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Author
kgmcc
Date
2020-06-27 21:15
Views
62
본문 : 마가복음 1장 35-39절

날짜 : 2020년 6월 28일

 

<마가복음 135-39>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미국의 메이저 골프대회중의 하나인 PGA 경기에서 1993년 8월에 우승을 한 폴 에이징어 선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PGA 골프대회에서 우승을 한 그 해 12월에 이 폴 에이징어 선수는 오른쪽 어깨에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이후 그는 골프채를 휘두를때마다 오른쪽 어깨로부터 전해지는 통증을 점점 심하게 느끼게 되어서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항암제 치료를 받는 투병생활을 해나가야 했습니다. 자신이 걸린 암으로부터 완치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하는 진단을 받았지만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항암치료와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나갔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하나님이 하심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암이 발생한지 2년만에 상황이 호전되어서 다시 골프채를 잡게 되었는데 1993년에 우승한지 6년 5개월이 지난 2000년 1월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 골프 대회에서 또 한번의 우승을 하게 됩니다. 우승할 때 장면이 담긴 짧은 동영상을 준비했는데 잠시 보시겠습니다. 이 소니 골프대회서 우승을 한 이후 폴 에이징어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제가 암에서부터 낫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제 암이 다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슨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나를 끝까지 사랑으로 돌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암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지난후부터 제 몸에 있는 암세포가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정말 힘든 일이 생겼을때 하나님은 끝까지 나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떤 경우에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만이 처해있는 환경을 극복할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폴 에이징어 선수는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 힘든 순간을 극복해왔습니다. 믿는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 보다는 같이 있기를 더 원하십니다. 모든 것을 이미 다 가지신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기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값을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입니다. “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유명한 목회자이자 신학박사인 AW 토우져 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얼마가지 못해서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교제를 할 때 우리 인간은 그 능력을 얻을수있기 때문이다”. 그래요. 여기서 ‘하나님과의 교제’ 를 다른말로 표현하면 ‘기도’ 입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과 대화할수 있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를 지내시는 동안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사역을 다 이룰수 있었던 비결은 기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사람이십니다. 인성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예수께서는 기도 생활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사역을 지치지 않고 이룰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기도에 대해 예수님께서 평소에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신지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

1. 기도의 열망

35절입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좀더 눕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새벽이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자고 싶다는 유혹보다 더 강한 그어떤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요즘에 매일 아침 6시 이전에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이유도 그 어떤 열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열망 때문입니다. 눈을 뜨는 순간에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열망은 커피를 뽑은 후에 그 커피에 꿀을 넣어 마시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열망 때문에 저는 그전날밤에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할지라도 새벽에 눈만 뜨면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잠에서 일어나게 하는 그 열망의 내용이 저와는 다르지만 예수님께서도 기도에 대한 열망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실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새벽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만큼 그 전날 한가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전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1장 21절입니다.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안식일 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서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설교 도중에 귀신들린 사람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내어 쫓습니다. 25절과 26절입니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제가 옛날 청년시절 교회서 금요 철야기도를 할 때 그 누가 귀신 들린 사람을 데리고 온적이 있었습니다. 그당시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대략 열명 가량이 그 귀신들린 사람 주변에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귀신이 만일 나한테 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제입에서 아주 결사적인 기도가 나오더군요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그 다음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온종일 집에서 그냥 쉬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귀신을 쫓아내고 다시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회당예배가 끝납니다. 당연히 예수님께는 휴식이 필요하셨을 것입니다. 또 점심 식사도 하셔야요. 그래서 그당시 바로 회당 가까이 살고 있었던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십니다. 1장 29절입니다. “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과 안드레는 형제이니까 시몬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점심 식사도 하시고 쉬기 위해서 시몬 베드로 집에 가신 것이죠. 그런데 시몬 베드로의 집에 또 하나의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시몬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에 걸려서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예수님께서는 그 장모님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1장 30절과 31절입니다.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자 이것이 이날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이었습니까? 아니죠. 사역은 계속됩니다. 32, 33절입니다. “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33.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가 예배 도중에 귀신을 내어쫓았다! 그리고 또 시몬 베드로 장모의 병도 고쳤다!” 라는 이 소문이 몇 시간만에 쫙 퍼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들고 온 마을에 있는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34절입니다. “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자,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십니다. 이때가 언제라고요? ‘저물어 해질때에...’ 저물어 해질때에 많은 병자들이 왔습니다. 그러니 많은 병자들을 다 고치시고 귀신들을 다 쫓아내었을때는 시간이 아주 늦은 한밤중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바쁜 하루입니까? 얼마나 피곤한 하루입니까? 그렇게 바쁜 하루가 지나가고 그 이튿날 날이 밝기 전인 이른 새벽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같이 이런 바쁜 하루를 보냈다고 가정해보십시다. 그리고 그다음날은 특별히 약속한 스케쥴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병고치고 귀신을 내쫓아본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이렇게 힌번 쉽게 생각 해보세요. 가게에서 바쁘게 계속 일을 하는데 그다음날 국가 공휴일 holiday라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 같으면 그날 아침 일찍 눈뜰때 이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누워있자. 오늘은 좀더 늘어지게 잠을 자자

물론 골프나 낚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은 보통때보다 더 일찍 일어날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냥 ‘좀더 잠이나 자자’ 이런 생각을 할 것 입니다. 그런데 그전날에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신 예수님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주십니까? 35절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그전날 그렇게도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나가십니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전날 그렇게 바쁜 하루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까? 기도를 해야할 의무감 때문입니까? 여러분, 기도를 의무라고 한다면 이렇게 하기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기도는 믿는 성도들이 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오히려 안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면서 쉬시고, 기도하시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기도하시면서 지나간 하루의 스트레스를 극복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있어서 기도는 즐거운 일이였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그전날 밤에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잠을 주무셨을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입니다. 마틴 루터가 쓴 일기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요즘 내가 점점 더 바빠진다. 더 많이 기도를 해야 하겠다.” 저와 여러분이 가진 생각과 얼마나 다릅니까? ‘요즘 내가 너무 바빠진다 기도할 시간이 없다.“ 이게 우리의 생각이잖아요. 사실 이정도 생각을 해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잘 안하죠.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야, 요즘 내가 너무 바빠진다. 잠잘 시간도 없다“

