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님이 다시 오실때

Author
kgmcc
Date
2024-01-21 01:31
Views
54
본문 : 히브리서 11장 7절

날짜 : 2024년 1월 21일

<히브리서 11장 7절>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성경은 오늘날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노아의 시대와 같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노아의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창세기 6장 11, 12절입니다. 11.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여기서 우리가 관심있게 보아야 할 단어는 ‘모든 혈육 있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한사람도 예외가 없이 타락하고 부패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 이니까 여기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도 포함이 됩니다. 노아도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예외없이 부패한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창세기 6장 9절입니다. 9.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노아는 의인이요‘ 우리는 종종 노아가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 문장을 보시면 노아가 의인이 되었던 이유가 나옵니다. 창세기 6장 8절입니다.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노아는 의인의 신분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아는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나자신의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라는 선택에 대한 결정을 나자신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을 가진 의인이 되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100프로 하나님의 은혜와 100프로 나자신의 선택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노아는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만일에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면 노아는 방주를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홍수의 심판의 날에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노아의 믿음이 어떠한 가를 배워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노아가 믿음으로 만든 구원의 방주는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 구원하는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세상 마지막날에 일어나는 심판을 바로 노아의 시대때 일어났던 현상으로 비유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8절, 39절입니다.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지금 노아와 같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노아는 이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자기 자신 과 가족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노아가 지닌 믿음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노아가 가진 믿음을 나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감으로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노아가 가진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1.말씀에 기초로 한 믿음입니다.

본문 7절 전반부입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한 경고하심을 받아“ 창세기 6장을 보시면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아직 보이지 않은 일에 대한 경고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경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그당시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죄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물로 멸망시키기로 결심하십니다. 하지만 이 심판은 미래에 일어날 일입니다. 그리고 언제 일어날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수 없습니다. 본문 말씀처럼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방주를 만드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로 한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에는 두가지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적인 믿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믿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는가 하지 않으셨는가에 있는 것이죠. 그당시 홍수가 날 징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징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노아는 믿은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 정말 믿음이 좋은 줄 압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자 제손에 있는 이 물병에 물이 아니라 청산가리와 같은 독극물이 들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런데 저는 이 청산가리를 마셔도 죽지 않고 오히려 제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청산가리를 마십니다. 제가 살까요? 죽을까요? 아마도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믿음으로 죽었습니까? 아니죠. 그냥 황당하게 죽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황당한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왜요? 온전한 믿음과 이런 맹목적인 믿음의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유무에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직접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에 와서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이 된 성경을 성도들에게 주십니다. 이 성경을 주시면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 말씀이라고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한 이유는 이 온 세상에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3절입니다.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왜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 것입니까?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여러분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논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논문을 보면 이름이 있고 유명한 사람들이 주장한 내용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신뢰성이 있는 논문일수록 그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전문가의 주장이 더욱 많이 인용 되어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논문을 쓰는 학생의 주장보다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 한 말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자가 이세상에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걸고 약속하시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이 이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 보다도 가장 믿을만하고 가장 신뢰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근거로 해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8절입니다.“18.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지기전에는 천지가 없어진다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에서 가장 견고하고 튼튼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20년이라고 하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로 하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노아의 믿음도 견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이 흔들리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로 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아가 가진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2.준비하는 믿음입니다.

