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죄사함과 사랑 그리고 믿음

Author
kgmcc
Date
2023-12-31 02:25
Views
57
본문 : 누가복음 7장 47-50절

날짜 : 2023년 12월 31일

<누가복음 7장 47-50절>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오늘은 2023년 마지막 주일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새해 첫날 주일예배를 드린지가 얼마되지 않은것 같은데 벌써 올해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살펴보면서 올 한해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름이 없는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향유를 붓는 사건입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붓는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일어난 사건은 나머지 세 복음서에 기록된 것과는 다른 사건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이유로 두가지 차이점을 들수 있는데 첫째는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가버나움 마을입니다. 다른 세복음서에서는 베다니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절입니다. 1.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그리고 이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차이는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다른 세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기록된 사건은 다른 세복음서에 기록된 사건과는 다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으로부터 식사 초청을 받아 그 집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입니다.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 바리새인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40절입니다. 40.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시몬아” 이 바리새인의 이름은 시몬입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초청을 받지 않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죄를 지은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37절입니다. 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자 이렇게 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시몬이라는 바리새인과 이름이 없는 여인, 이 두 사람의 행동이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릅니다. 한사람은 남자이고 또 다른 사람은 여자입니다. 한사람은 최상위 계급에 속해 있는 사회 지도자 이고 또 다른 사람은 밑바닥 생활을 하는 신분에 있습니다. 한사람은 도덕적으로 의인이고 또 다른 사람은 죄인입니다. 이렇게 두사람은 성별이 다르고 사회적 위치도 다르고 사람들이 내리는 평가도 다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외적인 차이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올 한해가 다 끝나가는 이 싯점에서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우리도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죄사함입니다.

본문 47절 전반부입니다.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좀전에 살펴보았지만 예수님은 지금 시몬 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주인의 초청을 받지 않았던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초청을 받지 않은 여인이 그 자리에 나타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여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입니까? 37절입니다. 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어떤 죄를 지은 여인인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아서 우리는 모릅니다.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이 여자가 몸을 파는 여자이었을 거라고 추측합니다만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지은 죄의 내용을 그 동네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자가 지금 바리새인의 집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주님곁으로 다가가 뜻밖의 행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7장 38절입니다.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그 발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그 발을 적시고“ ‘적시고‘ 라고 표현된 이 단어는 원래 비가 내릴 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 발 곁에 서서 눈물을 빗물처럼 주룩룩 흘리면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성경은 이 여인과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모습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39절입니다.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아마도 우리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이 바리새인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최대한 법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인생을 살아갈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렇게 법을 지키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처럼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쉽게 정죄를 하고 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시몬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한가지 비유를 말씀합니다.

41절과 42절 전반부입니다.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빚진자가 둘이 있어” 이 비유에서 빚은 무엇입니까? 이 비유에서 빚은 죄를 상징합니다. 오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죄를 많이 짓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죄인 인 것을 깨닫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오십 데나리온 빚진자는 종종 화를 내고 미워하고 시기 질투도 하면서 살아가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들어갈만큼 큰 죄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빚을 탕감하여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지난 주 성탄 주일에 살펴보았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처녀인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었지만 우리 인간의 죄의 값을 치루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리시고 생명을 바치신 분이 예수님 이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받은 은혜중에 최고의 은혜는 바로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물질의 은혜도 좋고 건강의 은혜도 좋고 여러 종류의 은사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의 은혜는 바로 죄사함의 은혜인 것입니다. 왜요? 다른 은혜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지만 오직 죄사함의 은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받은 죄사함의 은혜를 우리는 요한복음 8장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더욱 피부에 닿게 깨달을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시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 무리들의 손에 이끌려 예수님앞에 나오게 된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너희들 중에 죄가 없는자가 먼저 돌로 치라” 라고 말씀하시자 모든 무리들이 자신이 들고 있던 돌을 내려 놓고 그 자리를 떠나갑니다. 더 이상 무리들이 없게 되었을 때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8장 10절 후반부입니다. 10.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그리고 11절 전반부입니다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 후반부입니다. 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정죄했나요? 아닙니다.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정죄하시기 보다는 먼저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나님 아버지께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3장 34절 전반부입니다. 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죄사함의 은혜가 우리에게 먼저 주어졌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죄사함의 은혜를 먼저 베푸셔야 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던 여인과 같은 인물인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은 먼저 베풀어주신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정죄하기 이전에 먼저 죄사함의 은혜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본문 47절입니다.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이 여인이 식사하는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초청받은 것도 아닙니다. 온 동네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특히 그 집주인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온 바리새인입니다. 집주인이 자신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자리에 나타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습니까?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막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그 자리에 갔고 향유를 담은 옥합을 들고 그분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빗물처럼 흘리면서 예수님의 발을 온통 적시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자신의 머리를 풀어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여러분 죄사함을 받았다라고 하는 은혜에서 나오는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십니다. 그리고 감사함에서 나오는 행동이 예수님의 발을 닦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자신이 가져온 향유를 그분의 발에 붓습니다. 향유는 그당시 여인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귀한 재산중의 하나입니다. 결혼을 할 때 그 향유를 가지고 갈수도 있고 또 향유를 팔아 결혼 비용을 마련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옛날 우리나라 농부들이 논과 밭을 가지고 있다가 자기 자식이 대학에 들어갈 때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논과 밭을 파는 것과 같은 자산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귀한 향유를 이 여인은 아낌없이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왜요?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가장 귀한 가치가 있고 가장 소중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을 헬라 원어로 보시면 모든 동사가 미완료 과거시제로 기록되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현재 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번이 아니라 계속해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었고, 또다시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셔서 머리카락으로 닦았고 그리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그리고 향유를 붓고 이렇게 계속해서 이러한 행위를 반복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이 하는 행동을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때 주변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아름답게 보았을까요? 아니면 추하게 보았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분명하게 알수 있는 것은 시몬 바리새인이 가졌던 생각입니다. 39절입니다.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줄을 알았으리라”

