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Author
kgmcc
Date
2020-04-11 21:20
Views
542
본문 : 행 1장 3절

날짜 : 2020년 4월 12일

 

 

<사도행전 1장 3절>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할렐루야! 오늘은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부활하신 부활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에 40일 동안 이땅위에 계셨던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왜 40일동안 이땅에 계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자 마자 이 세상을 떠나 곧바로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40일 동안 이땅에 계셨던 것입니다. 남자 성도님들은 잘아시겠지만 군인들은 제대할 날이 가까이 오게 되면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리고 제대 전역신고를 마치고나면 그날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으로 갑니다. 군인이 전역 신고를 다 마쳤는데도 떠나지 않고 일주나 이주일 동안 군대막사에 머물고 있는 군인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까지 내려가신후에 부활의 사역을 다 마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구원의 사역과 부활의 사역을 다 마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죄악된 세상에 머물려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아마 사실 예수님의 마음도 속히 이땅을 떠나 아버지의 나라, 영광의 나라로 가시길 원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땅에 사십일동안 더 머물러 계셨습니다.

성경을 보시게 되면 40 이라는 숫자가 참 많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에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기 까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금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이 40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사명과 출발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하늘나라로 승천하시지 않으시고 40일 동안 이땅에 머물러 계셔야만 했습니까? 단지 예수님께서 새로운 사명과 출발을 위해서 준비하는 기간인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시면서 예수님께서 왜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물러셔야 했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이기 위해(3a)

3절 상반부입니다.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보았던 것처럼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이렇게 부활했다‘ 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40일 동안 이땅에 머물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에 이미 예언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고전 15장 3절과 4절입니다. 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성경대로...‘ 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음을 당하시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여러차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입니다.  '21.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후 삼일 후에 부활하시게 될 것을 여러 차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또다른 마리아가 안식후 첫날에 무덤에 찾아갔을때에 천사가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입니다.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예고했던 사건이었음을 천사가 확인시켜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을 하셨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지않고 기절하셨는데 시원한 무덤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깨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라는 기절설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내가 죽으면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숨겨놓고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셨다 라고 헛된 소문을 퍼트렸다 라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당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빈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왜요? 예수님 살아계실때에 다시 살아나리라 고 하신 그 말씀때문 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져가서 부활했다고 소문을 낼까봐 그 무덤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큰 도시를 지키는 것도 아니고 무덤하나 이니까 무덤 문앞을 지키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로마군인들 몰래 예수님의 시신을 빼간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용감한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셨을때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셨을때도 도망을 갔던 제자들인데 이미 죽어버린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겠다고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그곳에 왜 가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났을때에 제자들중의 일부는 ‘유령이다’ 라고 하면서 두려워 했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도 ‘나는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 난 못자국과 그리고 옆구리의 창자국을 내가 만져보지 않고서는 믿을수 없다’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후 곧바로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고 말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도 생명을 내걸고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40일동안 이땅에 머물고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적어도 열 번 이상 자신의 부활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부활한 예수님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안식후 첫날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마리아와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 다녔던 여인들이 두 번째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마를 제외한 열명의 제자들이 다락방에 함께 모여 있었을때에 예수님이 그 닫혀있는 문을 그냥 통과하여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베드로와 몇몇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가서 다시 고기 잡이를 하고 있을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아침 식사를 준비해놓으시고 그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후에는 오백여명의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고전 15장 6절입니다. '6.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한 두사람이 아니고 오백여명이 동시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내용이 있는 고린도 전서가 기록되었을 당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 대부분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부활이 사실인 것을 보여줍니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았다 라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당시에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는 분위기가 많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후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시고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이후에는 바울 이전의 사울에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자 이렇게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이땅위에 40일을 계시는 동안에 적어도 열 번이상 자신이 부활하신 모습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한 장소에서 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여러 장소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풀어주시기도 하시고 어떤때는 창자국 난 옆구리를 보여주시기도 하시며 또 어떤 때는 같이 식사를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예수님의 부활은 사실이다’ 라고 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부활의 소식이 점점 전파되어져 갔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허구이고 가짜인데 믿는 것은 미신입니다. 사실인데 사실로 믿지 않는 것은 불신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내용이 사실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이기 때문에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실이 먼저 있고 그리고 사실이기에 믿음이 있고 믿기 때문에 감정이 생긴다. 사실과 믿음 그리고 감정, 이것은 순서가 바뀌면 절대로 안된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감정을 앞세워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해서 믿음이 생기게 된다면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정을 앞세운다고 없는 것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것이 아닌는 것입니다. 사실이 먼저있기에 믿는 것이고 그래서 감정이 생기게 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신앙의 순서들입니다. 우리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지라도 다만 그것은 우리 인간이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사실이 아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바다위를 걸으시고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오라‘ 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바다위를 걸었다 는것은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바다를 걸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이기에 우리는 믿는 것이고 그래서 소망이나 기쁨이라고 하는 감정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확실히 일어난 사실인 것을 확인시켜주시기 위해서 40일 동안 이땅위에 계셨던 것입니다. 자,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 육신이 부활할 때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고전 15장 42절에서 44절입니다.  '42.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그래요 지금 우리의 몸은 약합니다. 조금만 날씨가 더웠다가 추워지면 감기에 걸려 콜록 콜록 합니다. 커피 몇잔 마시면 밤새 잠을 못잡니다. 한 두끼 식사를 못하면 이 육신이 아주 비실비실 합니다. 음식이 맛있어서 조금만 많이 먹으면 배가 터질것 같아서 누가 나를 건드릴까봐 걱정이 됩니다. 요즘에는 조금만 무리를 해도 팔다리 허리에 통증을 느끼는 저와 여러분의 몸입니다. 6, 7십년 사용하면 여기 저기 탈이 생기게 되어있는 약한 몸입니다. 이렇게 약한 몸이지만 부활할때는 강한 몸이 될 것입니다. 감기약이나 몸살약이 필요없는 강한몸이 될 것입니다. 수면제나 소화제가 필요없는 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에는 병원이나 약국이 없습니다. 모두 강한 몸으로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몸이 되고 신령한 몸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강한 몸이고 무엇이 영광스러운 몸이고 무엇이 신령한 몸인 것입니까? 그것에 대해선 더 이상 성경은 말씀해주지 않아서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먹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먹는 즐거움만을 느끼게 되는 몸일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이 다시오실 때 영혼과 이러한 새로운 몸이 합쳐서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지금 천국에 있는 성도들은 영혼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부활하심에 대해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주시기 위해서 40일을 이땅위에 머무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서 부활의 메시지가 담대하게 전하여지게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동안 이땅위에 머무신 이유

