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Author
kgmcc
Date
2020-01-05 18:19
Views
90
본문 : 여호수아 3장 1-6절

날짜 : 2020년 1월 5일

 

<여호수아 31-6>

1.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 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2.사흘 후에 관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3.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하니라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에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6.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에 앞서 나아가니라

 

오늘은 2020년도 첫 번째로 주일을 맞이해서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한해를 생각해보면 전세계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볼 때 좋은 사건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든 사건들이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별히 대한민국을 자유민주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 체제로 바꿀려는 주사파 문재인 정권으로 인해 대한민국 전 분야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는 일은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전광훈 목사님을 세우시고 담대하게 앞장서게 하셨습니다. 생명을 내걸고 앞장서는 전광훈 목사님을 중심으로 전국각지에 있었던 애국 시민들과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승만 광화문 광장에 모여 문재인 정권 타도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지만 특히 10월 3일 이승만 광장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모였던 것을 시작으로해서 지금은 매주 토요일마다 이승만 광화문 광장에 모여 문재인 하야위해 시위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속에서 우리는 2020년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새해 첫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올 한해도 살아가다보면 이런 저런 장애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힘껏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면 극복할수 있는 장애물도 있겠지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큰 장애물도 만날것입니다. 그런 장애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요단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하겠지만 인간의 힘으로 요단강을 건너기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순간을 극복해야 하는가를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 배경을 잠시 살펴보십시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침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가는 장면 입니다. 신명기 마지막 장인 34장을 보시면 모세는 가나안땅이 바로 보이는 느보산에 올라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신명기 34장 4절입니다.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는 가나안땅을 바라보기만 하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 느보산 어느 한 지역에 모세 시체가 묻혀있을 것이다라고 주장 하기도 하고 또 하나님이 데려 가셨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 사실은 나중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앞에 가게 되면 알수 있게 될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그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이 바로 눈앞에 있는 싯딤에서 진을 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싯딤에서 진을 치고 있는 동안 정탐꾼 두사람을 보내서 강건너 저쪽 가나안 지역에 있는 여리고 성안을 살펴보게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두명의 정탐꾼과 여리고 성안에 있었던 기생 라합이 만나게 되는 사건이 생기게 되죠. 스크린을 보시겠습니다. 여기 느보산이 있습니다. 싯딤, 길갈, 여리고가 보입니다. 그런데 성지순례를 하시게 되면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들어와야 하는데 여기 알렌비 다리(이스라엘에서는 이다리를 알렌비 브릿지 요르단에서는 king 후세인 브릿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를 건너게 됩니다. 다리 밑에는 요단강입니다. 지금은 굉장이 폭이 좁아졌습니다만 1960년대 까지만해도 요단강은 넓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960년도에 강 상류 지역에 큰 댐을 만들어놓고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 네나라가 엄청난 양의 물을 식수와 농업수와 공업 용수로 사용하다 보니까 흐르는 강물량이 예전의 10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 답니다. 그래서 지금은 폭이 좁은 강물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넜던 그당시에는 굉장히 넓고 수심이 깊은 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3장 15절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15. 요단강이 곡식을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언덕에 강물이 넘칠큼 요단강물량이 많았고 따러서 강물의 수심도 굉장히 깊었음을 우리는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이 그다음절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이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건너는 동안 만났던 사건중에 가장 최대의 어려움 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의 길에서 만난 굉장히 힘든 시련을 상징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앞에 놓인 이 요단강은 반드시 건너야 합니다. 반드시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와 여러분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올 한해 살아가는 동안 이러한 요단강을 건널수 있는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이 한해 살아가는 동안, 아니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요단강을 건너야하는 일을 만나게 될 때 성공적으로 건널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어떻게 하면 요단강을 건널수 있습니까?

