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부활에 대해 다르게 반응 하는 사람들

Author
kgmcc
Date
2024-03-31 00:4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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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요한복음 11장 43-53절

날짜 : 2024년 3월 31일

<요한복음 11장 43-53절>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요한복음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곱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2장에 나타난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적은 4장에 나오는 왕의 신하 아들을 고치는 기적 이고 세 번째로는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연못가에

서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기적입니다. 네 번째 기적은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상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던 사건입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기적으로는 갈릴리 바다위를 걸어오시고 베드로를 바다 위를 걷게 하셨던 기적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의 기적은 9장에 나오는 눈먼 맹인을 보게 하시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 기적으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장면인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에는 일곱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을 행하신 것을 우리는 다른 복음서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자랑하기 위해서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세상에 오시지 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계시면서도 얼마든지 병자를 낫게 하시고 죽은자를 살리실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태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셔서 이렇게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단한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 메시야이심을 믿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은 기적 이라기보다 표적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기적과 표적의 차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어서 무덤속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기적을 행하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42절 후반부입니다. “42.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서 그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그앞에 나오죠.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주변에 있는 무리를 위해서입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게 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이 말씀 하옵는 것은‘에서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을 의미 합니까?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나사로야 나오라”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듣고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나옵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나 무덤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기적이 일어나는 목적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시고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따로 하나님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0절입니다. 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하나이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을 같은 하나님으로 믿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2장 44절과 45절입니다. 44.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것을 곧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7장 16절입니다. 16.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내 교훈은(말씀) 내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따로 하나님 따로 생각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의해 나사로가 살아서 무덤속에서 걸어나옵니다. 본문 44절입니다.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죽은 자가(나사로)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오는데” “나사로야 나오라”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이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을 본 사람들이 세가지 종류로 나뉘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고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면서 세가지 종류로 나뉘어지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대로 신앙생활을 해나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첫째 믿는 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주변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목적대로 반응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26절입니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은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만 해서는 그 누가 믿겠습니까? 말로 못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말로는 무엇이든지 다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죽은자를 부활시키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사망한 나사로가 생명을 가지게 되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믿었습니까? 45절 전반부를 보시면 “마리아에게 와서” 입니다. 마리아에게 왔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마리아는 평상시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무엇보다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온 여인입니다. 자기 언니 마르다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마음이 분주해도 이 마리아는 자기 언니를 돕는 일보다는 예수님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리아에게 왔던 사람들이 믿었다 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왜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성향이 비슷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와 성향이 잘맞지 않으면 멀리하고 자기와 성향이 비슷하면 가까이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에게 온 사람들도 역시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살았던 사람이라 할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다는 사실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보십시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38절입니다 38.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말씀이 마음속에 거하지 않는 사람)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그가 보내신 이를(예수) 믿지 아니함이라” 왜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너희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마리아와 평상시에 마리아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며 살아온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남은 생애동안 말씀을 마음에 담고 하루 하루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기적을 경험할때마다 더욱더 믿음의 생활을 하며 살아갈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둘째 알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본문 46절입니다. 46.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알리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고 알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알려야만 이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4절입니다. 14.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래요.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복음을 전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리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알수있나요? 좀전에 살펴본 본문 46절 앞부분을 보시면 “그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죽일려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당시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마음을 이사람들이 몰랐겠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왜요? 종교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보다는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더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사람들은 같은 현장에 있으면서 똑같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평상시에 말씀이 내 마음에 거하고 있느냐 말씀이 내 마음에 거하지 않느냐가 이런 차이를 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내 심령에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바리새인에게 가서 알렸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직접 보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사람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뜻과는 정반대로 행동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하고 비극적인 일입니까?