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바라보자!

Author
kgmcc
Date
2024-01-06 23:30
Views
60
본문 : 히브리서 12장 1-3절

날짜 : 2024년 1월 7일

<히브리서 12장 1-3절>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오늘은 2024년도 새해 첫주일 예배입니다. 그리고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예수를 바라보자” 로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육상 경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0미터나 200미터 같은 단거리 육상경기가 아니라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경주에 비유합니다. 100미터나 200미터 육상 경기라면 순간적인 순발력이나 열정이 더 필요하겠지만 장거리 육상 경기 이니까 순발력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어느날 갑자기 뜨겁고 화끈하게 하다가 탈진하는 것 보다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하게 하는 하는 생활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한달이나 두달, 1년이나 2년 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해야 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장거리 마라톤 경기보다도 훨씬 더 인내가 필요할수도 있습니다. 저는 마라톤 경기에 출전하여 뛰어본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마라톤까지는 아니지만 부득불 오랫동안 뛰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달리면 너무 숨이차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는 경험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님들도 다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이러한 장거리 육상경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든 것은 당연한데 그때 인내가 있어야 포기하지 않고 완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인내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 후반부를 보시면 1.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인내로써” 그리고 2절 중간부를 보시면 “2.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십자가를 참으사” 그리고 3절 후반부를 보시면 “3.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이렇게 “인내“ 와 ”참는다“ 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경에서는 ‘인내‘ 와 ‘참는 것‘ 으로 다르게 기록 되어 있지만 성경 원어를 보시면 다같은 단어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 인것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인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 이라 할수 있습니다. 온전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에 필요한 인내는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야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내의 경주‘ 는 다른 말로 ’믿음의 경주‘ 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 한해 새해 첫주일부터 출발하게 되는 이 장거리 경주를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완주할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믿는 성도가 신앙의 경주를 인내하며 완주하기 위해서는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무엇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올한해도 믿음의 장거리 경주를 인내를 하며 완주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까?

1.앞서간 믿음의 선배

본문 1절 전반부입니다.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오늘 본문은 히브리서 12장입니다. 그러니까 본문 앞장은 11장입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평생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의 곁으로 간 믿음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시작하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은 바로 앞장에2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그당시 로마 스타디움 경기장 관중석에 앉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당시 로마사람들은 남자나 여자 모두가 다 하얀색의 토가라는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에 관한 영화에서 쉽게 볼수 있는 옷입니다. 그래서 이 하얀색의 토가를 입고 수많은 사람들이 관중석에 앉아있으면 마치 하얀 구름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허다한 관중” 들이 아니라 “허다한 증인들” 입니다. 왜 관중들이 아니고 증인들입니까? 본문에 나오는 경주는 육상 경주가 아니라 신앙의 경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배들이 이 신앙의 경기장에 나와서 신앙의 경주를 하고 있는 믿음의 성도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아벨부터 시작해서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사라 요셉 모세 기생 라합 기드온 다윗 사무엘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경기장에 나아와 우리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가 지금 뛰고 있는 신앙의 경주를 이미 다 완주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을 상징하는 하얀 옷을 입고 경기장에서 나를 향해서 응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이 경주는 나혼자 겪어온 것이 아닙니다.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모두 겪었던 일들입니다. 내 절망감 내 고독감 내 외로움 이 모든 것을 나처럼 똑같이 겪었던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힘들게 뛰고 있는 나를 보면서 “힘내라 힘내라” 라고 외치고 격려하며 환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신앙의 경주가 힘들때 구름처럼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믿음으로 살아온 신앙의 선배들을 바라보십시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마도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수 있을 것입니다.

“갑돌아, 너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면서 너무 직장일과 인간관계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구나. 지금 네가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은 네게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나는 내 나이 75세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갈곳도 알지못하고 먼길을 떠났던 적이 있었다. 그후로 이런 저런 일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믿음으로 전진했더니만 결국엔 이렇게 하나님이 나를 축복해주셨다. 그러니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지금 신앙의 경주를 완주해야 한다”

그리고 또 노아를 보십시오.

