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나를 보내신 이의 일

Author
kgmcc
Date
2024-06-02 01:23
Views
48
본문 : 요한복음 9장 1-7절

날짜 : 2024년 6월 2일

<요한복음 9장 1-7절>

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에는 일곱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면 첫 번째 기적은 가나혼인 잔치집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기적이고 두 번째는 왕의 신하 아들을 고치는 기적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적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는 기적이고 네 번째는 오병이어의 기적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상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던 사건이죠. 그리고 다섯 번째 기적으로는 갈릴리 바다위를 걸어오시고 베드로도 바다위를 걷게 하셨던 기적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기적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눈먼 맹인을 보게 하시는 기적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기적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기적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에는 일곱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단하나입니다. 자신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는 메시야이심을 믿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기적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계산도 되지 않았지만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가나 혼인 잔치집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고 왕의 신하 아들이 고치심을 받았고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는 오랫기간동안 베데스다 연못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가 누운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아니 사실 일어나 걸을수가 있었다면 일어나 걸어다녔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시지 않아도 벌써 돌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게 못하니까 누워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입니다. 그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 38년된 병자는 두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 바라보고 있었던 베데스다 연못을 계속해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바라볼것인가? 하는 것중에서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38년된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따라 순종하니까 이 병자는 일어나 걸을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 회전이 빨랐던 빌립 제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일 빵도 없고 또 그 빵을 살수 있는 돈도 없다면서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 제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군중속으로 들어가 어린아이 점심 한끼 꺼리를 가져옵니다. 이렇게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시작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물위를 걸을수 있었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갔을 때 베드로는 물위를 걸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을 보자 현실 세계로 돌아와 물속에 빠진 것이죠. 예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의지할때는 신앙의 세계에 들어가는 데 현실을 바라볼때는 현실세계에 살아가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요한 복음에 기록된 기적들은 모두가 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을 할 때 주님이 행하신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보게 된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한 것 뿐입니다. 본문 7절입니다. 7.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하니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된 맹인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눈이 뜨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9장 11절입니다. 11.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기적은 예수님이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적의 시작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적인 눈을 뜨게된 이 맹인이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이 맹인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요한복음 9장 38절입니다.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주여 내가 믿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는 고백입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을 할수 있는 사람은 육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만이 할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 이란 “영적인 눈이 열려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사람들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열리게 되었고, 그래서 새롭게 이 세상을 볼수 있게 되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요 믿는 성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맹인이었던 이사람이 어떤 행동을 합니까? “절하는 지라“ 예수님께 절을 합니다. 왜요? 예수님께서 이 사람에게 ”네가 나 때문에 보게 되었으니 내게 절해야지“ 라고 말했기 때문입니까? 자기 스스로 예수님께 절한 것입니다. 왜요? 믿으니까요. ”내가 믿나이다“ 하고 고백하면서 동시에 절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을 경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니신 능력을 믿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예수님을 경배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경험 하며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첫째로 우리를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기 때문이죠. 어떤 질문입니까? 본문 1절, 2절입니다. ”1.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종류의 질문들은 우리 인간이 대답하기가 불가능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대답이 불가능한 질문들을 가지고 살아갈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왜 사람들앞에 서기만하면 긴장을 할까? 내 자식은 왜 저럴까? 내 남편 내 아내 내 부모님은 왜 저럴까? 내 이웃집에 사는 저사람은 왜 저렇게 강아지가 시끄럽게 짖어대도 그냥 놔둘까? 저 사람은 왜 쓰레기 차가 와서 자기집 쓰레기통을 비워도 즉시 그 쓰레기통을 가져가지 않고 하루나 이틀 그냥 저렇게 놔둘까? 이것은 사실 제 이웃집에 사는 사람에 대하여 제가 가지고 있는 의문점입니다. 그 사람은 제 설교를 들을 기회도 없지만 듣는다 할지라도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리이스 사람이기 때문에 제가 지금 그 사람에 대한 제 의문점을 이렇게 공개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이해할수 없는 사건이 생길때 마다 ”왜?“ 라고 하는 질문을 계속 가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할수 없는 부문에 대해서 특별히 고통이나 고난의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나 조상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죄로 돌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2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날 때부터 맹인이 된 것이 자기의 죄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부모님의 죄 때문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물론 이 말씀은 죄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죄를 짓게 되면 많은 경우에 마음의 고통이나 어려움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우리 인간이 받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은 오히려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의 기회가 될수 있게 하기 위해서 허용이 되어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고통과 고난중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축복이 되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면 우리에게는 영광이요 축복입니다. 왜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처한 이 모든 환경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0절입니다. 30.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우리 인간의 머리털은 사람에 따라 그리고 나이에 따라 다르다고 하지만 하루 평균 50개 정도로 빠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 나는 머리털도 있으니까 머리털이 세신바 되었다면 하루에 몇 개 빠졌고 몇 개 머리털이 새로 났는가를 알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육신적인 것에 대해서 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변합니까? 이 생각을 했다가 지워버리고 또 다른 생각을 하다가 지워버리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생각이 변하는 것은 내 머리털이 빠지고 새로 생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생각이 변하는 숫자만큼 내 머리털이 빠진다면 우리는 모두 하루만에 대머리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변하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어려움과 고통이 주어진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에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 인간에게는 축복이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은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잠시 허용을 한 것이다 라고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사실 이 맹인이 눈을 뜨고 난이후 환경이 더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이전에 없었던 마음의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 왜냐하면 예수님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이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빈정대면서 쫓아내기 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장 34절입니다. 34.