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여호와의 유월절

Author
kgmcc
Date
2024-03-24 02:00
Views
27
본문 : 출애굽기 12장 1-11절

날짜 : 2024년 3월 24일

<출애굽기 12장 1-11절>

1.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3.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4.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6.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7.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8.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9.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0.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11.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오늘 이번 주일부터 토요일까지 고난주간입니다. 부활주일 전 한주간을 고난주간 혹은 수난주간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고난을 받으셨던 주간인 것입니다. 오늘 이 주일은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던 날입니다. 유대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다고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다음날 월요일에는 성전에 들어가시기 전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후에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십니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그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변론을 하시고 예루살렘 성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하십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목요일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성만찬을 하시는 중에 일어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붙잡히시고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신 후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십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로마병정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주간에 예수님과 관련되어 일어난 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월절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러군데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예수님을 상징하는 단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례요한이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36절입니다.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36)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5장 7절입니다. 7.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성경은 유월절 어린양을 예수님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먹는 이 유월절사건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할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홉 번째 재앙을 애굽나라에 내릴때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모세가 바로왕에게 가서 전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릴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서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도록 명령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이런일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월절 사건으로 인하여 애굽 나라에서 처음에 태어난 것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처음에 난 초태생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당시 장자는 그집안을 대표합니다. 그러니까 장자가 죽었다는 것은 그 집 전체가 죽은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그 피를 발랐던 집안에는 그날 죽음의 사자가 그냥 지나가서 죽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pass over이고 한자어로는 넘을 유 건널 월 자입니다. 재앙이 넘어서 지나간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 히브리어로는 ‘페사흐’ 이고 신약 헬라어로는 ‘파스카’인데 그 의미도 역시 ‘너머 지나간다’ 는 뜻이 있습니다.

이 유월절 사건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바로왕의 손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사건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온전하게 이루어 집니다. 마귀의 권세 아래 있고 죄의 권세 아래 있었던 우리 인간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로 인해서 구원함을 받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 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1절 후반부입니다. 11.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여호와의 유월절에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였던 내용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그래서 바라옵기는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믿는 성도로서 고난 주간에 가져야 할 마음자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 되기 위해서는

1.흠이 없는 수컷의 어린양을 준비

본문 5절입니다. “5.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흠없고”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고 흠이 없으신 분으로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하셨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후반부입니다. 15.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죄와 흠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육신을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와 흠이 있는 아담의 피가 하나도 없는 분이십니다. 양의 평균 수명은 7년에서 10년 정도인데 개보다도 수명이 더 짧은 편입니다. 그러니까 일년된 어린양은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울 때라 할수 있습니다. 가장 아름답고 건강할때 제물로 바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 앞에 화목제로 바쳐지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수컷은 대표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죽음은 그 가정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대표성의 원리에서 우리는 아담의 범죄가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우리 인간은 죄악속에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 때문에 그 결과로 우리 인간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향한다’ 는 말이 한때의 진리었지만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한다’ 는 말은 영원한 진리가 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 원리로 예수님께서 대표성을 가지고 우리 인류가 진 모든 죄를 지시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의 값을 대신 다 치루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 아담의 후손이었던 모든 사람들중에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줄에 서게 되면 이젠 죄가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에서 사함을 받으니까 죽음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누가요?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9절입니다. 9.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여전히 죄 속에 있기 때문에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선한일을 하고 구제를 하며 살아도 죄인의 신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아버지가 왕이라면 그 자녀는 평민이 아니라 왕족 출신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죽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은 이 육신이지 영은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영과 육으로 되어있는데 육의 죽음은 첫 번째 죽음이고 영의 죽음은 두 번째 죽음 영원한 죽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죽음은 누구나 피할수 없지만 두 번째 죽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할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유월절에는 이 흠없고 일년된 수컷의 어린양이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2천년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는 흠이 없고 죄가 없으신 어린양되신 예수님께서 준비가 되었음을 기억하십시다.

여호와의 유월절이 되기 위해서는

2.어린양을 4일동안 간직해야 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3.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잡을지니’ 그러니까 사람의 숫자대로 어린양을 잡습니다. 각 사람대로 어린양을 취한다는 의미는 어린양의 피는 각각 개인적 믿음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언제 그 양을 잡아야 합니까? 3절 중간을 보시면 이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양을 잡을지니 그리고 6절을 보시면 “6.이 달 열 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러니까 열흘 10일에 양을 취해서 열나흘, 14일에 양을 잡았습니다. 선택을 했던 그 어린양을 4일 동안 간직하는 것입니다. 왜 나흘동안 그 어린양을 간직했던 것입니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이 4일 동안에 선택했던 양이 흠이 있나 없나를 살펴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흠이 없고 온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서도 죄와 흠이 없으신 분이심을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믿는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앞에 예배를 드릴때도 내 마음을 살피고 온전히 준비가 되어있나 없나를 살펴볼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 죄를 대신해서 죽을 어린양을 보면서 네가 나 때문에 죽는구나 생각을 하면 그 어린양에게 어떠한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미안한 마음과 고마움이 교차되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천년전 이번 주일에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4일후인 목요일에 우리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시키기 위해서 잡히십니다. 화목제물이 되기 위해서 잡히셨습니다. 유월절을 준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흘동안 어린양을 보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이 이 고난주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지낼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고난 주간에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어린양되신 예수님을 생각하시면서 감사함과 고마움을 가지고 한주간 생활을 할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호와의 유월절이 되기 위해서는