 

1. 최선을 다하라(1)

1절입니다. “1.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그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과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 건너가기전에 거기서 유숙하니라”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는 모세가 아닌 여호수아 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에 비해서 강력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요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깨우게 하고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시켰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미 두정탐꾼을 여리고 성안에 보냈고 그 정탐꾼이 가져온 여리고 성에 대한 정보를 미리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미리 준비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날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큰 오해가 있다면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가 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지만 동시에 행동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노아를 보십시오. 노아는 믿음이 있었기에 120년 동안 방주를 짓는 일을 했습니다. 그동안 주변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멸시와 조롱을 당해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노아는 묵묵하게 자기의 일을 해나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기에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일천마일이나 되는 거리를 여행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 남쪽 끝 플로리다 마이애미 비취까지의 거리가 750마일 정도이니까 일천마일이라면 굉장히 먼거리 입니다. 그 먼길을 묵묵히 여행했습니다. 기생라합을 보십시오. 기생 라합은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두 정탐꾼을 숨겨주고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주사파 문재인 하야를 외치는 성도들을 보십시오, 믿음이 있기에 거리로 나와서 담대하게 외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성도 그렇지 못한 성도의 차이는 단 한가지 차이일 뿐입니다. 믿음의 차이입니다. 특별히 목회자나 직분자로서 지금 이런 사태가 될 정도가 되어도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믿음의 유무에 대해 저는 심히 의심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합니다.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사람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증거는 보입니다. 그러니까 증거죠. 보이지 않는 이 믿음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로 나타납니다. 즉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요단강을 건넜던 것입니다. 비록 그 요단강물이 강 언덕에까지 넘쳐서 출렁거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었기에 건널려고 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믿음은 그냥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하실일을 구분해서 내가 할 일은 내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여기서 부터는 제가 할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가 공산주의로 되어가는데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거리로 나가 주사파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거리로 나가 ‘자유 대한 민국 수호’를 하자고 외치는 일은 국민이 할 일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을 최종 심판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죽고 살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일찍일어나는 것은 조금 귀찮고 힘든 것은 있지만 죽고 살만큼의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강물에 믿음으로 한발을 내디디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 돌맹이 한 개만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돌맹이 한 개가 아니라 돌맹이 다섯 개 가졌습니다. 왜요? 다윗이 손에 질수 있었던 돌맹이는 다섯 개가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을 자기가 가질수 있을만큼 가졌는데 그것이 돌맹이 다섯 개가 상징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만일 첫번쩨 돌로 골리앗을 못맞히게 되면 또 다른 돌맹이를 사용할수 있는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돌맹이 한 개면 족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일은 인간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길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또 다른 길로 가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올 한해 최선을 다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결하라(5)

5절입니다. “5.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라’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기적이 요구되어지는 일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기적을 믿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가운데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성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성결케 하였는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에대해 신학자들은 두가지로 해석합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옷을 빨았다’ 는 해석인데 출애굽기 19장 10절을 근거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오기 전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1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옷을 빨아서 성결케 하는 행위를 했으니 아마 자기옷을 빨아서 성결하게 하는 일을 했을 것이다 라고 해석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행위는 옛날 우리나라사람들이 행하였던 목욕재계 와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목욕을 하고 새옷으로 갈아입고 새해를 맞이하기도 하잖아요.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낼때도 이러한 행동을 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이 입을 옷을 빨아서 성결케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기적을 맞이할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성결‘ 이라는 단어는 ’깨끗하다‘ 는 의미보다는 ’구별하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날과 구별 되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면 새옷을 빨아서 입던 요단강 기적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던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날과는 달리 이날에 구별된 마음으로 요단강을 건널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성결 되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사람들과 구별되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별되고 깨끗하게 되는 길은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할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4절 후반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4.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길에서 내 힘으로 건널수 없는 요단강이 내 앞길을 막고 있을때 우리는 나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려고 하다보면 나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주님이 알게 해 주십니다. 내 문제가 성결의 문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알게 해주십니다. 만일 성결의 문제라고 한다면 예수님 보혈의 피를 의지하고 회개를 하시고 깨끗함을 입을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순종하라(3)

