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세상에는 없는 열매

Author
kgmcc
Date
2024-02-11 00:10
Views
42
본문 : 요한복음 13장 1, 2절

날짜 : 2024년 2월 11일

<요한복음 13장 1, 2절>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종교가 정해놓은 그 율법을 사람이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거나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그 종교가 가르치는 율법을 끝까지 순종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걱정은 내가 정말 구원을 받을 수 있을만큼 율법을 잘 지켜왔는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율법을 잘 지키고 살아갈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지만,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살아갈때는 내가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러한 종교와는 다릅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먼저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선행과 구제를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 율법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식이 되기 위해서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살펴보았지만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는 의미를 깨닫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구원을 받은 자로서 올바른 삶을 주변사람들이 눈에 보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구원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입니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면 아버지를 닮아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영이시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닮아갈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육을 지니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면 됩니다. 하루는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달라고 예수님에게 요청을 하자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입니다. ’9.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의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을 닮아가는 길이 됩니다.

자,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붙잡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제자 사이에 서로 대조된 생각과 행동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1절 후반부입니다. 1. ... 세상에 있는 자기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이것이 예수님이 지니신 변함이 없으신 마음이십니다. 자 이에반해 한 제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본문 2절 후반부입니다. 2.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님의 제자들중 한 제자는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1절 후반부입니다. 2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제자의 배신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신 모습을 우리는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보이지 않으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남은 생애동안 예수님과 닮은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1.끝까지 사랑하심

본문 1절 후반부입니다. 1. ...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성경에 나온 예수님의 삶을 보게 되면 끝까지 사랑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신 사랑의 대상은 모든 사람입니다.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그리고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모두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랑은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시겠습니다.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세상에 보내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 인간이 진 죗값을 치루어 주심으로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이 있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 마다(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이세상을 향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하지만 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세상은 나뉘어집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을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 사람들” 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보시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이 말씀만 가지고 이렇게 설명하시는 목회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만 끝가지 사랑하시는 것이지 자기 사람이 아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똑같이 사람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런데 그사랑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나뉘어지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을 언제라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오늘 본문 말씀처럼 “자기 사람” 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여러 구절에서 나오는 것처럼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감옥소에서 오랫동안 교도관 생활을 해온 사람이 했던 말입니다. 사형을 집행을 하라고 하는 명령을 받게 되면 사형 집행을 하게 되는 그날 아침 사형수에게는 엄마나 가족의 면회가 왔다 라고 사형수에게 말한답니다. 그래서 그 사형수와 몇 명의 교도관들이 같이 가다가 갈림길에서 면회실 쪽이 아니라 사형 집행장소가 있는 길로 사형수의 팔을 나꿔채며 몰아부친다고 해요.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린 사형수는 발버둥을 쳐보지만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한답니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한번만 보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사형수가 있다 라고 하는 내용을 어느 책에선가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자기가 사람을 죽이고 사형에 처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세상에 단 한사람 자기 어머니는 그래도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세상에서 가장 숭고하고 조건이 없는 사랑을 베푸는 존재는 '어머니' 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 조차도 고개를 돌리고 찾지 않을려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입니다. '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그들은(어머니)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손바닥에는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손바닥에 나를 새겨놓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나를 잊어버릴수 있겠습니까?

C.S 루이스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가마솥에 넣고 팔팔 끓이면 사랑이라는 한 단어만 남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아들을 이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면 기독교를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모르면 기독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시의 아들을 이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놓고 죽으시기까지 하신 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받고 살아가고 있기에 우리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이후를 보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씻기시는 그 발들이 가는 곳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발은 자신을 은 30 에 파는 배신자의 발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발들도 붙잡힌 자신을 버리고 도망쳐버릴 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지을 죄를 이미 다 용서하시고 그 발들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족식을 하시고 난이후에 예수님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입니다.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여노라’ 사실 아무 조건이나 결과도 없는데 무작정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자들처럼 우리는 용서함을 받고서도 있어야 할 곳을 있지 못하고 도망갔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피했습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저와 여러분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이 사랑을 생각하십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점점 예수님을 닮아갈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우리는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사랑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조건이나 결과를 따지지 않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닮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2.본을 보이심

