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Author
kgmcc
Date
2024-07-07 01:04
Views
27
본문 : 고린도전서 11장 2-15절

날짜 : 2024년 7월 7일

<고린도전서 11장 2-15>

2.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13.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다음주에는 고린도전서 11장에 나오는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사실 이번주와 다음주에 나오는 내용은 저와 여러분이 평상시에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에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예배시간에 여자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그리고 애찬과 성찬식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태여 이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신앙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해주기 때문에 이번주와 다음주에 이 내용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주와 다음주에는 외부에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오늘날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신앙의 원칙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어 왔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생길때마다 교회에 잡음이 있었고 그래서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 예배중에 기타와 신디사이즈 그리고 드럼을 사용해서 가스펠송을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은 교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배중에 이러한 악기로 찬송가가 아닌 가스펠송을 부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오랜 전통이 있는 교회 일수록 그리고 보수적인 경향이 있는 교회 일수록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면서 이전부터 지켜온 예배의 전통을 붙잡고 예배를 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런 반면에 진보적인 경향이 있는 교회일수록 예전에 지켜왔던 예배의 형태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예배 형태를 시도해왔습니다. 그래서 찬양하는 시간만도 한시간이 넘어가는 교회가 요즘에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연극으로 메시지를 전한다든지 주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성도들을 위해 토요일에 먼저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렇게 형편에 따라 예배드리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뀔수가 있습니다. 기타와 드럼을 사용하면서 가스펠송을 부를수 있고 교인들에게 은혜가 된다면 연극을 도입해서 강력한 이미지가 있는 메시지를 전할수도 있습니다. 주일날 참석할수 없는 성도들을 위해 토요일에 한차례 더 예배를 드릴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배방식은 바뀐다 할지라도 예배하는 정신은 바뀌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필요가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안에서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깍을 것이요.... 여자에게 부끄러음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쉽게 말하면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려라는 것이죠. 그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대부분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율법이 아니라 전통에서 나온 것입니다. 2절 후반부입니다. 2.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니까 여자 성도들이 교회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전통을 지키는 일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전통이 계속 내려오면서 오늘날 카톨릭 성당에서 많은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미사보를 쓰고 미사(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여자 성도들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 뿐만 아니라 성당안에 들어올 때는 반드시 미사보를 착용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3년 교회법이 개정된 이후에 여자 성도들이 미사보를 착용 하는 의무는 사라지게 되고 그대신에 단지 권유하는 내용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미사에 참석하는 여자 성도들중에는 미사보를 착용하는 성도들도 있고 그냥 미사를 드리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신앙경력이 오래된 분일수록 미사보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마 예전부터 해온 것이라 계속 미사보를 쓰고 예배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에서 예배를 드릴 때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한다면 어떤일이 생기겠습니다. 교회가 아주 시끄러울 것입니다. 그 교회는 이단으로 불리게 될것입니다. 그당시 고린도 교회에서도 예배중에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문제를 놓고 시끄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이전에 예배드릴때는 대부분의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썼는데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여자 성도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생기게 된 배경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이 지켜왔던 전통을 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죠. 이렇게 되자 같이 예배를 드리는 유대인 출신 성도들의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중에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느냐 쓰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이것은 여담입니다만 제가 고등학생때 친한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카톨릭 성당에서 가서 미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여자 성도들이 미사보를 머리에 쓰는 것을 보고는 “야, 나도 미사보를 쓰고 예배를 드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예배중에 미사보를 머리에 써야 하는 배경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보기 좋고 순수하게 보이기 위해서 미사보를 쓰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릴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자세에 있습니다.

