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우리는 무슨 능력을 가졌는가?

Author
kgmcc
Date
2024-03-03 05:14
Views
71
본문 : -고린도전서 4장 17-21절

날짜 : 2024년 3월 3일

 

<고린도전서 417-21>

17.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 평생동안 하나님의 증거를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증거를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증거와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가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루어놓으신 일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지금은 우리 믿는 성도들이 교회에서 주일마다 귀에 따갑도록 들어서 잘아는 메시지가 되었습니다만 하나님이 알게 해주시기 전까지는 감추어진 비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밀을 어떻게 깨닫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 사건이 깨닫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영혼의 구원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이 십자가 사건을 듣고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 사건은 이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실 누구나가 다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고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들 직접 듣고 메시지를 전할수 있는 이러한 능력이 있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물론 이것이 능력이 있는 삶일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능력은 이렇게 외면적인 면 보다는 내면적이고 훨씬 더 본질적인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문 20절입니다.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은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가 된 우리 믿는 성도들은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로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우스개 소리로 천국에 가면 입만 보인다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본문 19절입니다.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다‘ 그당시 바울은 고린도 도시가 아닌 에베소 도시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도시와 에베소 도시 거리는 약 400 km가 넘습니다. 그러니까 서울과 부산까지의 거리 정도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에베소 도시에서 사역을 하고 있던 이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고린도 교회에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너희들에게 능력이 있는가를 알아보겠다“. 그런데 무엇이 능력입니까? 병든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기적을 행하는 것이 능력입니까? 그것도 능력일수도 있겠지만 본문에서 의미하고 있는 능력은 보다 내면적이고 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1.교만이 아닌 겸손의 능력

본문 18절입니다. 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스스로 교만하여 졌으나” 사람이 교만한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본문 19절 전반부입니다.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그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교만한 지, 아닌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만한 사람들은 어떻게 말을 합니까? 본문 앞에 나오는 6절 후반부입니다. 6.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함이라’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어떻게 알수있습니까? 말로 알수 있다 라고 좀전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말을 합니까? ‘서로 대적하여‘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 하는 말을 보면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에 고린도교회에서는 바울파와 아볼로파 그리고 게바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따르고 신뢰하는 지도자가 훨씬 더 신실하고 참된 지도자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다툼과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믿는 성도들이 서로 대적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자랑입니다. 7절입니다. 7.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자랑하느냐’ 왜 자랑을 합니까? “내가 가진 것이 네가 가진 것보다는 낫다“ 라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은사와 재능과 그리고 물질이나 지식이 네가 가진 것 보다는 더 낫고 더 많다” 라고 하는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가진 은사나 재능 그리고 물질이나 지식은 내게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남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부를 보시면 ‘네게 있는 것 중에서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남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이세상에 스스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님이 계시기에 내가 태어난 것입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건강도 내힘과 내능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땀을 흘려서 농사지은 사람이 있었고 또 그 농산물을 가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식품을 그로서리에 배달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식품을 먹고 건강을 유지할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직장에서 일할수 있는 것도, 학교나 사회 현장에서 선생님이나 그누군가로부터 배웠기 때문에 내가 직장 생활을 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돈을 벌수 있게 되었고 그 돈으로 음식을 사고 차도 사고 집도 살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내 자신으로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에 내가 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가 다 똑같은 존재들이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 6절 전체를 보시겠습니다. 6.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우리는 종종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라고 하는 이 말씀을 성경이 말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를 추가하거나 첨가시키지 말라 라는 뜻으로 해석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씀하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라고 하는 의미는 서로 서로가 대적을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 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배워“ 에서 우리는 바로 바울과 아볼로를 의미합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따르는 성도들과 아볼로를 따르는 성도들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지도자를 따를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들을 무시했던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다툼과 분쟁이 일어났던 것이죠. 하지만 바울과 아볼로는 같은 마음으로 서로 협력하면서 사역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아볼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겸손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알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알수 있습니까? ”나는 겸손하다“ 이렇게 말을 해서 겸손하게 된다면 이 세상에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세상에 교만한 사람은 한명도 없고 모두가 다 겸손한 사람뿐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로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겸손하신 분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겸손함을 바울과 아볼로는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들이 우리를 지도자라고 믿고 따른다면 우리의 본을 배워라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능력은 나의 주장이나 나의 자랑이 아닌 바로 겸손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넘어가지 않고 순종하는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2.선생이 아닌 아버지의 능력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바울이 고린도 도시에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그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바울은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것은 “내가 너희의 아버지이다” 라는 의미보다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 도시에서 복음을 전한이후 고린도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난 이후 약 4년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파당을 만들어서 서로 자기파가 제일 낫다고 하면서 논쟁을 하고 다투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이유는 교회안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어린 성도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안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그 집안이 참 요란하고 시끄럽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이죠. 본문 앞장인 고린도전서 3장 1절 후반부입니다. 1. ... 육신에 속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살펴보면 자랑이 많습니다. 특별히 자기 아버지 자랑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서로 자기 아버지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요. 아는 게 너무 많아요. 모르는 것이 없어요. 우리 아빠는 박사이예요!" 그러자 다른 아이도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빠는요, 돈을 엄청 많이 벌어요. 내가 사달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사줘요. 우리 아빠는 사장이예요" 또 한 아이가 이야기 합니다. "우리 아빠는요, 굉장히 사랑이 많고 자상해요. 매일 나와 같이 놀아 주세요." 그러자 한 아이가 말을 합니다. ‘우리 아빠는요. 굉장히 높은 사람이예요. 누구든지 우리 아빠 앞에 오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요. 우리 아빠가 최고예요’ 그래서 선생님이 묻었습니다. ‘그래? 너희 아빠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니?’ 그러자 그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요. 이발사예요’ 이렇게 아이들은 자기 아버지 자랑을 잘합니다. 몇 년전에 어느 한 방송사에서 음식 요리사로 유명한 백종원씨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출연자들이 백종원씨가 가르쳐주는 요리방법대로 요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출연진들이 만들었던 음식을 백종원씨 어린 딸에게 맛보게 하면서 어느 음식이 가장 맛있는가? 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그아이가 하는 말이 “우리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라는 것입니다. 백종원씨 딸은 어디에서든지 음식을 먹으면서 하는 말은 “우리 아버지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더 맛이 있다” 라고 아버지 자랑을 한답니다. 이렇게 어리아이들은 자기 아버지가 최고다 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다가 다쳐서 울고불고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성도들이 교회안에 있기 때문에 교회가 시끄럽고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같은 형제라고 말씀합니다. 같은 형제간이라도 의견이 맞지 않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마음이 상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형이 옳으냐 동생이 옳으냐’ 이런 차원에서 서로 다투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럴때는 부모님을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를 생각해야 문제 해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죠. 15절 전반부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일만 스승이 있으되‘ 이 말씀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그만큼 선생님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많고 그리고 그만큼 선생님의 가르침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세상에서 가장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라 할수 있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그 학생은 선생을 떠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선생이 학생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는 그렇지 못합니다. 사이가 좋던 나쁘던 한번 자식은 영원한 자식이고 한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대합니다. 16절입니다. 16.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자녀를 대하듯이 “너희들은 나를 본받으라” 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은 본을 보이는 부모의 역할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이 하는 말보다는 그 행동을 보면서 본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어린아이와 같이 철부지로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내 주변에 있는 신실한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본을 받아야 합니다. 선생님의 능력이 지식이나 가르치는 말의 능력이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능력은 본을 보여주는 능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아버지의 심정으로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라고 말을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져야할 참다운 능력은 선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능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사도바울처럼 본을 보일수 있는 아버지의 능력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까?

