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라헬의 인생

Author
kgmcc
Date
2024-06-30 02:07
Views
43
본문 : 창세기 31장 30-35절

날짜 : 2024년 6월 30일

<창세기 31장 30-35절>

30.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31.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지난주에 살펴보았지만 야곱은 20년동안 머물렀던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외삼촌 몰래 도망을 갑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흘후에 알게 된 라반은 일주일동안 추격을 해서 10일만에 야곱을 붙잡습니다. 그런데 야곱을 붙잡기 하루 전날 밤에 하나님은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야곱을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래서 다음날 야곱을 붙잡은 라반은 다른 문제보다도 먼저 자신이 집안 수호신으로 섬겼던 드라빔을 훔쳐서 도망한 것에 대해서 따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시작입니다. 본문 30절입니다. 30.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그때 야곱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32절입니다. 32.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야곱은 자기 아내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 것이죠.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야곱이 말해버린 이 저주는 나중에 라헬에게 그대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라헬은 고향으로 가는 도중에 해산을 하게 되는데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죽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에서 우리의 인생이 이루어지는 것을 여기에서 우리는 확인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라헬과 관련해서 생기는 세가지 의문점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첫째는 라헬을 어떤 여인인가?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쳤는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라헬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합니다.

1.라헬은 어떤 여인인가?

창세기 29장 17절입니다.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라헬은 곱고 아름다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곱고 아름답다” 라고 이 두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여인은 두사람 뿐입니다. 그 두 여인은 바로 본문에 나오는 라헬 그리고 에스더입니다. 에스더 2장 7절입니다. 7.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에스더는 약 2,500여 전에 페르시아에서 최고의 미녀로서 왕후로 뽑혔던 여인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와 같은 수식어가 붙은 라헬도 굉장한 미인이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러한 라헬과 결혼을 하기 위해 7년동안 피곤한줄 모르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창세기 29장 20절입니다. 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며칠같이 여겼더라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며칠같이 여겼더라” 그리고 이 라헬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남편 야곱이 라헬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하지만 불행하게도 라헬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기 언니 레아가 많은 자식을 낳을 동안에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그러자 하루는 라헬이 남편 야곱을 향하여 이렇게 분노합니다. 창세기 30장 1절입니다. 1.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사실 자식을 낳지 못한 문제는 야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라헬에게 있습니다. 남편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니 야곱과 같이 밤을 지낸 횟수도 레아보다는 라헬이 훨씬 더 많았던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레아가 동생 라헬에게 이렇게 말했겠습니까? 창세기 30장 15절입니다. 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네가 내 남편을 빼앗았다“ 레아가 라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남편 야곱은 대부분의 시간을 라헬하고 같이 보내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수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아는 자식이 많은데 라헬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라헬에게 있었던 것이죠. 하루는 레아의 첫째 아들 르우벤이 정력과 임신에 좋다는 합환채를 들에서 구해왔습니다. 그것을 본 라헬은 합환채를 자기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그때 레아가 그 합환채를 라헬에게 넘겨주면서 그대신에 남편 야곱과의 하룻밤을 겨우 허락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이후에 레아가 또 임신을 합니다. 하지만 합환채를 가지게 된 라헬은 야곱과 같이 많은 날들을 보냈지만 자식 소식은 없었던 것이죠.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소용이 없었던 라헬은 마침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 라헬의 소원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창세기 30장 22절입니다.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마침내 하나님은 이 라헬을 생각하십니다. 언제부터입니까? 라헬이 하나님께 간구했을 때부터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렇습니다. 남편에게 생떼를 쓰고 언니에게 어거지를 부려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소원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할 때 자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되지 않았던 일이 하나님이 자신을 생각해주시니까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은 감사하기 보다는 더욱더 욕심을 드러냅니다. 창세기 30장 24절입니다. 24.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요셉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인 ‘아샤프’에서 나왔는데 그 의미는 ‘더 달라’ ‘더하신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라헬은 그아이를 보면서 “더 달라” “더 하여주십시오” 라는 뜻이 있는 요셉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라헬이 가진 생각을 알수 있습니다. 언니 라헬에게는 아들 여섯명에 딸이 한명이나 되는데 자신은 이제 겨우 한명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오죽했으면 아들 이름을 “더 주십시오” 라는 뜻이 있는 요셉 이라 불렀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라헬이 가진 불만을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성도로서 가장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감사함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핸드폰이 없이 지내는 어느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날때마다 자기에게 핸드폰이 없는 것에 대해 넋두리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나에게 핸드폰이 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연락을 할수도 있고 또 이런 저런 소식을 신속하게 들을수 있을텐데” 라고 만날때마다 자기 신세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쌍하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핸드폰을 사서 그 사람에게 주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핸드폰을 받은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요즘에 나오는 최신형 핸드폰인 삼성 갤럭시 24 울트라가 있으면 좋겠다” 자 그 말을 듣는 순간 핸드폰을 사주었던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감사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과 더 나은 제품을 원하는 말이 먼저 나오는 사람과의 마음에는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녀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응답을 받았던지 상관이 없이 먼저 감사한 마음을 가지길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이러했던 라헬은 자녀와 남편의 문제로 인해 언니 레아와 항상 갈등하면서 살았습니다. 아시다시피 레아는 라헬의 언니입니다. 그리고 라반이 야곱을 속여서 라헬 대신에 레아를 결혼 첫날밤에 지내게 했지만 어쨌든 레아는 야곱의 첫 번째 아내입니다. 그리고 그당시 풍습으로 볼 때 아들을 많이 낳는 여인이 그 집안에서 힘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보나 레아가 라헬보다는 서열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당시 자식이 없었던 라헬이 레아보다 집안에서 목소리를 더 높일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 남편 야곱이 라헬만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라헬은 언니 레아와 매사에 갈등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편 야곱으로부터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라헬과 레아는 자신들을 자식이 아니라 외국인 취급을 하는 아버지 라반의 곁을 떠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두 아내의 마음을 알게 된 야곱은 그날부터 몰래 도망을 갈 기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때 라헬은 가족의 수호신상이자 우상이었던 드라빔을 훔칩니다. 창세기 31장 19절입니다. 19.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자 지금까지 우리는 라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라헬은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남편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지만 자식이 없었습니다. 언니 레아가 여섯명의 아들과 한명의 딸을 낳고 난후에 겨우 요셉 한명을 낳았습니다. 그래도 아들인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 딸이 아니라 아들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당시는 이스라엘은 아들과 딸의 차별이 심했으니까 하는 말이지 제가 성별 차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라헬은 가족의 수호신상이자 우상이었던 드라빔을 훔쳐서 야곱과 같이 하란을 떠납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입니다.

