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경제적인 어려움이 올때

Author
kgmcc
Date
2024-05-26 01:08
Views
53
본문 : 창세기 12장 10-17절

날짜 : 2024년 5월 26일

<창세기 12장 10-17절>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우리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이 말은 우리 인간이 성공을 할려면 몇 번이라도 실패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이다’ 라는 사례로 종종 에디슨의 인생을 말하기도 합니다. 발명의 왕이라고 불리는 에디슨은 무려 2000번의 실패를 한 이후에 전구를 발명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하고 난이후 마침내 미국 대통령이 된 링컨의 사례를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터넷에서 결제를 쉽고 안전하게 거래할수 있는 만들어진 결제 시스템인 페이팔이 있습니다. 이 페이팔 시스템을 만들어서 20대에 억만장자가 된 맥스 레브친도 역시 페이팔 성공을 하기 전에 6번을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사람들은 주장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아무 실패도 없이 성공만을 하는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미국 에모리대학의 다이워스 교수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배들리 스타츠 교수가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실패와 성공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먼저 몇가지 질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바탕으로 해서 연구조사를 해나갑니다. 그들이 가졌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첫째는 실패가 성공으로 이어질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나의 실패가 훗날 나의 성공으로 이어질까? 이고 그리고 남의 실패가 나의 성공으로 이어질까?로 이렇게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실패가 아닌 성공에 관한 것으로서 지금 나의 성공이 나중에 나의 성공으로 이어질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남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질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이 두 교수는 연구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막연한 실패와 성공이 아니라 나의 실패와 남의 실패 그리고 나의 성공과 남의 성공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가지고 실패와 성공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것입니다. 이 두명의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메사추세츠 병원에서 외과 의사들이 새롭게 개발된 off pump CABG 라는 심장병 수술 성공률을 추적 조사를 해나갑니다. 이 off pump CABG 심장 수술방법은 심장을 정지시키지 않고 수술을 하는, 새롭게 개발이 된 심장 수술법이었습니다.

이 연구팀은 메사추세츠 병원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외과의사 71명으로부터 새로 개발된 심장수술방법으로 총 6516회의 수술을 집도한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이 연구팀이 전체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살펴본 최종 변수는 '수술사망률'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수술 후에 환자가 사망을 했다면 실패이고 환자가 생존했다면 성공이라고 본 것입니다. 결과는 어떠했겠습니까?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과거에 실패를 경험한 의사는 그 다음 수술에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았습니다. 한두번 수술에 실패한 의사들은 이후에도 계속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이 결과만 놓고 본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가 아니라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인 셈인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이 연구팀은 왜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깊이 있는 분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크게 두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전의 실패는 이후에도 실패를 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첫째는 실패를 한 사람이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는가 하는 문제이었습니다. 실패를 한 사람은 그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사람이나 환경에 돌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이 연구팀이 수술에서 실패를 한 의사들을 만났는데 대부분 의사들이 수술할 당시에 처했던 환자의 상태나 만족한 수술을 하기에 부족한 당시 환경 탓으로 돌렸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실패를 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게 되면 나중에도 역시 마찬가지 실패가 생기는 확률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심장병 수술에 실패한 사람들은 자신이 한 실패에 좌절감을 느끼고 이후에 다시 도전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한두번 실패를 하고 더 이상 도전을 하지 않았으니까 실패률이 높이 유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이 새로운 심장병 수술에 성공한 의사는 그 다음 수술에도 성공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성공이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 새로운 심장병 수술에 도전해서 성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구팀은 수술에 실패를 한 의사를 가까이에서 목격을 해왔던 의사들의 수술 성공률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른 의사가 집도한 수술의 실패를 목격을 했던 의사들의 수술 성공률은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겪은 실패는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지만, 다른 사람이 겪은 실패는 자신이 성공하는 실마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면서 자기 자신을 검토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할려는 마음자세가 있었기 때문으로 이 연구팀은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하나 흥미로운 점은 다른 사람의 성공은 자기 자신의 성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은 흥미꺼리가 될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커다란 동기 부여는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두명의 교수가 이끈 연구팀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한 실패는 후에도 실패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반대로 과거에 자신이 성공한 경우는 미래에도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한 실패를 목격한 사람은 후에 자신의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이 한 성공은 흥미꺼리는 되겠지만 자신의 성공과는 별 관련이 없다“. 그리고 미국 심리학자인 리처드 파슨이 이 연구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자신의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실패와 그리고 자신의 성공으로부터 배운다". 그러니까 우리는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면서 성공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 오늘 본문은 실패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면서 배울때 훗날에 내가 성공할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실패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아브라함의 실패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행할 수가 있는 문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0절입니다.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이 심한 기근 때문에 가나안땅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라고 본문의 말씀은 시작합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가고 있는데 비가 내리지 않는 가뭄이 오랫동안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먹고 살아가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우리 인생에서 쉽게 일어나는 문제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나에게 올때 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실패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아브라함은 실패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실패를 했지만 그 실패에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더 성숙하고 더 성장할수 있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일어났을때 아브라함이 실패했던 원인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게 될때 아브라함과 같은 실패를 하지 않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될 수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이 행하였던 실패는

