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가만히 떠났더라

Author
kgmcc
Date
2024-06-23 06:17
Views
46
본문 : 창세기 31장 14-20절

날짜 : 2024년 6월 23일

<창세기 31장 14-20절>

14.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17.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9.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오늘 본문은 야곱이 하란을 떠날 때의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왜 하란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려고 합니까? 그이유는 야곱을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때문입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13절입니다.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20년 만에 야곱을 찾아오셔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은 하란을 떠날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때 야곱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입니까? 두 아내와 같이 상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두 아내가 가진 생각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두 아내에게는 하란이 고향이기 때문에 떠나기 싫어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야곱은 떠나고 싶어도 하란을 떠나는 것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두 아내가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 16절 후반부입니다.

16....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하나님이 야곱 당신에게 하신 말씀대로 이곳을 떠나자”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자 라는 것입니다. 두 아내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반응을 한 것입니까? 아니죠.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다면 자기 아버지가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가족의 수호신이라할수 있는 드라빔을 훔쳐서 떠났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야곱의 아내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평소에 아버지 라반이 자신들을 대하는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절과 15절입니다. 14.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자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처럼 여긴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왜요? 그앞에 이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사실 자신의 두 딸을 결혼 시킬때 아버지 라반은 한푼의 돈을 쓰지도 않고 야곱을 14년간이나 공짜로 부려먹었습니다. 야곱에게는 물론 두 딸에게도 한푼의 돈을 주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를 딸자식이 아니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이것이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이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 라반의 관심은 자식보다는 돈을 모으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라반은 야곱이 가족과 가축과 함께 도망친 것을 알고는 쫓아옵니다. 그리고 추격한지 일주일 만에 야곱을 붙잡게 되는 데 그때 라반이 맨처음에 하는 말이 이 내용입니다. 30절입니다. ‘30.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드라빔) 도둑질하였느냐’ “내 신(드라빔)을 도둑질하였느냐” 일주일 동안 추격해서 야곱을 붙잡자 마자 하는 말이 “너는 왜 내 드라빔을 도둑질 했느냐“ 이었습니다. 딸이나 손자 손녀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드라빔에 관한 말을 가장 먼저 꺼냈습니다. 평상시에 이 라반은 자기 자식보다는 돈이나 우상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사람인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두 딸에게 존경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두딸에게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는 존재이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 보다도 자기의 앞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이었습니다. 부모가 많은 재산을 자녀들에게 남겨준다고 해서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부모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자식들이 아부를 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효도가 아니라 아부입니다. 돈이 많은 부모와 같이 있는 자식들은 아부를 잘합니다. 부모가 돈이 없으면 자식들이 아부를 안하죠.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자식들이 부모를 존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가 명문대학을 나오고 똑똑하다고 해서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는 것도 아닙니다. 존경은 다릅니다. 부모가 약점과 허물이 없기 때문에 존경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약점과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성실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될 때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존경 합니다. 오래전에 이 샬롯에 있는 어느 한 교회에서 목사 안수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보고 권면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을 해서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 안수를 받는 그 목사님의 아버님이 한국에서 오셨는데 그분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날 목사 안수식을 받고 난후에 안수를 받은 그 목사가 답사를 하는 시간에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적인 사람의 눈에 볼 때 실패한 분이셨습니다. 제대로 교회 목회도 못하시고 몇 명 안되는 성도들을 데리고 평생동안 고생 고생만 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많이 고생시키셨던 아버지 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아버님을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아버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평생을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저도 목회가 성공했다는 말보다는 아버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평생 살아왔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답사하는데 가슴이 뭉클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요 존경을 받는것과 아부를 받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돈이 있고 성공했다고 자식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오나 비가오나 어김없이 새벽종을 치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들의 눈에 존경스러운 모습으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살아가는 부모님을 볼 때 자식들은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우리 자녀들의 눈에 비쳐지는 우리의 모습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신앙의 부모님의 모습으로 비쳐질수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라헬과 레아, 이 두 아내의 승낙을 받아낸 야곱은 가족과 가축들을 데리고 하란을 떠납니다. 