2.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친 것인가?

그당시 드라빔은 풍요함과 다산을 포함해서 많은 복을 주는 신이라고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야곱의 할아버지는 아브라함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동생이 나홀인데 이 나홀이 브리엘을 낳고 브리엘이 아들인 라반과 딸 리브가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라반은 아브라함 동생 나홀의 손자가 됩니다. 나홀의 손녀인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을 하여 에서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그후손이 이삭과 야곱으로 믿음이 내려왔지만 아브라함의 동생이었던 나홀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방인들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당시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풍요함과 다산의 축복을 준다고 여기는 신상인 드라빔을 라반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라반의 집에 야곱이 들어온 이후로 라반의 가축 떼는 불어나게 됩니다. 이때 라반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믿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믿고 섬기는 드라빔이 주는 축복이라고 여기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풍요함과 다산하는 축복을 준다는 드라빔을 라헬이 몰래 훔쳤습니다. 그리고 라헬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그당시 드라빔의 소유자에게는 상속권이 있었는데 훗날 라반이 죽은후에 그 라반이 가진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서 드라빔을 가져갔을 것이다 라고 해석을 합니다. 일리 있는 말 같지만 사실 라헬에게는 이 논리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라반에게는 그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는 아들들이 이미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도 이미 많은 가축 떼를 지니고 있는 부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헬이 라반의 재산 상속을 염두에 두고 드라빔을 훔쳤다는 해석은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해석은 라헬이 더 많은 자식을 낳기를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드라빔은 풍요함과 다산의 복을 주는 신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라헬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단 하나 뿐입니다. 보다 많은 자식을 가지길 원했습니다. 자기 언니 레아에게는 아들 6명과 딸 1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는 갓과 아셀이라는 두명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라헬의 몸종이었던 빌하에게도 단과 납달리 라고 하는 두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라헬에게는 단 한명 요셉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라헬의 마음에 내가 최소한 몸종보다는 더 많은 자식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 한명을 낳게 되자 “더 달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요셉이라는 이름을 지었던 라헬입니다. 이러했던 라헬은 더 많은 자식을 가지기 위한 욕심에서 드라빔을 훔쳤을 것이다 라고 일부 성경학자들은 해석을 합니다. 저도 이러한 해석에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외삼촌 라반에게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라고 장담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야곱의 입에서 나온 저주의 내용대로 라헬의 운명이 결정이 됩니다. 자식을 더 낳고 싶어했던 라헬은 결국 자신이 그렇게 소원했던 두 번째 아들을 낳는 도중에 난산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그리고 라헬은 여행길 도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베들레헴 땅에서 장사지내게 됩니다. 라헬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사람입니다. 자식을 낳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그 소원기도를 보시고 자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낳았을 때 라헬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30장 23절입니다. 23.그가(라헬)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렇습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다른 우상도 함께 의지할려고 했던 마음가짐이 문제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이 교회 밖에 나가면 우리는 다른 것도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돈도 의지하고 사람도 의지하고 내 지식과 내 경험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왜요? 욕심 때문입니다. 더 잘되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남이 모르는 드라빔을 저마다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 드라빔은 돈이 될수도 있고 사람이 될수도 있습니다. 내 경험과 내 지식이 될수도 있고 내 신념이 될수도 있습니다. 드라빔을 몰래 가진 라헬의 모습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그 외 다른 우상도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에게 더 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드라빔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라헬처럼 우리에게 계속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드라빔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더 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십시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강하고 능력이 많다 할지라도 더이상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자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질문입니다.