좀전에도 살펴보았지만 교회 예배 중에 머리에 수건을 쓰는 모습은 교회의 전통입니다. 2절 후반부를 다시한번 보시면 2....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좋은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고 칭찬할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좋은 전통을 지키고 있는 고린도 교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3절에 시작하는 “그러나’ 에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이후에 있죠.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갑돌이가 억만장자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변사람들을 속였던 사기꾼이었습니다“ 라고 한다면 갑돌이는 억만장자가 아니다 라는 것이죠. 이렇게 그러나 이후의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3절 전반부입니다.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무엇을 알기를 원한다는 것입니까?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는 그 정신을 알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수도 있고 없어 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은 계속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그동안 좋은 전통을 지켜왔던 것을 너무 쉽게 포기 하고 거부하는 경향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여자 성도들이 예배시간에 머리에 쓰는 수건의 문제입니다. 여자 성도들 중에는 예배를 드리면서 그동안 지켜왔던 자기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수건을 벗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를 드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5절입니다.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교회에서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은 마치 머리를 빡빡 깍아 버린 것과 같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여자 성도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려도 전혀 부담을 가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오히려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리는 여성도들이 있으면 우리가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카톨릭에서는 정 반대로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 성도가 자기 머리에 수건을 쓰고 안쓰고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원리를 우리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드릴 때 가져야 할 기본 자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시간에는 저와 여러분이 여성도들이 자기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 정신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머리에 쓰는 수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역할의 차이를 인정해야 함

남자와 여자는 모두 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로서 다같이 동등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다같이 동등하지만 역할의 차이는 인정해야 합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11.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나 여자 모두 하나님에게서부터 났으니까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고 하는 우열의 차이는 없습니다. 만약 차이가 있어 보인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이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고 그래서 동등합니다. 하지만 역할의 차이는 있습니다.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입니다. 3절입니다. 3.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얼핏보면 이 내용이 우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자보다 남자가 높고 남자보다 예수님이 더 높고 예수님보다 하나님이 가장 높다‘ 이렇게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이단입니다, 누가 더 높고 더 우수하냐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중에서 누가 더 높습니까?” 이 질문에 하나님이 더 높습니다 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이단입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동등합니다. 그 본질과 속성에 있어서 동등하신 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보다 더 낮으신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낮추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스스로 낮추셨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동등합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이 표현은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낮고 하는 우열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고 해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낫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머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낫고 똑똑한 면이 많습니다. 이세상에 여자들이 있기에 지금 이세상이 이렇게나마 존재하고 있는것이지, 남자들만 있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멸망하고 없어졌을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자의 머리가 남자다’ 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역할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 예수님을 이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때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 보고 ’네가 세상에 가서 인간들을 구원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동등 하신 분이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예수님께서는 복종하셨습니다. 복종 한다고 해서 더 못하고 열등한 존재는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에 복종한다고 해서 그사람보다 열등해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역할의 차이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역할의 차이입니다. 질서에 따른 일종의 역할의 차이가 있는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한 가정이나 사회를 만드셨을 때 리더십을 남자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가 더 똑똑하냐 누가 더 우월하냐 라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더 힘이 세냐 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냥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대한 리더십을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허용하셨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리더가 없는 가정, 리더가 없는 교회, 리더가 없는 나라는 혼란의 연속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기독교 윤리학자가 이런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리더십을 빼앗고 침범하는 일로 인해 자식들이 바라볼수 있는 아버지의 역할 모델이 사라지고 있다. 그 결과로 동성연애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동성연애자들의 가정을 보면 아버지 모델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물론 동성애가 유전적이냐 환경의 차이냐 하는 논쟁은 지금까지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 동성연애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한 것으로 본다면 그렇게 된 가장 결정적인 영향이 무엇인가 하면 아버지의 리더십이 없는 가정에서 동성애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남자의 리더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자가 남자의 리더십을 세워주고 따른다고 해서 그 여자가 열등 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가 남자의 리더십을 세워줄 때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차이 인 것이지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못하느냐 하는 차이는 아닌 것입니다.

