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Author
kgmcc
Date
2020-05-30 15:23
Views
87
본문 : 사도행전 9장 10-19절

날짜 : 2020년 5월 31일

<사도행전 910-19>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지난 주일에는 사울의 회심에 대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약 280 KM(175마일) 떨어져 있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기 위해 길을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정오의 햇빛보다 더 강한 빛으로 인해서 사울은 눈이 멀게 되었고 또한 땅에 엎드러지게 됩니다.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 사울은 앞을 보지 못한채로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 사흘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한채로 지냅니다. 그 캄캄하고 고통의 사흘은 사울이 금식하면서 자신이 잘못했던 생각과 행동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사흘은 하나님앞에 지난날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흘은 사울이 그동안 움켜쥐고 있었던 것을 내려놓고 깨트린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사울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왔던 학문과 가문과 직분과 명예를 다 내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고 자아를 깨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크신 일을 맡기시기 전에 그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캄캄한 사흘길을 허용하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어둡고 캄캄한 사흘길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 크신 일을 이루실수 있다고 여기셨기 때문에 캄캄하고 고통스런 사흘을 허용하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울이 사흘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주님은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 라고 하는 제자를 부르십니다. 10절입니다.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오늘 본문은 아니니아 를 제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시면 아나니아 는 여기에만 등장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단 한번 이 아나니아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아나니아를 ‘제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아나니아의 삶을 살펴보면 제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아나니아는 어떤 사람입니까?

1.경건한 사람

사도행전 22장을 보면 바울이 많은 사람들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간증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아나니아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11절과 12절입니다. ‘11.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2절 앞부분을 보시면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아나니아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경건하다고 하는 원래 의미는 ‘구별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주님의 제자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사업을 한다면 사업을 하는 방법이 달라야 하고, 내가 교사라면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도 달라야 하고, 내가 의사라면 환자를 보는 방식도 달라야 합니다. 한마디로 우선순위가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어떤 것을 더 기뻐하실까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경건한 사람이고 구별된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는 정말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2.칭찬 듣는 사람

사도행전 22장 12절 하반부를 다시 보시겠습니다. '12.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아나니아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시면 초대교회가 일곱 집사를 선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 그 기준중의 하나가 바로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3.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려면 그만큼 성품이 좋아야 하고 인격이 훌륭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3.이해를 초월해 순종하는 사람

사울이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을때에 주님께서 아나니아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절입니다. 11.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을 보게 되면 안수하여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입니다. ‘12.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자,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사울을 찾아가라’ 말씀하시고 또 ‘사울을 안수하여 보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명령은 아나니아에게 있어서 굉장히 부담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자신의 심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주님께 말합니다.

13절 14절입니다.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그러니까 아나니아는 이런식으로 말한것입니다. ’주님 사울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 사람들에게 소문을 들어서 잘알고 있습니다. 그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에서 많는 해를 끼친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갈수 있는 공문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사울을 나보고 만나라고 하십니까? 그리고 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사람은 평생동안 눈이 먼 맹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인간입니다.‘

이렇게 아나니아는 사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주님께 드러내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5절입니다. ’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가라 이사람은...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실 이것은 우리 인간으로는 이해할수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죽이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가두는데 앞장을 섰던 사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울을 하나님은 ’내가 택한 나의 그릇‘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보게되면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너무나 다른 것을 알수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각과 우리 인간의 시각은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가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 아나니아는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았다는 것 입니다.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 사람이 없어서 하필 그사람 입니까? 왜 살인자를 택하십니까?‘ 이렇게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았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가서 그를 ’형제‘ 라고 부릅니다. 17절입니다.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 ‘형제 사울아’ 그리고 사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의 눈에 비늘같은 것이 벗겨지면서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18절입니다.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누가 제자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면 내생각과 내 판단과 내 선입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적인 권위로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면 제자가 아닙니다. 제자는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나니아를 '제자' 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아나니아는 사울을 위해서 준비된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준비해주셨기 때문에 사울이 바울이 될수 있었고 세계 선교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아나니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위해 아나니아를 준비해두셨던 것처럼 나를 위해서도 아나니아를 준비해두십니다. 그래서 그 아나니아로 인해서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어지기도 합니다. 내가 낙심하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 아나니아로 인해 위로받고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준비해놓으신 아나니아로 인해 풍성한 신앙생활을 해갈수가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또 다른 아나니아가 될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또 다른 아나니아가 되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힘을 주고 그들을 보지 못하게 덮고 있던 비늘도 벗겨질수 있도록 기도를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아나니아가 있는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요 건강한 교회입니다. 저희 교회가 지금 사람의 눈에 정말 초라하지만 한 두명이라도 이런 아나니아가 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나니아는 이후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아나니아는 오늘 본문에만 나옵니다. 하지만 이 아나니아가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바울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나니아는 그리스도인들중에서도 정말 큰 위대한 일을 하고 하나님 품으로 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방식은 인간이 평가하는 방식과는 다릅니다. 한가지 일을 해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는 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사울과 아나니아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는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주님의 일하시는 방식

