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광야 여정은 하나님의 시험

Author
kgmcc
Date
2024-06-09 01:48
Views
35
본문 : 출애굽기 17장 1-7절

날짜 : 2024년 6월 9일

<출애굽기 17장 1~7절>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이때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출발한지 약 한달 정도 되던 때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입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출발한지 약 2개월만에 도착을 했으니까 한달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이 ‘르비딤’ 이라는 단어의 뜻은 ‘쉬는곳’ ‘휴식처’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장막을 치고 난 이후에 물을 찾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입니다. 르비딤에서 휴식과 쉬는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힘을 얻어 그 다음 여행길을 가길 원했는데 그럴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르비딤이 그들이 기대를 했던 르비딤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쉼을 얻고 안식을 얻어야 하는 가정에서 이런 저런 문제를 만나 휴식과 안식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전에는 몰랐던 남편의 술마시는 버릇이 나빠서 폭행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남편이 해고를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잘되던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지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러한 일들을 만날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정이 더 이상 휴식처나 쉼터가 되지 못합니다. 르비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르비딤이 아닌 것이죠. 그런데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러한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시련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시련을 만날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도 있고 반면에 인생을 비관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멀리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당연히 그 결과도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서 물이 없는 시련을 당할 때,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광야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8장 2절입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40년동안 광야길을 걸어야 했습니까?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그들을 낮추고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낮추기 위한 시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네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루게 되면 학생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할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고나면 우리는 내가 틀린 문제를 알게 됩니다. “아 이 문제는 이렇게 대답해야 하는데 저렇게 대답을 해서 내가 틀렸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치게 되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통하여 내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에 르비딤과 같은 일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이 시험을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험을 치고 나면 우리는 내가 가진 마음을 알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알게 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려는 마음이 있는지 지키지 않는 마음이 있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시련과 어려움을 통한 하나님의 시험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통하여 우리는 내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게 가르쳐주신 말씀을 어느정도 까지 따르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서 받았던 하나님의 시험에 대하여 그들의 반응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도 이런 저런 모양의 하나님의 시험을 받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잘못된 반응을 하지 않는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르비딤에서 받은 하나님의 시험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 의심을 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7.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맛사’ 단어의 뜻은 ‘시험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므리바‘ 단어의 뜻은 ’싸우다, 다투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쉬는곳’ ‘휴식터’ 라는 의미가 있는 르비딤이 ‘맛사’ 와 ‘므리바’ 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받는 중에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맨 마지막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우리중에 계신가 안계신가 하였음이더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해서 그들은 의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심하였던 것이죠. 사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이곳 르비딤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본문 1절입니다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여호와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르비딤 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명령은 말씀이 아니라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르비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오자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해서 의심을 한 것입니다. 낮에는 지금도 하늘위에 구름기둥이 있고 밤에는 불기둥이 그들을 인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중에 계신가 안계신가 라는 말을 하면서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다투고 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제의 출발은 마실 물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곳에는 당연히 물이 있어야지 왜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닫힌 문도 열리게 되고 막힌 바다도 갈라지게 되는데 왜 문이 닫혀있고 바닷물이 가로막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수 있습니까? 닫힌 문이 열리고 막힌 바닷물이 갈라진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문이 닫혀있고 바닷물이 가로막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이곳 르비딤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갔는데 마실물이 없는 아주 삭막한 르비딤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겠지 라고 믿는 것이 올바른 마음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해서 의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르비딤은 ‘맛사’ 가 되고 ‘므리바’ 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내 마음상태가 어떠한지에 따라 내가 시험을 잘치루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를 알수 있습니다. 시험을 잘치루게 되면 어떠한 환경에 처해있든지 내 마음은 평온합니다. 자 예를 들어보십시다. 학교에서 시험을 칠때마다 잘 치루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학생이 처한 가정 형편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대학 진학은 생각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은 학교에서 시험을 칠때마다 잘치루어서 우등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학생은 졸업후에 대학에 진학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학교에서 책임을 지고 괜찮은 직장을 소개해주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그런데 하나님이 시험을 잘 치루는 믿는 성도들을 책임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다가 어떤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이것은 시험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십시다. 그리고 내가 이시험을 잘 치루게 되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실 것이다 라는 사실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십시다. 길이 막혔다고 해서 하나님 뜻이 여기에 있는것이 아닌 모양이다 라고 의심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의 뜻은 알수 있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원망 불평하면서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럴 때 르비딤은 르비딤이 아니라 맛사와 므리바가 되는 것입니다. 르비딤은 르비딤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든지 르비딤은 르비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는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할지라도 르비딤입니다. 내 가정과 내 직장과 내 사업터전에서 문제가 있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 역시 르비딤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은 성도들과 늘 함께 하십니다. 야곱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었을때는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야곱이 형에서를 피해 고향을 떠나 400마일이나 떨어진 외삼촌집에 가는 도중이었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창세기 28장 11절입니다. 11.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두렵고 외로운 환경에 처해 있었을때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8장 15절입니다. 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후부터 그렇게 멀리 떨어진 외삼촌 라반의 집을 힘들지 않게 한순간에 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1년 동안을 머물고 있으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때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야곱을 축복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 이십니다. 나와 늘 함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 마실물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남은생애동안 임마누엘 하나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가 처한 환경을 극복할 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르비딤에서 받은 하나님의 시험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둘째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의심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2.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물이 있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여기까지 왔으면 일이 잘풀려야지 이게 뭐야“ 라는 것입니다. 그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가다보니 빙 돌아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점에 대한 불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길을 갔으면 이렇게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로 갔을 것이다. 그러면 벌써 가나안땅에 도착했을 것인데 지금 물이 없는 이 르비딤에서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그들은 분노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름길로 갔으면 벌써 가나안땅에 도착했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비극이 될 수가 있습니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복권에 일등으로 당첨이 되면 그사람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비극의 시작점이 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만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게 될 축복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세가 보여주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을 마음자세를 배울수 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4.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지금 모세가 아주 절박한 상황에 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사람들이 여기서 물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들이 너죽고 나죽자 는 식으로 돌을 들고 나를 죽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주셔야 하겠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먹고 마시는 차원에 걸려서 분노하고 다투면서 남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다운 믿음은 먹고 마시는 문제가 해결이 되면 할렐루야 이고 그렇지 않으면 원망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고 신뢰한다면 물이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지라도 이렇게 생각할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우리를 이곳에서 목말라 죽게 할려고 애굽에서 데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마지막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류의 역사의 마지막도 새 하늘과 새땅 인 것입니다. 천국입니다. 영적인 가나안땅입니다. 비록 우리 인생 중간 중간에 고통과 아픔이 있고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마지막을 이끌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했던 사건은 르비딤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그이전에는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홍해가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바로왕 군사들이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홍해를 건넌지 사흘후에 마라에 도착을 했는데 거기서 마시지 못할 쓴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무슨 사건이 있었습니까? 마라와 엘림을 지나 신광야를 지나게 될 때 애굽에서 가져왔던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사건들을 만나게 되어서 죽었습니까? 아니죠. 홍해 바다는 갈라졌습니다. 쓴 물은 달게 변하게 되었고 하늘에서는 만나가 날마다 내렸습니다. 불과 한달 사이에 이러한 일들이 모두 일어났습니다. 오래전에 일어난 사건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건들이 지금 자기들이 만나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는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험은 왜 치는 것입니까? 배운 것을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배워서 알게 된 것을 제대로 응용하고 적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학시험을 보면 선생님이 가르쳤던 그 숫자는 시험에 없습니다. 숫자를 다르게 해서 시험문제를 냅니다. 숫자까지 똑같은 문제를 내면 학생들이 답만 외워서 시험을 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달라도 공식대로 문제를 풀면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잘못 대답을 하면 다시한번 더 공식을 가르쳐주고 또 비슷한 시험 문제를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바르게 대답하면 조금 차원이 높은 공식을 가르쳐 주고 배우게 합니다. 더하기 빼기 공식에서 곱하기 나누기 공식을 배우게 하고 시험을 치게 합니다. 이것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 마라에서는 쓴물을 만나는 시험을 주십니다. 그리고 르비딤에서는 물을 보이지 않는 시험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틀린 답을 내었지만 모세는 올바른 답을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기도했더니만 하나님이 쓴물을 달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모세야. 저기 보이는 나뭇가지를 쓴물에 던져라” 그 말씀대로 던지니까 쓴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르비딤에 갔는데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해결방법을 말씀하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6.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반석을 지팡이로 치니까 반석이 깨어지고 그 깨어진 반석사이로 물이 나와 백성들이 마시고 살수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에 대해 올바르게 답을 할수 있는 공식을 배울수 있습니다. 그 공식이 무엇입니까?

