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디시 의 은혜

Author
kgmcc
Date
2024-01-14 03:06
Views
42
본문 : 디모데 후서 1장 6절

날짜 : 2024년 1월 14일

 

<디모데 후서 1장 6절>

6.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요즘에는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인플레이션과 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보다는 걱정과 염려스런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일을 허용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려운 장애물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그 장애물을 극복하느냐,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느냐에 따라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뉘어질 뿐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시면 네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앞에 데려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그들은 도저히 예수님 주변에 다가갈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갑니다. 그리고는 기왓장을 뜯어내고 침상채 매달아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 네명의 친구들이 한 이 행동을 믿음으로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병 고침 뿐만 아니라 죄사함의 은혜 까지 베풀어주십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장애물과 힘든 환경을 만났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해결의 길을 찾을 때 주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주님은 일을 행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면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책망의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16절입니다.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라오디게아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것은 어떤 특별한 죄를 지어서가 아닙니다. 미지근하다는 것입니다. 좋은일이 있어도 미지근하고 나쁜일이 생겨도 미지근해서 하나님이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믿는 성도들은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성도들로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열정적이고 충성스런 신앙인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인으로 나뉘어질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열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바로 우리들이 가지게 되는 그 열정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일을 시작 했지만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서 어느사이엔가 열정이 식어버린 나자신을 볼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에 가졌던 그 열정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은 그 즉시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4장 20절입니다.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이러한 모습은 웬만한 열정이 없으면 행동할수 없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어느 한 순간에 예수님 곁을 떠납니다. 그리고 부활하시는 주님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들은 다시 옛날 직업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또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엘리야는 갈멜산 산위에서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과 영적인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결과 450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이 이 엘리야와의 영적인 싸움에서 패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통해 엘리야는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드러내었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열정이 있었던 엘리야가 이세벨 여인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는 말 한마디에 그 모든 헌신과 열정이 다 식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도망을 하다가 로뎀나무 밑에 쓰러져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죽기를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다 감정이 있고 기복이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내가 지닌 열정과 헌신이 식어질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죄성이 있고 또 사탄의 공격이 계속해 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안에 거룩한 불꽃이 시들어 버릴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차갑고 식어진 내 가슴에 불을 지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군가가 다시 불길이 타오를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믿음의 사람과 교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을 만나 교제를 하면서 우리는 식어져가는 열정을 다시 회복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나 성경공부를 통해 우리는 열정을 다시 회복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직접 만나 신앙의 교제를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처한 상황도 바울과 디모데가 만나서 대화를 통해 신앙의 격려를 주고 받은 것이 아니라 서신을 통해서입니다. 서신을 통해서 신앙의 격려를 주고 받을수 있다면 당연히 오늘날에도 인터넷이나 카톡을 통해서 신앙의 격려를 주고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자기 인생의 죽음의 날을 기다리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디모데 후서를 읽어보면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수 있게 됩니다.

본문 6절입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바울이 이 편지를 쓴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일듯 하게 하라’ 는 표현은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서 타오르게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불타오르게 하라’, “다시 뜨겁게 하라” 는 의미입니다.

옛날에 제가 젊었을 적에 친구들과 등산을 가면 종종 산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당시에는 들고 다니는 부탄 개스 레인지도 없었던 시대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불을 피워 음식을 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낙엽과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을 잘 피우는 친구가 그 일을 도맡아서 했는데 굉장히 불을 쉽게 잘 피웠습니다. 제가 한번 불을 피워본적이 있었는데 연기만 나고 눈이 매워 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하루는 불을 쉽게 잘 피우는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불을 잘 피울수 있는가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제게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것은 간단해.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잘 살리면 돼.” 그래서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꺼져가는 불씨를 잘 살릴수가 있지?” 그러자 그 친구가 그것은 자기가 설명해주어도 제대로 따라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냥 자기가 맡아서 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를 불피우는 것처럼 신앙의 열정도 꺼져가고 식어가면 다시 불 피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디모데의 열정이 많이 꺼져가고 식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쓸때 디모데는 바울의 후임으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에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가 되다 보니까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말을 듣게 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성품이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 사람들이 자기를 업신여기고 함부로 말을 할때 마음의 상처를 굉장히 많이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먹지를 못해서 소화가 잘 안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 전서 5장 23절입니다.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여러분 디모데가 교회서 사역을 하면서 얼마나 신경을 썼으면 위장과 몸에 이런 저런 병이 생겼겠습니까? 디모데가 목사 안수를 받은후에 가졌던 그 뜨거운 열정이 점점 식어 가고 있었습니다. 이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라.’ 식어져 가고 꺼져가고 있는 디모데의 마음에 거룩한 불꽃이 다시 타오를수 있도록 바울은 영적인 재 점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꺼져가는 나무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어서 다시 불을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의 사역중에서 무엇이 불타오르기를 원했습니까? 6절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디모데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타오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은사는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받은 사람인데 언제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까? 본문 전반부를 보시면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라고 말합니다. 이 본문만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안수할 때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바울과 협력 동역자들이 디모데에게 안수를 했습니다. 디모데 전서 4장 14절입니다.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그러니까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을때에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 디모데가 이때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어떤 은사를 받았는가 하는 것 보다는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남은 생애동안 유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