1.서로 알수 있게 행하심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고자 하실때 일방적으로 한사람에게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그 사건과 관련이 된 사람들이 서로 알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만 일방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12절입니다. ‘12.그(사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사울이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환상을 보게 해주셨는데 어떤 환상입니까?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사울 자기에게 와서 안수하는 환상을 보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나니아야, 네가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낫게 하는 환상을 사울에게 보게 해주었다. 그러니 네가 사울에게 가면 사울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울과 아나니아는 서로 만나기 전에 주님의 뜻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넬료라는 백부장과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넬료 백부장이 기도를 할 때 주님은 ‘하인들을 보내 베드로를 데려오게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은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서로 만나기전에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서로간에 알게 하셔서 어느 한사람이 당혹해하거나 속임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출처가 불명확한 환상에 대해 이야기 하고, 주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교회를 해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일은 성경 어느곳에도 없습니다. 때로는 올바른 소리를 해야 하지만 교회를 넘어지게 하고 성도들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자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종종 당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은 환상이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면서 나도 같이 협조하길 원하는데 내자신은 잘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다보면 이런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발생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나님께서 내게도 말씀하시거나 환상을 보여주실때까지 기도해야 하나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은 성경말씀에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날에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누구에게나 알수 있게 하십니다. 그럼으로 어느 누가 환상을 보았다고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성경 말씀을 기준 삼아서 분별해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담이지만 오래전에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는 그때마다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환상을 보셨다면 그 환상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정리하셔서 성경말씀안에서 전하십시오. 성경 말씀으로 정리해서 전하는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국 성경과 관련없는 환상을 전하는 그사람으로 인해 저희 교회가 굉장히 힘들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종종 꿈이나 환상을 통해 알려주시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늘날에는 완성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날마다 읽으며 신앙생활 해나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원리 첫째는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서로 알게 하십니다.

주님의 일하시는 방식

2.믿음의 사람을 통해 행하심

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사울에게 역사하셨던 예수님께서 마무리까지 직접 해주시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수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사울을 만나주시고 말씀하셨던 주님이, 다시한번 다메섹에 있는 사울을 직접 찾아가셔서 사울의 눈에 있는 비늘을 벗겨주시고 보게 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나서 ‘사울아! 너는 앞으로 이방인들에게 가서 전도를 해라’ 라고 말씀하시면, 사울은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충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눈이 멀고 땅에 엎드려져 있던 사울에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절입니다.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너는 일어나 다메섹 시내로 들어가라’ 여기서 ‘너’ 는 바로 '사울' 이고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자’ 는 본문을 통해 '아나니아' 인 것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아나니아가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을 말해줄 것이다’. 이렇게 주님은 사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울의 회심을 위해선 직접 찾아가 주셨지만  그 이후에는 아나니아를 통해 그 다음일을 진행해나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일이 좀 더디고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도 대부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행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그러면 왜 구태여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신앙은 인간관계를 통해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들어오면서 성도들과 더불어 점점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26절을 보시면 회심한 사울은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먼저 사귀고자 했습니다.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사울이 왜 예루살렘을 방문했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과 사귀기 위해서 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왜요? 제자들이 두려워 했고. 그리고 또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부터 멀리 예루살렘에 까지 왔는데 이렇게 자기를 믿지 못하고 멀리하면 사울의 마음이 멀어질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사울은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할수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십시오. 나는 이방인들을 전도하러 세계 방방 곡곡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우리 서로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다가 나중에 천국에서 모두 만나십시다’

그리고는 사도들 따로, 자기 따로 이렇게 사명자의 길을 갈수도 있었습니다. 설사 그렇게 할지라도 서로 최선을 다해 사명자의 직분을 감당해 나간다면 그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신앙은 신앙의 공동체속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가 제자들과 사귐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은 대부분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울은 자기가 고통스러워했던 시기에 아나니아가 찾아와 자기를 향하여 ‘형제여‘ 라고 말했을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자신이 보지 못하게 했던 비늘이 벗겨지고 보게 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 사울은 자신이 또 다른 아나니아가 되어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신앙은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럼으로 믿는 성도들간의 도움과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안에서 믿음의 성도들과 더불어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신앙의 공동체안에 들어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니까 자꾸 상처를 주고 받게 되더라' 고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들어오지 않고 나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볼수 있습니다.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모두 죄성이 많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성이 많은 사람들이 만나서 관계를 하다보면 당연히 상처를 주고 받게 됩니다. 그래서 만나면 상처를 받고 하니까 차라리 편안하게 나홀로 신앙생활을 해나가겠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생깁니니다.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받는 상처가 생길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안에 들어와서 관계를 맺고 신앙생활을 해나가시길 원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기도응답을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도 믿음의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위로 하실때도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위로하십니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인해 받는 상처와 아픔이 있지만 믿음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혜가 더 큰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사람 복이 있고 애통하는 사람 복이 있고, 온유한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하다보면 마음이 가난해지고 애통하게 되고 온유하고 화평하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실상 누가 가장 이세상에서 심령이 가난 하신분이십니까? 세상에서 누가 가장 애통하고 온유하신 분이십니까? 누가 가장 긍휼히 여기고 화평하게 하는 분이십니까? 바로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가장 많이 상처를 받고 마음이 가난해지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신앙의 공동체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게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이고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 믿고 인내하십시다.

정리합니다. 우리가 이땅위에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동안 우리는 서로 서로 아나니아가 되어 교제해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16절)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말씀은 주님이 아나니아에게 하신 말씀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아나니아를 통해 또 다른 사람을 회복시키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으로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와 여러분의 주변에 아나니아를 준비해놓으십니다. 그리고 때론 저와 여러분 자신을  아니니아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하십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다 아나니아가 되어 내 생각과 내 판단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연약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하며 신앙생활을 해나갈수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