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이 맹인은 사람들을 가르칠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한 것 뿐인데 사람들은 화를 내고 그를 쫓아내었던 것입니다. 이전에 눈을 보지 못했을때는 육신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러한 마음의 갈등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게 된 이전 보다 마음의 고통과 갈등이 더 심한 상태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이 맹인에게 다시 오신 것입니다. 그 다음절 35절입니다. 35.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를 만나사“ 예수님께서 왜 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만나십니까?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 사람이 받고 있는 마음의 고통과 갈등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 여러분 주님이 기적을 행하신 목적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게 하심에 있습니다. 이 반대의 논리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경험을 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의 고통과 갈등속에 있을 때 나의 고통과 아픔을 다알고 계시는 주님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나를 만나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내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이 가진 아픔과 마음의 고통을 대신해서 해결해주시면서 이 사건은 끝이 납니다. 요한복음 9장 41절입니다. 41.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맹인이 되었던 이사람을 비난 하고 쫓아내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바로 맹인이다. 보지도 못하는 너희들이 본다고 하니 거짓말을 하고 있는 너희들은 죄가 그대로 있는 죄인들이다” 저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 모습에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자식을 위해 행동에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 났습니다. 자기 자식을 왕따시키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서 아버지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병신은 바로 너희들이야. 너희들이 바보 천지야. 미련한 놈들은 바로 너희들이야” 이 아버지처럼 예수님께서 맹인이었던 사람을 사람들에게 대변해주시는 것으로 맹인이 눈을뜨게 된 이 사건은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만나 질문을 가지고 있을 때 이 질문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가진 질문의 해답을 알고 계신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행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 영광이요 나에게는 축복이 되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의 갈등과 고통이 있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을 믿고 경배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둘째로 우리를 만져주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옛날에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때 저희 아버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허리를 크게 다치신 적이 있습니다.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기차에 치이시는 큰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아버님은 허리에 잦은 고통을 느끼시면서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종종 저에게 허리를 만지고 발로 밟아 달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버님 허리를 만지면 허리가 굽어진 부분이 만져집니다. 그부분을 제가 오랫시간동안 만져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제까지 만져주어야 했는가 하면 아버님이 주무실 때 까지입니다. 코를 고시는 소리가 나야 제가 그만 두었습니다.물론 아버님이 “이젠 됐다. 그만 해라“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그래도 저는 그만 두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계속 안마를 해주길 원하는 그 속마음을 제가 잘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님이 코를 고는 소리를 들릴때까지 주먹을 쥐고 계속 등을 두드려 주거나 팔이 아프면 누워계신 아버지 등에 올라타서 그 휘어진 부분을 발로 밟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떨때는 오랫시간동안 주무시지 않아서 힘이 많았지만 코를 고시는 소리가 날때까지 계속 마사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렇게 효자는 아닌데도 아버님이 주무실때까지 그 굽어지신 등을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아준 것은 그순간에 아버님이 지니고 계셨던 속 마음을 제가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인 우리의 아픔을 잘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과 연약한 부분을 만져주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진흙을 이겨서 맹인의 눈에 바르십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만져주시는 예수님의 손길은 창조주 성자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입니다.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여기서 그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어졌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그러니까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치유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창조주의 신분에서 구원자의 신분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만져주시길 지금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맹인을 만져주시고 치유하게 해주신 예수님의 손길이 저와 여러분의 어두운 부분과 약한 부분을 만져주심으로서 치유받고 구원을 받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셋째로 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면 낮입니다. 5절입니다. 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세상의 빛이로라” 예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계시면 앞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이 밤중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계시면 낮이 됩니다. 왜요? 앞을 볼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겠다고 결심을 해서 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보게 되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따를 때 보게 되어집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빛이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보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좀전에 살펴보았지만 이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맹인이 밝은 눈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실로암 못 입니까? 이 실로암 못이 이 맹인을 치료했습니까? 아니죠. 예수님이 치유하신 것입니다. 실로암의 뜻이 무엇입니까?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이 바로 실로암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사실 실로암이 보냄을 받았습니까? 아닙니다. 보냄을 받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4절 전반부 다시 보시겠습니다. 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보내심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보내심을 받은 것은 실로암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보지 못했던 맹인이 보게 되었습니다. 보내심을 받았다면 보내신 분이 있는 것이죠. 그리고 보내신 분의 뜻도 있는 것입니다. 보내신 분의 뜻이 무엇입니까?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하는 일입니다. 맹인이 어떻게 보았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더니 눈이 열린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새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새 인생이 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든 것이 보이게 된 것은 말씀에 순종을 할 때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말씀에 순종을 할 때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맹인이 경험하였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을 보게된 이 맹인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보이게 된 눈을 가지고 멋진 깡통 하나를 골라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 어디인가를 보고 거기에 앉아서 거지 생활을 하며 살아갑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간증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람은 보이는 눈을 가지고 보기에 좋아보이는 깡통을 찾아다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보이는 눈을 가지고 어디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인가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며 거지로 살아가는 인생이 가장 불쌍하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예수님을 만나 보지못했던 것을 보게 된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영생을 가지게 되었고 영원한 하늘나라를 보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깡통을 찾아다니고 사람많이 다니는 장소를 구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맹인이 보게 되면서 당장 축복을 받고 벼락부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제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경배하고 간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 복음 9장 30절입니다. “30.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사람(예수)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그리고 33절입니다. 33.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 하였으면 아무일도 할수 없으리이다”. 이렇게 맹인이었던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간증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눈을 뜨게 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살아가야 하는 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맹인처럼 저와 여러분도 남은 생애동안 보지 못했던 천국을 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