언제 떠납니까? 본문 19절 전반부입니다. ‘19.그 때에(야곱이 떠날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그러니까 라반이 양털을 깎을 때입니다. 양털을 깎는 다는 것은 일년 동안 길러왔던 양의 털을 거둘 때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마치 농부가 일년 농사지은 것을 추수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그당시에는 이러한 양떼들의 털을 깍게 되는 시기에 큰 축제를 벌리기도 했습니다. 축제를 벌리면서 양털을 깎는 것이죠. 그런데 양털을 깎고 축제를 벌리고 있는 거리는 야곱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부터 사흘동안의 거리이었습니다. 라반이 이정도의 거리에 떨어져 있을 때 야곱은 가족과 가축들을 데리고 떠납니다. 20절에서 22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21.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자, 20절 마지막을 보시면 “가만히 떠났더라” 그리고 21절 마지막에 “도망한지” 마지막으로 22절 앞부분을 보시면 “야곱이 도망한 것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만히 떠났다” “도망한지” “도망한 것이” 자 이러한 행동은 야곱이 가지고 있는 주 특기입니다. 20년전에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도망을 갔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외삼촌 라반을 피하여 도망을 갑니다. 여차하면 도망가는 것은 야곱이 잘하는 행동입니다. 야곱의 18번입니다. 사실 사기꾼들이 도망을 잘 가죠. 계주가 되어서 곗돈을 떼어먹고 야반 도주하는 사기꾼들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이 육신적인 도망보다는 대화하는 중에 도망을 가버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입장이 곤란해지면 화제꺼리를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질문을 한대로 대답을 하지 않고 엉뚱한 답을 하고 즉시 다른 화제로 바꾸어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로 야곱과 같이 도망을 잘 하는 사람이라 생각을 해봅니다. 왜 야곱이 도망을 갔습니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외삼촌 라반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붙잡혔을 때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31절입니다. ‘31.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내가 외삼촌에게 떠나겠다고 말하면 외삼촌은 두 딸을 빼앗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두려워서 몰래 떠났습니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야곱은 이런 저런일이 생길까봐 두려워서 몰래 떠났던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잃어버림에 대한 두려움, 이별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사람에 대한 두려움, 이런 저런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도망하고 회피하게 하고 미루게 만듭니다. 주변 사람들이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를 어떻게 이해해줄까? 이렇게 사람들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자, 만일 야곱이 외삼촌 라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외삼촌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제가 이곳에 올때는 지팡이 하나만 있었지만 외삼촌과 같이 지내는 동안에 이렇게 아내와 자식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지닌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셔서 떠날려고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떠났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져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실 6년전에 야곱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창세기 30장 25절과 26절입니다. 25.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그때 라반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두 딸과 손주들 다 여기 놔두고 너 혼자 떠나라“ 라고 말했습니까? 그다음 27절과 28절입니다. 27.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이곳에 그대로 있으라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그대로 여기에 있어다오 그리고 니가 품삯을 정해라 내가 그대로 주겠다“ 라반이 야곱을 붙잡을려고 아주 저자세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6년을 더 있게 되었고 그동안에 부자가 된 것입니다. 만일 이번에도 야곱이 ”외삼촌 저 떠나겠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외삼촌 라반이 어떻게 반응을 했겠습니까? 6년전처럼 야곱을 붙잡고 저자세로 행동했겠습니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요? 지금은 6년전과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야곱이 부자가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졌습니다. 야곱이 품삯으로 받게 되는 아롱진 것이나 점있는 양이나 염소가 더많이 태어나는 상황이니까 야곱이 빨리 떠날수록 라반에게는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붙잡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대신에 이렇게 말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떠나거라. 그게 서로에게 좋겠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 라반이 야곱에게 ”니 혼자 떠나라“ 라고 말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저보고 고향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를 떠나야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으면 그다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두려워하고 몰래 도망을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뿐만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속이고 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이 그렇게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곱이 그렇게 몰래 도망치듯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외삼촌 라반에게 가서 당당하게 말을 하고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믿는 자녀들이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를 그당시 최강대국가인 바로왕에게 가서 말하게 하십니다. 430년동안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놓게 하라고 당당하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바로왕이 쉽게 보내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난후 바로왕을 항복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때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떠났습니까? 