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마라나타 신앙자세

Author
kgmcc
Date
2024-05-05 00:22
Views
46
본문 :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날짜 : 2024년 5월 5

<고린도전서 16장 13-24절>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마지막 장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이 고린도전서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22절 후반부입니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오시옵소서‘ 헬라어로는 ‘마라나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말씀과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20절입니다, “20.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마라나타’ 이렇게 고백하면서 성경은 끝을 맺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 재림하실 주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인생을 함부로 살아갈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마치면서 다시 오시게 될 주님을 의식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고린도전서 마지막에 기록된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내가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1.영적인 물질관의 인생을 가지고 살아야 함

1절 말씀입니다. 1.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바울이 갈라디아교회들에게 무엇을 명령했습니까? 바로 그 앞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연보 즉 헌금에 관하여 바울이 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헌금의 목적은 바로 성도를 위하는 연보이었습니다. 성도를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그당시 예루살렘 지역에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큰 기근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갈라디아 교회(갈2:10)나 마게도니야 교회는 아주 헌신적으로 헌금을 준비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습니다. 지난주에도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마게도냐 지역에 있던 빌립보 교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왔습니다. 그당시 마게도니아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풍성한 헌금을 드렸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 2절입니다. 1.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2.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8:1, 2). “그들의(마게도냐 교회 성도들)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이 있었지만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풍성하게 헌금을 해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이 처한 환경과 비교를 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더 잘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헌금에 대해서 너무 인색했습니다. 그대신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누가 더 훌륭한가? 누가 더 신령한가? 어느 당파가 숫자가 더 많은가? 그런 것은 경쟁을 하고 자랑을 했지만 누가 더 주님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물질을 드리는가? 이런 한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겉으로 볼 때에 아무리 신앙생활 잘 하는 것 같아도 물질생활을 어떻게 하는가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성숙함을 알수 있습니다. 제가 잘아는 어느 교회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성도님, 저는 성도님들께서 드리신 헌금 액수 리스트를 예배후에 가장 먼저 직접 점검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을 드리는 액수를 보면 저는 여러분의 영과 육의 상태를 제일 잘 분별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달사이에 헌금 액수가 갑자기 떨어졌다면 그 성도님은 영적으로나 아니면 육적으로 무슨일이 일어난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그 성도님을 위해 기도를 하면서 관심있게 지켜봅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신 목사님이 사역하는 그 교회는 북 버지나아 지역에서 가장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온 50퍼센트 이상을 선교비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헌금 하는 모습이 곧 영적인 성숙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이런 면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너무나 이기적이고 베풀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헌금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2.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매주 첫날에” 당시 마지막 날은 안식일 즉 토요일이었으니까 여기서 매주 첫날은 월요일이 아닌 일요일, 즉 주일입니다. 주일날 아무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드리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계획하거나 아니면 생일을 축하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각자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여행을 하거나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교회에 예배하러 올 때에 준비된 마음과 물질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돈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푼이라도 아끼고 저축할려고 합니다. 물건을 사도 세일하는 아이템만 골라서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을 모아 나와 나의 가족의 앞날을 위해 사용할려고 하는 마음이 저마다 다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정말 나의 미래를 생각하고 가족들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입니다.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하늘에 저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저축한 것은 잃어버리지 않고 반드시 보상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하나님 나라에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존재인 것을 믿는다면 이세상이 다 인 것처럼 살아가는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물질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땅이 아닌 저하늘 나라에 쌓아둔다고 하는 영적인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2.믿음으로 깨어 있는 삶.

13절입니다.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어떻게 깨어 믿음에 굳게 서는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습니까” 그 뒤에 나옵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 사실 전반적으로 볼 때 여자 보다는 남자가 더 강하고 힘이 셉니다.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더 세다면 ‘여자답게 강건하라’ 이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말은 여자를 차별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사소한 문제에 부닺치게 될 때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살아가라’ 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온실안에서 곱게 키워지는 식물이 아닌 들판에서 자라는 식물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속에서도 주님을 붙잡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안에 여러 파당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 성도는 자기 새엄마와 같이 살면서 교회에 출석했습니다. 교회 성도들끼리 법정에 소송을 거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서 친교를 할 때 어떤 사람은 배불리 먹고 어떤 사람은 먹지도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문제만을 바라보면서 실망을 하고 상처받고 교회를 떠난 성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문제를 만나게 될 때 흔들리지말고 남자답게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당시 고린도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래서 무역경제가 아주 활발하였고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돈이 있고 외부의 사람들이 잠시 들렀다가 떠나는 일이 많으니까 당연히 감각적이고 타락된 유흥적인 문화가 아주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타락되었는지 그당시 사람들은 타락한 사람들을 볼 때 ‘그사람은 고린도 사람과 같다’ 라는 말이 생길 정도 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역에서 올바른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믿음에 굳게 서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누가 믿음에 서서 깨어 있는 성도입니까? 남자처럼 강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저런 문제가 일어나도 넘어지지 않고 강건하게 견디어 내는 사람이 믿음에 굳게 서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서 감각적이고 타락한 유흥적인 문화가 날마다 유혹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강하고 굿굿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바로 믿음에 굳게 서서 깨어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자지 말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냥 육신적으로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깨어있어야 합니까?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깨어있어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하늘나라에 가게 됩니다. 그럼으로 우리 믿는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13장 35, 36절입니다. 35.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깨어서 살아가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바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남자답게 강건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어려운 상황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자세가 문제입니다. 내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면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새 역사를 창조할 수가 있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여호수아를 보십시오. 자기가 섬기던 지도자 모세가 죽고 나서 여호수아는 앞날에 대하여 생각을 하면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붙잡고 전진할수 있었던 것은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6절입니다. “6.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삶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한번 강조해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합니다. 1장 9절입니다.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네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게 하시니라”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수 있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이런 저런 환경속에서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야 할 순간들을 만나게 될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는 이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담대하게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같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믿는 성도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3.동역자를 귀하게 여기는 삶

