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열매를 얻는 길

Author
kgmcc
Date
2024-04-28 00:49
Views
36
본문 : 빌립보서 4장 15-20절

날짜 : 2024년 4월 28일

<빌립보서 415-20>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번 주를 합하면 세 번에 걸쳐서 빌립보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쓴 목적은 그당시에 빌립보 교회안에 들어온 이단사상을 경고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목적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 자신에게 보낸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답장의 의미도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다 라고 하는 소식을 듣게 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선물을 준비해서 교회 지도자인 에바브로디도 의 편으로 보냅니다. 이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물을 받고 난 이후에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 선물에 대해 바울이 기뻐하고 칭찬하고 있는 모습을 여러군데에서 볼수 있습니다.

10절 전반부입니다. 10.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14절 후반부입니다. 14.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잘하였도다” 16절 후반부입니다. 16.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8절 중간부입니다. 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렇게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자기에게 보낸 선물에 대해 기뻐하고 칭찬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축복하는 말을 합니다. 18절 후반부입니다. 18.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절 후반부입니다. 19.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바울을 도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선교를 하게 되면 물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헌금을 해서 사도바울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때에...’ 스크린을 보시면 그당시 마게도냐 지역안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그리고 베뢰아 도시가 있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노스캐롤라니아 주 라고 하면 그 주 안에 샬롯 과 랄리 그리고 그린스보로와 같은 도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도사역 초창기에 사도 바울이 빌립보 도시를 떠나서 계속 전도여행을 할때 그당시 빌립보 교회 외에는 아무도 바울이 전도하는데 필요한 물질을 돕지 않았던 것입니다. 16절을 보시겠습니다.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바울이 빌립보 도시를 떠나 그 다음으로 데살로니가 도시에 갔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도시에 있을 때 바울은 자기가 직접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살전 2장 9절입니다. 9.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형제들아‘ 누구입니까? 데살로니가 전서이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죠. 계속해서 보시면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바울은 그당시 데살로니가 도시에 3주 정도 있었는데 스스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하면서 복음사역을 하는 사도바울에게 빌립보 교회가 두 번씩이나 필요한 것을 보낸 것입니다. 그당시는 이제 막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던 초창기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부터 적극적으로 바울을 도와 복음사역에 힘썼던 것이죠. 많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제 바울은 나이가 들었고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인생 마지막 순간에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이때까지도 바울을 돕고 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바울을 도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적극적인 협력 때문에 바울은 힘든 환경속에서도 풍족한 마음으로 선교 사역을 해나갈수 있었습니다. 18절 중간부분입니다. 18.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내가 풍족하니” 그리고 바울이 지녔던 풍성한 마음처럼 빌립보 교회 성도들도 같이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성도들도 풍족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바울이 풍족한 마음을 지니고 선교사역을 해나갈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환경속에 있다 할지라도 바울처럼 그리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풍족한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극복해 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비결은