“갑순아. 너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로 인해 너무 지금 지쳐있구나. 나도 오랫기간동안 방주를 만들고 있는동안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을 받아왔다. 하지만 결국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방주가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해주셨다. 그러니 갑순아 너도 주님의 시간과 주님의 방법이 임할 때 까지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힘들고 지칠 때 종종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볼때가 있습니다. 천국에 계신 어머님이 나를 향하여 격려하고 위로해주시는 것을 바라보며 저는 인내하는 신앙생활을 해나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를 바라보며 위로와 격려를 하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중에는 내가 이전에 사랑했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부모님 교회서 같이 신앙생활을 해왔던 목사님,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바라볼 때 나는 인내하면서 신앙의 경주를 계속해나갈수 있는 힘과 격려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 나를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는 짐들을 벗어버리는 지혜를 얻을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믿음의 선배들을 힘들게 하고 무겁게 했던 일들을 무엇인가를 배울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 중간부에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믿음의 선배들이 가던 신앙의 여정을 한때나마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던 죄를 벗어버리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까?

2.예수님

본문 2절 전반부입니다.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앞서간 믿음의 선배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마라톤 경기를 할 때 길거리 도중에 마시는 물이 담긴 컵이 놓여 있는 진열대와 같습니다. 그래서 육상선수들이 달리면서 그 물컵을 마시고 잠시마나 갈증을 해소하고 계속해서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목이 말라 또 물컵이 있는 진열대를 보며 물컵을 들고 마시고 달리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이렇게 물컵을 들고 마시는 것은 자시 갈증을 해소해주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믿음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주요’ 지금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믿음의 주인이 되십니다. 믿음의 주인이라는 의미는 믿음의 창시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가고 있는 이 믿음의 길을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지금 걷고 달리는 이 믿음의 길을 맨 처럼 걸어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보다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이 나를 격려해주고 위로해주어도 그것만으로는 내가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믿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니까 당연히 믿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두 번째 이유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부족하고 약점이 많은 나를 온전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하는 동안 장거리 경주를 하는 마라톤 선수처럼 너무 힘들고 지쳐서 도중에 포기하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길을 가셨습니까? 본문 2절 후반부입니다. 2.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예수님이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결승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시간은 6시간 이었습니다. 이 십자가에 매달린 여섯시간은 마라톤으로 따지면 이제 스타디움 경기장안에 들어와서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한바퀴를 도는 싯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끝까지 이겨낼수 있었던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즐거움 때문이었다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의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도 예수님의 심령속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움을 막을수가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실때의 장면이 나옵니다.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 가시니라“ ”다이루었다” 이 말씀을 하신 순간을 육상 경주를 하는 달리기 선수의 모습으로 적용시켜 본다면 결승지점 테이프를 끊는 순간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순간은 우리 인간의 지은 모든 죄의 값을 다 치루게 된 마지막 지점에 있는 테이프를 끊는 순간입니다. 이순간은 십자가를 믿는 사람마다 죄인이 의인이 될수 있는 은혜의 테이프를 끊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순간을 도저히 그냥 지날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37절입니다. ”37.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을 마지막 힘을 다해서 큰소리로 외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안기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기쁜 마음으로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지치고 탈진하셨지만 마지막 힘을 다해서 큰 소리로 외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승지점에 도착을 해서 테이프를 끊는 육상 선수를 보면 지치고 너무 힘이 들어도 마지막 힘을 다해 두손을 번쩍 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너무 힘들지만 그 순간이 너무나 기쁘기 때문에 마지막 힘을 다해 두 손을 들고 결승점 테이프를 끊고 통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니신 마음이 그랬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당하신 모든 고통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며 견디어내셨습니다. 이세상 모든 죄인들이 의인이 되는 순간이 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원수이었던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화목하게 된 순간인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그동안 막혔던 천국의 길이 열리게 된 순간이 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다 이루었다“ 라고 외치시고 운명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바라보십시다. 이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온전한 신앙의 길을 갈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좀전에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이해를 쉽게하기위해 이러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자기 엄마가 좋아하던 화장품을 몰래 사용하다가 그 화장품 용기를 떨어트렸습니다. 그래서 화장품이 담긴 용기가 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까봐 그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후로 엄마가 이아이에게 내 화장품을 못봤느냐고 물어볼때마다 이 아이는 모른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때부터 이 아이는 엄마의 시선을 피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죄는 인간의 관계를 깨트리게 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일하는 파출부 아줌마가 이 아이가 화장품 용기를 깨트리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파출부 아줌마가 하루는 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철수야, 마켓에 가서 기름을 좀 사와라!” 그러자 철수가 말합니다. “그건 아주머니가 할 일인데 왜 제가 해야 해요?” 그때 아줌마가 협박을 합니다. “철수야 너는 엄마가 좋아하는 화장품 용기를 깨트리고 쓰레기통에 버렸잖아. 내가 다 봤어” 그 이후로부터 파출부 아줌마는 수시로 철수에게 일을 시킵니다. 이 아이는 자기가 숨긴 죄 때문에 꼼짝없이 발목이 잡혀 주인집 아들이면서도 파출부 아줌마의 종이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아이는 견디다 못해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엄마에게 화장품 용기를 자기가 깨트려서 쓰레기 통에 버렸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엄마가 말합니다. “얘야 내게 그 화장품이 중요하지만 나에게는 너게 훨씬 더 중요하단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숨기면 점점 더 힘들어진단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니.” 이렇게 엄마가 용서해주는 말을 듣고 난후에 이 아이의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한 줄도 모르고 파출부 아줌마가 또 심부름을 시킵니니다. “철수야! 마켓에 가서 우유를 사와라!” 그러자 이 아이가 말합니다. “싫어요! 아줌마가 하세요” 그 말을 듣고 아줌마가 “철수야 너 내 말을 안 들으면 알지!”라고 협박했지만 철수는 이제 그 협박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함을 받으면 자유와 평안을 얻게 됩니다.