3.어린양을 먹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8.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불에 구워진 그 고기는 4일전에 골라서 간직해왔던 유월절 어린양을 의미합니다. 그양을 잡아서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그양의 피를 바르고 난후에 그 양을 불에 구워 먹는 것입니다. 자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 고기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양이 살아서 버둥거리면 우리는 먹을수 없습니다. 먹을수 있다는 것은 양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기절하셨다가 시원한 무덤속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제자들이 너무 슬퍼하고 애통하다가 예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는 가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예수님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어서 다른 한 쌍둥이가 예수님이 부활한 것처럼 꾸몄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예수님 부활했다는 거짓말을 퍼트렸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기절하셨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고통가운데 온전하게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도 쌍둥이 형제가 예수님을 대신한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거짓말로 꾸며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요? 아무런 죄와 흠이 없으시니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살리신 것이 아니라 죄와 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리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단 한마디도 진리가 아닌 것이 있다면 거짓말을 한 것이 되는데 절대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실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온전한 진리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유월절 어린양을 먹는 방법이 그뒤에 계속해서 나옵니다.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첫째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습니다. 무교병은 이스트를 넣지 않은 즉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의미합니다. 누룩없는 빵은 별로 맛이 없고 딱딱합니다. 교회들마다 성찬식을 할 때 그때 먹는 빵은 딱딱하고 아무런 맛이 없습니다. 빵에는 이스트가 들어가야 빵이 부드럽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의 설탕과 소금이 들어가야 맛도 있습니다. 그러니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만들어진 무교병은 아무 맛이 없습니다. 나물도 쓴나물이니까 맛이 있다고 먹는 것은 절대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무교병과 쓴나물을 먹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당시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고생했던 날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 고통과 그아픔을 기억하면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찬식을 할 때 우리는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고 그 십자가상에서 겪으셨던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을 기리면서 그 성찬식을 행하여야 합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심을 언제나 기억하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급히 먹어야 합니다.

본문 마지막 11절 중간이후를 보시겠습니다. “11.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이 모습은 집에 있을 때 취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어디론가 떠날려고 할 때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 신을 신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에 지팡이를 잡으면 떠날 준비가 다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잡는다는 것은 그 여행이 짧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길고 험한 여행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으신 노인은 바로 가까운 옆집에 가시더라도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갑니다마는 젊은이들과 중년들은 손에 지팡이를 들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손에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한 것인 굉장히 여행길이 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굉장히 먼 여행길을 하게 될 준비를 하고 난후에 어떻게 하나요? “급히 먹으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긴박성을 의미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머뭇 머뭇거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머뭇머뭇 거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얻고 자유함을 얻는 일에 머뭇거려서는 안된다 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장소에서 나오는 일은 미루거나 차차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차차 시간이 되면 믿지 뭐 이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가족들 중에서 안믿는 사람이 있으면 “그사람이 시간이 되면 믿겠지. 뭐 죽기 전에는 안믿겠나” 이렇게 영혼구원에 관해서는 미루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급히 먹으라“ 그만큼 영혼의 구원에 대한 시급함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옥에 가면 전부 차차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이나 세상의 세력이 있는 자리에서는 시급히 떠나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세째는 이 고기는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고 남은 것은 다 불살라야 합니다.

본문 10절입니다. “10.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남겨두지 말며” 다 먹지 못하고 남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남은 것은 곧 불살라야 합니다. 불살라 버리는 더 이상 그 고기를 먹을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한번 제대로 믿고 받아들이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렸다가 회개하고 다시 믿으면 또 한번 얻게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한번 믿으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면 충분한 것입니다. 또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한번 태어난 자녀는 영원히 그집안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영원토록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죄인이 의인이 된다는 의미는 믿는 성도가 죄를 짓지 않고 선한일만 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선한일과 구제만하며 살아가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 원죄가 사함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그 이후에 태어난 아담의 후손인 우리 모두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죄인 이었기 때문에 죄인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원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함을 함게 되었고 죄와 사망의 신분에서 의와 생명의 신분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게 되는 이 잔 범죄에 대해서는 계속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를 지을때마다 우리는 회개하고 죄용서함을 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점 거칠어지고 세속화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거룩하게 되는 성화되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고 받지 못하고의 차이는 어린양의 피가 그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차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보다 더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에 구원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당시 노예의 신분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건하면 얼마나 경건하게 살았겠습니까? 애굽 사람들이 더 경건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악하고 거룩하다고 하는 차이는 어린양의 피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어린양의 피와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차이가 구원의 여부를 결정 짓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날밤 양의 피를 입구문에 바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면 그집의 장자는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왜 무엇이든지 자꾸 미루고 제대로 귀담아 듣지않고 건성으로 듣는 성품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홉가지 재앙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면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심을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다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4일 동안 충분한 시간을 주신 의미도 여기에 있다고 우리는 생각을 해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지 않고 그냥 건성으로 듣고 지나가버렸기 때문에 장자의 죽음을 맞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문 입구에 발려진 피가 없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이스라엘 백성과 애굽사람을 구별하실수 있으십니다. 캄캄한 밤중이라 할지라도 머리카락 숫자까지도 다 헤아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왜요?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저와 여러분이 의지하고 살아가게 하기 위함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린양의 피를 집집마다 문앞에 바르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성경을 통해 보고 듣으면서도 건성드로 듣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을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화목제로 대신하여 죽으신 어린양 되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 고난주간을 보낼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