첫째로 하나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0.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지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다 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지나치게 비난을 해서는 안됩니다. 애굽으로 내려 갈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람이 당연히 그럴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을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의 장소를 옮길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신앙생활을 해온 교회를 옮길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장소를 옮겼다 라는 문제만을 가지고 그 사람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해서는 안됩니다. 장소를 옮긴 것은 잘못한 행동일수도 있지만 잘했던 지혜로운 행동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다 중요하게 보아야 할 요인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실패했다고 우리가 말할수 있는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냐 그렇지 아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본문 앞에 있는 창세기 12장 4절입니다. "4.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에서 가나안땅까지 왔습니다. 약 400마일이나 되는 거리입니다. 400마일이면 약 650킬로 미터이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두배가 되는 거리입니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니까 짧은 거리가 아니죠. 그리고 아브라함이 마침내 세겜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창세기 12장 7절입니다.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내가 이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땅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요? 하나님의 뜻이 그 가나안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생기고 기근이 생기게 되자 아브라함은 포기를 하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도피라고 할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모습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내 앞에 어떤 장애물이 생기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 보다는 그 장애물을 피할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득불 피해야만 했던 이유를 내세웁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이 땅에서 살기를 원하신다면 나에게 왜 이러한 어려움을 주시는가?” 라고 아브라함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피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했다는 이유를 댈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내가 잘되고 못되고를 기준으로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수 있지만 못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16장 33절입니다. “33.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그래요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제자라 할지라도 이 땅을 살아갈 때에 환란은 있을 수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을 합니다. 그때 환난을 피해라 라고 말씀합니까? 담대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담대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어려움을 만나게 할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에도 가뭄이 생기고 흉년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자리를 피해야 합니까? 장소를 옮겨야 합니까?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기도하는 것 보다는 단순히 힘들고 어렵다 라고 하는 그 사실 때문에 쉽게 옮길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이 한 첫 번째 실수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실패한 원인은 장소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았던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이런 저런 모양의 어려움이 올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움이 오자 그동안 붙잡고 의지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놓았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쉽게 자신의 삶의 터전을 옮겼던 것입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인생에 실패가 시작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행하였던 실패는 두 번째로 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12절과 1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인 사라에게 하는 말입니다. “12.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우리 인간이 바른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가게 될때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은 두려움 이라 할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먹지말라는 선악과를 따먹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행동을 하게 되자 가장 먼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자 여기에서 누군가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아브라함 당신은 왜 그때 하나님이 당신에게 약속해주신 가나안땅을 떠나 애굽으로 갔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은 아마도 이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당시 내가 가나안땅을 떠난 이유는 그당시 가나안땅에 기근이 심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대답에 한번 더 이런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렇다면 그당시 당신의 눈에 가나안땅보다는 애굽땅이 살기가 더 좋아 보였던 것입니까?” 이 질문에 아브라함은 이런식으로 대답을 할 것입니다 “저 애굽땅에는 가뭄에도 절대로 마르지 않는 나일강과 비옥한 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먹고 살아가는 환경은 가나안땅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보다 좋은 환경을 따라 가나안땅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왔고 그 가나안땅에 살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이제 더 좋은 환경을 따라 애굽으로 간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에게는 두려움이 찾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러한 두려움이 일어났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가 예뻤던 모양입니다. 