2.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3절 후반부입니다.  '3.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일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후에 40일을 세상에 더 계셨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신 것도 ‘하나님 나라 일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당시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나라 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로마 정부로부터 이스라엘 나라를 해방시키시고 왕이 되실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 되면 자기들은 높은 자리 하나씩 차지하게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나라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이런 세상나라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사역을 하실때 맨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지 않으셨습니다. 눈 먼자를 보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나라 일만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관심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말할때는 ‘유토피아’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유토피아는 1516년 토마스 모어가 쓴 공상소설인데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장 이상적인 나라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유토피아’ 단어는 헬라어인데 그의미는 ‘그어디에도 없는 장소’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상상의 나라’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유토피아 보다도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아름답고 멋진 나라이지만 유토피아와는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을 머무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였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이 40일동안 계시면서 하늘나라에 대한 일을 말씀하셨다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를 말씀하시기 위해 구태여 40일동안이나 이세상에 머물시면서 하나님나라 일을 말씀하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수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일을 듣게 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은 생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살아가다가 자신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바울은 그당시 전세계라고 생각한 지역을 2차 3차 계속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 했습니다. 그러다가 로마에까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을 보시면 바울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입니다. 30. 바울이 2년을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바울은 로마에서 순교로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로움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세상 나라를 떠나고 난 이후에 영원히 살게 될 나라입니다. 어떻게 이 하나님 나라를 갈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진 죄값을 십자가에서 치루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에 갈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그리고 40일 동안 머무시면서 하나님 나라 일을 전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살았을것입니다. 이땅에서 태어나 이땅에서 살아가다가 이땅에서 벗어나본적이 없이 죽게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머무시면서 하나님나라를 확신 할수 있게 전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갈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럼으로 이땅에서 태어나 이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하시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