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그대로 두소서

Author
kgmcc
Date
2024-01-28 01:42
Views
38
본문 : 누가복음 13장 6-9절

날짜 : 2024년 1월 28일

<누가복음 136-9>

6.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오늘 이 본문은 포도원 포도원 지기의 비유라고 불립니다. 이 포도원 지기의 비유에 나타난 내용을 보시면 어느 한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인은 자기가 그 포도원을 관리하고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원지기에게 맡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포도원을 맡기셨습니다. 이 포도원은 나의 자녀일수가 있고 내 남편이나 내 아내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직장이나 사업터일수도 있고 교회에서 내가 맡아서 해야 할 일 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대단한 일인가요? 아니죠. 평범한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가 있는 평범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포도원지기의 입에서 맨처음으로 나온 말이 무엇입니까? 8절입니다.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주인이여...’ 그러니까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이모든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주인의 것인데 나에게 맡겨진 일인 것입니다. 내자녀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내남편 내 아내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직장과 사업처 그리고 교회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이모든 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서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내것이 아니니까 부담을 느끼지 말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니까 귀하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가 있는 평범하고 하찮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귀하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내 자녀, 내 남편, 내 아내, 내 교회, 내 직장, 내 사업터 이렇게 내게 주어진 이 모든 것들은 그래서 가치가 있고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굉장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지기는 이런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포도원에서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본문에 나오는 포도원지기가 지니고 있는 마음이 어떠한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포도원지기와 같은 마음으로 올 한해도 나아게 주어진 일에 대해 신실하게 생활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포도원지기가 지닌 마음자세는

1.순종성

본문 6절입니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지금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한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그런데 비유로 하신 말씀치고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포도원에 왜 무화과 나무를 심었습니까? 물론 포도원 토질의 관리를 위해서 포도나무만 심는 것 보다는 다른 종류의 나무를 심으면 더 많은 수확을 얻을수는 있습니다. 저도 저희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어 채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채소만 심는 것 보다는 다른 종류의 식물을 섞어서 심으면 성장하는데 서로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당근과 양파를 섞어서 심는다든지 당근과 콩을 섞어 심으면 서로의 성장을 돕습니다. 하지만 포도와 무화과 나무가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지 저는 알수 없습니다. 서로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가정 하십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주인이 왜 무화과나무에 관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왔으면 포도나무의 열매를 관심있게 보아야지 왜 무화과나무의 열매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까? 이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요.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을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대답을 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추측일 뿐입니다. 정확한 대답은 “모른다“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답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내가 이해가 안되는 일을 하실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내 자녀에게, 내 아내와 내 남편에게, 그리고 직장과 사업터와 교회안에서 일어나는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 왜 이런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라고 물어도 우리는 정답을 알수 없습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하나님께서 설명을 해주신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지금 미국 공화당에서 트럼프가 가장 유력한 미국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민주당에서는 저렇게 나이가 많은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되는지‘ 우리는 이해할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이 두 사람 중에서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현실을 우리는 이해할수 없습니다. 왜 이해할 수가 없는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우리는 길어도 70-80년을 계획하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면서 이세상을 경영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내가 다 알수가 있다면 나는 신이지 인간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일을 하길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왜 다른일을 맡기시는지 이유를 알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되길 원하면서 최선을 다하는데 왜 자꾸 엉뚱한 일이 생기는지 알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포도원을 맡기실때는 분명히 포도의 많은 수확을 하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포도가 아닌 엉뚱한 무화과 나무 열매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이라고 묻는 것 보다는 그냥 묵묵하게 하던 일을 해나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내가 이해를 더 잘하게 되면 내가 일을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순종하시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온전히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 만일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옛날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래서 우리는 흥분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나게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지금 애굽 바로왕은 마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살고 계시는 이 애굽나라는 마귀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립시오.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지도자를 당신들에게 보내주실것입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이 마귀의 세계를 상징하는 애굽에서 벗어나게 되고 마침내 당신들은 가나안땅에 도착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세는 먼 훗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림자 역할을 합니다. 모세가 당신들을 종의 신분에서 자유자의 신분이 되게 한 것처럼 먼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들을 죄악의 종의 신분에서 자유자의 신분이 되게 할 것입니다. 당신들의 후손이 들어가 살게 되는 가나안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들어가게 되는 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하겠습니까?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국 생활을 잘알고 있습니까? 물론 천국은 굉장히 좋고 영생을 누리는 살아가는 정말 아름답고 거룩한 나라 라고 하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 입니다. 천사가 와서 설명을 해준다해도 우리는 다 이해할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천년왕국이 있고 또 천년왕국이 지나는 동안에 천국시민들 중에서도 또 신앙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고 그후 백 보좌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천사가 와서 말해주어도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이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혼돈과 더많은 질문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다 이해하기 때문에 순종할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된 이 오병이어 기적은 빌립과 같이 이해하기 위해 질문을 하고 따지는 제자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해가 안되지만 순종을 했던 안드레와 같은 제자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포도원 지기는 ‘주인님 왜 그렇습니까?’ 라는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질문은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매달리는 것 보다는 묵묵히 일을 해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내가 맡고 있는 포도원에 내가 이해할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때 그 이유를 묻기보다는 묵묵하게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지혜로운 포도원지기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포도원지기가 지닌 마음자세는

