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알곡의 삶(1) 돌 던지지 말라

Author
kgmcc
Date
2020-09-06 04:15
Views
43
본문 : 요한 복음 8장 10-12절

날짜 : 2020년 9월 6일


 

<요한복음 810-12>

 

10.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제가 메시지를 전한지 시간이 조금 지나서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 지난번에 두주에 걸쳐서 가라지와 쭉정이 그리고 알곡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가라지와 쭉정이 그리고 알곡의 차이와 그 각각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곡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곡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곱 번에 걸쳐서 우리가 알곡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것인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돌을 던지지 말라‘ 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눌려고 합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데모가 참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대학 친구들 중에는 데모를 하다가 학창시절을 다 보내버린 친구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데모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에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일반 중,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검정고시를 준비시키는 야간학교에 자원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야간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야간학교에 데모를 하던 대학생들이 들어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 야간학교가 공안당국에 의해 문을 닫아야 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어쨌든 저는 학생들 데모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당시 대학생들이 군인들이나 경찰관들을 향해서 돌을 던지던 모습은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당시 대학생들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 라는 희망을 가지고 돌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돌을 던진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정권이 바뀌었고 제도도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변하지도 않았고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돈과 빽이 없으면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고 살아야 하고, 돈과 권력이 있으면 웬만큼 잘못한 일은 덮어주는 세상을 지금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며 살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돌을 던지는 것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로 우리 인간들은 돌을 던지는 일을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금 이곳 미국에서는 올해 11월에 선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선거할 날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고 비방하는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이 미국은 상대방을 포용하고 화합하는 일에 있어서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모범이 되어왔는데 최근에 들어와서는 그런 모습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돌을 던질려고 하는 무리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본문의 장면은 저와 여러분이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5절입니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보면 간음을 한 남자와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이러한 율법을 적용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간음한 남자와 여자들에게 돌을 던져 죽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져왔지만, 간음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간음죄로 인해서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을만큼 아주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 대학교라고 할수 있는 리버티 대학교 총장의 부인이 젊은 남자와 오랜 시간동안 간통을 했지만 그누구도 감옥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돌을 던지면 죄가 사라지고 그래서 바른 사람, 바른 가정, 바른 교회, 바른 세상이 되어질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세월이 흘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돌을 던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던진 돌에 내가 맞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돌을 던지며 살아갑니다. 교회 안에서 조차도 서로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돌에 맞아 평생 지울수 없는 상처와 쓴 뿌리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시간에는 크게 두가지 질문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그 첫째는 ‘사람들은 왜 돌을 던지는 행동을 하는가?’ 이고, 그다음 둘째는 왜 우리가 돌을 던지면 안되는가?’

이렇게 두가지 질문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 왜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가?

1) 단점만 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잘할 때보다 실수할 때가 더 많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이 잘할때는 그냥 넘어가지만, 조금만 잘못하고 실수하면 정색을 하고 지적합니다.

