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신령한 것에 대하여

Author
kgmcc
Date
2024-03-10 00:26
Views
47
본문 :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날짜 : 2024년 3월 10일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늘 본문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 신령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1.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신령한 것에 대하여’여기서 신령한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령의 은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는 의미는 곧 성령의 은사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는 뜻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전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반드시 알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것은 그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시끄러웠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올바로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까 고린도 교회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시끄럽고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안에는 많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현상이 없어서 신령한 것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성령의 은사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하고 은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로 인해 교회가 성숙해져 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에 갈등과 문제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일어나게 되는 목적과는 정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세가지 주제로 생각을 해보겠는데 첫째는 은사의 목적이고 두 번째는 은사의 종류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사와 재능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자, 첫 번째는 은사의 목적입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은사가 주어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7절입니다. 7.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common good)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은 그사람을 높이거나 자랑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나타나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세우고. 그사람에게 유익함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입니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입니다.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는” 여기에서 이는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사용하는 목적은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목적은 바로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몸은 믿는 개인으로 보면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고 집단적으로 보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와 믿는 성도들을 올바로 세워나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 성령의 은사로 교회와 성도들을 세워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너뜨리는 일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은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그사람이 신령하다고 할수 있습니까?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것이 신령한 것입니까? 그것은 일부분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가 일어나는 가장 본질적인 목적은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고 있는 가에 있습니다. 병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환상을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일어나도 예수님을 믿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그것은 신령한 일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본문 3절입니다. .3.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신령한 성령의 은사가 일어나는 목적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증거하며 살아가는 것에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는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문제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결 해나갈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고린도 전서 2장 2절입니다. ‘2.내가 너희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린도 교회안에는 여러 파당의 문제와 음행의 문제 그리고 법정 송사의 문제 그리고 애찬과 성찬식의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다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장애물을 만날 때 그리스도 인 으로서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그분의 뒤를 따라갈려고 할때만 해결될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은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지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그사람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병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면 더욱더 예수님을 따라가는 현상이 나타나야 올바른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일을 하는 그사람을 추종하고 그사람을 높이는 일들이 오늘날에 너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단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죠. 그래서 그사람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멀어져가는 이단의 교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단의 길로 간 것은 그 사람의 잘못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도자들의 잘못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를 위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도가 모이는 교회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순복음 교회를 개척하셨던 고 조용기 목사님께서 사역을 하실때는 정말 크고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님을 추종하고 마치 주님처럼 따랐습니다. 이때 조용기 목사님께서“내가 바로 재림한 예수다”라고 말하면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재림예수로 섬기고 추종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에 정말 대형 이단 교회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그렇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과 주님이 지신 십자가 사건만을 전했습니다. 주님께만 영광을 돌렸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런 저런 문제가 있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메시지만큼은 초지일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가 이단으로 빠지지 아니하고 정통 기독교 교회로 자리를 잡아 큰 역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조용기 목사님께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날 때 그 영광을 자신이 모두 취했다면 그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갔겠습니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날수록 영적인 지도자가 더욱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믿는 일은 초보단계이고 그다음에 성숙의 단계로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성도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은사를 사용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신령한 신앙인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은 주님으로 믿고 신앙생활 해나가는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면에서 벗어나지 않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성숙한 성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의지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두 번째는 본문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4.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은사는 여러 가지나’여기 은사라는 단어를 헬라어로 보면 카리스마입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어떤 사람을 보면서‘저 사람은 카리스마가 있다.’라고 말할 때 그 카리스마 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저 사람은 카리스마가 있다’라고 말할 때 원래 성경적인 눈으로 본다면 ”저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카리스마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고전 12장 8-10절입니다.

8.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렇게 은사는 오늘 본문에서는 아홉가지로 말씀합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이렇게 아홉가지 은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다른 은사가 있지만 오늘 이시간에는 고린도 전서 12장에 나타난 은사의 종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가진 은사는 성경을 바르게 잘 가르치는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나 교사들이 주로 하는 일이죠. 설교나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믿는 성도들을 세워나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목사나 교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매사에 지혜롭게 행동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쉽게 이해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잘 설명할수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받았다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이 머리가 총명하고 지식이 많고 그리고 그 지식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한다면, 그 사람은 성령의 은사인 “지식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2) 믿음

믿음이 좋은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믿을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고 부정적인 성격이라서,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단순하고 긍정적이라서 별 어려움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과 진리를 쉽게 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의 은사인“믿음”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좌절하고 흔들리게 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흔들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을 보면서 자기 자신도 다시한번 믿음을 굳게 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3)병 고치는 은사

이 병 고치는 은사를 우리나라에서는 신유의 은사라고도 표현합니다. 지금은 드물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들마다 “신유 집회“ 라는 이름으로 부흥회를 많이 열어왔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집회보다 병 고치는 신유 집회를 한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물론이고 건강한 사람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참석을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신유집회에 많이 참석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병원에 가지 않고 무조건 병 고치는 집회나 기도원에 가서 병 고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편협된 믿음입니다. 그것보다는 오늘날 병 치료를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의사와 간호원에게 주셨다 라고 하는 믿음을 우리는 가져야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주어진 능력이 바로 이 병고치는 카리스마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의사가 되기도 하고 간호사가 된 것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허용하셨다고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위기의 상황은 있을수 있습니다. 큰 병원에서 훈련된 의사가 고치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상황은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특별한 상황에 처했을때는 마지막으로 기도원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려 볼수는 있겠습니다. 오늘날은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대부분 라이센스를 가진 의사와 간호사를 통해서 그 카리스마가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믿고 그분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4) 능력행함

병고치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귀신을 내쫓는다든가, 아주 드물게 특별한 상황에서 간절한 기도를 통해 자연환경이나 사람의 마음을 바꾸게 되는 그런 은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은 계속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기 보다는 시한적으로 위급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할수 있습니다.