3.매가 아닌 사랑과 온유의 능력

본문 21절입니다. 21.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지금 바울은 주님이 허락하시면 속히 고린도 교회에 가게 될것 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기전에 먼저 디모데를 보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17.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디모데는 바울의 영적인 아들로서 바울의 명령을 따라 교회에 문제가 생길때마다 그 교회에 파송되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왜, 디모데를 먼저 고린도교회에 보냅니까?

그 이유는 바울이 당장 고린도 교회에 갈수 없는 입장일수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님이 허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 전반부입니다.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그러니까 이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너희에게 가지 못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주님이 왜 지금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아마도 바울의 강직한 성품상 고린도 교회에 가면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성도들을 심하게 책망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바울로부터 책망을 듣은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했구나 하는 마음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시험을 받아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에 가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신 이유도 있는 것입니다. 싸움과 다툼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말로 인해서 시작됩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조그만 일도 커져서 다툼과 논쟁이 시작됩니다. 여기다가 자존심까지 연결되면 더 큰 싸움이 일어납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말을 하다가도 다툼이나 논쟁이 시작될 것 같으면 그순간 말을 멈추는 것이 지혜입니다.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는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지혜롭고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디모데를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뜻을 서신서를 통해 전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직접 만나서 책망을 받는 것 보다는 먼저 서신서를 읽게 되면 우선 생각 할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기분이 상할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매를 가지고 가서 때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말로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보다는 사랑과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해결은 말의 능력이 아닌 사랑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세상 교회들이 배워야 할 능력은 바로 말의 능력이 아닌 사랑과 온유한 마음의 능력입니다. 이렇게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한다면 지금 현재 교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말의 능력보다는 사랑과 온유의 능력을 가지고 남은 생애동안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짧게 정리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능력입니까? 교만이 아닌 겸손의 능력입니다. 이 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에서 부터 나옵니다. 두번째는 선생이 아닌 아버지의 능력입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의 능력이 아닌 본을 보일수 있는 아버지의 능력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재는 사랑과 온유한 능력으로 문제 해결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우리는 남은 생애동안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