"이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곧 죄인인줄을 알았으리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선지자가 아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비슷한 예를 들어보십시다.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대학에 들어갈수 있었을텐데“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죠. ”내가 인터뷰 면접을 잘치루었다면 그회사에 취업할수 있었을텐데” 면접시험을 잘보지 못해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만일 선지자라면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게 이런짓을 하지 못하게 하고 쫓아내었을 것인데 가만히 두고 있는 것을 보니까 선지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에 대해 예수님은 오백데나니온 빚진 자와 오십데나니온 빚을 진 자의 비유로 대답을 하십니다.

그당시 한 데나니온은 하루 일당의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두사람은 각각 500일과 50일 노동을 하고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갚을수 있는 금액입니다. 대충 비교해보년 2년동안 일한 월급과 2달동안 일한 월급의 차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42절입니다.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그러자 바리새인 시몬이 대답합니다. 43절입니다. 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내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자니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네 판단이 옳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 비유 말씀을 현재의 상황에 적용시키십니다.

“시몬아 너는 나에게 발을 씻을 물을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여인은 내 발을 자기의 눈물로 씻었다. 너는 내 발을 닦을 수건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내 발을 닦았다. 너는 내게 형식적인 입맞춤도 하지 않았지만 이 여인을 내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않았다. 너는 내 머리에 존경의 표시로 그 흔한 감람유도 붓지않았지만 이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내 발에 부었다” 이렇게 시몬 바리새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행동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그 이유에 대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47절입니다. 47.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사함을 받은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이 여인이 자신이 한 일로 인해서 죄를 사함받았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자신이 지은 그 많은 죄를 용서받은 결과라는 의미입니다. 용서함을 받은 결과로 이러한 행동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이미 전에 죄 사함을 받은 상태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사실을 사람들 앞에서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이 여인에게 확인 시켜줍니다. 본문 48절입니다. 48.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여러분 죄사함을 받은 것과 사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그것이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고 용서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입니다. 오늘날 교회안에도 이렇게 대조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이 사함을 받은 사람이 있고, 적게 사함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적게 사함을 받은 사람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함 받은 것이 적으니까 그냥 적당히 그냥 부담되지 않는 정도로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정도로 사랑합니다.

반면에 많이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위해 죄값을 대신 생명으로 치루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대해 감격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 할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살아갑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디모데 전서 1장 15절입니다. 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사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내가 무슨 비판을 할수있겠습니까? 사함을 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인 향유를 바친다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물만 빗물처럼 흘릴뿐 이었습니다. 자신의 눈물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발을 적시게 되자 그것이 죄송해서 계속 자신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을 뿐입니다. 사랑은 말이 필요없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사랑은 물질이 지닌 가치를 초월합니다. 이 여인이 지녔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와 넓이는 오직 주님만이 아실 뿐입니다.

이 여인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여인의 행동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으로 그 주변 사람들은 아름다운 향유의 냄새를 맡을수 있었습니다. 시몬 바리새인도 예수님도 이 여인이 부은 향유의 아름다운 냄새를 맡을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향기가 나타납니다. 바라옵기는 내년 새해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믿음입니다.

본문 50절입니다. 50.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열명의 나병 환자가 고침을 받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열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모두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열명의 나병환자중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를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7장 19절입니다.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내용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오벡 데나니온 빚진자 와 오십 데나니온 빚진자를 탕감하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빚진자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화를 내고 거짓말을 하고 차 운전을 하다가 스피드 한계를 넘어서는 법을 어길 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면 그 누구도 오늘 하루를 넘어서 살아갈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을 받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죄 용서하심을 받은 양이 정말 많다고 자각하면 할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죄 용서함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이세상과 교회는 더욱 아름답고 성숙하게 세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관심은 이세상이 아닙니다. 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죄용서함과 사랑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열명의 나병환자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이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때 그 모습을 긍휼을 베푸시고 용서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는 것을 보면 분노하십니다. 그냥 참지 못하십니다. 로마서 4장 20절입니다.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견고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여인을 칭찬한 것은 죄 용서함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았다고 자각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이 여인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머리로만 있는 믿음은 시몬 바리새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 행동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어느쪽의 사람입니까? 주님이 인정하시는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까? 아니면 지식으로만 가진 주님이 인정하지 않는 가짜 믿음을 가진 바리새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사람입니까? 바라옵기는 내년 새해부터는 이 여인이 가진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