자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십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입니다. 이것은 리더십에 따른 역할의 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남자의 영광이 드러나면 안됩니다. 그래서 여자의 머리에 수건을 쓴것입니다. 여자 머리는 남자니까 남자의 영광이 드러나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의 머리에는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만일 교회 예배시간에 남학생이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예배를 드리면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이상할 것입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주님의 영광은 드러나야 합니다. 이러한 배경이 바로 초대 교회 당시 여자 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남자 성도는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위함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드러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찬양하는 성가대나 지휘자의 영광이 드러나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대표 기도하는 자의 영광이 드러나서도 안되고 설교하는 자의 영광도 드러나선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예배중에 드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의 근본 정신입니다. 물론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은혜를 받아 성도들이 박수를 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사람에게가 아닌 성가대 대원들에게 귀한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올리는 마음으로 쳐야 합니다. 예배중에 사람은 숨겨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당시 여자 성도의 머리에 수건을 썼지만 남자 성도의 머리에는 수건을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자 성도들이 자기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나와 내 배우자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남은 생애동안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기 위한 삶을 살아갈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머리에 쓰는 수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성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함

세상이 아름다워 질려면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는 남자다워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어야 하고 새는 공중에 있어야 그 가치가 있습니다. 물고기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 있으면 그 물고기는 추한 존재가 됩니다. 여성은 여성다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당시 여성스러움의 특성은 바로 긴머리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 여성스러움은 굳이 긴머리 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당시의 문화로 볼 때 긴머리가 여성스러움을 상징했습니다.

5, 6절입니다. 5.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여자가 머리를 밀고 대머리로 다니는 것은 여성스러움이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남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15절입니다. 14.만일 남자에게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부끄러움이 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15.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긴 머리는 가리는 것을 대신하여 주셨기 때문이니라”

그당시에 긴 머리가 수건을 대신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긴머리로 있으면 그것은 마치 수건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가리는 믿음이 없는 부끄러운 행동이었던 것으로 여겼습니다. 반면에 여자들의 긴 머리는 수건을 머리에 쓴것을 상징했고 그래서 여성스러움을 추구하는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그당시 문화적인 면에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짧은 머리나 긴머리와는 다른 문제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여성다와야 하고 남성은 남성다와야 한다는 그 정신은 긴 머리든, 짧은 머리든 상관없이 지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어 하고, 여자가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여성의 아름다움은 여성다움에 있고 남자의 아름다움은 바로 남성다움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바로 열등의 차이가 아니라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차이로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머리에 쓰는 수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순종의 마음가짐을 보여줌

우리가 남성이든 여자이든 간에 관계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겠다고 하는 마음자세에 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겠다고 하는 믿음의 자세가 바로 그당시 여성도들이 예배중에 자기 머리에 수건을 쓰는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순종이 이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하는 마음 자세는 계속 되어야 하는 것 입니다. 예배중에 여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마음 자세입니다. 여기에 두 종류의 여자 성도가 있습니다. 한 성도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그리고 예배를 드릴 때 마다 머리에 수건을 씁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면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합니다. 친교시간에 섬기고 봉사하는 것은 없고 성도들이 차려놓은 음식을 먹고 그맛을 평가하는 감별사가 됩니다. 그리고 이 성도 저 성도의 가정에 간섭을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다른 여자 성도는 예배를 드리는 중에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섬기고 봉사를 하는 일에 앞장을 씁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두 성도중에 어느 성도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예배중에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은 성도가 하나님 보시기에 수건을 쓴 성도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예배 순서에 따라 찬양하고 기도하며 그리고 말씀을 듣고는 있지만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해나갈뿐입니다. 일상생활속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제 간단히 정리합니다. 예배의 목적은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에 있습니다. 그럼으로 예배를 통해 우리 인간은 감추어져야 하고 주님과 하나님만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당시에 여자 성도들은 남자가 드러나지 않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주님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수건을 쓰지 않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여성은 여성답게 남성은 남성답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이라 할수 있습니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자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라옵기는 시대에 따라 예배에 대한 풍습과 전통은 변한다 할지라도 예배의 정신과 원리는 변함없이 지켜나가며 신앙생활 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