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가까울지라도

Author
kgmcc
Date
2020-04-19 01:07
Views
79
본문 : 출 13장 17-22절

날짜 : 2020년 4월 19일

 

 

 

 

<출애굽기 1317-22>

17.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

19.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0.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우리가 차를 타고 운전을 하다보면 갑자기 내가 갈려고 하는 길을 교통순경이 막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는 그길로 들어가야 하는데 교통사고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어짾튼 교통순경 차가 길목을 막고 못들어가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길이 아닌 다른길을 통해 내가 가는 목적지를 모른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길을 들어갈수가 없으니 그냥 뭐 별수가 있나요? 요즘 같으면 네비게이트가 있어서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네비게이트를 작동시키면 되지만 네비게이트가 없었던 그 전에 뭐 별수 없이 그냥 앞에 가고 있는 차를 따라 가는 것이죠. 그런데 앞에 가고 있는 차들이 모두 같은 길로 가면 괜찮은데 중간에 한 두대씩 빠집니다. 그러면 나는 어느차를 따라가야할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느낌이 오는데로 아무차나 한 대만 보고 따라갑니다. 그 차를 한참 따라가다가 보면 이길은 아닌것 같은데 라고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늦은 것이죠. 그때부터는 ‘나홀로 집에’ 가 아니라 ‘나홀로 길에’ 가 된 신분이 됩니다. 나도 모르는 길을 운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가지게 되는 희망은 단 하나입니다. ‘제발 내가 알고 있는 길 이름만 나와라’ 그렇게 한참 헤매다가 이름을 아는 길을 만나게 되면 내가 전혀 엉뚱한 장소에 와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종종 빙빙 돌아갈때가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길이 보이는데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서 다른길로 가는 바람에 한참동안을 헤매면서 인생길을 가야 할때가 있습니다. 복덕방 에이젼트 말을 믿고 내 나름대로 집이나 가게를 수리 하고 정리를 해서 내놓았는데 내가 계획한 대로 집이나 가게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다음에 내가 계획한 일이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는 것 입니다. 아이들을 힘들게 대학교에 보내고 난후에 이제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돈을 벌게 되면 그때부터는 경제 사정이 나을것이라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게 생각처럼 잘 안되는 것입니다. 취직을 해서 부모 호강시켜주기는 커녕 여전히 돈달라고 손을 벌리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는데 돈을 보태줘야 하고 집을 마련하는데 돈을 보태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해온 일이 자꾸만 미루어지는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꿈꾸어 왔던 길이 있었고 내가 그 길로 가면 훨씬 더 빠른 길, 지름길 그리고 남들보다 일찍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 여기가 막히고 저기가 막히는 바람에 엉뚱하게 돌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계획을 했고 마음을 먹고 생각했던 그길을 가게 하지 않고 빙 돌아가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런 케이스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7절입니다. “17. 바로가 백성을 보낸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그러니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 있다는 것이죠. 지도를 보시면 그 지름길을 볼수 있습니다.(지도참조) 이길입니다. 요즘에는 이길이 아니라 바로 이런 길이었다고 하는 반론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원래 가고자 하는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 이라는 점에선 마찬가지라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래 가고자 했던 이길은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기근이 생겼을때 애굽으로 갔던 길입니다. 그리고 이길은 요셉이 종의 신분으로 팔려갈 때 갔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길은 야곱이 가족을 이끌고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려고 갔던 길이었습니다. 이길로 가면 천천히 가도 대강 열흘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길로 인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먼길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모세도 이길을 너무 잘알고 있었습니다. 40년전 자기가 애굽의 궁전에서 도망쳐 나올때 지나갔던 길이었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다시 애굽으로 들어갈 때 지나갔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일부러 돌아가게 하시지 않으면 당연히 이 길로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돌아가게 하셨을까요?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인생길을 내가 계획한 대로 내가 알고 있는데로 가게 놔두지 않으시고 돌아가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왜 똑바로 가게 하지 않고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까?