오늘 본문인 16장을 보면 바울과 같이 사역을 했던 많은 동역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디모데, 아볼로, 스데바나, 브도나도와 아가이고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이렇게 많은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성도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그냥 오늘 본문 마지막 내용만을 기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23절과 24절입니다.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은혜가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이렇게 사람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마지막을 장식해도 내용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일일이 한때 자신과 동역을 했던 성도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왜요? 그것은 같이 사역을 했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동역자들 중에서 두사람만 이시간에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한사람은 잘아시는 디모데이고 또 다른 한사람은 생소할수도 있는 스데바나입니다. 10절입니다. 10.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그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디모데가 이르거든” 그당시 에베소에 있던 바울은 자기가 고린도에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고린도에 갈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는 대신에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보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고린도 교회를 세운 바울이 오지않고 아직 나이가 어리고 젊은 디모데가 오면 실망하는 마음이 생길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디모데를 반갑게 대하기보다는 차갑게 대할 것을 염려한 바울이 다시한번 권면합니다. 11절입니다. 11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누구든지 그(디모데)를 멸시하지 말고... 우리가 지난 번에 잠시 살펴보았지만 고린도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파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파의 지도자가 아니면 비판하고 그 파에 속한 성도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바울이 디모데 대신에 아볼로를 보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볼로가 거절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에는 가지 않을려고 했겠습니까? 아마도 아볼로 자신이 고린도교회에 가면 아볼로 파에 속한 성도들은 좋아하겠지요. 하지만 다른 그룹들은 자기를 비난하고 비판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안에 더 큰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볼로가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을 염려해서 가지 않았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분열이 되어 있는 교회에 바울이 자기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를 보내면 어떤일이 생기겠습니까? 바울파들은 분명히 반가워하겠지만 그 외에 다른 파들인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들은 디모데를 멸시하고 비난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 디모데를 대적하거나 멸시하지 말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물론 디모데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마음이 착하고 순수한 심성이 있지만 그 반면에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딤후1:4). 이러한 디모데를 두고 목회자가 왜 저렇게 나약한가? 남자답지 못하는가? 이런식으로 비난하고 멸시할수 있습니다. 사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다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주의 종들도 다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들을 잘 영접하고 동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절 후반부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10. ...그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라”

주님이 세우신 종이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일에 힘쓰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고 영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이 세우셨다면 그 사람이 잘했거나 못했거나 그것은 모두가 다 주님이 하실 일입니다. 주님이 책임지셔야 할 일이지 우리 성도들이 이렇다 저렇다 해야 할 영역은 아닙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을 볼 때 그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귀하게 여기고 대접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기에 우리는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 뿐만 아니라 스데바나 집 사람과 그 외 다른 동역자들도 귀하게 여길 것을 권면합니다. 15절 16절입니다.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스데바나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고 얻은 첫 열매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아가야 지역안에 있기 때문에 “아가야의 첫열매요” 라고 표현한것입니다. 이 스데바나라는 이름은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 스데바나의 가정을 참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스데바나는 앞에 나서서 모임을 이끌어나가는 리드쉽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은사나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뒤에서 교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살피고 그 부족한 것을 말없이 보충해주는 훌륭한 동역자였습니다. 사실 스데바나는 고린도 교회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나중에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에게 텃세를 부릴수도 있습니다. 교회 개척멤버로서 대접받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데바나는 겸손하게 남을 섬기는 일을 하며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교회의 성도들을 귀한 동역자로 여기며 신앙생활을 해나갈 것을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이런 저런 문제점이 보여질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사용하신다면 우리도 귀하게 여기고 협력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내용의 핵심은 아마도 오늘 본문 14절에 있다고 제 개인적으로 생각해봅니다. 14절입니다. 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저와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교회와 직장과 가정생활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사랑이 있으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그럼으로 바라옵기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에 교회에서와 직장에서와 가정에서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서 내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사랑으로 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세상 마지막날 주님이 다시오실 때,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될때 모두가 사랑의 나라에서 사랑의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을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