될수 있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죄와 죽음입니다. 어떠한 인간도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행복해질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에 있습니다. 이천년전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인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행복한 존재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누군가가 죄값을 치루어야만 우리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루어주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행하심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실 죄의 댓가를 단계적으로 구분하면 부끄러움과 형벌과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전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셨던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발가벗기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부끄러움도 당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댓가는 형벌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손가락과 발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채찍에 의해 살점이 찢어나가고 가시 면류관에 찔림을 당하시고 한방울의 피도 남김없이 흘리셔야 했습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기 직전에는 ‘내가 목마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극한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목마름의 고통속에서 죽어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다이루었다’ 외치셨습니다.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죄값을 다 치루었다 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값을 치루어 주시기 위해 이러한 고통과 형벌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의 첫열매가 되십니다. 그럼으로 내가 지은 죄를 대신해서 온갖 부끄러움과 수치와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우리도 부활의 첫열매의 뒤를 이어서 부활의 열매를 맺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구원을 받는 길은 너무 쉽고 단순합니다. 예수님 다 해놓으신 것을 내가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좋은예가 바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이지 않습니까?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 강도가 한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기직전에 한일이라고는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고백한 것 뿐입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할때에 나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그럴 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야 이놈아 염치가 있거라. 평생동안 나쁜짓만 해온 네가 천국에 가기를 소망하니? 천국이 그렇게 만만한 곳인줄아니?‘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니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이 강도는 천국에 들어간 것이 확실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구원을 받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존재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녀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믿는 성도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행복한 존재가 되게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은 우리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우리는 이미 행복한 전재입니다. 행복해질 사람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는 성도인 저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신일은 무엇입니까?

2.영적인 전쟁에 승리자가 되게 하심

본문 14절입니다.

14.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만물이 본래 하나님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본문앞에 나오는 11절후반부입니다. 11. ...내가 그들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한 땅에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만물이 본래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 전쟁을 치루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가나안땅을 차지하며 살아갈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로 적용시켜보면 우리 믿는 성도가 영적인 전쟁을 치루어야 하고 그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자로 살아가게 될 것을 약속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승리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이후에 가나안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부터 자기들이 죽을때까지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전쟁이 끝난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죽을때까지 영적인 전쟁을 치루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영적인 전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영적인 전투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할 때 진정한 행복자로서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자로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까? 본문 13절후반부입니다. 13. ...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것이 아니냐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것이 아니냐’ 왜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까?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구경하고 생각만 하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과 규례를 지켜나갈 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영적인 전쟁의 승리자로 살아갈수가 있게 됩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에 가까이 갔을 때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칼을 들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5장 13절입니다. 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뻬어 손에 들고 마주 서있는지라‘ ’한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있는 지라‘ 이것은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수아가 “너는 누구냐 우리편이냐 적군편이냐?” 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호수아 5장 14절입니다. 14.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할때 하나님이 싸워주셔야만 승리를 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편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셔야만 승리가 가능한 전쟁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칼을 들고 그들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을 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은 싸우시는 용사로 말씀하기도 합니다. 시편 24편 8절입니다. 8.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그래요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싸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을 할 때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영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친히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셔서 전쟁에 참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신 용사이십니다. 방패가 되어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어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세상에서 행복한 자로 살아갈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시간 짧게 정리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인 우리의 행복을 위해 행하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를 선택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이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자로 살아가게 하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행복한 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앞으로 다가오는 새해에도 그리고 남은 생애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함으로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