이 낯선 애굽땅에서 누가 내 아내를 빼앗기 위해서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라고 하는 두려운 마음이 갑자기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에게 부부 사이가 아니라 누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원래 오누이 관계이었습니다. 같은 아버지이지만 엄마가 다른 이복누이입니다. 하지만 결혼을 한 지금은 아내이지 누이가 아닌 것이죠. 아브라함은 두려움 때문에 거짓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한 것입니까?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아브라함과 같은 실수를 나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존재라 할수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든지 하나님을 두려워 하든지 둘중 하나를 선택해서 두려워 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보이는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왜요? 잠언 1장 7절입니다. “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잠 1장 7절) ”지식의 근본이거늘“ 라는 말은 지식중의 지식이라는 의미입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느정도는 담대하게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보다 좀 더 자신있게 이 미국땅에서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사람이 러시아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남 눈치 보면서 자신없이 살아가게 됩니다. 러시아말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에게 지식이 있고 없고에 따라 살아가는 마음자세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지식중의 지식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경외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식이 내게 있으면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가 두려워하는 지식만 있으면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지식보다도 더 위대한 지식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생기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사람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보다는 먹고 살아가기가 힘든 환경을 더 두려워 했습니다. 어차피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면 환경이나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더 지혜로운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왜요?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면 하나님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 사람과 환경에서 담대해질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이 인생 너머 저 건너편의 주인이 되시고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이 행하였던 실패는 마지막 세 번째로 예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근이 심해지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본문 앞에 있는 창세기 12장 7절 후반부입니다. 7.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가나안 땅 세겜 지역에 들어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으면서 살았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이후 장소를 옮기면서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다음절 8절 후반부입니다. 8.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왔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 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근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기도하고 제단을 쌓으며 살았다는 내용을 우리는 찾아볼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 했다는 내용을 찾아볼수 없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를 바로왕이 데리고 갔을때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기도가 필요한 순간에 기도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정말 기도가 필요하고 예배가 필요할 때 기도와 예배를 하지 않는 현상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 기도가 필요한데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느때보다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예배를 드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다시 제단을 쌓게 됩니까?. 애굽에서 나오게 된 다음부터입니다. 본문 다음 장인 창세기 13장 1절입니다. "1.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아브라함이 식구들과 같이 애굽에서 나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다음절 창세기 13장 3절과 4절 입니다.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옛날에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가나안 땅 벧엘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애굽 땅에 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없었습니다. 기도가 필요하고 예배가 필요한 시간에 그는 완전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이전에 자신이 한 실수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다시 예배를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조카 롯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서야 온전히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조카 롯과 헤어질때도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할수 있도록 아브라함은 양보를 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조카 롯은 눈에 보이는 좋은 환경인 소돔과 고모라 도시를 선택했지만 이제 아브라함은 환경보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선택합니다. 이전에 아브라함은 실패를 했지만 가안땅으로 다시 돌아온 아브라함은 이후에 성공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가능 한 것은 예배가 있고 없고의 차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더 이상 환경과 사람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예배를 소홀히 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남은 생애동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아브라함처럼 비록 실패한 경험이 있다 할지라도 어떠한 환경에서도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서 말미암아 사람과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갈수가 있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