7절 전반부를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방주를 준비하여’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믿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자르고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노아는 약 120년 동안 방주를 짓게 됩니다. 120년 동안 그것도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고 배를 만드는 사람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입니다. 비가 언제 내릴지도 모르지만 노아는 오랜세월동안 계속해서 성실하게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아에게 조소와 냉대를 했겠습니까? 하지만 노아는 준비하면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방주를 준비하여“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준비성의 차이에 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인정받느냐 인정받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사람이 가진것이나 능력보다는 그사람의 준비성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앞에 성공적인 믿음은 바로 준비성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참 믿음은 짧은 시간에 증명이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이 됩니다.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 준비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믿음을 확인 할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을 다른말로 표현하면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이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후 홍수의 심판의 날까지 노아는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방주를 완성한 것입니다. 창세기 6장 22절입니다.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다 준행하였더라. 쉽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방주를 완성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그당시 인간의 생각과 상식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모두 다 준행하여 방주를 완성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봅니다. 믿음과 행위는 결코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뿌리라면 행위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위라는 열매가 맺혀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지요. 노아에게는 믿음이 있었기에 방주를 준비할 수가 있었고 방주라는 열매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믿음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똑같은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은 매우 힘있고 능력있게 인생을 살아가는데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저는 결국 그 차이는 준비의 차이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할 수 있느냐 할수 없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고 준비를 하면 하나님은 하실 수 있지만 준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고 내가 준비하는 것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7장 26절입니다. 26.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 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준비하는 믿음은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노아는 말씀에 순종을 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방주를 짓는 동안 노아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웃음꺼리가 되는 존재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노아는 준비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마침내 온 세상 사람들을 웃음꺼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준비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동안 외롭고 힘들어도 인내하시고 참으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시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소망을 가지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아가 가진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3.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7.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사실 우리 인간이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경멸하는 경우를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우리 인간이 귀신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모습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어떻게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까? 두가지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말씀에 의지하여 방주를 짓는 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 했다 라고 말씀합니다. 노아의 믿음은 호기심이나 취미 활동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의 신앙자세를 면밀히 살펴보면 호기심이나 취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교나 이슬람교 그리고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보다는 그래도 기독교를 가지는 것이 훨신 이득이 있고 또 품위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기독교를 선택한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고 자기 마음이 편하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일이 바쁘고 조금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취미로 기독교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면 사람과의 교제를 통해 더많은 성공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취미나 성공을 향한 교제를 하기 위해 교회에 다니면 천국에 들어갈수 있다고 하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대신에 성경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 말씀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 후반부입니다. 12. ...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호기심이나 취미생활이 아니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라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진지함이 부족해 보입니다. 교회예배를 드려도 그렇게 진지하게 드리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교회생활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입니다. “22. 종들아 모든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미국 백달러짜리 지폐를 보시면 벤자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벤자민 프랭클린은 가난한 농부 출신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동안 성실한 삶을 통하여 자수성가한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조지 워싱턴 초대 미 대통령과 함께 미국이 독립을 하는일에 많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이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백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 저는 이렇게 성실하고 진지한 마음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그동안 이 미국나라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 미국이 전 세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대국이 되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실과 진실이 아닌 거짓과 공갈 협박을 무기로 사람을 두렵게 해서 따르게 할려는 정치 지도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이 난무하고 있는 한 미국의 장래를 굉장히 어둡게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지하고 성실한 마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이 미국나라에 보다 많이 등장할수 있도록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노아는 성실하고 진지한 삶을 살았습니다. 좀전에 언급을 했지만 이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징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7절에서 39절입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물 홍수의 심판 전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을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이 나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일만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거나 영적인 것에는 전혀 가지지 않고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오직 육체를 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간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생활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습니다. 세상일에도 바쁜데 보이지도 않는 영적인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질병은 바로 영적인 무관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선포하라는 말씀을 노아에게 하셨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방주를 짓는 일 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은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주를 짓는 일도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보면 나름대로 즐겁기도 하고 성취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가족들과 함께 지었기 때문에 어떠한 고생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교회안에서 성도들끼리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자” 라고 말하는 것은 영적인 가족이기 때문에 격려가 되고 힘이 됩니다. 하지만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하는 믿음도 가졌습니다. 본문 후반부입니다. 7.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세상을 정죄하고” 세상사람들을 향해 회개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물로 심판을 내리시기 전 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7장 1절입니다.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세대에서 네가 내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120년동안 노아의 행동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노아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성실함으로 나타난 것으로 우리는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성실하게 노아는 살아온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날 심판은 물이 아니라 불로 심판을 한다고 말씀합니다. 아마도 핵 전쟁과 같은 불의 심판으로 인해 이세상은 마지막을 맞이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어찌 이런 저런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성실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일어날 징조를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4장 13절입니다.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이것은 인내를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성실한 마음은 인내로 나타납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다는 말은 성실함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실은 인내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믿음과 성실 그리고 인내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노아를 하나님은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리고 죄성을 가지고 있고 감정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잘못할수도 있고 실수를 하여 넘어질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붙잡고 성실하게 그리고 인내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럴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진 이 믿음을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눈에는 노아처럼 우리도 의인으로 비춰질 것입니다.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오늘날 구원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에 인내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 하나님의 불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