1.은사와 부르심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9절입니다.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여기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부르실때에 그 사람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도 주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을 채용할 때 단지 사람만 부르고 그사람에게 일하라고만 말하겠습니까? 그사람이 먹고 살아갈수 있도록 페이를 지불 해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하나님께서 부르실때는 그 사람에게 은사도 같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가 이미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사라고 하면 방언하고 예언하며 병 치유하는 이런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르치는 은사도 있고 또 긍휼함을 잘 베풀고 위로를 잘하는 은사도 있습니다. 접대하고 도와주는 은사, 권면을 잘하는 은사, 찬양의 은사, 지식과 지혜의 은사 그리고 독신의 은사도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은사 종류가 맣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떠한 은사를 받았는가에 대해서 평상시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은사를 성장시켜나가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제가 오랜 시간 동안 알고 있는 어느 한 집사님은 남을 섬김고 도우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 집사님은 직장 일과 집안 일에 바빴던 30, 40대 시절 때 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은사를 통해 주변의 사람들을 섬기고 돕는 일을 많이해왔습니다. 특별히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 미국에 잘 정착할수 있도록 차 운전 면허증을 따게 해주고 직장을 잡는 일에 이르기 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집사님이 50대 중반이 되었을때 하나님의 은혜로 남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음식을 만들어 교회 성도들과 주변 이웃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음식을 잘 만드시는지 주변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서 대접하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이었습니다. 이 집사님이 먹고 살아가기에 바빴던 젊은 시절에는 주변에서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한 재능을 가진 것에 대해 부러운 생각을 할때도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인정을 해줄만큼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내놓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어진 은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은사를 내가 사용하게 되면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다 유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부르심에는 반드시 은사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 내주변의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

2.다른 사람의 은사를 위하는 삶

지금 바울은 자신보다는 디모데가 가지고 있는 은사의 사용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 중간부입니다.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지금 바울은 의기 소침해있고 침체되어있는 디모데가 다시 열정을 가지고 사역을 할수 있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내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풍성한 삶을 살아갈수 있길 원하십니다. 로마서 1장 11절입니다. “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바울은 언젠가는 로마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믿는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기 위함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견고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기를 바울은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 자신의 은사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은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은사가 식었다면 그 은사가 불타오를 수 있도록 위해서 중보 기도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종일관 변하지 않는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마치 장작이 활활 피다가도 어떤 이유에서든지 갑자기 꺼져가는 것과 비슷하게 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가 어느날 그 불꽃이 꺼져가는 것처럼 보이면 그 성도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저 사람에게 다시 불타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보다 유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함으로서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계속 열정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사에 대한 중요한 원리에 대해서 알아야 할 내용

3.이미 주어진 은사를 사용함

바울은 디모데가 또다른 새로운 은사를 받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에 디모데가 이미 전에 받았던 그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식어지면 맨먼저 우리는 그 은사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또 다른 새로운 은사를 받고 신앙생활하기를 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상시에 내 마음에 들고 특별하게 보였던 그 은사를 나에게도 달라고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을 때 주셨던 그 은사를 내가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사를 잘 개발하고 활용을 해야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많은 은사가 나에게 있다할지라도 내가 활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은사는 사용할 때 비로소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은사가 불일 듯 하게 할수 있었습니까? 6절 다시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바울은 과거에 디모데가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 받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다시 불일 듯 일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내마음의 신앙이 식어져가게 되면 과거 내 인생에서 뜨겁게 경험을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어려웠을 때, 그래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내가 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하고 있었을 때에 나를 찾아와 주셨던 그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당시의 감동과 그리고 그때의 도와 주심을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다시한번 내 심령에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자신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가 수없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 23편 4절 전반부입니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다윗은 자신이 힘들었던 순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해석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서 다윗이 유다광야에서 피난생활을 할때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지쳐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다윗은 그옛날 과거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셨던 그 은혜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그 힘든 순간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시편 23편 1절 2절입니다.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양을 치던 목자 생활을 할 때, 그리고 골리앗과 싸울 때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그 어둡고 힘든 환경을 이겨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기 보다는 과거에 온갖 어둡고 비관적인 일들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그리고 자녀와 이웃사람들이 나에게 준 상처를 기억하고 비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럴 때 일수록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과거의 은혜를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는 식어가는 신앙의 불꽃을 다시 불피울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래서 내 신앙이 시들어지고 열정이 식어질 때 그 옛날 나에게 베풀어주셨던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십시다. 그래서 다시한번 신앙의 불꽃이 타오르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6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이 본문에서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단어는 ‘다시’입니다.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단어중에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축복이 되는 단어중의 하나는 ’다시‘ 라고 할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병자를 고치시고 며칠이 지난후에 예수님은 이 병자를 성전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입니다. ‘14. ...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장을 보게 되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와 단 둘이 남게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11절입니다. ”11.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생각해보세요. 만일 우리 인생에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모두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우리가 아는 위대한 모세가 된 것은 바로 모세의 인생에 ’다시’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모세의 인생에 ‘다시‘ 가 없었다면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 모세를 찾아가시고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수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도 다시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간음죄와 살인죄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다윗에게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에게도 다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옛날 어부 생활로 되돌아간 베드로를 예수님은 찾아가시고 다시한번 사명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넘어지고 실패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시작하자”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인생을 항한 하나님의 뜻은 ’다시’ 에 있습니다. 내 신앙의 열정이 식어갈 때 하나님이 가장 많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바로 ‘다시’ 주시는 은혜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베풀어주신 은혜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인간의 숫자는 아마도 이 열 손가락만으로도 충분l히 헤아릴수 있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나의 인생이 위축되어지고 넘어졌을 때 주님은 다시 시작하심을 명심하십니다. 다시 예배의 자리에 나오시길 주님은 원하십니다. 다시 기도생활을 하고 다시 섬김의 생활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불꽃은 꺼져가고 식어갈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올한해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 불타오르는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은혜를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