2.성실성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포도원지기는 삼년동안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이 삼년이라고 하는 기간에 대해 두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무를 심은지 삼년 이라는 해석이 있고 또다른 하나는 주인이 무화과 나무 열매 맺기를 기대하는 시점부터 삼년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주인은 적어도 나무를 심은지 6-7년을 기다려 왔다고 해석합니다. 물론 주인이 나무를 심자마자 열매를 기대하지는 않았을것입니다. 그러므로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을수 있다고 기대하는 시점 이후부터 삼년동안 계속 기다려 왔을 것이라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두가지 다른 해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실은 이 무화가 나무가 열매를 맺을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화과 나무에는 열매가 없었던 것이죠. 미국의 신학자인 존 미첼 메이슨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실함의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라. 그리고 관대함의 잣대로 남들을 평가하라 자기자신에게는 성실하게 살아가고 다른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포도원지기는 성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왔습니다. 그사실을 어떻게 알수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인이 이 포도원지기에 대해서는 책망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주인은 무화과 나무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주인이 문제 삼은것은 포도원지가가 아니라 무화과나무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수 있습니다. 땅의 토질이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는데 적합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가 안 좋을 수도 있고 또 무화과나무의 종자가 안좋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집 뒷 마당에 오이를 심어보면 많은 오이를 맺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오이도 있습니다. 같은날 심고 똑같이 정성을 쏟았는데 어떤것은 열매가 잘 열리고 또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모르겠습니다. 종자가 안좋을 수 있겠죠. 어째튼 무화과 나무는 충분히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주인은 기대를 저버리고 그 나무를 찍어버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포도원지기는 이 무화과 나무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 포도원지기가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완전히 알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지만 주인은 이 포도원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을요? 어떤 일이 있어도 저 포도원지기는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서 열매를 맺을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한 마음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주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성실한 마음자세를 지닌 포도원지기로 인해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맺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여기서 끝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비유에서 나오는 포도원지기처럼 성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어떤일을 맡았을때는 열매가 맺힐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하겠다고 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족과 내 직장과 사업터 그리고 교회에서 열매를 맺을때까지 우리는 성실한 마음 자세를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준 무화과 나무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나오는 포도원지기는 열매를 맺힐때까지 성실하게 일을 해나갔습니다. 설사 열매를 맺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실한 마음자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성실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무화과 나무를 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오늘 비유에서 나오는 포도원지기처럼 내가 열매를 보지못한다 할지라도 성실한 마음자세로 인내를 가지고 내게 맡겨진 일을 하실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포도원지기가 지닌 마음자세는

