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성령의 나타나심

Author
kgmcc
Date
2024-02-25 00:0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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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2장 1-5절

날짜 : 2024년 2월 25일

<고린도전서 21-5>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오늘 본문은 믿는 성도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으로부터 나온 ‘인간의 증거’ 가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 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증거를 믿고 살아가는 사람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본문 1절 전반부입니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내가(사도바울이) 너희에게(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증거를(복음을) 전할때에 ... 라는 의미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 를 전하는 것이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내 지식이나 내 경험을 전하는 것이 아니죠. ‘인간의 증거‘ 가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 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이 1차. 2차, 3차 선교 여행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내용과 이러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을 때 나타나게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증거를 다른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7절 전반부입니다.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지혜이니까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기 전에는 감추어졌던 비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와서 정기적으로 듣게 되는 내용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알게 하기 전에는 이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감추어졌던 비밀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증거 즉 하나님의 지혜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심으로 이루어놓으신 일‘ 을 의미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가(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하나님의 증거는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는 이 하나님의 증거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요즘에 전도하는 방법이나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정말 많습니다. 전도 세미나에 가게되면 강사들이 저마다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대로 가르치고 전해줍니다.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배우다가 보니까 진작 복음을 전해야 할때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제대로 정리가 안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복음 전도 원리는 정말 간단하고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의 결과로 모든 사람들에게 사망이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이 죄로 인하여 죽게 된 우리 인간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다는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사실이 복음인 것입니다“ 복음전도 방식이 아무리 다양하다고 할지라도 이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일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복음을 고린도 도시 뿐만 아니라 가는 곳곳마다 전했습니다. 이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바로 ‘하나님의 증거‘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3절입니다.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당시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거리끼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인들에게는 예수가 행한 일은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진 죄를 갚기위해 자신이 죽는 것도 미련하게 보였지만, 설사 그렇게 죽었다 해도 다른 사람의 죄가 갚아질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믿을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미련한 행동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은 이세상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이런 저런 이유에서 당연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구원이 됩니다. 그다음절 24절입니다. 24.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만을 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전 1장 21절입니다. 21.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은 전도라고 하는 미련한 것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전도를 하기 위해서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고 많은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면 되는 것이죠. 말을 잘하지 못해도 됩니다. 1절 후반부입니다. ’1.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사실 사도바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까?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을 잘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말을 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0장 10절입니다. 10.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 “그가(사도바울) 몸으로 대할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하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을 때마다 공통적으로 “저분은 말이 좀 어눌하구나 말을 할 때 좀더 시원하게 우렁차게 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글이나 문장은 세련되고 힘이 있었는데 말을 하는 능력은 시원하지 못하고 그래서 말을 듣는 사람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처럼 많이 복음을 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바울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 바울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얼마나 설득을 잘하는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 한가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만 전하면 됩니다. 이러한 복음의 내용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사람의 영혼을 감당하십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역이지 우리의 영역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전할 때 자신만만한 모습이 아니라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그럼으로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때에 말을 잘할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더듬거려도 괜찮고, 긴장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 인간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다는 메세지를 확실하게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메세지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온 세상의 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세상의 어떠한 지혜나 철학이나 어떠한 세상의 종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에서 나온 지혜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당시 이 세상에서 최고의 지혜와 힘을 가진 나라는 로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로마 통지자들이 가진 지혜와 철학은 이 세상 사람들의 지혜와 철학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당시 그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8절입니다. 8.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이세상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한 이유는 단한가지입니다. 이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절대로 알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당시 유대인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한사람, 예수가 죽으면 로마 정부에 의해 유대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11장 50절입니다. 50.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그러니까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죠. ‘저 예수가 유대 민중들을 선동을 해서 유대민중들이 독립운동을 하게 되면 로마에서 군인들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로마군인들에 의해서 유대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일이 생기기 전에 예수 한사람만 죽으면 로마에서 군인들을 보내지 않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 유대 민족은 살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붙잡아서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 총독도 ’저 예수가 죽으면 자신의 통치 아래에 있는 유대 민족의 질서와 평화를 지킬수가 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그당시 통치자들에게서 나온 지혜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세상 통치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와 로마 총독이 가진 그 지혜를 통하여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과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이 요한복음 19장 10, 11절에 나옵니다. 10.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11.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너는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다”. 무슨 의미입니까? ‘네가 나를 죽일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용하셨기 때문에 네가 그 권한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유대 대제사장 가야바와 빌라도 총독에 의해서 궁지에 몰려서 어쩔수 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해놓으신 십자가 이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순종해서 스스로 그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그 지혜를 사용하셔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 인간의 죄값을 다 지불하셨다’ 는 내용만 전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만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인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이러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을 때 나타나게 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듣을 때 믿게 되어지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집니다. 사람의 경우를 예를 들어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알수가 있습니까? 우리가 그 사람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모르고 아내가 남편을 마음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하지만 사실 부부끼리도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다시말해서 그 사람이 되지 않고서는 그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구원자 이심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라고 말하면 굉장한 기적이나 신비한 체험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기적이나 신비한 체험들은 오늘날 모든 종교에서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당이나 점을치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다른 종교들에서도 신비한 능력과 기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신령한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전 12장 1절입니다.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신령한 것에 대해서 너희가 알기 원한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신령한 것이 무엇입니까? 방언하고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는 이러한 이상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한 것도 있지만 그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령한 것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고전 12장 3절입니다. 3....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방금 1절에서 살펴본 “신령한 것을 알기를 원한다“ 라고 말씀하면서 그다음절을 보시면 신령한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살아가는 것에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령한 능력의 핵심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서 구원을 이루신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런 저런 신비한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하는 일이 있을수는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에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신비한 체험을 하고 기적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신령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하시는 중요한 역할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나타내 보이시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입니다. 26.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그가(성령이) 나를(예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장 14절입니다. 14.그가(성령) 내 영광(예수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그가 내영광을 나타내리니” 여기서 내 영광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니까 예수님의 영광을 의미하죠. 십자가의 사건을 예수님께서는 “내 영광”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우리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심으로서 우리 인간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수 있는 길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을 예수님께서는 ‘내 영광’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신 일을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기적과 신비한 체험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신령한 은사를 받았지만 그 은사를 가지고 자기 자랑을 하고 그래서 서로 분쟁만 일으켰습니다. 신앙이 어릴때는 그럴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성숙하게 되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내 손이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되고 내 발이 예수 그리스도의 발이 되고 내 말과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처럼 우리도 나의 정욕과 나의 이기적인 욕심과 나의 못된 성품들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며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입니다.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나의 옛날 성품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하나님의 증거를 믿고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라 할수 있습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증거는 이세상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사역으로 나타납니다. 그럼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전하는 것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증거를 우리 인간이 알게 됩니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비밀이요 지혜인 십자가 구원의 역사를 깨닥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날이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로 살아가게 되는 신령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