1.나눔의 삶에 있음

조금전에 살펴보았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는 생활에 힘썼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은 직후부터 계속해서 나누는 삶을 살아갈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고린도 후서 8장 1,2절입니다. 1.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마게도냐 교회들은 빌립보 교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큰 기근이 생겨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그리고 아가야 지역에 있는 이방 교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에 마게도냐에 있는 빌립보 교회가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가 앞장서서 구제 헌금을 마련해 예루살렘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풍족해서 구제헌금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 있었고 극심한 가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성하게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을 굶주리고 있는 예루살렘 지역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행동할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빌립보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받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입니다. 복음 전파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위치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던 사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성령 충만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이후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는 성도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서 소 아시아와 갈라디아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그리고 로마지역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모든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복음의 빚을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15장 27절입니다. 27.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저희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이방교회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빚진자니‘ 에서 그들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파송하는 선교사들로 인해서 이방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극심한 흉년을 만나서 먹을것이 없게 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돕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나누는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돈많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닙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할지라도 나누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눌 것이 있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이렇게 나누는 삶을 살아갈 때 풍성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나가게 됩니다. 어떻게 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고후 8장 9절입니다. 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이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부유하신 분이십니다. 하지만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부요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롯하여 가장 귀한 생명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나누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받았기 때문인 것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나누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사도바울의 나누는 삶을 통해 자신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성장하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들이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고 실천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남을 돕고 남을 섬길수 있다는 것은 곧 풍성한 마음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선물을 받은 것을 기뻐한 것보다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더 기뻐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입니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바울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 보다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 기뻐한 것입니다. 열매는 곧 풍성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지금 저희 집 뒷마당에 토마토와 호박을 심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토마토와 호박이 열릴 것입니다. 토마토와 호박은 열매입니다. 그 열매를 우리 가족들이 먹고 또 이웃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열매는 나누는 삶을 의미하고 나누는 삶은 즉 열매는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나누는 삶은 곧 풍성한 삶을 해나가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당시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었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가운데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재정적으로 미약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선교비를 보내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할수 있는 것은 나누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온라인 교회 성도님에 의해서입니다. 풍족한 마음을 가지고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님에 의해서 이렇게 교회가 선교를 계속해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작은 교회가 아니라 크고 풍성한 교회입니다.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정한 부자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언제나 돕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그래서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비결은

2.자족하는 삶에 있음

풍성한 마음은 얼마나 가졌느냐 하는 소유에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풍성한 마음은 바로 자족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소유를 따지게 되면 우리는 만족 할수 없습니다. 물질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바닷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더 갈증이 생기는 것처럼 돈을 모으고 돈을 벌면 자꾸 더 돈을 벌려고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만족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에서 시작이 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배운 것이 있다면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본문 11절입니다.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사도 바울은 어떠한 상황을 만나게 되어도 자족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12절입니다.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모든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다음 13절입니다.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는 것을 배웠다” 는 의미입니다.

배가 고플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배가 부르게 되는 법을 배웠다 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병이 났을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게 되는 법을 배웠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배가 부를때나 배가 고플때나 건강할때나 병이 들었을 때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 마음속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난다 라고 하는 사실을 배웠다‘ 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배웠습니까? 경험을 통해 배운 것입니다. 처음부터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의 병이 낫기 위해서 그리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수없이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육신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가시는 그대로 있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으로부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기뻐하고 평강의 마음으로 지낼수 있게 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바울은 배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병든자를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은 가난함과 질병 속에 서라도 기뻐하고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수 있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1장 21절입니다. 21.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것도 유익함이라. 만일에 돈이나 건강이 사도 바울을 행복하게 하고 감사하게 한다면 바울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돈이니...‘ ’내게 사는 것이 건강이니...‘ 하지만 바울은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이 한가지 사실을 믿고 살아갈 때 그 어떠한 환경속에 있어도 기쁨과 평강의 마음으로 살아갈수 있음을 바울은 배웠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저와 여러분도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속에서라도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자족하는 방법을 배움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풍성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는 비결은

3.축복하는 삶에 있음

23절입니다.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미국 성도님들은 “God bless you" 이렇게 축복을 종종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축복하는 것은 목사님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와 같은 목회자 뿐만 아니라 우리 믿는 성도들 모두에게는 남을 축복하는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 축복권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심으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창 12장 3절입니다.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인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축복의 권한을 주었다면 목사님뿐만 아니라 장로님, 집사님, 성도님들 모두가 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축복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는 목사님이 축도를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믿는 성도들은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수 있어야 합니다. 헤어질때도 'God bless you!' 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전할수 있어야 합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잘먹고 잘살게 되었어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못먹고 못살게 되었어도 기쁨과 평강의 마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는 축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리합니다.

믿는 성도들은 풍성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누고 돕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나누고 돕는 삶이 바로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든지 자족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은 자족하며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저주하고 비난 하는 것이 아니라 축복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저주하면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게 될 것이지만 내가 축복을 하면 상대방도 축복 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서로 나누고 돕고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자족하며 남을 축복하며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풍성한 마음으로싱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