5) 예언

보통 우리는 예언이라고 한다면 장래일을 미리 아는 것만을 생각하는데 그것보다는 신약에서 예언이라고 하면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류가 만나게 될 미래에 대해 이미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는 것이 바로 예언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무당이나 점장이들처럼 앞날을 미리 말하는 것은 성경적인 예언의 은사라 할수 없습니다.

6) 영 분별

영 분별은 어떤 사람이 하는 말씀을 듣거나 행동을 볼 때 때 그 말이나 행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는지 그렇지 않는지를 구별하는 능력이라 할수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라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 중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세상 뉴스만 전하다가 예배를 마치는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잘못된 설교를 분별하는 것도 은사라 할수 있습니다.

7) 방언과 방언 통역

그당시 고린도 교회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문제가 바로 이 방언이었습니다. 이 방언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예배의 질서가 흐트러졌습니다. 그래서 이 방언의 문제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14장에 따로 떼어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방언의 문제가 그당시 교회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방언은 오늘날에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은사라 할수 있습니다. 지금도 교단마다 방언을 대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저희가 속한 남침례 교단은 공식적으로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방언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혼자 기도할때는 방언 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전체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방언기도하는 것을 금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방언은 쉽게 말해서 남이 알아 들을수 없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이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집중을 방해하고 혼란을 초래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은 혼자 있을 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방언 할때는 반드시 방언 통역이 있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을 허용하는 교회를 보면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방언 통역이 없이 모두 함께 방언기도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방언의 문제에 대해선 각 교단마다 대처하는 규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 이시간에는 우리 남 침례교단이 가르치는 기본적인 원리만 말씀드렸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주제로 재능과 은사의 차이는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혼돈하고 있는 것은 재능과 은사의 차이라 할수 있습니다. 재능과 은사를 어떻게 다른 것입니까? 쉽게 말하면 재능(Talent) 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반 은총이고 은사라고 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 은총이라 할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을 보면 예수를 안믿어도 노래를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시나 글을 감동적으로 잘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수 송창식이나 가수 나훈아 씨는 노래를 참 잘 부릅니다. 그들은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노래를 잘 부릅니다. 그리고 요즘엔 레전드 드라마 작가라고 할수 있는 김은숙 작가도 소설을 잘 씁니다. 그래서 김은숙 작가가 쓴 드라마는 대부분 대박입니다. “도깨비”“태양의 후예”“상속자들“ ”시크릿 가든“ 이렇게 이 김은숙 작가가 쓴 모든 드라마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방금 언급해드린 이분들은 모두 믿는 신앙인들은 아니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재능은 믿거나 믿지 않거나 관계없이 일반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또 재능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갈고 닦으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업데이트 되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은사라는 것은 내가 예수를 믿고 거듭난 이후에 성령님의 뜻과 필요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사람에게는 은사가 이미 주어진 것입니다. 은사들 중에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우리 인간의 내면과 관련이 된 것이 훨씬 더 많이 있습니다. 남을 섬기고 가르치고 위로하고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 은 모두가 다 우리 인간의 성품에서 나오는 것 입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는 누구나 다 한가지 이상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그 은사는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 일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내게 주어진 은사를 내가 사용하면 물질과 시간적으로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그것과는 관계없이 내가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재능을 사용하고 훈련시켜서 전문성이 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능을 사용해서 성공하고 전문적인 인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이 발달하고 전문화 되어져가고 있는데 왜 우리 인생은 이렇게 메마르고 삭막해져가고 있는 것입니까? 왜 날이 갈수록 우리사회가 이렇게 메마르고 건조 해져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람들마다 재능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따라 살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사를 따라 살아가라 라고 말씀을 합니다. 벧전 4장 10절 입니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은사를 받은 대로 ... 서로 봉사하라‘ 고 말씀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재능이 아니라 은사를 따라 살아갈 때 내가 행복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지고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살아갈 때 교회와 가정과 사회가 건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살아갈 때 보람이 있고 살아갈만한 인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은사를 따라 살아갈 때 감동이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잘하고 목소리가 좋은 것은 재능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고 음대를 나왔다고 해서 그 은사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소리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다 성가대를 한다고 해서 예배시간에 은혜가 되는 것 아닙니다. 재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세련이 되고 전문화가 될수는 있겠지만 감동적이고 은혜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사를 따라 찬양을 하는 것이지 재능을 따라 찬양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노래는 테크닉과 재능을 가지고 잘할수 있고 성공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찬양은 테크닉과 재능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이 재능만 사용하면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는 은혜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은사를 따라 살아갈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11절입니다. 11.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크고 작고가 없이 모두가 다 소중하고 귀중합니다. 섬기고 순종하는 사람도 귀하고 명령하고 다스리는 사람도 다 같이 소중합니다. 귀하고 천하고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서로 서로 가진 은사가 다르다 할지라도 모두가 다 하나님이 주신 귀하고 소중한 은사라고 생각하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신앙생활을 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