‘본다’ 라는 우리말이 영어에는 크게 두 가지 단어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see’ 라는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look’ 이라는 단어입니다. ‘see’ 라는 단어는 저절로 내눈에 보이는 경우에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I saw them’ 이라는 문장이 있다면, 우리말로는 ‘내가 그사람들을 보았다’ 입니다. 그런데 좀더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그사람들이 내눈에 보였다’ 는 뜻이 있습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내눈에 보여지는 상황이었을 때, 이렇게 ‘see’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look’ 이라는 단어는 볼수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이것을 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내가 선택한 것만을 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Look at the red car’. 라는 영어문장이 있다면, 우리말 해석은 ‘저 빨간색 차를 보세요’ 입니다. 여러 차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빨간색 차를 선택해서 보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장점과 단점, 둘 다 볼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될 수가 있고, 사랑으로 덮어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듣는다‘ 라는 우리말 표현에도 마찬가지로 영어에는 두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hear’ 라는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listen’ 이라는 단어입니다. ‘hear’ 는 ' See' 와 마찬가지 원리로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귀에 들렸을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비난하는 말도 들리고 칭찬하는 말도 들립니다. 내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도 들리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도 들립니다. 이런 현상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들려지는 것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렇게 들리는 말 가운데서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소리를 버려야 할지를 선택할 때 바로 ‘liste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가운데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는 내 자신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돌을 던지는 사람을 보게 되면 남의 약점이나 잘못된 점만을 보거나 아니면 나쁜 점만을 듣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쁜일이 일어나도 그가운데 좋은 일이 있을수 있습니다. 단지 그 비율이 적을뿐이지 좋은일도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쓴 ‘긍정의 힘’ 이라는 내용을 보면 자기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 제시 아저씨가 함께 고등학교 풋볼 경기를 참관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친구 아들인 제프가 고등학교 풋볼 선수이었는데 그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풋볼 경기장에 같이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제프는 수비선수 이였기 때문에 공격하는 선수를 막는 일이 주된 임무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기중에 공을 잡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제프 앞에 공이 떨어져서 제프가 공을 잡았습니다. 그 다음에 제프가 공을 잡고 뛰든지 패스를 하든지 해야 하는데 그냥 우물쭈물하다가 그사이에 상대편 선수들이 달려들어 제프를 덮쳤습니다. 그러니까 제프가 여러명의 상대방 선수들밑에 깔리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조엘 목사님의 아버지는 자기 친구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다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 친구 제시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띄운채 자기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존, 잘봤어? 내아들 제프가 공을 쥐고 두 걸음 앞으로 움직인 것을 봤어?” 그 경기를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은 제프의 형편없는 경기에 한숨을 지었는데, 제프의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공을 쥐고 움직였던 그 두 발자국을 보고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이 아니라 우리가 두 걸음을 앞으로 내디딘 것을 보시고 잘했다고 격려하시고 칭찬하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 자신이 너무 엉망이라고 부끄러워하는데 하나님은 별 것도 아닌 작은 걸음도 그냥 지나치지 아니하시고 기뻐하시며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보고 계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으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처럼 좋은 면만을 보고, 좋은 이야기만을 듣는 선한눈, 선한귀를 가지고 살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

2)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 하는 것은 ‘내가 너보다는 낫다’, ‘내가 너보다는 잘한다’ 라는 이런 우월감이 내마음 한 구석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우월감의 뿌리는 바로 ‘교만’ 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닌 특성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 사람들이 돌을 들어 던질려고 할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7절 후반부입니다. 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남에게 돌을 던질수가 없습니다. 왜요? 나도 똑같은 죄인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저 여자가 돌을 맞아야 한다면 나도 마땅히 돌을 맞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돌을 들고 있다면 '내가 너보다는 낫다' 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물론 내가 그 사람보다는 나을수 있고, 또 그것이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교만으로 인해 내가 멸망하게 되는 길이 앞당겨질수 있다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잠언 18장 12절입니다.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교만과 겸손 둘중에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내가 멸망의 길을 가기도 하고 반대로 존귀함을 받게 되는 길을 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

3)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남이 저지른 죄와 허물을 향해 돌을 던지는 데는 내가 별로 힘들지 않고, 또 내가 희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우리는 그사람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앞으로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돌을 던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잘못을 깨닫고 올바르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돌을 던지는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 다른 방법은 허물을 감싸주고 용서해주며 사랑으로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희생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돌을 던져서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돌을 던져서 사람을 변화시키고, 돌을 던져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겠습니까? 그것으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랑으로 덮어준다고 해서 상대방이 반드시 변화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상대방이 감사하기는커녕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뭐 어떻습니까? 주님이 보시고 ‘내 딸아, 내 아들아 내가 다 안다, 내가 다 보고 있다’ 이렇게 말씀 하시면 그것이 더 축복입니다. 우리는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무시하고 바보 같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떻습니까? 주님이 인정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칭찬하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성도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럼으로 힘들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을 던지는 것 보다는 사랑으로 감싸주고 덮어주면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는 단점만 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하면 너보다는 더 잘할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그리고 돌던지는 일이 가장 쉽고 자연히 나오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왜 돌을 던지면 안 되는가?

