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사랑의 본질

Author
kgmcc
Date
2024-03-16 23:44
Views
52
본문 : 고린도저너 13장 1-13절

날짜 : 2024년 3월 17일

<고린도전서 131-3, 13>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 교회는 축복을 받은 교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과 아볼로 같은 훌륭한 목회자들이 사역을 했던 교회이었고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성경과 예수님에 관해 깊이 있는 말씀을 배울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도 많이 나타나서 교회 봉사와 전도도 열심히 했던 교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그당시 고린도 교회안에는 당파 문제와 성적으로 부도덕한 문제 그리고 법정 소송문제와 교회 애찬과 성찬 음식에 대한 문제들이 있어서 교회가 항상 시끄러웠습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지엽적인 문제들로 인해 교회가 시끄러웠고 분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가장 필요한 본질적이라 할수 있는 ‘사랑‘ 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출발점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본문이 기록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사랑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이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모두가 다 ‘사랑은 아름답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랑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사랑과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도저히 연합될 수가 없는 깊고 큰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세상에서 보고 있는 개념과 성경에서 말씀하는 개념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의 본질은 세가지의 특성으로 나누어볼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치성의 차원이고, 둘째는 성숙성에 있으며 마지막 세 번째는 영원성이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1.가치성

지난주에 우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지닌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은사로 인해 교회가 성숙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쟁이 일어나고 교회가 시끄러워졌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일어난 것에 대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주어진 올바른 목적을 알려줍니다. 고린도 전서 12장과 14장을 보시면 은사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 12장과 14장 사이에 오늘 본문의 말씀인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이 끼어 있습니다. 이 사랑장이 여기 중간에 들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믿는 성도들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의 가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의 가치는 이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현상들의 근본이 되고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소금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아무리 귀하고 비싼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음식에 소금이 없다면 우리 인간이 먹기는 쉽지 않습니다. 억지로 몇 번 맛볼수는 있겠지만 그 음식을 다 먹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말 귀하고 아름답다고 할지라도 그 동기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행동은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어려운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말과 행동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음식물에 들어간 소금이 자기 자신을 녹이고 희생함으로서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음식재료에 맛을 내게 하듯이 사랑에도 이러한 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사랑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본문 1-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 문장을 보시면 네가지 은사의 종류가 나옵니다. 무엇입니까? 첫 번째 은사는 1절을 보시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에서 ‘방언‘의 은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은사는 2절 전반부에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에서 ‘예언’의 은사이죠. 그리고 세 번째 은사는 2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에서 ‘믿음’ 의 은사입니다. 마지막 4번째 은사는 3절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에서 구제의 은사 즉 남을 섬기고 도와주는 은사입니다. 이렇게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믿음의 은사 그리고 구제의 은사 4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은사를 사용해도 사랑이 없으면 뭐라고 말씀합니까? 2절 후반부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그리고 3절 후반부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방언하고 예언을 하고 그리고 믿음이 있고 남을 도와주고 구제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마음으로 이런 은사를 행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에게 아무런 유익함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인간은 대부분 사랑보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이별에 관한 노래 나 소설 그리고 드라마가 많은 것입니다. 이별을 하게 된 동기를 보면 사랑이나 자기 희생 보다는 대부분이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서로 상처를 준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을 볼수 있습니다. 같이 살아오던 부부가 헤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들은 여러 가지 말로 포장을 하지만 결국은 서로 함께 지내기 힘들어서이고 이것 역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이라 할수 있습니다. 요즘에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들은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과 부부가 같이 사용하는 통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매달 나가게 되는 지출금액을 서로의 소득에 따라 비율에 맞추어 그 통장에 넣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 또 거기에 맞추어 아이를 돌보는 시간까지 서로 나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 약속한 시간만큼 배우자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그일로 싸우다가 나중에는 이혼까지 하게 되는 젊은 부부들이 많아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혼 전문 변호사로부터 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이기적인 마음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할수 있습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도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기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하고 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을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대부분이 내가 사랑받고 내가 편하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나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가야합니다. 나자신의 아름다움과 가치성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인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적인 모습은 우리가 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이기적인 마음보다는 사랑의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나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의미가 있는 참사랑의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가치가 있는 참 사랑인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34.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참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기준이 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처럼 남을 살리기 위해 내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희생적으로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게 주어진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수는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를 지고 살아갈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 전반부에서 우리의 눈에 사랑의 모습으로 보이는 내용을 볼수 있습니다.

3.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다른사람을 돕고 구제합니다. 그리고 내 몸을 불사르면서까지 희생해서 남을 위해 섬기며 살아갑니다. 정말 희생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다음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사랑이 없으면...’ 성경은 이 선하고 착한 행동의 모습이 곧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과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것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 기준이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이 말씀이 사랑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구제를 하고 봉사를 하고 남을 섬기는 일을 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셔서 내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갈수 있게 되었다.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갈 때 나는 교만해질수가 없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자세가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세상에서 선하고 좋은 일을 하는 자선사업가나 사회 복지사들이 가지는 마음자세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spiritual gifts)나 재능(talents)을 사용할 때 언제나 예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어떠한 선한일을 한다 할지라도 교만하거나 자랑하는 마음을 그나마 가지지 않고 겸손하게 신앙생활 해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

2.성숙성

본문 4-7절입니다.