자 마라의 쓴물을 만났을 때 모세가 기도했고 하나님은 나뭇가지를 그 쓴물에 던지라 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엘림을 지나 신광야를 행진할 때 양식이 떨어졌는데 모세가 기도했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르비딤에서 물이 없자 모세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때렸습니다. 그러자 반석이 깨지고 그사이로 물이 나와 백성들이 그 물을 마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공통된 분모는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공식을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자,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공식 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여기서 나뭇가지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만나는요? 예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반석은요?. 반석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말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여기서 공통된 분모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자 저와 여러분이 문제를 만나고 시련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두가지 공식을 적용시켜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와 예수님입니다. 기도와 예수님은 우리가 만난 시련과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절대적인 공식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각자가 처한 입장과 문제는 다 다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풀어야 하는 공식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바라보며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가 보였던 순종은 쉬운일은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흥분한 상태입니다. 여차하면 돌맹이를 던질 분위기입니다.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때렸는데 물이 나오지 않으면 돌맹이를 맞고 죽게 될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모세는 순종을 합니다. 쉽지 않은 순종입니다. 모험과 결단이 필요한 순종입니다. 6절 전반부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6.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지팡이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우리 인간을 내려쳐야하는 데 하나님은 반석을 내리치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진 반석사이에서 나온 생수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게 되었듯이 예수님의 그 찢어진 몸에서 흘러나온 보혈의 피가 저와 여러분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시험과 어려움을 만날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인 우리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불신앙적인 행동을 볼때마다 그들을 탓하는 것보다는 예수님을 쳐야 합니다. “예수님 그러니까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이렇게 중보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이신 반석을 내리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문제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이 모든 문제를 자신의 품에 안으시고 친히 몸을 찢어 해결해주시는 선하신 주님을 믿으십시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어려운 문제를 만날때마다 선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