사단은 마치 이 파출부 아줌마와도 같습니다. 사단은 내가 지은 죄와 잘못을 가지고 나를 정죄합니다. 그래서 내가 믿음의 생활을 해나가는일을 힘들게 하고 무겁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이 나를 정죄할때마다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고 담대해야 합니다. “그래. 나는 죄도 많고 허물도 많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흘리신 보혈의 피를 믿는다. 주님이 피를 흘리시고 내 죄를 용서하셨음을 나는 믿는다. 사탄아 당장 내앞에서 물러가라” 이렇게 담대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의 종이나 죄의 종이 되어 나 자신을 학대하며 살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믿음의 주인이시고 나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올 한해 믿음의 경주를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무엇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까?

3.하나님의 상급

본문 2절 후반부입니다. 2.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의 성도들중에서 이렇게 말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상급이 있으나 상급이 없으나 그냥 천국에만 들어가면 됐지. 뭐 굳이 상급까지 받을려고 하는가? 상급을 받을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욕심이다. 상급은 주시면 받고 안주시면 말고 라는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지. 그리고 천국에 가면 다 똑같애” 이렇게 말씀하시는 성도님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고전 15장 40절과 41절입니다. 40.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41.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의 밝기가 다르듯이’ 우리 믿는 성도들이 천국에서 누리게 될 상급도 다 다른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입니다. 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어떨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믿음이 없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기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이사실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있는 삶”을 살아갈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다’ 라고 하는 것과 또한 ‘그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이심’ 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상급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순교를 눈앞에 두고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4장 7.8절입니다.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이렇게 앞서간 믿음의 선배들은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 신앙생활을 해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중에서 가장 귀한 상급을 받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급을 받으셨습니까? 오늘 본문 2절 후반부를 보시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 상급‘ 을 누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는 상급을 누리시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급이란 바로 ”사랑하는 이와 가장 가까이 거하는 것“ 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천국에 가면 믿는 사람들 모두가 다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는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도 하지만 상급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상급의 차이는 ”어느 정도 주님과 가까이 거하느냐“ ”어느 정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가“ 에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절입니다. 15.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상급은 바로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긴밀하고 밀접한 관계가 바로 상급의 핵심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보석이나 트로피 같은 '상품'이 상급이 아니라 주님과 친밀한 '관계'가 바로 상급이라는 사실입니다. 천국에서 사랑하는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고, 주님과 매일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날마다 함께 거니면서 지낼수 있는 친밀한 관계를 소망하는 이러한 신령한 상급을 받기위하여 이 땅위에서 믿음의 경주를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런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 외의 다른 모든 축복들은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이러한 성격의 상급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주님과 어떠한 관계 가운데 있느냐에 자연적으로 결정이 됩니다. 이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주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살아가다가 주님을 만나게 될때 친하게 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평소에 나와 친하지 않는 사람이 자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게 되자 나와 친한척하며 가까이 접근을 하면 내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참 불편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관계라는 것은 평상시에 내가 주님을 존귀하게 여기며 살았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결정이 됩니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일을 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주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우선 순위가 되어야합니다. 주님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주님의 일도 열심히 해나갑니다. 하지만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반드시 주님과의 관계가 친밀하고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신랑되신 주님과 날마다 가까이하면서 주님과 대화를 하는 신앙 살아가십시다. 그럴 때 우리가 이땅을 떠나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주님이 준비해놓으신 하늘의 귀한 상급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주님 곁에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귀한 상급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2024년 올 한해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십시다. 앞서가신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리고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의 경주를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