1)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기 때문

마태복음 18장 21절 22절입니다. 21.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번 까지라도 용서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490번까지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에는 한계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기 때문에 돌을 던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을 던지면 안되는 이유

2) 던진 돌에 내가 맞기때문

마태복음 7장 1,2절입니다, 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장 1,2절)

돌을 던져야 마땅할 상황에서 내가 돌을 던진다면, 내가 돌을 맞아 마땅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내가 돌에 맞게 되어있습니다. 반대로 돌을 던져야 마땅할 상황에서 내가 돌을 던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면 내가 돌을 맞아 마땅할 상황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돌을 던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돌을 던지면 안되는 이유

3) 돌을 던질 권한이 없기 때문

돌을 던진다는 것은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을 정죄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 돌을 던지면서 정죄한다면 우리는 내가 바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11절 중간입니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께서도 돌을 던지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셨는데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돌을 던질수 있겠습니까? 가라지는 곡식보다 훨씬 더 크고 더 높이 자랍니다. 그리고 추수때가 되면 가라지와 쭉정이는 늘 고개를 쳐들고 있지만, 알곡은 추수때가 가까이 올수록 고개를 숙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고개를 세우고 다른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을 하기전에 늘 먼저 나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알곡인 성도는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해 추수때가 가까이 올수록 고개를 숙이며 지낸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런 의문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향해서 내가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누고 친한적 하는것은 나의 가식이고 나의 위선이 아닐까?’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식이나 위선이라는 개념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봅니다. 위선이나 가식은 없는 것을 있는 척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죄인인데 의인인척 하는 것은 위선이요, 가식입니다. 하지만 손 내밀기 힘들지만 손을 내미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며, 우리의 인격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내가 웃음을 짓는 일은 ‘항상 기뻐하라’ 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순종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는 본문 11절에서 끝납니다. 11.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런데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싶은 결론은 그다음절 12절에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그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려고 합니까? 그래야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둠을 없앨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쁜 죄를 물리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어둠을 물리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는 죄를 물리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해야 어둠이 물러가게 됩니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빛이 되어야 합니다. 12절입니다. 12.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잘못한 사람에게 돌을 던져 바르게 고칠려고 한다면 그사람은 영원히 변화되지 않습니다. 물론 믿는 성도인 우리에게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잘못을 깨닫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돌을 던져서 될 일은 아닙니다. 어둠을 향해서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고 아무리 말하고 꾸짖어도 어둠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이 될 때 어둠은 사라집니다. 오늘날 세상사람들이 믿는 성도들을 보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예수쟁이들은 모두가 다 하나같이 말은 잘 하더라‘ 입니다. 말로 해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돌을 던져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둠을 향해 ’너는 어둡다 물러가라‘ 라고 해서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빛이 되어 살아갈 때 내주변의 어둠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빛의 존재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그것은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잘못된 것에 대해선 잘못되었다고 말할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우리 믿는 성도는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잘못한 우리 인간들이 받아야 돌맹이 를 대신 맞으시면서 가신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지 않아도 되시는 분이시지만, 우리를 대신해서 모든 비난과 정죄의 돌을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용서와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가신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요, 바로 이것이 빛이 되는 길입니다. 그럼으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사람이 돌을 버렸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내손에 있는 돌을 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엔 이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두 종류의 죄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자기 죄를 인정하는 죄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죄인만 예수님의 눈에 보이실 뿐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죄인만을 하나님께서는 의인으로 보시고 구원하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온 여인은 어쩔수 없이 자기의 죄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자 자신이 진 죄에 대하여 예수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은혜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조건없는 큰 은혜를 누리고, 주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경험할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처럼 자신이 추악한 죄를 지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 죄에 대해 주님께 용서함을 구하면서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사람은 정말 축복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주님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의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모습일수도 있습니다. 죄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에게 만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사람들의 죄와 허물에 대해 돌을 던지는 행위보다는 빛 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 어둠의 역사는 물러나게 될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냥 당하고만 있기에는 정말 너무 억울해서 던져야 할 돌이었다고 한다면 그 원수를 주님이 대신 갚아주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19)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이 말씀에 의지하여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은 자기들이 던질려고 했던 돌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내가 던질려고 했던 돌을 주님앞에 내려놓으십시다. 그리고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래서 바라옵기는 알곡의 삶을 살아가다가 추수때에 하나님의 곳간을 채우게 되는 영광을 누리시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