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하나님과 화목하라

Author
kgmcc
Date
2020-05-17 13:34
Views
95
본문 : 고후 5장 18-21절

날짜 : 2020년 5월 17일

 

<고후 518-21>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오래전에 미국 카네기 제단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1만명을 대상으로 성공의 비결에 대하여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질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1. 당신은 어떻게 돈을 많이 벌었습니까? 2. 당신은 어떻게 승진이 빨랐습니까?

3. 당신은 어떻게 힘든일을 해냈습니까? 4. 당신은 어떻게 유명해졌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한 사람들중에 약 15퍼센트만이 머리와 기술과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85퍼센트 사람들은 인간관계로 인해서 성공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몇년전에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실직을 하게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왜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질문에 일을 잘못해서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사람보다는 인간관계가 나빠서 쫓겨났다는 사람이 두배나 더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성공했고 인간관계가 나쁜 사람이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그리고 성공과 실패는 관계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와 수평적으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가 이렇게 중요한데 사람들을 보면 이런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관계를 무시하고 열심히 돈을 버는 일에만 몰두하고, 관계를 무시한채 연구하고 공부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인간관계가 문제되어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주변에서 봅니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음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앞절인 17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 속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고 하는 말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라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 ‘화목’ 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18절 앞부분입니다.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화목하게 하시고‘ 라는 표현을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원수된 관계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10절입니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었나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과 내가 원수된 관계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죠. 이사야 59장 2절입니다. ‘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웠던 것입니다. 이 죄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원수된 관계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너무나 거룩하셔서 천사도 하나님을 똑바로 볼수 없어서 자기 두 날개로 두 눈을 가릴만큼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절대적으로 죄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을 한 것이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자는 간음을 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시기, 질투, 미움, 분쟁 이 모든 감정들이 거룩한 하나님앞에서 모두가 다 추악한 죄인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으로 선한 하나님과 절대적으로 악한 죄인이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려움과 떨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 좋은 예가 베드로입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만큼 물고기가 가득 잡혔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능력을 보고 난후에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주님 나와 같이 동업을 하십시다. 비즈니스 파트너 하십시다.’ 이렇게 말 했습니까? 아니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눅 5장 8절)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6장을 보면 이사야가 하늘의 보좌에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의 보좌를 본 다음에 이사야가 할렐루야라고 외친 것이 아니라 뭐라고 말했나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 6장 5절) 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고백한 내용은 나는 이제 죽었구나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이 하나님 영광을 보게 되면 두려워 떨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나는 완벽한 죄인인데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면 거기에 무슨 안식이 있고 평안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저와 여러분이 차를 타고 평안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경찰차가 내 옆차선에서 나와 비슷한 속도로 계속 운전하고 있으면 내마음이 어떻습니까? 행복해집니까? 내 마음이 불안하잖아요? 그러다가 그 경찰차가 다른 길로 가버려서 내 눈에 안보이게 되면 얼마나 내 마음이 평안합니까? 이렇게 경찰차를 잠시 보아도 내마음이 불안한데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이 같이 만나게 되면 거기에 무슨 평안과 기쁨이 있겠습니까? 두려움과 심판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왜요?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려고 자기 아들을 이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조금전에 본 18절 말씀이 바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보시겠습니다.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서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성도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제목은 ‘하나님과 화목하라’ 입니다. 20절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20.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직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미숙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예수를 믿고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그럼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 말씀이 주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하나님과 화목해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오랫동안 원수로 지냈던 사람들이 하루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화해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화해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이후에 ‘우리는 이제 화해했습니다‘ 고 말하면서도 계속 같이 대화를 나누지도 않고 만나지도 않으면 그것이 무슨 화해했다 고 할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과 화목한 신분이 되었다면 거기서 끝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받기를 원하고 승리하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원하고 성공하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과 불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불화하는 행동입니다. 욥기 22장 21절입니다. ‘21.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누구에게 복이 임합니까?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에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 받기를 원하면서도 하나님과 불화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고 그 아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드려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교회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회를 비난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사람의 마음속에 평강이 있고 복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당신 자신과 화목하게 된 우리들에게 새로운 직분을 하나 주셨습니다. 18절입니다. 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교회 안을 보면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남녀 선교회 회장, 선데이 스쿨 교사 등 이런 저런 직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주시는 직분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직분은 교회에서 가지는 어떤 직분보다도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 성도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어떻게 해야 잘 감당할수 있습니까?