3.라헬의 인생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무엇인가?

창세기 35장 17, 18절입니다. 17.그가(라헬)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그의 혼이 떠나려 할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라헬의 인생 마지막 장면입니다. 저는 라헬의 인생 마지막 장면을 볼때마다 우리의 인생이 이렇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라헬은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아들을 낳으면서 죽습니다. 그리고 라헬은 죽어가면서 “베로니” 라고 외치면서 죽었습니다. 베로니는 ‘슬픔의 아들’ 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막 태어나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가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할 자식을 보면서 “불쌍한 내 아들 어미없이 살아가야 할 불쌍한 내아들 베로니 베로니” 라고 외치다가 라헬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이 자식을 차마 베로니 라고 부르지 못하고 베냐민이라고 부릅니다.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당시 오른손은 행운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살아난 것은 행운이다. 하나님의 축복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다 라는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라헬은 베들레헴 길에 묻히게 됩니다. 그다음 구절인 창세기 35장 19절입니다. 19.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에브랏은 오늘날 베들레헴의 옛날 지명입니다. 곱고 아리따웠던 라헬은 남편 야곱을 만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식 때문에 한평생 마음에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태어나고 있는 자식을 보면서 비통한 마음으로 죽어가야 했던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베들레헴땅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베들레헴에 성지순례를 하게 되면 라헬의 묘지라고 알려진 곳을 볼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이제 막 태어나는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있는 곳입니다. 베들레헴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남편의 통곡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베들레헴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별해야 했던 슬픔의 역사가 있는 곳임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평적인 이별이라면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라도 만날 수 있겠지만 수직적인 이별이기에 이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없음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 있는 곳이 베들레헴입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왜요? 우리의 인생에 눈물을 그치게 하고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자신을 만난 사람들에게 슬픔과 눈물을 그치게 하신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눈물을 멈추게 하시고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병자의 눈물을 멈추게 하십니다. 옥합을 깨트리면서 한없이 흘리는 마리아의 눈물을 위로해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 슬픔과 아픔의 땅인 유다 베들레헴에 오셨던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지게 된 아픔과 슬픔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이세상에서 우리의 눈물과 아픔을 위로해주시는 주님을 저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될 때 더 이상 눈물과 아픔이 없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4절입니다.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모든 눈물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해서 흘렸던 눈물도 포함이 됩니다. 이제 막 태어나는 아기를 보고 죽으면서 흘렸던 눈물도 포함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흘린 눈물도 포함이 됩니다. 이제 여섯 살난 아들 요셉이 세상에서 단하나 뿐인 어머니가 죽을 때 흘렸던 눈물도 포함이 됩니다. 이렇게 가장 슬프고 애절한 눈물이 포함된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살아가는 동안 흐리는 모든 눈물을 더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하나님이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통곡하는 것이나 아픔과 이별이 다시는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당시 유대땅 베들레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곳에 오심으로서 축복의 땅이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누구도 알지 못하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한 인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존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심으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 마을이 된 것처럼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찾아와주시고 붙잡아주시면 내모양 내꼴이 하찮고 보잘 것 없다할지라도 존귀한 인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라헬처럼 우리에게도 곱고 아리따운 인생이 있었습니다. 라헬처럼 우리도 배우자의 사랑을 많이 받고 살았던 인생이 있었습니다. 라헬처럼 욕심을 가지고 더 달라고 할때도 있습니다. 라헬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해서 부끄러운 인생을 더 이상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남몰래 드라빔을 지니고 살아갈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해지기는커녕 라헬처럼 더 불행하고 비극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자리에 오십니다. 라헬이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묻혔던 베들레헴 땅에 예수님이 오십니다. 왜요? 마태복음 20장 28절입니다.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섬기기위해서, 슬픔과 눈물을 위로하시기 위해서 죄많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슬픔과 눈물의 땅 베들레헴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이 생명으로 라헬과 같은 우리 인생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눈물많은 인생에서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베들레헴 땅에 오신 구원자되신 예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