1. 인간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가 빠른길 지름길로 가지 못하고 먼길을 돌아서 고생을 하며 가야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불순종의 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지 2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 했습니다. 시내산까지의 여정이 기록 된 내용이 바로 출애굽기입니다. 요셉이 애굽땅에서 죽으면서 ‘훗날에 가나안땅에 가게 되거든 내 시신을 그 가나안땅에 묻히게 해달라’ 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죽게 되는 장면에서 창세기는 끝이 납니다. 그리고 이 요셉의 시체를 가지고 애굽을 나와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이 기록된 것이 출애굽기 이죠. 그리고 그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10개월 동안 이 시내산에 머물고 있으면서 율법을 받게 되는데 이때 기록된 구약성경이 레위기입니다. 그리고 이 시내산을 떠나서 가나안땅이 바로 보이는 모압평지 까지의 여정이 기록된 것이 민수기입니다. 그리고 광야생활이 거의 끝날무렵 이 모압평지에서의 기록이 바로 신명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벗어난지 일년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게 되고 성막도 완성을 하고 또 나름대로 군대의 조직을 갖추고 시내산을 출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지파중에서 대표로 한사람씩 뽑아서 가나안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가나안땅을 정탐하고 와서 보고하는 내용은 여러분들이 잘알고 계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외에 나머지 열명은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통곡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원망과 불순종에 대한 벌로써 그들이 광야를 40년 동안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이 민수기 14장 27절에서 30절입니다. 27.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33절입니다. “33.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우리가 인생길에서 훨씬 더 빨리 갈수 있고, 쉽게 지름길로 갈수 있는데 돌아가게 되는 많은 경우는 우리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확하게 이길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녀와 부모사이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업원과 주인사이에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게일이 생각처럼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때는 내가 엎드려서 회개 자복 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 사이가 회복이 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행동 했습니까?

그 뒤에 나오는 민수기 14장 39절, 40절 입니다. “39.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백성이 크게 슬퍼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슬퍼했어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죄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자기들이 가나안땅에 들어서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들은 내용에 대한 슬픔입니다. 그래서 슬퍼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말리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나안땅을 들어갈려고 합니다. 43절부터 45절까지입니다. “43.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가나안땅에 들어가라‘, ’가나안땅을 정복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옷을 찢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할 때 입니다. 회개해야 할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마음을 돌이켜 주셔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가지 말라고 한 가나안땅에 미련을 두고 슬피 울면서 그리고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하면서 가나안땅의 산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서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사람들에게 쫓겨서 도망쳐 내려옵니다. 오늘날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가나안땅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그일은 아무에게나 맡긴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적잖은 사람들이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있는 교회에서 나와서 교회를 세우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를 세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문제가 생겼을때는 같이 통곡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교회를 떠나서는 교회를 세우는 행동을 하는 것을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순종의 죄를 범한 것에 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하는 것 보다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하면서 그 중간의 회개의 과정을 생략해버렸습니다. 슬퍼하면서 가나안땅을 쳐들어가고 있습니다 마는 이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아니라 가나안땅에 가서 정착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한 것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나와서 몇 명이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의기투합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회개가 우선입니다. 뼈를 깎는 회개를 하나님은 보시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래 문제 있는 교회와 화평을 해야지요.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함부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대고 자신의 신앙심이나 명예를 채우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고 아름답지 못한일이 생기게 될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좀 돌아가게 되더라도 당연히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돌아가게 하십니까?

2.우리를 훈련시키고 성숙시키기 위해.