바쁠수록 기도에 힘을 썼기 때문에 마틴 루터는 그 당시 거대한 로마 카톨릭 세력과 맞서서 싸울수 있는 능력과 힘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기도는 안식이었습니다. 기도가 능력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기도하는 것을 사모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기도를 사모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이민온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왜 미국으로 초청합니까? 부모님들이 이곳 미국에 오시면 말도 안통하고 다니시기도 불편 하실텐데 왜 초청합니까? 부모님을 보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입니다. 한국에 자주 가시는 분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살아계시다’ 는 것입니다. 한국에 가도 부모님을 볼수가 없는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잘 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신후에 한국에 한번 가보고는 ”이제 다시는 안 갈랍니다“ 라고 말을 하는 성도님들을 저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평상시에 예수님을 지배하고 있었던 열망은 바로 ‘아버지와 이야기 하고 싶다’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일에 시달려 육신이 힘들면 힘들수록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육신이 피곤한 것 하고 영혼이 지쳐있는 것하고는 달라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새로운 힘과 소망을 얻게 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세상일 때문에 해야 할 일이 잘 안되고 육신이 피곤하고 지칠 때 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이야기 하고 싶다라고 하는 열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자 하는 열망을 늘 지니고 계셨습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

2. 기도할 계획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른 새벽에 어디로 가십니까?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지금 이모습은 예수님께서 미리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이는 행동입니다. ‘내일 이른 새벽에 한적한 그곳에 가서 아버지하고 이야기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지’ 이런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아직도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그곳에 가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하신 것입니다. 장사꾼들이 일어나서 떠드는 소리가 아직은 들리지않는 이른 새벽입니다. 밤새도록 떠들면서 술을 마시던 술주정뱅이도 이젠 술에 골아 떨어져 잠들어 버린 그 새벽시간입니다. 모두가 다 잠들어있는 그시간에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하십니다.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의 기도는 예수님의 계획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본문을 가지고 너무 지나치게 적용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봐라, 예수님께서는 일생 동안 새벽기도를 했다, 그러니까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라고 이렇게까지 적용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새벽 기도를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날 새벽기도를 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새벽기도는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입니다. 필요하고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새벽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고 놀라운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이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사람의 신앙은 어리다고 판단하는것에 있습니다. 큰 교회에 가보시게 되면 중보기도 반이 있고 Quite Time(QT) 모임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 생활을 한다고 새벽기도 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을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중보기도반에 들어간 사람은 중보기도반에 들어오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을 어린 성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Quite Time반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는 Q.T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기도하느냐, 언제 기도하느냐하는 것은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새벽 기도회 식으로 하느냐, 큐티식으로 하느냐, 중보기도식으로 하느냐 그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본질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기도의 시간, 그리고 나에게 적합한 기도의 장소를 계획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바쁜 스케쥴 속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얻기 위해서 이 기도시간과 장소를 계획했습니다. 그러니 성도님들께서는 시간이 없으면 운전중이라도 하나님과 대화를 하시길 바랍니다. 그때는 눈감고 하면 안되겠죠. 바라옵기는 내게 적합한 기도의 시간과 기도의 방법을 계획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

3. 기도후 행동

36절과 37절입니다. “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새벽기도를 하는 장소에 찾아왔습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자주 가셨던 장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을 왜 찾나요? 그 전날 저녁부터 밤늦게 까지 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물리치셨기 때문이죠. 그 소문이 퍼져 이제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오 그래?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어? 그러면 빨리 가야지, 자, 가자.“ 제자들에게 그랬나요? 38절입니다. ”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거절을 하신 것입니까? 거절을 하신 것이지요. ”아니야, 오늘은 다른 계획이 있어.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거기서 전도를 해야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지는 않으셨습니다. 골든 맥도날드라고 하는 유명한 목회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들을 보면 두가지 종류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알수 있다. 하나는 충동적이거나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소명에 의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래요. 물론 바쁘고 급하게 사는 것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바쁘고 급한 생활을 하다가 보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됩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나쁜일이 아닙니다.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병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 구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영혼 구원을 받아야만 그 인간들이 이땅을 떠날 때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같이 지낼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마을에서 병 고치는 것이 더 필요할수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병고치고 전도를 하자’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라는 우선순위를 알았습니다. 어차피 우리 제한된 우리 인생은 모든 일을 다 하고 살수는 없습니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선택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면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를 알수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나면 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 내용이 아닙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축복입니다.

기도를 마치고 난이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39절입니다.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기도를 마치시고 난 이후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전도를 하시고 또 병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내 쫓으시는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요 저와 여러분이 기도를 하고 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내 직장과 내 사업터와 내 가정에서 그리고 내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되어집니다. 어둡고 부정적인 영의 세력이 물러가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능력의 역사가 기도를 하고 깨닫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되어 집니다.

정리합니다 

1. 우리는 기도하며 살겠다고 하는 열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2. 기도 할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만날때도 계획이 있는데 하나님을 만날때도 당연히 기본 계획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간과 그 장소는 내 형편에 맞게 정하십시요.

3. 그리고 기도 중에 깨닫게 되는 말씀에 내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라옵기는 평생동안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하심으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주님의 뜻을 행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축복의 인생을 살아갈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