3절입니다. “3.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것을 보거든 ... 그뒤를 따르라.‘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인도하심‘ 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언약궤를 보고 따라간다‘ 라고 하는 것은 내 계획 내 방법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를 메고 가는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올것을 4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4.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너희와 그 사이 거리가이천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이천규빗이면 약 900미터 정도 거리입니다. 900미터 거리이면 상당한 거리를 두고 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거리를 두고 가게 하는 것입니까? 언약궤와 백성들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엉켜서 행진을 할 때 언약궤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저 뒤에서 가면 앞서 가는 언약궤를 모든 백성들이 보면서 행진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내 신념으로 가는 길과 신앙으로 가는 길은 다릅니다. 신념의 근거는 나의 의지, 나의 결단, 나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지만 신앙의 근거와 대상은 내가 아닌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내 의지와 내 결단으로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상징하는 언약궤를 바라보면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볼때 우리는 요단강을 건널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내눈앞에 있는 요단강과 같은 문제가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바라보시면서 한발짝 한발짝 걸어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흑인 기업가 출신인 크리스 가드너가 자서전인 ‘The pursuit of happiness 행복을 찾아서’ 라는 책을 내었는데, 이 책이 나오자 마자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이책을 내용으로 해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한동안 흥행 1위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영화와 책으로 소개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크리스 가드너는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계부 양아버지 밑에서 불우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매일같이 계부에게 맞는 엄마와 세명의 누나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 격분해가지고 이 크리스 가드너는 8살때 계부가 있던 집에 불을 지릅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서 크리스는 결국 남의 집에 입양을 가서 또 다른 불우한 어린 시절을 지내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해 군입대를 합니다. 몇 년후 군 제대를 한이후 결혼하고 의료기계를 파는 세일즈 맨으로 열심히 살아볼려고 했지만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돈이 없어서 자동차도 집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그때 자기 아내는 아들을 두고 떠나버립니다. 그래서 이 크리스 가드너는 졸지에 무숙자에다가 싱글 대디가 된 것입니다. 1980년대 그 샌프란시스코의 거리에서 그는 하나 밖에 없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때로는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때로는 Homeless 쉘터에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순간에도 이 크리스 가드너는 자기 어머니가 자기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인 기도만은 잊어버리지 않고 해왔다고 훗날에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는 내 인생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믿음 하나로 버티었다고 간증합니다.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어느 날 그는 주식 중개인을 만나 인턴생활을 하게 되죠. 그래서 낮에는 주식중개인으로 열심히 뛰고 밤에는 아이를 재울 노숙자 쉘터를 찾아다니는 생활을 합니다. 이 크리스의 성실함을 보아온 어느 한 고객에 의해서 이 크리스 가드너는 월스트리트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드너 앤 리치 컴퍼니 회사를 설립하고 자산이 1억 8천 만 달러를 가진 위대한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이 크리스 가드너는 험하고 힘든 시련의 강을 건너서 마침내 약속의 땅에 도달한 것입니다.

어느날 한 기자가 성공적인 기업가가 된 크리스 가드너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 당신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그때 이 크리스 가드너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제가 옛날 홈리스 생활을 할때 저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실 꿈을 바라보면서 저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지고자 했던 행복은 아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조그마한 방과 약간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CEO가 된 지금도 저는 행복을 위해서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크리스 가드너가 노숙자 생활을 할때 그와 같이 있었던 또 다른 노숙자가 자기를 찾아온 어느 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1980년도에 음식을 얻어먹기 위해서 줄을 서있는 크리스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 크리스는 많은 노숙자들 중에서 제일 눈에 띄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기를 안고 있는 유일한 남자이였기 때문이죠. 그이후로 난 유심히 크리스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는 시간이 날때마다 아기를 안고 기도를 하면서 울었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이 그를 도와 주실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요. 이 크리스 가드너가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자기 아들을 안고 바라보았던 그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요단강을 건너게 했던 하나님도 동일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눈앞에 보이는 시련의 요단강을 향해 한발을 내딛으십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단 강물을 멈추게 하실 것입니다. 시련의 요단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저멀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언약궤만 바라보며 따라가십시다.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던 노숙자인 크리스 가드너에게 시련의 강을 건너게 해주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크리스 가드너에게 약속의 땅을 밟게 해주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크리스 가드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아니 나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 시련의 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밟을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