17절과 18절 전반부입니다. 17.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감당하지 못할것 같아서 하나님이 그들을 블레셋 사람 땅으로 지나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당시 전쟁에 능한 블레셋 사람들과 오랫동안 종살이만 하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게 되면 애굽으로 도망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해는 됩니다마는 그래도 한두가지 의문은 생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바다가 있는 쪽으로 인도하시는 바람에 애굽의 바로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추격 해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앞서 가던 구름기둥을 뒤로 가게해서 애굽 군사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짙은 안개로그들의 눈을 가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동풍을 불게 해서 홍해바다를 가르시고는 마르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육지처럼 건너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뒤따라 오던 바로와 그 군사들을 홍해바다에 다 빠져 죽게 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바로군사들한테 하신 것처럼 블레셋사람들한데도 이렇게 싸워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사이에 승리하게 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더 쉽게 지름길로 갈수 있게 되고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르비딤에 이르렀을때에 아말렉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서 전쟁이 벌어집니다. 모세의 팔을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들어 주는 모습은 이때 일어난 장면입니다. 모세가 팔을 들고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기고, 힘들어서 모세가 팔을 내리면 아말렉 사람들이 이기고 해서 곁에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들어주는 장면이죠. 목회자를 돕는 동역자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목회의 현장은 언제나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교훈으로 얻게 됩니다. 자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게 하셨지만 전쟁은 일어났던 것입니다. 시내산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출애굽한지 두 달도 되기전에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에 질까봐 걱정을 해서 돌아가게 한 것도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돌아가게 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성숙시키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지름길로 가지않고 돌아서 갈때 이렇게 생각 했을것입니다. ‘아니. 저길로 가면 빠른 지름길인데 우리가 왜 이렇게 돌아가야 하지?’ 그러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아하, 그래 우리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되면 우리가 이기지 못하니까 이길로 돌아가게 하시는 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자,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빙 돌아가 르비딤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 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붙잡고 의지하는 훈련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 모세를 돕고 협력하는 일을 배우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능력은 블레셋사람과의 싸움을 피해서 돌아가야 할 수준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하라는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블레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강한 군대를 물리칠수 있다’ 라는 믿음을 가질수 있도록 훈련시키기 위한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돌아가는 길을 마치고 가나안땅에 들어갈때는 가나안땅에 있는 여러 족속들을 물리칠수가 있을만한 강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을 정복할 수가 있을 만큼 훈련되고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서 얻을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돌고 돌아가는 길에도 하나님이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인생을 돌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사용하여 더 위대한 일을 하실때가 있습니다. 돌고 돌아서 가는 교회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큰 영광을 받으실 때가 있습니다. 돌고 돌아서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을 사용하여 더 큰 일을 하게 하실때가 있습니다. 돌고 돌아서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일을 이루게하실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서 가는 길은 시간의 낭비가 아닙니다. 돌아서 가는 길은 단순히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닙니다. 우리를 더욱 훈련시키고 더욱 성숙한 자녀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돌고 돌아서 가나안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교훈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더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돌아가는 길을 허용하셨다고 우리 모두 믿음으로 받아들일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돌아갈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21절 22절입니다.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22.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 돌아가는 길이 언제 끝날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 그들앞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오늘도 내일도 보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진작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더라면 내 자식이, 내남편이, 내 건강이, 내 가게가 그리고 내 인생길이 이렇게 돌아가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돌아가게 하심으로서 나를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강한 군사로 훈련시켜 주시고 성숙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옛날 못된 성격들을 다 죽이게 하시고 이제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남을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남을 살리는 성숙한 심령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비록 돌아가는 길 중에 있다 할지라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내게 주어진 이 인생이 짧다 할지라도 그래도 돌아가는 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께서 계획해놓으신 위대한 일을 이룰수 있을만큼 충분히 저와 여러분을 이땅에서 살아갈수 있게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모세와 아브라함처럼 늦게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늦게까지 나를 사용하실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지난 4월 15일 총선에서 우파 보수 진영이 대패해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돌고 돌게 하심으로서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 돌아가게 하신다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오는 길을 가는 동안에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다 더욱 훈련되어지고 성숙되어질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퍼지고 있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의 모든 분야가 셧다운 되었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들 모두는 아직도 얼마나 돌고 도는 길을 가야 할지 모릅니다. 공장이나 회사나 가게는 문을 열어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그냥 주변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주변을 돌고 돌고만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약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고 난후 성도들 사이는 두가지 종류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돌고 돌아가는 길을 가는 동안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돌고 돌아가는 동안 나태하고 게으른 신앙생활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멀어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돌고 돌아가는 길 자체가 좋고 나쁘다 라고 평가할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정말 유익한 길인 것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을 모세처럼, 그리고 아브라함처럼 돌고 돌게 하시고, 비록 늦은 나이라 할지라도 사명자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언제나 순종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