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소원이 있나요?

Author
kgmcc
Date
2024-02-04 01:58
Views
60
본문 : 빌립보서 2장 12-14절

날짜 : 2024년 2월 4일

<빌립보서 2장 12-14절>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오늘 본문은 빌립보서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바울이 이 빌립보 서신을 썼을 때 바울은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지금 나 없을때에도’ 감옥에 있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죠.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런데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고 하는 이 표현 때문에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이 내 열심과 내 선행으로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열심과 행위로 인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입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양심적이고 선한일을 더 많이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경건하지 않게 살아왔고 날마다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아무 조건이 없이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내가 정말 죄인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면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이 구원이 나의 삶 가운데서 나타내 보이도록 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을 남들이 볼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이 눈에 보입니까? 우리가 받은 구원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생명이나 ’하나님이 주신 사랑‘ 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도 우리안에 주어졌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받은 자의 삶을 보여주며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이루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 죄사함만 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보이지 않는 보배들이 많이 주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로마서 5장 5절에 나옵니다. ’5....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이 우리안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안에 찾아오실때에 성령님만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하나님의 사랑도 함께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에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안에 넘치도록 부어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은사들도 우리안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이 믿는 성도들의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며 살았던 사람이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며 인색하게 살았던 사람이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받은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아 저사람은 예수를 진짜로 믿는 그리스도인이구나. 저사람 마음속에는 예수가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이 대부분 이렇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안에 있는 수많은 탐욕과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서입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사를 세상에 나타내 보이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가 받은 은혜가 있다면 그 은혜를 세상가운데 흘러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안에 이런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은사들을 이세상에 나타내 보일수 있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표현으로 한다면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갈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갈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항상 복종하는 삶을 살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갈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13절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여기 하나님은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실 때 비로소 우리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빛이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실 때 우리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복종함으로서 구원을 이루어갈수 있는 것입니다. 왜 보혜사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안에 거하십니까? 그것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 전반부 입니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잘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결심하고 다짐을 해도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인가를 성령님은 잘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수 있습니까? 먼저 첫 번째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인정해야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도움을 받을수가 있는 것 아닙니까? 두 번째는 그 성령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실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고 행하십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을 살펴보면서 성령님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시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1.내안에서 역사하십니다.

13절 전반부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 ‘너희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도우실 때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행하시지 우리 밖에서 행하시지 않으십니다. 골로새서 1장 29절입니다. 29.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내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는 바로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그래요.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밖에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이후에는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시고 우리안에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린도 전서 12장 7절에서는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7. 각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나타내심을 말하면서 그뒤를 보시면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은 여러 가지 은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래서 은사장이라고도 부릅니다. 성경은 이 성령의 은사를 성령의 나타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안에 거하신 성령님안에 모든 은사가 주어져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필요하심에 따라서 우리에게 은사로 자연스럽게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하늘의 별을 따듯이 그렇게 은사를 따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은사는 내가 열심을 내는 것 보다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때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은사를 드러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열심을 내어서 가지게 된 것과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때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이 각각 다릅니다. 내가 열심을 내었기 때문에 은사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 질수 있습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들중에 교만한 사람들이 종종 보입니다. 기도할때마다 바람 소리같은 이상한 목소리로 기도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모할 때 받게 된 은사임을 깨닫게 되면 내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생기는 것이죠. 유명한 기독교 심리학자이신 유진 피터슨이 이렇게 말한적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라도 하실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밖에서 우리 환경들을 바꾸시고 우리 밖에서 우리를 억압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리의 변화된 생각과 마음의 소원을 통해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이 유진 피터슨 박사의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먼저 행하시는 분 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이나 환경가운데 역사하시지 않으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건과 환경 가운데 개입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과 환경에 개입하기 이전에 먼저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과 그 환경에서 우리를 통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이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씩 이렇게 기도할때가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가 지금 이러한 상황가운데 있습니다. 이 환경에서 나를 건져주십시오. 이 상황을 좋은 환경으로 변화시켜주시옵소서’ 그런데 이렇게 기도하면 순서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내안에서 일을 하시고 변화된 나를 통해 그 사건과 상황이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믿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생각을 통해서 일하시기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내안에서 역사하시게 되면 우리의 삶과 환경가운데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십시다. 부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왜 일어났습니까?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서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부부의 마음을 다스려주십니다. 그러자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 싸움이 일어난 것에 대해 자신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얘기를 합니다. 이렇게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생각이 먼저 변하게 되고 내 주변이 일어나는 사건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먼저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성령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십니까?