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보다는 목사나 장로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말에 더 순종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나 장로와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의 말씀대로 행하다면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하는 말씀과 다르다면 주님의 말씀에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이 내 심령에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으로 분별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갔던 이런 사람들도 사용하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18절입니다. 18.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바울이 선교 여행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자 평상시에 바울의 그늘아래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서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에 더욱 힘썼습니다. 심지어는 바울의 위상을 깍아 내리면서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흠집이 생겼지만 예수님이 더욱 전파되어 지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바울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좋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 할지라도 이로 인해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수가 있게 되었구나 라고 우리는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에 대한 말을 할 때 일반 사람들이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믿는 성도들이 고칠 것은 고치고 바르게 알려줄 때 예수 그리스도가 일반사람들에게 더욱 더 전파되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룟유다와 같은 사람도 사용하셔서 복음 사역을 완성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들 통해서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예수님을 올바로 믿는 성도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럴때 예수님이 하신 말과 행하신 일을 알리는 것이 나자신에게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중에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마지막 세번째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문 마지막 절인 53절입니다. 53.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그들이 누구입니까? 본문 47절입니다. 47.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왜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까? “이사람이(예수)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고 심지어는 죽은 자도 살리는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여기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기적’이라 말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적와 표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기적은 이적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적이나 이적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수가 없고 행할수도 없는 일 즉 자연의 법칙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표적은 다릅니다. 표적은 기적이나 이적을 행한 사람이 어떤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Sign"입니다. "Sing"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보십시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표지판에 "Rest room 5 mile" 이라는 사인판을 보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5마일 더가면 화장실 휴게실이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5마일 정도 가게 되면 화장실 휴게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사인“이 증명이 된 것이죠. 이것을 Sign 즉 표적의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은 기적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표적을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표적인 것입니다. 어떤 표적입니까? ”내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다“ 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표적인 것입니다. 표적이니까 예수님께서는 훗날에 우리에게 증명해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이땅을 떠나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증명되어질 것입니다. 자, 그런데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한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 표적인 것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은 예수님이 의도하신 목적과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달랐습니까? 그다음 48절입니다. 48.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모든 사람이 믿는데 무엇을 믿는다고 생각합니까? 로마 정부를 무너트리고 유대 나라를 독립시킬수 있는 지도자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해서 독립운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나라가 가만히 있지 않고 군대를 보내 이 유대나라를 멸망시킬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50절입니다. “50.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한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그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민족을 위하여 예수를 죽일려고 했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예수를 죽일려고 했습니다. 명분은 민족과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종교적 지도자와 사회적인 신분을 계속 해서 지키기 위해서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밥그릇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에도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에 속한 교회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지금 러시아 푸틴이 저렇게 사악한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합니다. 뿐만아니라 이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터에 나가 싸우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순교하는 것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다 라고 망발을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 과 같은 신분에 있는 러시아 총 대주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것 뿐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죽이고자 했던 예수님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굶주리고 가난한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세상 뿐만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도 소망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을 위해 예수님은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이 이러한 예수님을 죽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지도자들이 실제로 죽였던 것은 아무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러시아 총대주교가 전쟁을 지지하고 이 전쟁은 성전이기 때문에 싸우다가 죽는 것은 순교이다 라고 망발을 하는 것은 아무 힘이없고 연약한 사람들을 전쟁터에 몰아 죽이는 사악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예수님을 죽이는 아주 사악한 행동입니다. 그당시나 오늘날에나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죽이고 힘없는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는 일을 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고 구세주이심을 믿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표적을 보면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표적을 보면서 우리도 나사로처럼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까? 본문 44절입니다.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인해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나사로처럼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사람의 심령속에 미움과 시기와 악한 영에 묶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있을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고정관념에 묶여있고 이기심에 묶여있고 질병에 묶여서 힘차게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한 영혼들을 우리는 풀어놓아 자유롭게 다닐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풀어놓아 자유롭게 할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주님의 말씀안에 우리는 거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리아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처럼 말씀이 마음속에 거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요. 일단 말씀이 마음속에 거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죄를 짓는 것도 있겠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그것보다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가 힘들어서 죄를 짓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양의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손해보면서도 이해하고 인내하면서 감사하는 사람은 양입니다. 염소와 같은 사람이 있어도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저사람을 사용하게 하시는구나 참 감사하다라고 생각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양입니다. 이사람 저사람 비판하고 이사람 저사람 시험받게 하는 사람은 염소입니다. 화가 나고 성질이 나쁜 사람이 염소일수 있지만 같이 머리로 처박는 나도 같은 염소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질이 안좋은 성도들과 이웃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도 감사하십시다.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내 곁에 한 마리 염소를 두게 하셨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무엇보다도 악한마음을 가지지 않고 말씀에 붙들려 생활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바라옵기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 하신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믿으심으로 말미암아 무덤속에 있는 것과 같은 저와 여러분의 심령이 살아 역사하는 심령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