3.책임성

이 포도원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게으르게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것이 아닌데 뭐”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이 없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포도원 지기는 무화가 나무의 열매를 위해 성실하게 일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이 포도원지기처럼 내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보지 못할때가 있습니다. 내 자녀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마음이 속상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서 열심히 봉사를 했지만 열매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갈등만 생길때가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체에서 이제 좋은 결과가 생길때도 되었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속이 상해 있을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이렇게 말씀을 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래 내 아들아 내 딸아 내가 너를 다 이해한다. 네가 맡은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이젠 네가 손을 놓고 그만 두어라. 내가 다 이해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은 아시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이유를 잘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내가 맡은 그일을 포기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이해해주실때가 있습니다. 본문 7절 후반부입니다. 7.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찍어버리라” “그 무화과 나무를 찍어버리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무에서 열매를 보는 것을 포기를 했다는 의미로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만큼 내가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을 한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이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본문 8절입니다.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그대로 두소서“ 이 단어를 성경 원어로 보면 ”압히에미“ 입니다. 이 ”압히에미“의 단어의 뜻은 ‘용서하소서. 사하여 주소서”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포도원지기가 그동안 해온 일을 인정하고 계십니다. 이해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도원지기는 무화과 나무 열매 보기를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처럼 미련하고 우직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볼 때 우리는 ‘곰처럼 미련하다’ ‘곰처럼 우직하다‘ 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저는 학생시절 때 “곰처럼 미련하고 우직한 것 같다” 라는 말을 종종 들어왔습니다. 제 친구들은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게 되면 미리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데 저는 그냥 눌러 앉아있다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이렇게 곰처럼 우직하고 미련한 신앙의 마음자세가 필요할때가 있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포도원지기가 지닌 마음자세가 이러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나오는 포도원지기는 그만 두어도 되는데 곰처럼 버티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화과 나무를 포기하고 포도나무만 키우는데 열심을 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이 포도원 무화과나무 비유가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게 맡겨진 포도원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할수 있는 길은 포기하지 않는 내 마음의 자세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는 마음자세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통해 보기를 원하시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일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삼년동안 열심히 공생애 활동을 하셨습니다. 때로는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다니는 선한목자가 되기도 하셨습니다. 또 때로는 한 개의 잃어버린 동전을 찾아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온집안 구석 구석을 쓸면서 찾아다니는 여인이 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병이 들고 지친 환자들을 치유하시고 낫게 하시는 의사가 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삼년동안 예수님께서 그렇게 충성을 다해서 섬기고 사역을 하셨지만 성부 하나님께서 보시기를 원하시는 열매는 맺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서 그 무화과 나무에 열매를 맺혀지지 않는 그 이유를 아시고 성자 예수님을 다 이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34.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하여 주옵소서” 헬라 성경 원어로 “압히에미” 라는 단어가 사용하신 것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대답을 했던 “압히에미”라는 이 단어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인은 기다릴만큼 기다렸습니다. 더 이상 열매를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심판을 하기로, 끝장을 보기로 결심하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하나님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사하여 주옵소서“ ”압히에미” 그리고 십자가에서 고귀한 피를 흘리시면서 운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바치시면서까지 우리 인간을 변호해주십니까?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을 기대하고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생명까지 바치신 분이 우리를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이 항해도중에 풍랑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끝까지 책임 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생명을 마치시면서 책임을 지시는 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나마 열매를 맺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 우리는 무화과 나무와 같은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나자신을 정죄하면서 이세상을 살아가지 않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사랑을 알고 주님과 함께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포도나무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면 열매를 자연히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포기 하지 않으신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나에게 맡겨진 무화과 나무를 포기 하지 않을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맡겨진 무화과 나무를 책임을 지고 살아갈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녀, 예수님과 함께 하는 직장과 사업터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내게 맡겨진 내가족 과 내 직장과 사업터 그리고 교회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열매를 맺게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