1. 복음의 증거를 통해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라도 하나님과 화목케 할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화목하게 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19절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19.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화목하게 하는 능력이 없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까? 말이 안되잖아요? 화목하게 하는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시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능력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데 하지 못했다고 나무라고 징계하시면 누가 그 직분을 받을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해나갈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을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19절 하반부입니다. ‘19.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니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나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복음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이웃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회가 되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진 죄값을 대신해서 생명으로 지불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됩니다. 이렇게 전할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할 때 성령님께서 그사람에게 감동 감화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리를 하면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지만 화목하게 할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만 그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화목하게 하신 직분을 가진 우리를 통해서만 그 능력을 나타내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다른 무엇 보다도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그사람에게 감동을 주셔서 예수님이 나를 위하여 죄를 짊어지시고 죄 값을 십자가에서 다 치루시고 죽으셨다라고 하는 사실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원수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과 원수된 입장인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한자로 살아가게 한다면 그 화목하게 하는 직분보다 더 가치가 있고 영광스러운 직분이 세상에 또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가고 있는 그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전해서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면 그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의 영광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우리들이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가지고 세상의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한자가 될수 있게 하시길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어떻게 감당할수 있습니까?

2. 사람들과의 화평을 통해서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아가던 우리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리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할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들과 화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롬12장 18절입니다.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히브리서 12장 14절입니다. ‘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모든 사람들입니다. 내마음에 들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입니다.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은 누구입니까? 화평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은 피스 메이커이지 트러블 메이커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을 보게 되면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중에 이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상대하지 말아라 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기 남편을 사탄 원수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분명한 사실은 영적으로는 분리가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세상에 속한자가 하나님에게 속한자로 바뀌게 됩니다. 영적으로 세상과는 분명히 분리가 됩니다. 그렇다고 믿는 우리가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영적으로 분리되는 것 하고, 세상 사람들과 협력도 하지 않고 등지고 살아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세상은 빛이 필요한 만큼 어둡고 소금이 필요한 만큼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빛은 어두운데 있어야 그 가치가 드러나고 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빛의 가치는 빛속에 있을때가 아닙니다. 빛의 가치는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할 때 그 가치가 더욱 있는 것입니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밝게 빛을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믿는 성도들은 빛을 발하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세상에 계신 동안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몸과 웃음을 팔아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가 창녀들입니다. 그당시에 세리는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도 세리가 들어오면 재수 없다고 사람들은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의 삶의 터전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썩고 더러운 세상입니다. 이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어두운 곳입니다. 이렇게 썩고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이 한줄기 빛이 되길 원하시고 한줌의 소금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평화를 만들어야지 긴장과 편을 가려는 관계를 조성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고 모든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입니다. 그 모든 사람들중에는 내 가족도 있지만 내 돈 떼먹고 도망간 사람도 포함됩니다. 나를 비웃고 무시한 말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 모든 사람들과 화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화목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고전적인 예화가 있습니다. 작은 연못에 물고기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물고기가 생각하기를 저 물고기만 없으면 저 물고기가 먹는 모든 것들이 다 내것이 될텐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하루는 그 물고기를 물어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모든 것이 다 자기것이 되어서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죽은 물고기가 썩어서 거기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물도 썩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나머지 물고기도 죽게 되었다는 고전적인 예화입니다.

우리는 내가 남을 죽이면 내가 살아남게 될 것이고 내가 남을 낮추면 내가 높아지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남을 짓밟으면 나도 함께 밟히게 되고, 내가 남을 낮추면 나도 함께 추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내가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 모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낮출 때 모두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주실만큼 우리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살기에 바빠서 하나님 아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아들을 마굿간 속에서라도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님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럽고 추하게 살아가는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우리 인간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웃음과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가장 저주받은 상징인 십자가에 매달려 생명을 바쳤습니다. 왜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까?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용서할수 없는 사람, 나를 괴롭히고 나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화목하게 하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하며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로서 충성을 다하며 살아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