몰래 도망치듯이 떠났습니까? 아니죠. 당당하게 그들은 떠났습니다. 그들은 종의 신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주인이었던 애굽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의복과 금은 패물을 달라고 요구를 하고 그것을 받아 가지고 당당하게 떠났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 35절 36절입니다.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36.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떠나가게 하실때에 빈손으로 떠나가게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종이었지만 그동안 일한 품삯을 다 받아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종이 주인에게 찾아가서 “나 이제 떠날려고 하는데 옷가지하고 금은 패물이 필요합니다. 주십시오. 가지고 갈랍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 주인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얘가 정신이 있나 없나 그냥 보내준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말이야‘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고 종이 요구하는 대로 금은 패물을 내주고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비록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당당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세상을 살아갈 때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갈때도 물맷돌만 있었지만 얼마나 당당하게 나아갔습니까? 힘이 있고 키가 크고 가진 무기가 많아서 당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당당한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당시 가장 권력이 있었던 아그립바왕과 베스도 총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 26장 29절입니다. ‘29.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내가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얼마나 당당합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당당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방으로 우겨삼을 당하고 거꾸러짐을 당하고 온갖 환난을 당해도 비굴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순교를 할때도 찬송을 하면서 죽었습니다. 당당하게 살다가 당당하게 죽었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도망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도망을 갔는데 문제 해결이 되었나요? 안됐습니다. 사흘후에 외삼촌 라반이 야곱이 도망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오른 라반이 야곱보다 더 빠른 속도로 추격합니다. 그래서 추격한지 7일만에 야곱을 붙잡았습니다. 야곱은 10일만에 다시 외삼촌 라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10일이 지났으니까 야곱은 이제 되었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외삼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도망을 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형 에서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20년전에 형 에서를 피해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이 되었나요? 2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에서는 400명의 군사들을 대동하고 야곱에게 오고 있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도망가고 피해서 문제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을 보여줍니다. 문제 해결은 주님이 해주셔야만 합니다. 라반의 문제도 야곱이 한게 아니라 주님이 해결 해주신 것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만나기 하루전날밤에 만나서 야곱에게 손대지 말라라고 경고하심으로 직접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29절입니다. 29.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 “너를 해할만한 능력이 내손에 있으나” 하나님이 라반에게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야곱은 죽은 목숨이 되었을 것입니다. 라반과의 문제뿐만 아니라 형 에서와의 문제도 하나님이 직접해결해주신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망하고 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이 문제 해결이 되심을 믿으며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도록 하십시다.

두 번째로 왜 당당하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면 약속의 말씀 때문입니다.

창세기 31장 3절입니다. 3.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당당하게 말하고 떠나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그 문제는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보다도 외삼촌 라반의 걍퍅함과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인간성을 더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몰래 도망을 간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한 것입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365번 나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하루하루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인생이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하실때 같이 수반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이런 말씀이 같이 수반되어 나옵니다. 신명기 31장 6절입니다.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강하고 담대하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 입니까? “너와 함께 가시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가는 사람은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을 하면 하나님이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에 당당하게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학문이 나를 당당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나 경험이 나를 당당하게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학문이나 경험이 나를 어느정도 당당하고 자신있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갈 때 우리는 온전하게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고 내가 아무리 배우지 못하고 내가 아무리 가진 것 없다할지라도 당당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내가 육체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남에게 내보일만한 것이 내게 없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신약과 구약 성경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어떠한 상황속에 놓이게 된다 할지라도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