2.소원으로 역사하십니다

본문 13절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시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생긴 소원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을 열망하게 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 행하게 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이심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일을 이루실 때 우리를 강제로 떠미시는 분은 아닙니다. 먼저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소원을 따라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얼마나 인격적이신 분이십니까?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야망과 욕심을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절대로 우리의 야망과 욕심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내마음에 있는 소원이 성령님께서 주신 소원인지 아니면 내마음의 소원인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첫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은 꺼지지 않는 불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은 어떤 역경이나 장애물이 와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신 곳은 호렙산이었습니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다 타버리면 불이 꺼져야 합니다. 하지만 모세가 본 떨기나무의 불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 2절 후반부입니다. 2. ... 그가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 지라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나의 야망이나 욕심으로 생긴 마음의 소원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역경을 만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원은 생각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피가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 생각하면 미래의 청사진이 그림처럼 확 펼쳐지는 것입니다. 내안에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원은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13절 하반부입니다. 13. ...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이유는 바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 소원을 주시면서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지금 내안에 있는 이 소원이 하나님이 주신 소원인지 내 소원인지를 알려면 아주 간단합니다. 내 이소원이 나를 이롭게 하고 나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위한 것이지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는 소원인지. 아니면 내가 힘들고,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이후에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를 지낸 두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아리마대 요셉이고 또 한사람은 니고데모입니다. 두사람 모두가 다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회원의 신분으로서 그당시 유대사회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 두사람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갑니다. 마가복음 15장 43절입니다. 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당돌히’ 라는 말은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당하고 담대하게 빌라도 총독앞에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은 ‘Boldly'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빌라도에게 찾아가 시체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당돌하게 요구를 한 것입니까? 후반부를 보시면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이 두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니고데모나 아리마데 요셉이 자신의 야망이나 자신의 성공만을 위하여 살았다면 빌라도 총독앞에 나타났겠습니까? 예수님이 공생애 활동을 할 때도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가 다 도망을 가버린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손해만 되지 이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하나님이 기쁘신 뜻을 위하여 당돌하게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의 순종으로 인해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53장 9절 후반부입니다. 9.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마태복음 27장 57절입니다. 57. 저물었을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성경은 아리마대 요셉을 부자라고 말씀합니다. 부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은 나중에 자기가 묻히게 될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내 놓은 것입니다.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약 백파운드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같이 치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이 한 행동으로 인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 두사람은 자신의 이기적인 야망을 이루기 쥐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온전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믿는 성도님들이 가지고 있는 소원은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사업과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주신 소원으로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일하시지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성공을 위해 일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필요할때마다 꺼집어 내어서 주문하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도 아닙니다. 성령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기도하고 무조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자 하는 그일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먼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아니라 내 바램과 내소원만 가득하면 우리의 인생은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소원대로 안되면 원망과 시기 질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이 어릴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통해 마음의 소원을 주셨습니다. 그이후에 지도자가 될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주신 꿈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종의 신분이 되어 애굽으로 팔려갔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그런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때가되자 하나님은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볼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망과 시비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사실 요셉은 얼마든지 형들을 원망할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할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그 마음의 소원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 그자체가 원망과 불평을 넘어설 만큼 더욱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불평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오히려 힘들면 힘들수록 극복해나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서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행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이 다 그렇듯이 살아가다 보면 UP & DOWN 이 있습니다. 잘될때가 있고 곤두박질 칠때가 있습니다. 요셉이 종의 신분으로 애굽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충성되이 일을 하다가 보니 가정총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좀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디발 장군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옛날보다 더 비참한 신분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업 앱 다운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의 소원이 있어야 그 불은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원망과 시비가 없이 생활해나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다 그 어떠한 상황속에서라도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