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고 젊은 사람들일수록 사랑에 잘 빠지고 사랑을 많이 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사랑은 성숙한 사람이 할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한문장씩 살펴보십시다. ‘사랑은 오래참고...’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사람이 오래 참습니까? 아니면 나이가 많은 어른이 더 오래 참을수 있나요? 물론 어른 중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이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이 더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어린아이들과 성숙한 어른 중에 어느쪽이 더 온유하고 시기를 하지않고 살아갑니까?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보면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지 아니하며...’ 어린아이와 어른 중에 누가 더 많이 자랑하고 다닙니까? 누가 더 자기가 잘난체하고 표시내고 교만하게 행동합니까? 이런 원리에서 계속 살펴보게 되면 나이가 있고 성숙한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하면서 살아갈수 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래요.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은 성숙한 사람들만이 행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단어 하나하나가 가진 의미를 살펴보고 분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식적인 차원으로 알아가게 되고 그래서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전체적인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꽃이 왜 아름다운가? 라고 하는 주제를 놓고 꽃을 쪼개고 분석하고 연구를 하다보면 결국은 그 꽃이 가진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결과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 그의미를 분석하고 살펴보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을 대할때 자연스럽게 우리들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음을 느낄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는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성숙한 사람만이 행할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성숙한 사랑을 올바르게 할수 있는 사람은 바로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왜요? 조금전에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는 믿는 성도인 우리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34.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의 사랑은 누가 알수 있습니까? 그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런 사랑을 할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리 믿는 성도들이 행하는 일이 비록 부족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에 고마워서 하는 행동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크고 위대한 선한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그행동을 사랑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그 사랑으로 하는 사랑을 하나님이 참사랑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참다운 가치가 있고 성숙함이 있는 참사랑으로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면서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본질

3.영원성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될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이세상에 모두 다 놔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럼으로 성경은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은 내것이 아니라 단지 내게 맡겨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것이라면 내가 이세상을 떠날 때 내가 가지고 가야 하는데 맡겨진 것이니까 내가 가지고 갈수 없는 것이죠. 내가 사용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주인이 그것은 모두 그냥 놔두고 오너라 라고 하시면 나는 그냥 놔두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돈도 집도 자동차도 그리고 자녀와 남편이나 아내도 이 모든 것은 주인이 그냥 놔두고 오라고 하시면 우리는 내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에서 지금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저 하늘나라에 갈 때 가지고 갈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단 하나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것을 저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8절입니다. 8.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여기에 사랑의 영원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이 지금 현재로 알수있는 하늘나라는 바로 사랑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만이 이세상과 저하늘나라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랑이 영원한 것입니까? 그것은 사랑만이 온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9절 10절입니다.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이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알고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부분적인 것 들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는 모두가 다 온전함의 일부분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전함의 일부분만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것이 올 때’ 라고 말씀할 때 그 ‘온전한 것‘ 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모습을 오늘 본문에서는 ’온전한 것이 올때에는‘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성도는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가지고 온전하신 예수님의 일부분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이 모든 것은 필요없게 되는 것이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서 직접 말씀하시는데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되지 목사나 신학자들의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방언하고 방언 통역하고 예언하는 것도 예수님과 가까이 동행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했는데 이제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는데 아무런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12.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 믿는 성도들이 내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고 말씀을 배우면서 이세상을 살아가고는 있지만 사실은 부분적이고 희미하게 알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 거울은 오늘날 거울과는 달리 구리로 만든 거울이었기 때문에 자기 얼굴 모습을 온전하게 제대로 볼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보고 알고 있는 것은 마치 구리로 만든 거울로 내 얼굴을 비추는 것과 같이 희미하고 부분적인 면만 알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오시면 그분을 내가 직접 보게 될것입니다. 직접 말씀도 듣게 되고 궁금한 것은 물어서 볼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온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성도로서 가지고 있는 믿음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소망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믿음과 소망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내 눈앞에 계시는데 내게 믿음과 소망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단하나 사랑은 계속해서 필요합니다. 왜요? 하늘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입니다. 16.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 나라에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하나님 사랑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할수 있습니까? 바로 그 앞절인 15절을 보시겠습니다. 15.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시인하는 사람)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안에 거하느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신앙생활 해나가는 성도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면서 이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가질수도 없고 알수도 없는 차원의 사랑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마지막 절인 13절입니다

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왜냐하면 이세상에서 사랑만이 온전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하다는 의미는 바로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 일서 4장 10절입니다. 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그 사랑만이 이세상에 있는 유일한 참사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바친 그 사랑만이 이세상에 있는 유일한 참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믿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나타나는 그 선한 행동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사랑으로 행할 때 그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받으시고 훗날 만나게 될 때 칭찬하시고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하여주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남은 생애동안 신앙생활을 해나가실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