본문 1절 전반부입니다. 1.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때가 이른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이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때가 된 줄을 아십니다. 하지만 마지막순간 까지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섬김의 본을 보이십니다. 저녁 식사도중에 일어나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십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으십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 닦으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입니다.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려 본을 보였노라’ 성경에서 보여지는 예수님의 모습은 늘 본을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침례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침례를 받으십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는 죄사함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서로 섬김의 본을 보이며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가장 큰 이유가 있습니다. “본을 보였노라” 라고 말씀 하신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계속해나가십니다. 16절입니다.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자보다 크지 못하다” 당연한 말씀이죠. 주인이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종이나 메시지를 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존재입니다. 본을 보이는 사람이 본을 따르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큰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17절입니다,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본을 보며 따라가는 사람보다 훨씬 복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처럼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카타르에서 열리게 된 AFC 아시안 컵 축구 대회가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대한민국이 4강전에서 탈락을 했습니다만, 2월 2일에 한국과 호주사이에 8강전이 있었습니다. 전반에 호주가 1점을 넣고 후반이 다 끝나고 추가 연장시간 몇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호주의 수비선수 한명이 한국의 주장 손흥민 선수의 발을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페널틱킥을 얻게 되었습니다. 페널티 킥을 성공해서 1대1 동점이 되었고 연장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연장전에서 손흥민 선수가 프리킥을 성공해 1점을 더 보태었습니다. 그래서 2대 1로 호주에게 승리를 하고 4강전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 주장이었던 손흥민 선수가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뛰었던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포기하지 않고 전진해야 하겠다는 도전의식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는 휘슬을 심판이 부는 순간 손흥민 선수는 그라운드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으면 그러했겠습니까. 그 순간만큼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보다도, 아니 그날 뛰었던 선수들 중에서도 가장 감격을 했던 사람은 손흥민 선수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흥민 선수는 무릎에 많은 붕대를 감싸면서도 끝까지 다른 선수들보다도 더 열심히 뛰었고 주장으로서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본을 보이는 사람이 본을 따르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많은 축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활동을 하시는 동안 본을 보이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하여 본을 따르는 삶을 벗어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더 큰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닮을 삶을 살아가십시다. 예수님처럼 내주변의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남은 생애동안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보다 큰 복을 누릴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3.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

본문 2절입니다. 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순간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계십니까? 그다음절 3절 후반부를 보시겠습니다. 3.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는 이 모습이 바로 죽음을 앞둔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불치병인 암이나 큰 교통사고를 당해 배우자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이세상에서의 작별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와 가까이 함께 지내왔던 친한 사람의 배신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우리들 대부분은 이러한 동기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르긴 해도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보다 훨씬 더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1절입니다. 21.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이날 예수님의 심령은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이순간 예수님께서는 배신한 제자보다도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생각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1절입니다. 31.그가(가룟유다)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죄인들이 의인이 되고 죄와 사탄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닫혀있던 천국의 문이 열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라고 말씀하시고 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 32절입니다. 32.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영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수가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갈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입니다. 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풍성한 열매를 맺는것처럼 너희들도 그렇게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다음 8절입니다. 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포도나무 가지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물론 포도가 열매입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예수님에게 붙어있는 사람의 열매는 물론 예수님의 영 즉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절, 23절입니다.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렇게 일곱까지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열매는 한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죠.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화평이 있습니다.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함과 절제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주신 계명은 하나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열매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열매입니다. 사랑은 능력이 아닙니다. 사랑은 은사도 아닙니다. 방언하고 방언 통역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고치는 은사는 능력입니다. 열매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랑은 능력이나 은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이라는 열매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하는 사랑과는 다른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랑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사랑의 출처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34절 후반부를 다시한번 보시면 “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러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할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안에 거하여 그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할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으로 인하여 우리는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을 베풀어주시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예수님안에 거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